주식 양수도에 의한 기업 지분 양수금 청구 사건

얼마 전에는 작년 말에 수임했었던 주식 양수도 사건 관련 사건의 선고가 있었습니다.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 주주로부터 보유 지분을 양수하는 것인데, 이번에 맡았던 소송 사건은 동업해 회사를 설립했던 주주 겸 임원이 회사를 퇴사하면서 역시 주주 겸 대표이사였던 제 의뢰인에게 주식을 양수하라며 소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상담을 하러 온 의뢰인과 얘기를 하다 보니 자신은 상대방이 퇴사하면서 주식도 인수해달라고 하여 자신이 인수할 수 있는지 회사의 세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세무사에게 회사의 가치평가를 해달라고 했던 것일 뿐 자신이 확정적으로 주식을 양수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의뢰인은 막상 세무사가 평가한 회사의 지분 가치가 자신의 생각보다 많이 높았고, 개인적으로 그 정도 자금 여력이 없어 지분을 인수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의뢰인으로부터 이런 내용을 듣다 보니 작년에 1년 가까이 진행하다가 거래 막판에 틀어졌던 식품 회사의 인수합병 건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인수를 위해 대략적인 매매가액에 합의가 된 상태에서 회계와 법률 실사를 진행 중이었는데도 실사 과정에서 일부 우발 부채가 확인되고, 매도인이 매도 가액을 올리고, 원하는 매도 시점을 변경해 최종적으로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기업 지분을 양수도하는 경우 언제라도 가액을 비롯해 계약 조건이 변경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뢰인의 얘기에 따르면 상대방은 세무사에게 주식 가치평가를 해보자는 의뢰인의 말을 세무사가 평가한 가액으로 의뢰인이 양수하겠다는 확정적인 계약이 체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상대방의 주장은 주식 양수도 실무와 전혀 맞지 않는 얘기일 뿐 아니라 인수할 주식 가액도 알지 못하고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으로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일이라 판단되어 사건을 수임했습니다.

이후 실제 사건을 진행하면서 상대방은 의뢰인 주장대로 세무사에게 주식 가치 평가를 맡긴 것만으로 계약이 체결된 것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는데, 제가 이에 대해 여러 증거를 들어 반박하자 처음에는 전혀 주장하지 않았던 전혀 엉뚱한 내용들을 공들여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상대방은 자신이 제기한 소인 주식 양수도와는 별 관련이 없는 주장들을 남발하며 시간을 소모하다가 얼마 전 패소판결을 받은 후 항소하지 않아 사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제가 마지막 준비서면에도 기재했지만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이처럼 무리한 소를 제기한 것은 아마도 퇴사한 후 자신의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여의치 않자 제 의뢰인을 상대로 다소 억지를 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의뢰인은 생전 처음 송사를 치르느라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데, 다행히 이제는 비록 열대야라도 편안한 밤을 보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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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국선변호사건 일부 무죄 파기환송 판결

여행을 하다보면 목적지를 찾아 처음 가는 길을 걷고는 합니다. 그러다 간혹 이쪽 모퉁이에서 만나 같은 골목길을 걷다가 갈래길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던 다른 여행객을 한참 떨어진 목적지에서 마주치기도 합니다. 가는 방향이 달라도 마지막에 도착하는 목적지는 같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맡은 소송에서도 그런 일이 생기고는 합니다.

지난 주에는 대법원에서 상고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제가 국선변호인으로 맡았던 사건이었는데, 소송기록을 보며 상고이유서를 작성할 때부터 기존 1심, 2심 판결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러 범행 중 실제로 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기죄 인정 여부에서 임대차계약이 종료한 후 임차인의 점유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저는 피고인이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이런 문제는 민사적으로 해결해야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임대차계약이 종료한 후라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받을 권리와 임차건물 반환이 동시이행 관계에 있으니 임차권도 여전히 인정될 듯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보증금이 없는 임대차계약도 있을 수 있고, 보증금이 소액이고 월세가 고액이면 보증금의 이자 상당액과 차임이 등가관계가 아닐 수도 있어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결국 이렇게 임차건물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물권인 점유권의 존재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동시이행항변권이라는 채권에 근거해 반환 거부가 위법하지 않기 때문인지 고민이 됐습니다.

