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6

홉스골에서의 마지막 아침은 일출을 보는 것으로 열고 싶었습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들 잠들어 있는 어슴프레한 시간 저는 먼저 일어나 숙소 뒷편의 동산에 올랐습니다. 호수에 비친 해를 보기에 딱 좋은 명당이란 얘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면 다시 귀국길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혼자서 쌀쌀한 몽골의 아침 공기로 정신을 맑게 하고 지평선 끝에서 쑥 올라온 해가 내뿜는 은은한 아침햇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몽골의 자연 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여러 고민들이 실은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호연지기가 생기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홉스골과의 이별을 고하는 저만의 조용한 의식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꾸렸습니다. 저는 일행들 중 귀국하는 일부 사람들과 무릉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갔는데, 막상 울란바토르에 가니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에 가려고 3번이나 시도했던 생각이 나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하루 머무는 동안 일행과 유명한 꼬치구이집에서 꼬치도 먹고, 국영백화점에서 몽골 특산품인 모피, 양털 제품과 칭기스칸이라는 브랜드의 40%짜리 증류주 쇼핑도 했습니다.

다음날 울란바토르에서 다른 일행들은 한국으로 가는 직항을 탔는데, 저는 베이징을 경유해 하루 묵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행들과는 한국에서의 뒷풀이 약속을 잡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가는 길에 몽골에 갈 때와 같은 비행기를 탔는데, 그때서야 왜 비행기가 2번이나 회항했는지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공항을 이륙했던 비행기가 베이징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일상적으로 했던 것처럼 뒤로 젖혀져 있던 좌석을 버튼을 눌러 원상복귀시키려는데 잘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번 버튼을 누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제 뒤에 앉아 있던 승객이 저를 돕기 위해 좌석을 앞으로 밀었는데, 갑자기 뚝 하는 소리가 나면서 좌석이 부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비행기 좌석이 그렇게 쉽게 부러진다는 것이 황당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 정도로 노후화된 기체로 해당 노선을 운항했기 때문에 조금만 기상 상황이 안 좋아져도 착륙을 하지 못하고 회항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덜렁거리는 좌석에 앉아서 그래도 다행히 베이징 공항에는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로 오는 길에 예상치 못하게 베이징에서 하룻밤을 자긴 했지만,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에는 예정했던대로 베이징 도심의 뒷골목인 후통 숙소에 짐을 풀고 하루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먼저 중국의 현대사를 지켜본 천안문 광장에 들렀는데 사람들도 많고, 테러 위험이 있었는지 광장에 들어갈 때 여러 번 소지품검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 걸린 마오쩌둥 주석 사진과 오성홍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중국인이 저에게 중국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해서 사진을 찍어준 다음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돌아서면서 제가 중국인처럼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기도 했습니다.

저는 천안문 광장만이 아니라 주변의 최고인민법원, 대검찰청과 공안부도 지나가면서 봤는데 관청의 위치가 그 지위를 알려준다는 말처럼 자금성을 면한 중심대로에는 공안부가 위치해 있고, 우리 대법원인 최고인민법원과 대검찰청인 최고 인민검찰청은 왕복 2차선이 있는 뒷골목에 있어 중국에서 사법부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법원 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으려고 하자 정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공안이 제지를 하길래, 한국에서 온 변호사인데 기념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냐고 설명을 했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해 할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사진 촬영은 포기하고 그 옆에 있는 다른 법원들 건물들을 지나오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판결이 억울하다는 내용인 것 같아 우리나라처럼 중국에서도 저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가 관심이 있었던 관공서들을 둘러보고는 후통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뒷골목의 오래된 집들과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식사도 하면서 혼자서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여유를 즐기다가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싶었던 몽골에 참 어렵게 갔지만, 그래도 그 정도 고생을 했기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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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5

홉스골은 몽골사람들도 선망하는 여행지답게 곳곳에 즐길 거리가 많았습니다. 숙소에서 여독을 풀면서 휴식을 취한 우리 일행은 본격적으로 계획했던 액티비티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첫번째는 홉스골 호수를 보트를 타고 즐긴 후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섬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보트를 타러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보이던 홉스골 호수는 참 맑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핀 들꽃들도 예뻤는데, 그 꽃들만큼이나 말똥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도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몽골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징기스칸의 그림도 식당이나 보트 선착장, 시장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다같이 선착장에서 보트를 빌려 바람을 가르면서 홉스골 호수를 내달렸습니다. 좁은 푸르공 차안에 갇혀 일주일 가까이 이동만 하다가 탁 트인 호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답답했던 가슴이 다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보트는 얼마간 수면을 가르며 달리다가 섬에 다다랐는데, 섬에 올라 살펴본 경치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호숫가에 늘어선 나무와 초승달 모양의 호반까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식처 같은 곳이었습니다.

