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4

호치민은 베트남전쟁 전후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이었기에 대통령궁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전쟁 중 미군이 철수한 이후 북베트남군의 탱크가 호치민으로 진격해 점령했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이 대통령궁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궁에 진입했던 탱크 2대가 대통령궁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안으로 들어가면 남베트남 당시 대통령의 다양한 일상과 업무 공간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옥상에는 북베트남군이 진격해오자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이 탈출하려고 했던 것인지 헬기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분단된 국가이기는 했지만 한 국가가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아 뭔가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비까지 내린 날이라 더욱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대통령궁 앞마당은 주인을 잃은 옛 고궁의 정취마저 느껴졌습니다.

통일궁이라고도 불리는 대통령궁을 나선 후 전쟁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과의 전쟁 이전에 이미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 프랑스와 벌인 전쟁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고, 미군이 진주한 이후에는 우리나라 군대도 참전한 아픈 과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전쟁박물관에 가보면 물론 식민지 시대 프랑스, 미국 군대의 잔인한 학살과 만행에 대한 고발 내용도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살포한 에이전트 오렌지라 불린 고엽제나 지뢰로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들만이 아니라, 군복무 당시 노출된 고엽제로 고통받는 미군이나 심지어 우리나라 군인의 모습이나 증언까지도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물론 일부 선전의 의미도 있겠지만, 이제 베트남은 기존의 증오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신감과 힘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직 분단의 고통이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크나큰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 그것을 극복해낸 베트남이 약간 부럽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것일 뿐이니 이해한다고 말한다는데,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날은 그런 복잡미묘한 생각에 잠겨서 조용한 바에 앉아 술을 한잔 했습니다.

베트남 여행의 후반부를 보냈던 호치민에서는 비로 인해 계획했던 일정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호치민 시내 구경을 마친 다음날에는 원숭이들이 주인인 껀저섬 투어를 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진입로가 물에 잠긴데다 뻘처럼 변해서 저를 포함한 일행들의 신발을 잡고 놔주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의 반 이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원숭이들은 함께 걷던 한 일행의 선글래스를 번개같이 낚아채 간 후 공원 관리인들이 주는 바나나와 교환하는 쇼맨쉽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몇년 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개발도상국의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나라 전역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역동성이 마치 우리나라의 1990년대, 2000년대 초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이전보다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되어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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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3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과거 안남왕국의 수도였던 ‘후에’와 작은 도시지만 옛 베트남의 정취가 남아 있다는 ‘호이안’이었습니다. 호이안은 전통 상점 등 아기자기한 멋이 있고, 여행 중 한번 정도 참여해보고 싶었던 쿠킹 클래스도 진행되는 곳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다낭을 떠나 호이안으로 가는 길에는이러한 기대 때문인지 더욱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호이안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 무렵이었는데, 출발 전 미리 여행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호이안의 호숫가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넘실거리는 수면에 비치는 아름다운 주황빛에 잠시나마 근심걱정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일행들과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정해진 시간에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던지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의자에 앉아 노을만 보고 있는데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 일행과 만나 호이안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갔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대기줄이 길지 않아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식당에서 유명한 모닝글로리 볶음과 추천 메뉴를 먹어보니 역시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습니다. 이후 일행들과 함께 기념품 상점들을 돌아다니면서 기념품을 몇 가지 산 후 숙소로 돌아갔는데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느라 피곤했는지 깊이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먼저 귀국해야 하는 일행들과 이별을 하고, 혼자 호이안 곳곳을 여유있게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호이안은 역시 다낭이나 이후 갔던 호치민 같은 대도시에 비해서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특히 곳곳에 조용한 사당이나 사찰 같은 곳이 있어서 구경할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방문했던 곳은 길가 옆에 있는 연못에 연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곳이었는데 연꽃들을 보다 보니 시간이 금새 흘러갔습니다.

다시 길을 나서 식사를 한 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제가 찾았던 한 사당은 사당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나 설명들을 보면 특정한 가문에서 지은 곳처럼 보였는데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제단 위에 걸려 있어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호이안 골목을 걷다보니 LEE Laundry, KANG Restaurant 등 익숙한 우리나라 성이 붙은 가게들이 보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하던 지역 근처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게 주인이 라이따이한들이라면 살아오면서 적국 군인의 자식으로 겪었을 고난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려오기도 했습니다.

뒷골목을 이리저리 둘러본 후에는 관광 안내소를 찾아가 쿠킹 클래스 신청을 했습니다. 쿠킹 클래스는 정해진 시간에 신청자들이 모여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시장에서 요리재료를 산 후 자신이 산 요리재료들을 들고 배를 타서 도착한 작은 섬에 마련된 교실 건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음식을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는데 강사가 알려주는대로 따라하다보니 그래도 다행히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그런지 제가 만든 요리여서 왠지 맛도 더 괜찮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ㅎㅎ