원래 상고심 형사사건은 징역 10년 이상의 중대한 형이 선고된 경우에만 대법원에서 심판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쟁점이 있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판단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도 양형으로는 대법원에서 다룰 사건이 아니었지만 법리적인 쟁점이 있는 사건이라 국선변호인으로서 상고이유서 작성에 공을 들였습니다. 물론 예전에 했던 다른 사건에서도 법리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대법원에서 그냥 기각이 되어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법원에서 사기죄와 관련해 기존 1심과 2심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해 파기하고, 다시 재판을 하라고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내는 일부 무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에 얼른 판결문을 발급받아 내용을 살펴보니 사기죄의 보호법익에서 재물의 사용수익은 제외하기 때문에 점유권에 대해서는 사기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의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한 판단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생각했던 논리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점유권의 성격에 대한 제 고민이 결과적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대법관의 관심을 끌었나 봅니다. 결국 제 의뢰인은 이번 대법원의 파기환송판결로 일부 범행이 무죄로 인정되어 형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목적지로 가는 길은 처음 계획과 다소 달랐지만, 제가 처음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제 의뢰인에게는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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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이 걸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

설 연휴가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영화 한편을 보게 됐습니다. 제목은 ‘브라이언 뱅크스’, 촉망받던 미식축구 선수였던 브라이언이 거짓 피해 진술로 누명을 쓰고 수감생활을 한 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내용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시스템이 한번 잘못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그것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많은 힘이 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1월말에 제 의뢰인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문재인 정권 1호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언론에도 많이 보도됐었던 사건인데, 저를 포함한 변호인단이 2018년 1심부터 담당했던 사건입니다. 치열한 법정 다툼 속에서 1심에서는 유죄로 징역 4년이 나와 의뢰인이 법정 구속되었다가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된 후 1심 판결이 완전히 뒤집혀 전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시간이었는데, 항소심에서 형사법의 원칙에 충실한 판결문을 읽고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도 이런 결론이 나와서 놀랍기도 하고 변호인으로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의뢰인만이 아니라 변호인들도 1심과 항소심의 결론이 달라 혹시라도 항소심 판결이 뒤집히지는 않을까 다소의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침 대법원 선고기일에 지방에 재판이 있어 선고를 듣지는 못했는데, 선고를 들은 변호사님이 공유한 소식은 검사의 상고기각. 6년의 짧지 않은 기간 의뢰인과 변호인들의 마음이 마침내 자유를 찾은 순간이었습니다.

공판 기간동안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에 관한 법리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범죄사실 확인에 있어 컴퓨터, 통신 기술 측면에서도 참 많은 의견서와 증인신문, 공방이 오간 사건이었습니다. 의뢰인과 변호인의 모든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입니다. 다만, 1심 유죄 판결에는 언론사들에서 수십개의 기사가 쏟아졌는데, 항소심 무죄 판결에는 고작 몇 개의 기사만 나왔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지만 해당 판결을 다룬 기사는 단 1개도 없는 것을 보면 우리 언론사들이 과연 진실을 전달할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물음표가 그려집니다.

제 의뢰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동안 자신이 구치소에서 겪었던 고통스러운 수감생활 뿐만이 아니라 십여년이란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사업이 모두 망가져 이제는 공사 현장에서 노무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가족들의 생활비와 자녀들의 학비,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의뢰인이 또 다른 생계수단을 찾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철저히 망가져 버렸는데, 이런 상황을 만든 수사기관이나 사법체계는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을 하고 있지만 구금으로 인한 보상에 그칠 뿐이고, 피고인이 구속되어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망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무죄 판결문을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시하는 것 외에 기존에 손상되었던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다른 조치들이 없습니다. 이미 잘못된 정보들이 세상에 퍼졌는데 다시 돌이키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런 상황을 바꿔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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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국가유공자와 가족들