보트를 타고 섬을 구경한 후에는 다시 호숫가로 돌아와 숙소로 이동했는데, 가는 길에 작은 늪 같기도 하고 나무가 늘어서 있기도 한 작은 숲 같은 곳을 지났습니다. 지나가면서 보니 들판 한쪽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몸집이 경마에 출전하는 말들과 달리 제주도에서 봤던 조랑말들처럼 좀 작고 아담했습니다. 말 옆에는 남자아이들이 말을 돌보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말들 가까이 가니 게르에 앉아 있던 남성이 나와 얘기를 하는데 알고보니 그 말들은 우리 같은 여행자들을 태우고 투어를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실제 살펴보니 말들이 귀엽고 작은 편이라 우리 일행은 말을 타도 별로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날 말을 타고 뒷산을 올라가는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날은 보트를 타고 돌아다녔더니 다들 좀 피곤했는지 좀 쉬다가 저녁 무렵에는 팀을 짜서 숙소 한쪽에 있는 배구장에서 내기 배구를 해서 식사 당번을 정하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습니다.

다음날 드디어 몽골에 온 목적 중 하나인 말을 타게 되었습니다. 다들 말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 말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알지 못했는데, 일단 앞에서 안내하는 분이 말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지시하는 방법과 말이 발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이어서 가이드가 말을 타고 인도해면 저를 비롯해 우리 일행이 탄 말들이 그 말을 따라가는 식으로 30분 정도 평지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좀 익숙해진 후에는 약간 속도를 내서 뛰어보기도 했는데, 말들이 힘이 드는지 잘 뛰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좀 말타기에 익숙해지자 슬슬 산쪽을 향해 말들을 타고 줄지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뒤에서 오던 말 한마리가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말이 먼저 걸어가자 그 말을 물려다가 그 말에 타고 있던 우리 일행 중 1명의 다리를 물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별로 다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말이 문 이빨 자국이 있고 주위가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간 후 2달 지나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 혹시라도 다리에 든 멍 때문에 웨딩 드레스 입는데 문제가 있을까바 걱정이 좀 됐습니다.

우리 일행들이 좀 놀란 것 같자 가이드가 일단 말에서 내려서 좀 안정을 취하자고 해서 다들 말에서 내려왔습니다. 생전 처음 말을 타고 자세를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고, 말들이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라서 다리에 힘을 주느라 저도 좀 힘들었습니다. 말에서 내린 저는 가이드에게 옆에 있는 게르 위에 있는 하얀 것이 뭔가 물어봤는데 알고보니 무릉 시장에서 봤던 말젓으로 만든 치즈 말린 것이었습니다. 제가 쉬고 있는 말들 가까이 가서 좀 친해지려고 쓰다듬어 주려는 순간 갑자기 쉭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살펴보니 말 중 한 마리가 물을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일행들이 이걸 보고 다들 웃다보니 긴장했던 마음들이 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상황이 좀 진정된 후 다시 산을 향해 말을 타고 가는데, 원래 가이드에게 듣던 것과 달리 말들은 고삐를 놓아 주건 다리에 힘을 주건 상관없이 자기가 가고 싶은대로 걸어갔습니다. ㅎㅎ 평소에 잘 밥을 잘 못먹는 건지 계속 길을 벗어나서 풀을 뜯어 먹으려고 했고, 특히 꽃이 보이면 특식이라고 생각하는지 남김없이 뜯어 먹었습니다. 가이드 아저씨가 그런 말들을 힘들게 인솔해서 오솔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는데, 말들이 각자 식사를 즐기면서 길을 가다보니 생각보다 가는 속도가 느렸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이다 보니 경사가 좀 있는 곳에서는 말이 헐떡이는 것을 몸 전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을 타보면 말과 혼연일체가 되고, 말을 아끼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을 타고 가면서 옆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평화롭기도 하고, 저멀리에는 푸르른 숲과 호수, 하늘의 멋진 대비가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가이드 아저씨는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르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말들도 쉬게 하고, 멋진 풍경을 여유있게 사진으로 남길 수 있도록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다들 말에 적응을 했는지, 말에게 다리를 물린 일행도 편안하게 대화를 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말을 나무에 묶고 쉬게 한 후 저는 좀 더 전망이 좋은 위쪽으로 걸어가서 홉스골 호수와 숲을 바라보면서 바쁘게 살아왔던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산을 내려온 후 밤에는 우리가 머물던 숙소에서 캠프파이어 등 행사가 있어서 우리 일행 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어울려 함께 술을 마시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홉스골에서의 마지막 밤이 화려한 불길과 함께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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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4