호이안에서 혼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 후에는 마지막 여행지인 호치민으로 이동했습니다. 호치민은 과거 베트남 전쟁에 이은 베트남의 통일 이전까지는 사이공으로 알려졌던 도시로 수도인 하노이보다도 더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경제수도로도 불리는 호치민의 모습은 역시나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점령해 활기가 넘치고, 곳곳에 고층 빌딩이 서 있는 발전된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호치민 중심부를 흐르는 강을 따라서는 시민들이 여유있게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는데 잔디밭에는 낚시꾼들이 잡았는지 메기 같은 모습의 물고기가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호치민시에서는 현지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은 생각에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했는데, 덕분에 집안에 가파른 나선형 계단이 있는 4층 집에 머물게 됐습니다. 각 층의 방이 마치 스킵 플로어 구조처럼 배치되어 있었는데 오래된 집이긴 했지만 주인 아주머니와 친해져서 식사 외에도 옥수수와 다른 간식들도 얻어 먹으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숙소에는 연세가 있는 독일인도 한명 장기 투숙 중이었는데, 원래 독일 IT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독일의 경제성장률이 점점 떨어지자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프리카에 갔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 베트남으로 와서 일을 한다고 해서 현재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케냐에서 베트남으로 원목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베트남이라고 하면 1차 원자재를 수출하는 곳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제 베트남도 원목을 수입해서 가공해 판매하는 산업으로 확실히 옮겨 갔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최근 국내 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에 하이테크 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베트남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60세가 넘은 나이에 베트남에 와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찾고 있는 독일인 사업가를 보면서 그 도전정신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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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2

옛 베트남 왕국의 수도였던 후에 여행을 마친 후 다시 다낭으로 돌아와 뒤늦게 출발한 일행을 만났습니다. 다낭은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했던 지역 부근으로 한국군의 휴양지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트랑(나짱)이 미군의 휴양지로 유명했던 것과 대비되는 곳인데, 이러한 역사로 인해 다낭에는 이른바 ‘라이따이한’들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는 다낭에 한국기업들이나 한국 자본이 많이 진출하여 몰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여 해변에 초고층 호텔과 식당 등 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다낭에서의 첫날 아침은 해변을 따라 호텔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 지리를 익히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시설들을 짓느라 그런지 여기저기 공사장이 많았습니다. 저와 일행은 자전거를 호텔에 다시 반환한 후 전날 의논한 것처럼 다낭 시내에서 멀지 않은 마블 마운틴으로도 불리는 오행산을 찾았습니다. 오전에 출발해서 그런지 다행히 관광객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는데, 관람티켓을 사려고 했더니 매표소가 2곳이나 있어서 좀 헷갈렸는데 자세히 보니 입장을 위한 티켓을 파는 곳과 엘리베이터 티켓을 파는 곳이 구분되어 있어서 산에 온 김에 걸어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습도가 높아 약간 땀을 흘리며 오행산을 올라 정상에 서니 다낭 시내와 바다가 한 눈에 보였습니다.

오행산 정상에서 다시 내려가니 사찰이 하나 보였습니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자 한쌍이 보였는데, 폐유리 타일로 장식이 되어 있어 가우디 작품인 스페인 구엘 공원에서 보았던 조각품들이 연상되었습니다. 옛부터 내려온 사원인지 아니면 최근에 지어진 것인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디자인이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서 베트남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인상깊은 사원을 지나 오행산의 유명한 대리석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동굴 안에는 관음보살상과 부처상 등 불교 관련 유물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채로운 빛의 조명을 받아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천장에서는 빛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는데, 어두운 동굴에서 머리 위 구멍을 통해 내리쬐는 빛을 보고 있자니 아마 예전에 불상들을 보러 왔던 신자들은 마치 하늘에서 영험한 기운이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동굴을 나와 아래로 내려와 출구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대리석산이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조각상을 만들어 파는 상점이 많이 보였습니다. 사자나 다른 동물 등 멋진 작품들이 보이기에 구경을 좀 하다보니 시간도 흐르고 햇빛이 강해서 덥기도 하여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동남아시아에 가면 제가 많이 주문하는 음료수는 수박이나 망고로 만든 주스인데 날도 더워서 수박음료를 한잔 마시니 시원한 것이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식사까지 마친 후 숙소로 돌아갔다가 선선해진 저녁에 야시장을 구경한 후 밤 늦게까지 여는 바에서 일행과 함께 칵테일을 마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좀 피곤해서 천천히 일어났는데, 일행과 함께 다낭 근처에 있는 바나힐에 갔습니다. 바나힐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미지였을 당시 프랑스인들의 휴양지 명목으로 고지대에 건설된 리조트인데 최근에 시설들을 다시 리모델링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를 설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길이가 길어서 그런지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을 올라간 후 주변 경치를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경치도 좋고 리조트의 놀이시설도 재밌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나힐에서 생전 처음 루지를 신나게 타보고, 기념품 가게에서 기념으로 손톱깎이도 하나 사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좀 고파졌습니다. 그래서 함께 간 일행과 함께 식당에서 감자칩과 닭꼬치를 사먹고 광장 쪽으로 걸어가다보니 시원하게 물이 솟구치는 분수대 옆에서 예전에 스페인 라플라스 거리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전신에 금분을 칠하고 화려한 복장을 한 채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관광객에 대한 홍보 차원에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바나힐과 어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예상치 않게 유럽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다시 다낭으로 돌아간 우리 일행은 그날 저녁에 각자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해변으로 가서 비치 파티에 참여했습니다. 듣던 것보다 해변에 관광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신나는 노랫소리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드면서 손에 든 병맥주를 마시다보니 금새 자정이 지났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관광객들이 줄어들어서 우리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너무 늦어서인지 교통편을 구할 수가 없어 좀 헤매다가 다행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침대에 지친 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다낭에서의 일정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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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1