며칠 전 제가 원고를 대리해 맡았던 사건에서 청구 기각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원에서 소송구조를 받았던 원고가 상담을 요청해서 상담을 한 후 담당했던 사건입니다. 제 할아버지도 한국전쟁 당시 부상을 입어 제대 후 힘겨운 삶을 살다 돌아가셨고, 최근에서야 아버지께서 대신 훈장을 받으셨던 일이 있어 어려운 사건이지만 원고를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원고의 부친은 한국전쟁 당시 박격포탄에 눈을 잃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제대 후 사망하셨습니다. 유복자였던 원고는 이후 모친이 재혼을 하면서 고아가 되었고, 어린 시절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성장하다가 할머니도 돌아가시면서 친척집을 떠돌게 됐습니다. 당연히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던 원고는 이후 사회에 나가서도 아무것도 없이 많은 고난을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다가 60여년이 흐른 후 원고는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부친이 국가유공자라는 것을 인정해달라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이런 원고의 청구에 대해 보훈청은 원고의 부친이 한국전쟁 당시 부상을 입었다는 증거를 대라고 반박했습니다. 물론, 아버지를 본 적도 없는 원고가 그런 증거를 가지고 있을 턱이 없었고, 그 증거는 사실 국가가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원고가 기나긴 소송 과정에서 부친의 병적부와 육군병원에서의 치료 기록을 찾아냈고, 그 기록의 내용을 부인할 수 없었던 보훈청은 결국 원고의 부친을 가장 등급이 낮은 공상군경 7급으로 인정해줬습니다. 육군병원의 기록에 원고 부친의 양안 시력이 0.2, 0.1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원고 부친이 제대한 후 같은 마을 옆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원고의 부친이 양 눈을 실명했고, 제대 후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1년 후 사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고는 이에 다시 7급은 너무 등급이 낮다며 등급 부여를 취소하고, 부친의 부상과 사망이란 희생을 반영할 수 있는 등급을 부여해달라며 소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보훈청에서는 기존처럼 원고의 부친이 양 눈을 실명하였다거나, 그로 인해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자신들의 7급 등급 부여도 여러 사정을 반영한 너그러운 성격의 처분이었다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정황상 원고의 부친이 군 복무 중 부상을 입었을 때나 그 이후 제대했을 때도 국가는 제대로 치료를 해주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국가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원고의 부친을 외면했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소를 제기한 원고에게는 부친이 얼마나 부상을 입고, 왜 사망했는지 증거를 대라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최근 보훈청이 보훈부로 승격된 이유는 원고나 원고의 부친 같은 국가유공자들의 헌신을 제대로 기리고 대우하기 위한 것일테지만,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국가유공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시혜를 베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선진국에서는 국가유공자 인정과 관련한 자료를 국가가 수집하도록 하고, 그 입증책임을 국가가 지도록 하거나 입증 정도를 완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료들은 그 성격상 원래 국가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개인이 갖고 있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원고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될 사실과 증거를 모두 주장하고 제출해야 합니다. 법원도 법률이 그렇고, 대법원 판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습니다.

국가가 증거를 갖고 있음에도 개인인 원고에게 그 증거를 제출하라고 하는 모순된 상황, 이런 증거의 편재 때문에 많은 국가유공자들이나 그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여전히 승산없는 싸움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이 국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대우하는 것은 바로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합당한 대우와 예우를 갖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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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항소 인용 ‘피고인은 무죄’

지난 주에는 참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1심부터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유죄로 인정됐던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 전부 무죄로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 1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알려졌는데, 북한 출신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유통한 것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기존에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인데, 뉴스나 스트레이트 등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도 많이 알려진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중국에서 북한 개발인력을 활용해 뛰어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국내에 납품하고, 세계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정치적 상황이 변화됐고, 그에 따라 피고인의 사업도 위기를 맞았을 뿐 아니라 기업의 대표였던 피고인은 공포의 대상인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굴레를 쓰고 구속이 되었습니다.

1심이 진행되면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되어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피고인의 행위가 과연 국가보안법이 처벌하려고 하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정도인지, 피고인이 그런 행위라는 것을 인지했는지, 제출된 증거의 증거능력이 있는지 등 수많은 쟁점들이 3년 동안 공판정에서 다투어졌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일부 내용에 대해서만 무죄를 인정하였을 뿐 대부분 혐의에 대해서 유죄로 보아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을 법정구속했습니다.