우리 일행은 테르힝차강노르에서 은하수의 밤을 보낸 후 고요한 아침의 여유를 즐기다가 다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무릉으로 출발했습니다. 무릉으로 가는 길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시내들이 이어지는 초원과 푸른 숲이 우거진 언덕이 연이어 있는 고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시냇가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언덕 위로는 푸르른 하늘 사이로 구름이 훌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몽골에서는 사진을 찍기만 하면 그림 엽서가 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릉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홉스골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데 몽골에서는 나름 번화한 도시여서 홉스골에서 식사를 해먹을 식재료들과 필요한 물품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인 술을 살 수 있는 적당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무릉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쇼핑도 하고, 양젖을 말려 만든 치즈 등 맛있어 보이는 간식들도 사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기를 파는 시장 한 쪽에는 독특하게도 몽골 전통 그림도 걸려 있어서 한참 보다가 다른 일행을 잠시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는데, 다행히 무릉 시내에서는 스마트폰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릉에 도착해 하룻밤을 잔 후 마침내 우리 일행의 목적지인 홉스골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홉스골은 면적이 제주도보다 큰 호수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곳입니다. 차를 달려 홉스골에 점점 다가가자 저 멀리 보이는 푸르른 호수와 주변의 숲이 왜 몽골 사람들에게 홉스골이 성스러운 곳이자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지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침내 홉스골 호수에 도착해 둘러보니 선착장이 있고, 옆에 정박한 배로 호수 가운데를 건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선착장 인근의 작은 상점들에서는 몽골에서 나는 특산품으로 만든 악세사리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행하면서 기념품으로 이런 물건들을 사오곤 하는데, 몽골 여행을 상기시켜줄 사슴뿔을 발견한 후 신이 나서 뽀송뽀송한 털이 나 있는 작은 사슴뿔 2개를 사왔습니다. 귀국해서 때가 잔뜩 낀 사슴뿔들을 샴푸로 빨었더니 뭉쳐 있던 털들이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홉스골에서는 한 숙소에 오래 머물기로 했는데, 우리가 예약한 숙소까지는 다시 호숫가를 따라 차로 한참을 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푸르공 기사님과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 후 각자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잠시 방에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홉스골에서 제대로 여행을 즐기기 위해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숙소 주변에는 우리가 원래 예약하려고 했었던 다른 숙소도 있었는데, 더 깔끔하고 조용해 보이긴 했지만 원래 예상했던 곳보다 숙박비가 비싸서 가성비를 고려하면 실제로 묵기로 한 숙소가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홉스골 호숫가를 걸어다니며 상점, 음식점, 모터보트 투어 여행사, 승마장 등 필요한 주변 지리를 익힌 후 어두워진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홉스골에서의 첫날 밤은 호수에 비친 달과 함께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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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3

오르혼 계곡을 출발해 단어 그대로 길도 없는 광활한 초원을 푸르공 운전기사의 방향감각과 좌표에만 의지해 하루종일 달리니 마침내 노천온천이 있는 쳉헤르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다들 했던 얘기가 일단 몽골에 가면 매일 씻고 샤워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울란바토르를 출발한 후 샤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생수로 양치질과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여행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쳉헤르에는 노천온천이 있어서 샤워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다들 한낮에는 더위로 땀도 나고, 찝찝한 기분이기도 했기 때문에 쳉헤르에 얼른 가고 싶어했습니다.