베트남은 다양한 매력이 숨겨진 여행지인 것 같습니다. 2009년에 가족들과 함께 하롱베이, 하노이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구경할 것도 많고 음식도 입에 잘 맞아서 여행을 다시 가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베트남 북부가 아닌 가보지 못한 중부 이남을 가보고 싶었는데 2017년 여름 마침 여유가 있어서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일정이 맞는 친구가 없어서 여행카페에서 함께 여행갈 동료들을 찾아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베트남 중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여행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베트남 다낭으로 입국을 하였습니다. 다낭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예전 베트남 왕국의 왕도였던 후에로 이동하기 위해 현지 여행사로 가서 예약을 했습니다. 예약을 한 후 약간 시간이 남아서 여행사가 있는 골목 한 구석에 천막을 치고 쌀국수를 파는 가게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돈으로 700원 정도 하는 쌀국수가 국물이 아주 진하면서 풍미가 있고, 서비스로 함께 준 바게트와도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좋게 배를 채운 후 베트남으로 여행 오길 참 잘했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버스를 탔습니다. 후에에 도착해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자 금새 저녁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과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앞으로 어떻게 여행을 할지 여행가이드북을 읽으면서 계획을 짠 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후에 왕궁과 왕궁 인근의 사원을 둘러보는 계획을 잡았기 때문에 서둘러 호텔을 나섰습니다. 후에 왕궁은 과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중국풍에 베트남 고유 양식이 혼합된 느낌의 건물과 조형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자가 적힌 문과 솥은 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유물들과 똑 닮아 있기도 했습니다. 또 후에 왕궁에는 현재 베트남어와 달리 한자가 많이 적혀 있었는데 마치 우리 조선시대처럼 과거 베트남에서도 지배층은 한자를 주로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궁을 보다 보니 우리나라 창덕궁 후원의 꽃무늬 담장과 유사한 담도 보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조선왕궁 중에서는 창덕궁 후원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물론 창덕궁보다는 장식이 좀 더 화려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느낌이라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왕궁의 각 구역들을 잇는 붉은 색 담장도 길게 처져 있어 중국 같은 느낌도 났습니다.

왕궁을 다 둘러본 후에는 왕궁을 나와 부근에 있는 강변의 사원을 찾았습니다. 사원은 강변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길에 지나야 하는 문들도 많았고, 관광객들도 꽤 북적북적하는 정도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사원 내부를 둘러보다가 높이 솟은 탑을 보게 되었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벽돌을 쌓아 만든 육각형의 전탑 형식으로 곳곳에 탑의 각 층별로 지붕과 창문이 있고, 창살에는 만자나 꽃무늬 장식으로 되어 있는 아름다운 형상이었습니다.

사원까지 모두 구경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왔는데, 중간중간 비도 오고 많이 걸어다녀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더 돌아다니지 않고 쉴 생각으로 숙소 주변 시장에 위치한 미용실에 가서 이발을 했는데, 두피 마사지를 포함해 이발 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9천원 정도 줬습니다. 해외에서 이발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떤 스타일로 할 것인지 좀 걱정도 됐는데 기대보다도 더 세련된 스타일로 이발을 한 후 비누 거품을 낸 상태에서 두피 마사지까지 해줘서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이발을 한 후에는 시장에서 제가 좋아하는 망고스틴을 사서 호텔로 돌아와 마사지를 예약한 후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일단 먹은 것을 어느 정도 소화시킨 후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전에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스웨디시 마사지를 받기로 했습니다. 스웨디시 마사지는 뜨거운 돌을 이용해 온 몸 곳곳에 올려놓아 몸의 근육과 긴장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마사지를 하는 것인데, 사실 누워있는데 뜨거운 돌을 몸에 올리길래 처음에는 좀 뜨거워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뜨겁다고 마사지를 안 받겠다고 치워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좀 참고 있으니 점점 식어서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잠시 후 다시 뜨거운 돌로 바꿔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흑흑…

그렇게 마사지를 받으며 2시간 정도 뜨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제 방으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여기저기 뭉쳤던 곳이 많이 풀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좀 뜨겁기는 했지만 처음 경험했던 스웨디시 마사지도 다른 마사지들 못지 않게 나름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은 후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티비를 보다가 어느 순간 푹 숙면을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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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미식의 대만여행 2