변호인단의 앞에서 피고인이 법정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하니, 피고인 본인뿐만 아니라 변호인단이었던 저 역시 당황스럽고, 힘이 쭉 빠지게 됐습니다. 한동안 변호인단도 힘을 내지 못하던 차에 새로 변호사분들이 참여하면서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법리적인 부분과 사실 인정에 대해 치밀하게 의견서를 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공판이 장기간 진행되어 1년 반 가까이 흐르자 다시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변론이 종결되었는데, 선고기일이 다가오자 떨리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선고를 하는 날, 공판정에 들어가 30분 가까이 선고를 듣는데 처음에는 변호인단의 남북교류협력법 적용 주장을 배척하고, 일부 사실에 대해서만 혐의 인정을 배척하여 불안감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선고가 이어지면서 피고인의 범죄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없었다는 설명이 나오면서 저나 변호인단의 다른 변호사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재판장님이 피고인을 일어서게 하고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 피고인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피고인이 공을 들였던 사업이 모두 무너지게 된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고, 그래도 우리 법원에서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법리에 따른 판단을 하는 판사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 수년간 피고인의 공판마다 오셔서 방청하시며 아들의 무죄를 호소하셨던 피고인의 아버님이 박수를 치고 일어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또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1심에서부터 검찰에서는 이 사건이 정치적 사건이 아닌 경제적 목적의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했는데, 생각해보면 중국을 경유한 삼각무역이나 남북경협사업을 이런 식으로 사후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범죄로 처단하다 보면 향후 어떻게 남북간 민간의 경제적 교류가 가능할 것인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처럼 우리 사회를 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어 가는 노력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정치적 대립이 완화되고, 공존공영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고 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는 피고인을 보면서 피고인과 그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다시 한번 생각났습니다. 가정의 중심이었던 아버지가 구속되자 생활비와 학비 걱정을 해야 했던 가족들, 보석 기간에는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어놓겠다며 하루도 쉬지 않고 공사 현장에서 나가 일을 하던 피고인을 보며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저는 쉽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그렇기에 보람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변호인단과 헤어져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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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청구 사건의 특성과 승소 판결

최근 올해 4월경 맡았던 정보공개청구 사건의 선고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처럼 승소 판결이었는데, 행정 사건치고는 다른 사건들보다 쟁점이 복잡하지 않아서 인지 빨리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는 사건이다 보니 아무래도 행정청인 피고 쪽으로 기울어진 행정사건이란 성격도 갖고 있지만, 최근에는 다른 흐름도 보입니다.

정보공개청구는 다른 사건을 하면서 종종 병행해서 진행되는데, 저는 신청인이나 피신청인을 대리해본 적도 있고,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제3자인 심판자 입장에서도 사건들을 접해본 적이 있어 다양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먼저, 이번에 원고를 대리해서 승소했던 사건처럼 공공기관들이 공공정보 공개에 있어 아직도 상당히 폐쇄적이고 방어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공개된 행정안전부의 정보공개 기준이나 법원의 선례에 비춰 보더라도 이 정도 정보는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보도 최대한 그런 정보가 없다거나, 비공개 사유가 있다면서 공개를 꺼리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일부 공개를 하는 경우라도 개인정보 보호를 근거로 공개 범위를 과도하게 좁히기도 합니다. 물론, 과거와 달리 개인정보에 대한 정보주체의 민감도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이로 인해 사후에 공개된 정보의 정보주체가 민원 등 다른 문제를 제기할 소지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과도한 공개범위 제한은 비공개나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저도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기관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떤 사례에서는실제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담당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악용될 때도 있고, 법령이나 공개기준 가이드라인이 불분명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제재하여 불필요한 행정소요를 줄일 것인가 하는 것도 향후 정보공개 제도의 비용과 효과간 균형 측면에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의 공개를 일단 기피하려는 방향으로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정보보호와 그 악용에 대한 제재와 억지 수단과 별개로 정보공개는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감시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최근 행정심판위원회나 법원에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여부나 범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승소한 사건 역시 원고가 기존에 많은 정보에 대한 공개를 청구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계속 정보공개를 청구한 원인은 피고인 행정청이 제공한 측면도 있습니다. 1번에 충분히 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절차 위반과 공개 범위 제한을 했기 때문입니다. 송달된 판결문을 읽어보면서 피고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생깁니다. 결과적으로 담당자도 힘들고, 국민의 세금도 낭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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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의 난민지위 인정

얼마 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제가 맡고 있던 난민신청 사건의 딸이었습니다. 난민신청을 한 아버지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건을 진행하면서 한국어에 익숙한 딸을 통해 통화를 하곤 했는데, 흥분한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변호사님, 오늘 오전에 아버지가 난민인정증명서를 받았대요.”