운전기사가 약간 위치를 헷갈려 좀 헤매다가 오후 늦게 도착한 쳉헤르에는 게르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 서있었고, 게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먼 곳에서는 익히 들은대로 노천온천이 뜨거운 김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인 노천온천에서 나온 뜨거운 열수가 내뿜는 연기와 게르 관리인이 게르 내부의 난로를 피워 나오는 연기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숙박지 샤워시설과 온천욕장은 노천온천에서 열수를 끌어온 후 일정 온도까지 식혀 사용하고 있었는데, 저와 일행들은 오랜만에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풀고, 며칠 감지 못해 떡진 머리도 감으면서 상쾌하게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들과 온천욕을 즐긴 후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은 역시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연기가 솟아나고 있는 노천온천의 수원지였습니다. 늪지 같은 물이 고인 곳들을 피해 펄쩍펄쩍 뛰어 연기가 곳는 곳으로 부지런히 가보니 역시나 약간 썩은 달걀냄새 같은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노천온천이 있었습니다. 몽골 사람들도 온천을 좋아하는지 몽골사람들도 많이 여행을 온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일행들과 다함께 온천욕까지 즐기면서 기분도 상쾌하고 더 친해져서인지, 쳉헤르에서의 밤은 다들 만취할 정도까지 술을 마신 후에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 다른 일행들이 실신해있는 동안 냄비와 달걀을 들고 노천온천 수원지에 갔습니다. 전날 밤 술을 마시면서 제가 터키 온천에서 달걀을 삶는 얘기를 했다가 아침식사 당번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천수에 달걀을 넣고 약 10분 정도 기다리니 익은 것 같아서 시험삼아 하나 꺼낸 후 껍질을 깠더니… 마치 조미가 된 것처럼 약간 짭짤한 맛도 나면서 풍미가 있었습니다.

제 예상보다 더 잘 맛있게 조리가 되었기에 저는 신이 나서 익힌 달걀들을 들고 게르로 돌아왔습니다. 게르로 돌아오니, 어제 밤 치열했던 전장에서 전사했던 일행들 중 일부는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고, 일부는 여전히 숙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늘어져 있었습니다. 좀 정신을 차린 일행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해서 아직도 비몽사몽인 사람들에게 밥을 먹인 후 짐을 정리해서 푸르공에 탔습니다. 저도 전날 밤에는 다른 날보다 좀 무리해서 달렸는지 다른 날보다 머리도 좀 아프고,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피곤해보였지만, 그래도 푸르공을 타고 초원을 달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쐬니 다행히 좀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초원을 보고 있으니 목축하는 소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뜨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상쾌해지고, 눈도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복잡했던 머리도 맑아져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피부로 와 닿기도 했습니다.

이 날 저희 일행은 초원 한복판에서 분출했던 화산 분화구에 들러 테르힝차강노르라는 호수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보통 산맥 속에 있는 화산들만 봐왔던 제게 초원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허르허 터거라는 화산은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화산 주변에 큰 숲이 있어서 그 풍경이 더욱 멋졌습니다. 몽골 사람들도 옛날부터 저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화산을 오르는 길에는 신을 모시는 장소도 있었습니다. 또 등산 길에는 타조인 것도 같고 아니면 몽골에서 유명한 독수리인지 모를 새를 닮은 죽은 나무 줄기가 있어 한참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허르허 터거 화산 분화구를 본 후에는 다시 근처에 있는 테르힝차강노르로 향했습니다. 힘들게 도착한 호수에는 부드러운 바람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어 평화로운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일행들과 술을 한잔 하다가 생리현상을 해결하려고 잠시 게르 밖으로 나왔는데, 순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고 잠시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강원도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보았던 별들보다도 훨씬 많은 별들 사이를 별똥별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광경을 보고 유독 어렵게 몽골에 왔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너무 어두운 곳이라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제가 가진 휴대폰 사진기로는 제대로 그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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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2