우리 일행은 전날까지 타이베이 시내를 둘러봤으니 이제는 타이베이를 벗어나 타이베이 근교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타이베이 근교 여행은 예류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묶어 예스진지 투어라고 해서 택시나 개인 투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만의 기차를 타보고 싶다는 일행의 의견을 따라 기차로 진과스와 지우펀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이고, 더구나 대만에서 기차를 타는 것이니 다소 설레기도 했는데, 막상 기차를 타보니 우리 전철처럼 승객이 양쪽에 앉아 서로 쳐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지우펀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되었는데 일단 자리가 있길래 얼른 앉아 철로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지우펀 근처 역에 도착했습니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곳으로, 좁은 골목 곳곳에 다양한 먹을 거리와 상품들을 파는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관광객이 너무 많다보니 좀 답답한 기분도 들고 높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안개가 끼고 비도 자주 내려서 불편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먹어보지 못한 간식들도 먹고, 기념품도 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와 누나네 가족은 지우펀에서 각자의 띠를 상징하는 자그마한 형광 도자기 인형들을 샀습니다. 저는 앙증맞게 생긴 인형이 마음에 들어 제가 퇴근한 후에도 제 방을 지키라는 의미로 사무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는데 퇴근할 때 불을 끄면 형광빛이 나면서 지금도 제 방을 밝히곤 합니다.

지우펀에서 주변 경치도 둘러보고, 배도 채운 후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다는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유명세를 타서인지 골목길은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보니 전망도, 분위기도 좋은 전통 카페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다말다 하면서 추위가 느껴졌기 때문에 차를 한잔 마시고 가자고 하여 안개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서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니 몸이 좀 풀리면서 피로도 좀 사라졌습니다.

지우펀을 둘러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진과스로 향했습니다. 진과스는 과거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일본이 광산을 운영했던 시절의 영향이 컸는지 상당수 건물이 일본풍의 건축양식이었습니다. 과거 실제 금광이 운영되던 시절 역사와 금덩어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내부를 둘러보고 광산에서 캐낸 광석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체험 코스에 참여했습니다. 바닥의 모래를 바구니에 넣고 잘 흔들고 돌려서 사금을 골라내는 것인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어 일행들이 모두 집중해서 열심히 금을 찾아냈습니다.

골드러시 못지 않은 열기로 체험을 끝내고 나니 힘이 들었는지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진과스에 오면 다들 한번씩 먹는다는 광부 도시락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출발했습니다. 식당에 가니 둥그런 스테인리스통에 든 광부도시락을 팔았는데, 겉은 정성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고 안의 도시락 구성도 고기와 채소가 푸짐하고 맛도 괜찮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맛있는 도시락과 따뜻한 국수로 식사를 배부르게 하고 나니 계속 걸어다니느라 힘들었던 것도 잊고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진과스에서 식사까지 마친 후에는 다시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 외곽의 단수이로 향했습니다. 단수이 해안가에 위치한 위성도시로서 일몰로 유명한데 제가 중국어 학습 스터디를 하면서 공부했던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오는 담강고등학교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단수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단수이는 바닷가답게 해산물 요리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즐겨찾는다는 맛집을 찾아가 새우요리 등 저녁식사를 거하게 한 후 타이베이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종일 추운 곳을 걸어다녔더니 호텔방에 들어가자 완전히 지쳐서 간단히 따뜻한 물로 샤워만 한 후 바로 꿀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대만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수천년 역사를 지닌 중국의 역대급 보물들을 감상한 날이었는데, 바로 고궁박물관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넘어올 당시 대륙의 박물관에서 중국 역사상 중요한 유물들만 엄선해 싣고 왔다고 하는데 그 보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 고궁박물관입니다. 베이징 자금성도 중국에서는 고궁이라고 부르는데 아마 자금성에서도 유물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명칭을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도 배추 형태의 옥인 취옥백채와 동파육 모양의 옥인 육형석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상아 투각 조각품이나 청명상하도 등 수십만 점이 넘는 보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작품들이 너무 많아 연 4회 작품들은 전면 교체한다고 합니다. 저는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워낙 명작들이 많다보니 나중에는 꼼꼼히 보는 것을 포기하고 눈길이 가는 작품들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오니 다리가 아파서 얼른 음식점으로 가서 앉아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박물관 옆에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전시품인 육형석을 닮은 동파육이 가장 유명한 메뉴라길래 시켜서 먹었는데 우리가 먹는 삼겹살 부위인 것 같은데 훨씬 부드럽게 조리를 해서 입에 넣으니 녹아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렸던 배를 달랜 후 하얀 박물관 밖에서 사진을 한장 찍는 것으로 대만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대만여행은 온천을 비롯해 즐길 거리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물가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라 아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한번 가본다면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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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미식의 대만여행 1

한동안 대만 여행 붐이 분 적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보다 가깝고, 일본보다 물가는 싸지만 온천 등 휴양지나 맛집도 많아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선호도가 높아졌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봤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타이베이 옆 단수이에 있는 담강고등학교였기 때문에 대만여행을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제 누나네 가족들이 시간이 맞아서 함께 대만으로 출발했습니다.