이의신청 단계에서 이례적으로 추가 면접을 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전화로 실제 난민증명서를 받았다는 말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맡은 후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는데 계속 결정이 나지 않아서 당사자도, 저도 모두 힘들었습니다. 이의신청 단계에서 추가 면접을 이후 추가로 자료를 요청받았는데, 이미 오랜 기다림과 절차들에 지친 의뢰인이 더 이상 줄 자료가 없다며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메일과 전화로 계속 설득을 했는데, 다행히 딸이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어렵사리 딸의 협조로 추가 자료들을 구했고, 자료들을 제때 법무부 조사관에게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제 의뢰인은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길고 쓴 인내의 열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난민으로 인정받았더라도 한국에서의 정착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전화를 통해 들은 밝은 목소리에는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것 같았습니다. 의뢰인과 그 가족들의 행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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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난민신청인의 눈물

저는 며칠 전 이의신청 단계에 있는 난민신청인의 면접에 동석을 했습니다.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에서 분담해 수행하고 있는 사건인데, 최초 난민신청에서 난민으로 인정이 되지 않아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한 단계였습니다. 다른 난민사건도 비슷하지만 최근 사건 처리가 너무 지체되어 많은 난민신청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의뢰인인 이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난민신청인은 가족들과 함께 고국을 탈출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후 이제 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점점 성장하고, 아내는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맡은 후로도 1년 반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저 역시 신속한 심사를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해 의견서만 이미 3차례 정도 제출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사건을 맡은 이후 최초 난민신청 당시 제출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추가로 전달받아 정리해 제출했는데, 그 중에는 반정부 시위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동영상들과 고국에서 궐석재판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판결문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기존에 많은 난민 사건을 맡아 진행했었고, 난민이나 인도적 체류허가자로 인정받은 사건들이 있는데, 이렇게 판결문까지 제출할 수 있었던 사건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만난 난민신청인은 오랜 기다림 끝에 추가 면접을 하게 되서인지, 저와 했던 면접 때보다 다소 긴장한 듯 보였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들을 잔뜩 넣은 파일을 손에 들고 조사실로 올라간 후 조사관의 질문에 따라 조사관, 통역인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답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던 면접에서 이미 답변했던 내용에 대해 다시 동일한 질문을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조사관이나 제가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면 다시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다가 조사관이 난민신청인에게 고국에서 여러 차례 체포되어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난민신청인은 시간이 많이 흘러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당시 일들은 자신도 너무 고통스러워 잊고 싶어하는 기억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에 조사관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난민신청인은 그런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면서 자신이 난민지위를 신청한 것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그런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꾸 되살려보라고 압박하면 차라리 난민신청을 철회하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체포되어 어떻게 끌려갔고, 전기고문을 비롯해 차마 여성인 통역인 앞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문들을 당했다고 말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저나 조사관 모두 그저 조용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에 걸쳐 체포되어 전기고문을 비롯한 고문을 당하면서 더 이상 정부에 반하는 주장을 하지 말라고 강요받는 상황… 생각해보면 우리의 근현대사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우리 역사 속 이야기들과 유사한 상황을 겪은 50대의 난민신청인이 어렵게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까지도 그 고통이 전해져 마음이 먹먹해졌고,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런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 고국에서 고통을 겪었던 이 난민신청인과 그 가족들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라도 평온한 삶을 누리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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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정비사업 보상금 증액청구 사건 종결

지난 달에는 1년 여 정도 진행했던 재개발조합과의 영업보상 사건이 끝났습니다. 수용재결이 있기 전부터 상담을 거쳐 수임을 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이 사건은 의뢰인들이 행정법원에서 1심이 끝난 후 항소 직전에 저를 찾아와 사건을 맡게 된 것이 좀 달랐습니다. 제가 전에 유사한 사건을 잘 마무리한 적이 있었는데, 1심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던 의뢰인분들이 기존 의뢰인의 소개를 받아 오다보니 좀 늦게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건을 처음 수임한 후 1심 소송기록을 보면서 좀 안타까웠던 것은 한번에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토지, 지장물, 영업보상 등 손실보상 관련 사건들을 처리하다보니 소장이나 준비서면에 저를 찾아온 의뢰인들의 개별적인 사정들이 세심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영업보상과 관련해 필수적인 사실조회 신청이나 감정 절차는 다 거쳤지만, 실제 보상금 산정 과정에는 조금 더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습니다.