칭기즈칸 공항을 나오면서 베이징 호텔 룸메이트에게 숙소를 예약했는지 물어봤더니, 자신은 며칠간 예약을 해서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게도 예약을 안 했으면 같이 가자고 하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말하고 공항 보안검색대를 지나 나오는 순간, 저 앞에 기존에 제가 전날 밤 예약을 했던 숙소 이름이 든 피켓을 든 가이드가 보였습니다. 저는 얼른 그 가이드에게 다가가서 혹시 어제 밤에 숙소 예약을 했다가 오늘 아침 푸르공을 타고 출발한 한국인 여행객들을 아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인 여행객들이 종종 있는데, 어제 한국인 중 도착하지 않은 여행객이 있었다고 말하길래 그게 바로 저라고 말했습니다.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아 그럼 다른 일행들은 이미 출발한 것인지 물어보니 자신은 그런 것은 잘 모르고, 정확한 것은 숙소에 가서 확인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베이징 호텔 룸메이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몽골 가이드를 따라서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가면서 가이드와 얘기를 해보니 일정대로라면 일행들은 이미 울란바토르에서 최소 40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이드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내가 내일 먼저 출발한 일행들을 쫓아가야 하는데, 당신이 나를 데려다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가이드는 마침 내가 내일 비번이긴 한데, 나를 데려다 주려면 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차를 빌려주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전 다행이라는 생각에 그럼 숙소 사무실에 가서 사장님과 한번 얘기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사무실을 찾아가니 투어 담당자가 있길래 제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 먼저 출발한 일행을 쫓아가기 위해 차를 빌려 가이드와 함께 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차량 렌트 비용과 유류비를 지급하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일당을 포함한 총 비용을 알려달라고 하니, 300 US 달러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6박 7일 동안 투어를 하는 비용 중 제가 부담할 비용이 270 US 달러였는데, 반나절 동안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을 주고 일행을 찾아가야 한다니 좀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일행에 대한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딱 감고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가이드는 예상 못한 추가 수입이 생겨 기분이 좋아졌는지, 저에게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하면서 별도 숙박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가이드의 집에 도착한 후 일행들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비행기가 2번 회항을 했고, 이제야 겨우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답변이 없다가 약간 시간이 지나자 자신들은 이미 출발을 했고, 오늘 엘센타사르하이에서 낙타를 탔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연락이 되어서 다행이고, 내일 차를 수배해 일행들을 쫓아갈 예정인데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랬더니 일행들은 다음날 옛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하르호린(카라코룸)으로 가는데 오후 2시 정도까지는 그 곳에 있을테니 그때까지 오면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최선을 다해 그 시간까지 가겠다고 글을 올린 후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가이드와 함께 서둘러 차를 타고 몽골의 유일한 고속도로를 따라 울란바토르에서 하르호린까지 길을 떠났습니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왕복 2차선에 계절간 온도차와 일교차가 큰 탓인지 곳곳에 포트홀이 많이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이드를 재촉해 아침 7시 좀 넘어서부터 계속 차를 달려 2시 조금 넘어 겨우 하르호린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일행들이 기다리기로 약속한 2시가 넘어서 다시 일행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너무 걱정이 되었는데, 하르호린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일행을 찾다보니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뛸 듯이 기뻐서 일행들에게 다가가니, 다행히 일행들도 원래 일정보다 좀 늦어져서 하르호린에 천천히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행을 찾았다는 기쁨에 얼른 가이드에게 돌아와 드디어 일행을 찾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차에 실었던 짐을 챙겨 일행이 있는 푸르공으로 갔습니다.

구소련 시대 소련군에서 사용하던 지프의 일종인 푸르공

푸르공은 제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는 공간이 넓은 편이었는데, 6명이 뒷좌석에서 앉아 가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습니다. 일단 푸르공에 타서 일행들과 인사를 한 후 제가 어떻게 거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얘기를 해줬더니 다들 놀라면서 비행기가 2번 회항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놀랄 만한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저도 일행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약간 당황한 것이 있었는데, 전날 일행들이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저를 기다릴 때 제가 탄 비행기가 아예 베이징 공항에서 출발을 하지 않았다고 푸르공을 함께 타고 여행하던 투어 가이드가 설명을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투어 가이드의 얘기를 듣고 일행들은 제가 왜 오지도 않을 거면서 공항에서 기다리게 했냐고 기분이 상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엘센타사르하이에 도착해 숙박을 하는데 제가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리니 진짜 울란바토르에 온 것이 맞는지 의심까지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투어 가이드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다고 말한 후, 속으로는 혹시 안 왔으면 일행들에게 배신자 내지는 거짓말쟁이가 될 뻔 했다는 생각에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행들을 쫓아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일행들을 찾아 함께 하르호린을 출발해 다음 목적지인 오르혼 계곡에 도착했습니다. 오르혼 계곡은 몽골에서도 물과 나무가 풍부한 곳이라 몽골 사람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오르혼 계곡으로 가는 동안 일행들과 얘기를 하면서 더 친밀해진 저는 일행들과 함께 오르혼 계곡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편안해진 마음 탓인지 풍경들이 너무 멋져 사진을 많이 남겼습니다.

저는 오르혼 계곡 옆 숙소에 도착해 처음으로 게르에서 짐을 풀게 되었습니다. 게르는 작으면 3인이, 큰 경우는 6인이 같이 사용했는데, 남녀 따로 구분을 하지는 않고 각자 침대를 만들어 자는 것이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르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물티슈로 세수를 한 후 주변을 돌아보니 보이는 곳마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지각을 하면서 투어 일정이 틀어지고, 투어 가이드가 전달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약간은 서먹했던 일행들과의 첫 날 밤은 게르에서 다함께 술을 진하게 한 잔 하면서 다 풀렸습니다. 출발하기 전에도 이미 만난 적이 있지만, 다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이라 성격도 좋고 술도 잘 마시는 편이라 여행이 즐거울 것 같다는 은근한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몽골 대자연 속에서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에는 푸른 하늘 아래 가축들을 방목하는 평원을 돌아다녔습니다.