예약할 때 고급 숙소도 생각보다 저렴해서 저녁에 호텔에 도착했을 때부터 매우 만족스럽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다음날은 일단 다들 가는 용산사부터 들렀습니다. 용산사는우리와 달리 불교에 도교 및 유교까지 함께 모시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향을 피우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사찰 안이 뿌옇게 연기로 차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도 향에 불을 붙여 간단하게 소원을 빌었는데, 가만히 보니 공물로 일본어가 잔뜩 적힌 롯O 과자들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대만은 모두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 방식이나 상황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보니 양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에 일본과의 관계나 국민들의 감정도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용산사를 나와 시내로 이동해 딤섬으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지점이 들어와 있는데 대만 본점과 우리나라 지점의 맛 차이에 대해 약간 논란이 있긴 했는데, 저는 사실 차이를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둘 다 맛있었습니다. ㅎㅎ 식사 후에는 주변 상점들을 돌면서 예쁜 상품들을 살펴봤는데, 나무로 만든 모빌이나 오르골 등 고급스러운 제품들이 많이 있어서 하나 사고 싶은 유혹을 느꼈습니다. 구경을 하다가 배가 좀 고파서 파인애플이 들어간 펑리수라는 간식을 사먹었습니다.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마트에서 사먹었던 밀크티처럼 펑리수도 꼭 먹어봐야 하는 필수 코스처럼 되어 있었는데, 많이 달지 않아서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실 좀 퍽퍽해서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시내를 돌면서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 저녁이 되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높은 타이베이 101 빌딩은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최상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멋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자 타이베이 101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전망대 티켓 가격이 생각보다 좀 비싸서 볼 것이 많은가 하는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꽤 이동속도가 빨라서 귀도 좀 멍멍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해서 밖의 야경을 보다가 한 층 위로 올라가니 엄청나게 큰 철구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뭐지 하고 깜짝 놀랐는데, 설명을 보니 타이베이 101 빌딩이 워낙 높은 빌딩이라 태풍 등 센 바람이 불거나 지진 등 진동이 큰 경우 건물이 흔들리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철구가 흔들리면서 빌딩이 무너지지 않도록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초고층 빌딩들에도 그런 장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전망대에서 야경까지 구경하고, 아래로 내려오니 산호나, 옥 등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귀한 재료로 만든 공예품들이 많이 있어 다 둘러보고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해서인지 호텔로 돌아온 후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장개석 총통을 기념하는 중정기념관을 갔다가 노천 온천에 가기로 했습니다. 중정기념관은 학창시절 중국어 교과서 표지에도 그려져 있었던 건물인데, 실제로 보니 책에서 보던 것보다 더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중국 전통 청기와가 하얀 벽과 어울렸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꽤 길어서 땀이 나고 숨이 좀 찰 정도였습니다. 건물 안에는 삼민주의를 강조하는 장개석 총통의 동상도 있었는데, 대만에서 수십년 동안 계엄령을 통한 독재로 종신 집권을 했던지라 다른 독재자들처럼 엄청나게 큰 동상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정기념관 내부를 둘러본 후 간단한 기념품도 사서 우리 일행은 노천 온천을 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대만은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상 화산지대에 위치해서인지옛부터 유명한 온천이 많았다는데, 그 중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노천 온천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막상 도착해보니 거의 무료인 것은 맞는데, 탈의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수영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온천탕에 들어가니 뜨거운 온천이 쌓여 있던 피로를 확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온천을 즐기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한 번 정도 온천을 경험해보는 정도로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노천 온천을 하고 나니 배가 좀 고프기도 하고, 조카가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회전 초밥집에 갔는데 생각보다 저렴하고 맛도 있어서 역시 대만은 미식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배를 채운 후 좀 어둑어둑해지자 먹거리와 볼거리로 유명한 스린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점이 들어오기 전이었던 대왕 카스테라도 사먹고, 큐브 스테이크도 먹으면서 구경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서 호텔로 돌아가 간단히 맥주 한 잔을 마신 후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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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6

홉스골에서의 마지막 아침은 일출을 보는 것으로 열고 싶었습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들 잠들어 있는 어슴프레한 시간 저는 먼저 일어나 숙소 뒷편의 동산에 올랐습니다. 호수에 비친 해를 보기에 딱 좋은 명당이란 얘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면 다시 귀국길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혼자서 쌀쌀한 몽골의 아침 공기로 정신을 맑게 하고 지평선 끝에서 쑥 올라온 해가 내뿜는 은은한 아침햇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몽골의 자연 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여러 고민들이 실은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호연지기가 생기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홉스골과의 이별을 고하는 저만의 조용한 의식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꾸렸습니다. 저는 일행들 중 귀국하는 일부 사람들과 무릉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갔는데, 막상 울란바토르에 가니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에 가려고 3번이나 시도했던 생각이 나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하루 머무는 동안 일행과 유명한 꼬치구이집에서 꼬치도 먹고, 국영백화점에서 몽골 특산품인 모피, 양털 제품과 칭기스칸이라는 브랜드의 40%짜리 증류주 쇼핑도 했습니다.