일단 사건을 맡은 후에는 항소이유를 기재한 준비서면을 제출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의뢰인들과 상담을 했고, 항소심에서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을 요청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뢰인들이 상당한 분량의 자료를 정리해서 제게 전달해줬고,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꽤나 두툼한 준비서면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소송이 계속되던 중에도 의뢰인들과 저는 조합과 합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제가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도시정비사업 관련 사건들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당 사업에 대한 법제가 사업시행자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건의 경우는 소송을 통한 판결이라는 하나의 수단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재판상, 재판외 합의나 조정을 통해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해결 방안을 찾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행히 이번에 종결된 사건의 의뢰인들도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계셨고, 조합과의 합의 과정에서도 저와 계속적으로 상담을 해 끝까지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의뢰인들이 처음 사건 상담 당시부터 소송 종결시까지 조언을 해주는 저를 굳게 믿어 주셔서 사건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든든하고, 고마웠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이렇세 서로 믿고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의뢰인들을 주로 만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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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쓴 남북경협 사업가

지난 달 말에는 3년 반 가까이 진행되었던 형사사건의 선고가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사건과 달리 검사의 주장처럼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각 인식 프로그램 개발 및 유통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있는 사업가와 주고받은 개발자금과 프로그램을 국가보안법상 금품수수와 자진지원이라고 기소한 사건이었고, 문재인 정부에서 기소된 1호 국가보안법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언론사의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피고인은 중국 현지 사업가와 동업으로 시각 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중국 사업가의 산하에 북한의 프로그램 개발팀이 있어 문제가 된 사건입니다. 재판부가 판단한 것처럼 이러한 프로그램 개발과 그 유통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사건 판결에서는 법리나 기술적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고, 그 중 가장 문제가 있는 부분들은 아래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먼저, 피고인의 사업을 남북교류협력법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면서 피고인이 프로그램 개발을 한 것이 남북교류협력의 목적이 아니라 피고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 것입니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향후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 남한의 경제 사업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는 자선사업만 해야 한다는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해석론이라면 앞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완화되더라도 누구도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할 엄두를 낼 수 없어 오히려 남북교류협력법의 제정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은 자신의 사업 파트너인 중국 현지 사업가와 10년 넘게 수많은 이메일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피고인의 프로그램 개발사업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조직과 업무지시 체계를 갖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수백쪽에 달하는 전체 대화 내용 중 문맥과 전후 사정을 무시한 채 오로지 한두번 언급된 단어만으로 사실관계를 단정하고, 그 외 수십 차례에 달하는 다른 증거들은 외면했으니 증거를 취사선택하는데 오류를 범해 사실관계를 잘못 확정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기술적 부분에 있어서 검찰이 제시한 수사기관과 협력기관들의 보고서만을 믿었을 뿐, 코딩이나 프로그램 개발에 있어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믿을 수 없다며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판결의 근거로 든 보고서의 내용들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그 기술적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증언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서류 등으로 반박이 된 것임에도 이러한 기술적 내용들에 대해 편향된 의도를 갖고 작성된 보고서의 내용만을 믿고 내린 잘못된 판단이라 보입니다.

최종적으로 피고인 2명 중 1명이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1심 진행 중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던 피고인이 1심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이 되어 선고를 듣고 있던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 법원이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단한다는 씁쓸한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미리 결론을 정해 놓고 그에 맞는 증거들만을 택해 판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들어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구속된 피고인이 가족들과 변호인단에 보낸 편지를 읽다보니 국가보안법이 옥죄고 있는 우리의 삶을 더욱 절절히 느끼게 됩니다. 항소심에서는 보다 냉정하게 증거를 검토해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 재판부를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만일 이러한 판결과 법 해석이 굳어진다면 향후 남북간 긴장이 완화된 후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 누구도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고, 이는 남북관계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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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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