다음날 울란바토르에서 다른 일행들은 한국으로 가는 직항을 탔는데, 저는 베이징을 경유해 하루 묵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행들과는 한국에서의 뒷풀이 약속을 잡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가는 길에 몽골에 갈 때와 같은 비행기를 탔는데, 그때서야 왜 비행기가 2번이나 회항했는지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공항을 이륙했던 비행기가 베이징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일상적으로 했던 것처럼 뒤로 젖혀져 있던 좌석을 버튼을 눌러 원상복귀시키려는데 잘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번 버튼을 누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제 뒤에 앉아 있던 승객이 저를 돕기 위해 좌석을 앞으로 밀었는데, 갑자기 뚝 하는 소리가 나면서 좌석이 부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비행기 좌석이 그렇게 쉽게 부러진다는 것이 황당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 정도로 노후화된 기체로 해당 노선을 운항했기 때문에 조금만 기상 상황이 안 좋아져도 착륙을 하지 못하고 회항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덜렁거리는 좌석에 앉아서 그래도 다행히 베이징 공항에는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로 오는 길에 예상치 못하게 베이징에서 하룻밤을 자긴 했지만,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에는 예정했던대로 베이징 도심의 뒷골목인 후통 숙소에 짐을 풀고 하루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먼저 중국의 현대사를 지켜본 천안문 광장에 들렀는데 사람들도 많고, 테러 위험이 있었는지 광장에 들어갈 때 여러 번 소지품검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 걸린 마오쩌둥 주석 사진과 오성홍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중국인이 저에게 중국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해서 사진을 찍어준 다음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돌아서면서 제가 중국인처럼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기도 했습니다.

저는 천안문 광장만이 아니라 주변의 최고인민법원, 대검찰청과 공안부도 지나가면서 봤는데 관청의 위치가 그 지위를 알려준다는 말처럼 자금성을 면한 중심대로에는 공안부가 위치해 있고, 우리 대법원인 최고인민법원과 대검찰청인 최고 인민검찰청은 왕복 2차선이 있는 뒷골목에 있어 중국에서 사법부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법원 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으려고 하자 정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공안이 제지를 하길래, 한국에서 온 변호사인데 기념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냐고 설명을 했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해 할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사진 촬영은 포기하고 그 옆에 있는 다른 법원들 건물들을 지나오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판결이 억울하다는 내용인 것 같아 우리나라처럼 중국에서도 저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가 관심이 있었던 관공서들을 둘러보고는 후통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뒷골목의 오래된 집들과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식사도 하면서 혼자서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여유를 즐기다가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싶었던 몽골에 참 어렵게 갔지만, 그래도 그 정도 고생을 했기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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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5

홉스골은 몽골사람들도 선망하는 여행지답게 곳곳에 즐길 거리가 많았습니다. 숙소에서 여독을 풀면서 휴식을 취한 우리 일행은 본격적으로 계획했던 액티비티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첫번째는 홉스골 호수를 보트를 타고 즐긴 후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섬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보트를 타러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보이던 홉스골 호수는 참 맑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핀 들꽃들도 예뻤는데, 그 꽃들만큼이나 말똥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도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몽골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징기스칸의 그림도 식당이나 보트 선착장, 시장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다같이 선착장에서 보트를 빌려 바람을 가르면서 홉스골 호수를 내달렸습니다. 좁은 푸르공 차안에 갇혀 일주일 가까이 이동만 하다가 탁 트인 호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답답했던 가슴이 다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보트는 얼마간 수면을 가르며 달리다가 섬에 다다랐는데, 섬에 올라 살펴본 경치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호숫가에 늘어선 나무와 초승달 모양의 호반까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식처 같은 곳이었습니다.

보트를 타고 섬을 구경한 후에는 다시 호숫가로 돌아와 숙소로 이동했는데, 가는 길에 작은 늪 같기도 하고 나무가 늘어서 있기도 한 작은 숲 같은 곳을 지났습니다. 지나가면서 보니 들판 한쪽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몸집이 경마에 출전하는 말들과 달리 제주도에서 봤던 조랑말들처럼 좀 작고 아담했습니다. 말 옆에는 남자아이들이 말을 돌보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말들 가까이 가니 게르에 앉아 있던 남성이 나와 얘기를 하는데 알고보니 그 말들은 우리 같은 여행자들을 태우고 투어를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실제 살펴보니 말들이 귀엽고 작은 편이라 우리 일행은 말을 타도 별로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날 말을 타고 뒷산을 올라가는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날은 보트를 타고 돌아다녔더니 다들 좀 피곤했는지 좀 쉬다가 저녁 무렵에는 팀을 짜서 숙소 한쪽에 있는 배구장에서 내기 배구를 해서 식사 당번을 정하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습니다.

다음날 드디어 몽골에 온 목적 중 하나인 말을 타게 되었습니다. 다들 말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 말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알지 못했는데, 일단 앞에서 안내하는 분이 말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지시하는 방법과 말이 발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이어서 가이드가 말을 타고 인도해면 저를 비롯해 우리 일행이 탄 말들이 그 말을 따라가는 식으로 30분 정도 평지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좀 익숙해진 후에는 약간 속도를 내서 뛰어보기도 했는데, 말들이 힘이 드는지 잘 뛰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좀 말타기에 익숙해지자 슬슬 산쪽을 향해 말들을 타고 줄지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뒤에서 오던 말 한마리가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말이 먼저 걸어가자 그 말을 물려다가 그 말에 타고 있던 우리 일행 중 1명의 다리를 물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별로 다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말이 문 이빨 자국이 있고 주위가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간 후 2달 지나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 혹시라도 다리에 든 멍 때문에 웨딩 드레스 입는데 문제가 있을까바 걱정이 좀 됐습니다.

우리 일행들이 좀 놀란 것 같자 가이드가 일단 말에서 내려서 좀 안정을 취하자고 해서 다들 말에서 내려왔습니다. 생전 처음 말을 타고 자세를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고, 말들이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라서 다리에 힘을 주느라 저도 좀 힘들었습니다. 말에서 내린 저는 가이드에게 옆에 있는 게르 위에 있는 하얀 것이 뭔가 물어봤는데 알고보니 무릉 시장에서 봤던 말젓으로 만든 치즈 말린 것이었습니다. 제가 쉬고 있는 말들 가까이 가서 좀 친해지려고 쓰다듬어 주려는 순간 갑자기 쉭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살펴보니 말 중 한 마리가 물을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일행들이 이걸 보고 다들 웃다보니 긴장했던 마음들이 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상황이 좀 진정된 후 다시 산을 향해 말을 타고 가는데, 원래 가이드에게 듣던 것과 달리 말들은 고삐를 놓아 주건 다리에 힘을 주건 상관없이 자기가 가고 싶은대로 걸어갔습니다. ㅎㅎ 평소에 잘 밥을 잘 못먹는 건지 계속 길을 벗어나서 풀을 뜯어 먹으려고 했고, 특히 꽃이 보이면 특식이라고 생각하는지 남김없이 뜯어 먹었습니다. 가이드 아저씨가 그런 말들을 힘들게 인솔해서 오솔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는데, 말들이 각자 식사를 즐기면서 길을 가다보니 생각보다 가는 속도가 느렸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이다 보니 경사가 좀 있는 곳에서는 말이 헐떡이는 것을 몸 전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을 타보면 말과 혼연일체가 되고, 말을 아끼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을 타고 가면서 옆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평화롭기도 하고, 저멀리에는 푸르른 숲과 호수, 하늘의 멋진 대비가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가이드 아저씨는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르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말들도 쉬게 하고, 멋진 풍경을 여유있게 사진으로 남길 수 있도록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다들 말에 적응을 했는지, 말에게 다리를 물린 일행도 편안하게 대화를 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말을 나무에 묶고 쉬게 한 후 저는 좀 더 전망이 좋은 위쪽으로 걸어가서 홉스골 호수와 숲을 바라보면서 바쁘게 살아왔던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산을 내려온 후 밤에는 우리가 머물던 숙소에서 캠프파이어 등 행사가 있어서 우리 일행 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어울려 함께 술을 마시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홉스골에서의 마지막 밤이 화려한 불길과 함께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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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4

우리 일행은 테르힝차강노르에서 은하수의 밤을 보낸 후 고요한 아침의 여유를 즐기다가 다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무릉으로 출발했습니다. 무릉으로 가는 길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시내들이 이어지는 초원과 푸른 숲이 우거진 언덕이 연이어 있는 고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시냇가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언덕 위로는 푸르른 하늘 사이로 구름이 훌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몽골에서는 사진을 찍기만 하면 그림 엽서가 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릉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홉스골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데 몽골에서는 나름 번화한 도시여서 홉스골에서 식사를 해먹을 식재료들과 필요한 물품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인 술을 살 수 있는 적당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무릉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쇼핑도 하고, 양젖을 말려 만든 치즈 등 맛있어 보이는 간식들도 사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기를 파는 시장 한 쪽에는 독특하게도 몽골 전통 그림도 걸려 있어서 한참 보다가 다른 일행을 잠시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는데, 다행히 무릉 시내에서는 스마트폰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릉에 도착해 하룻밤을 잔 후 마침내 우리 일행의 목적지인 홉스골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홉스골은 면적이 제주도보다 큰 호수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곳입니다. 차를 달려 홉스골에 점점 다가가자 저 멀리 보이는 푸르른 호수와 주변의 숲이 왜 몽골 사람들에게 홉스골이 성스러운 곳이자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지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침내 홉스골 호수에 도착해 둘러보니 선착장이 있고, 옆에 정박한 배로 호수 가운데를 건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선착장 인근의 작은 상점들에서는 몽골에서 나는 특산품으로 만든 악세사리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행하면서 기념품으로 이런 물건들을 사오곤 하는데, 몽골 여행을 상기시켜줄 사슴뿔을 발견한 후 신이 나서 뽀송뽀송한 털이 나 있는 작은 사슴뿔 2개를 사왔습니다. 귀국해서 때가 잔뜩 낀 사슴뿔들을 샴푸로 빨었더니 뭉쳐 있던 털들이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홉스골에서는 한 숙소에 오래 머물기로 했는데, 우리가 예약한 숙소까지는 다시 호숫가를 따라 차로 한참을 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푸르공 기사님과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 후 각자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잠시 방에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홉스골에서 제대로 여행을 즐기기 위해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숙소 주변에는 우리가 원래 예약하려고 했었던 다른 숙소도 있었는데, 더 깔끔하고 조용해 보이긴 했지만 원래 예상했던 곳보다 숙박비가 비싸서 가성비를 고려하면 실제로 묵기로 한 숙소가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홉스골 호숫가를 걸어다니며 상점, 음식점, 모터보트 투어 여행사, 승마장 등 필요한 주변 지리를 익힌 후 어두워진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홉스골에서의 첫날 밤은 호수에 비친 달과 함께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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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3

오르혼 계곡을 출발해 단어 그대로 길도 없는 광활한 초원을 푸르공 운전기사의 방향감각과 좌표에만 의지해 하루종일 달리니 마침내 노천온천이 있는 쳉헤르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다들 했던 얘기가 일단 몽골에 가면 매일 씻고 샤워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울란바토르를 출발한 후 샤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생수로 양치질과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여행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쳉헤르에는 노천온천이 있어서 샤워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다들 한낮에는 더위로 땀도 나고, 찝찝한 기분이기도 했기 때문에 쳉헤르에 얼른 가고 싶어했습니다.

운전기사가 약간 위치를 헷갈려 좀 헤매다가 오후 늦게 도착한 쳉헤르에는 게르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 서있었고, 게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먼 곳에서는 익히 들은대로 노천온천이 뜨거운 김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인 노천온천에서 나온 뜨거운 열수가 내뿜는 연기와 게르 관리인이 게르 내부의 난로를 피워 나오는 연기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숙박지 샤워시설과 온천욕장은 노천온천에서 열수를 끌어온 후 일정 온도까지 식혀 사용하고 있었는데, 저와 일행들은 오랜만에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풀고, 며칠 감지 못해 떡진 머리도 감으면서 상쾌하게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들과 온천욕을 즐긴 후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은 역시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연기가 솟아나고 있는 노천온천의 수원지였습니다. 늪지 같은 물이 고인 곳들을 피해 펄쩍펄쩍 뛰어 연기가 곳는 곳으로 부지런히 가보니 역시나 약간 썩은 달걀냄새 같은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노천온천이 있었습니다. 몽골 사람들도 온천을 좋아하는지 몽골사람들도 많이 여행을 온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일행들과 다함께 온천욕까지 즐기면서 기분도 상쾌하고 더 친해져서인지, 쳉헤르에서의 밤은 다들 만취할 정도까지 술을 마신 후에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 다른 일행들이 실신해있는 동안 냄비와 달걀을 들고 노천온천 수원지에 갔습니다. 전날 밤 술을 마시면서 제가 터키 온천에서 달걀을 삶는 얘기를 했다가 아침식사 당번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천수에 달걀을 넣고 약 10분 정도 기다리니 익은 것 같아서 시험삼아 하나 꺼낸 후 껍질을 깠더니… 마치 조미가 된 것처럼 약간 짭짤한 맛도 나면서 풍미가 있었습니다.

제 예상보다 더 잘 맛있게 조리가 되었기에 저는 신이 나서 익힌 달걀들을 들고 게르로 돌아왔습니다. 게르로 돌아오니, 어제 밤 치열했던 전장에서 전사했던 일행들 중 일부는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고, 일부는 여전히 숙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늘어져 있었습니다. 좀 정신을 차린 일행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해서 아직도 비몽사몽인 사람들에게 밥을 먹인 후 짐을 정리해서 푸르공에 탔습니다. 저도 전날 밤에는 다른 날보다 좀 무리해서 달렸는지 다른 날보다 머리도 좀 아프고,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피곤해보였지만, 그래도 푸르공을 타고 초원을 달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쐬니 다행히 좀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초원을 보고 있으니 목축하는 소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뜨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상쾌해지고, 눈도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복잡했던 머리도 맑아져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피부로 와 닿기도 했습니다.

이 날 저희 일행은 초원 한복판에서 분출했던 화산 분화구에 들러 테르힝차강노르라는 호수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보통 산맥 속에 있는 화산들만 봐왔던 제게 초원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허르허 터거라는 화산은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화산 주변에 큰 숲이 있어서 그 풍경이 더욱 멋졌습니다. 몽골 사람들도 옛날부터 저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화산을 오르는 길에는 신을 모시는 장소도 있었습니다. 또 등산 길에는 타조인 것도 같고 아니면 몽골에서 유명한 독수리인지 모를 새를 닮은 죽은 나무 줄기가 있어 한참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허르허 터거 화산 분화구를 본 후에는 다시 근처에 있는 테르힝차강노르로 향했습니다. 힘들게 도착한 호수에는 부드러운 바람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어 평화로운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일행들과 술을 한잔 하다가 생리현상을 해결하려고 잠시 게르 밖으로 나왔는데, 순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고 잠시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강원도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보았던 별들보다도 훨씬 많은 별들 사이를 별똥별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광경을 보고 유독 어렵게 몽골에 왔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너무 어두운 곳이라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제가 가진 휴대폰 사진기로는 제대로 그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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