오르혼 계곡은 몽골 전체에서도 드물게 수량이 풍부한 강이 흐르는 곳이라는데, 그 말대로 강을 따라 흐르는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면서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평온하면서도 아름다운 강변과 계곡의 모습에 스마트폰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르혼 계곡이 신성한 곳이라는 설명은 투어 가이드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 계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우리의 제사장 같은 샤먼이 성소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성소에는 하얀 돌들이 놓여 있었는데, 마치 하얀 돌들이 몽골 지도를 그려놓은 것처럼 놓여 있어서 더 신성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오르혼 계곡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고, 아침식사를 한 우리 일행은 다시 짐을 챙겨 푸르공에 올라타 노천 온천으로 유명한 쳉헤르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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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1

몽골은 여행 매니아들 사이에서 비록 남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다들 한 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입니다. 넓은 국토, 여행할 수 있는 기간 제한, 혼자 여행하기가 어렵고 보통 4인 이상 팀으로 푸르공이라는 구소련제 지프와 운전기사 및 가이드까지 함께 구해서 여행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물로 씻기도 어렵고, 좁은 차안에서 최소한 일주일 이상을 함께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성격이 잘 맞지 않으면 여행이 아니라 고역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수원에 있을 때부터 몽골여행을 한 번 가고 싶어서 몽골여행 동행자를 여행 카페에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2015년 봄부터 동행자를 구하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획한 몽골여행은 최소한 열흘 이상이었기 때문에 여유있게 여행을 할 동행자들이 필요했는데 마침 2주 가까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동행자들이 글을 올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글에 댓글을 달고 기다렸더니 몽골여행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추가로 댓글을 달아서 드디어 몽골여행 팀을 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행 출발 전 오프라인으로 2회 정도 만나 여행 준비를 분담하고, 미리 숙소, 자동차 등 예약과 계약금 송금을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몽골 숙소와 여행사는 해외계좌 이체가 아니라 웨스턴 유니언을 통해 직접 송금을 해달라고 요청해서 처음으로 웨스턴 유니언을 이용해보기도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직업도 제각각인 몽골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각자 일정도 다르고, 몽골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일단 각자 일정에 맞춰 몽골 울란바토르 숙소에 도착해 특정 시각에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재판 일정과 법인 설립 일정이 있어 여행 출발 전날까지 몽골 숙소에 도착해 다른 일행들과 몽골 울란바토르 구경을 하고 출발하기로 계획을 했습니다. 마침 중국 베이징을 거쳐 몽골로 가는 중국 K항공사가 있길래 베이징에 들러 하루 정도 베이징을 둘러보고 유명한 베이징덕도 먹어볼 기회라는 생각에 얼른 항공권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이후 제게 생각지도 못한 고난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당시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바쁜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몽골여행에 대한 기대로 밤잠을 설치던 시간이 흘러 마침내 항공기를 타고 출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할 당시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항공기는 별 문제없이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베이징 공항에서 경유 수속을 밟은 후 시간이 좀 남아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면서 배터리 충전을 하고, 책을 읽는 등 여유를 즐기다가 베이징에서 몽골로 출발하는 항공기를 타러 탑승구로 갔습니다.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국제선이긴 하지만 거리가 짧아서인지 탑승구에서 기다리는 이동용 차량을 타고 도착한 곳에는 작은 항공기가 한 대 서 있었습니다. 항공기를 보고 중국과 몽골이 바로 옆 나라인데도 교류가 그리 많지 않은가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탔는데, 막상 항공기에는 서양인들이 상당수라 저처럼 몽골로 여행을 가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으로 보였습니다. 비행시간이 편도로 2시간 남짓이어서 몽골에 도착하면 숙소에서 마중나올 사람과 울란바토르의 명소에 대해 찾아보니 어느덧 울란바토르 칭기즈찬 공항이 보였습니다.

제가 탄 항공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길래 이제 착륙을 하려나보다 생각을 하는데, 이상하게 활주로 가까이 갔다가 다시 고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와서 울란바토르 공항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착륙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안전벨트를 잘 매고 대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윽고 항공기가 울란바토르 공항을 중심으로 30분 정도 4, 5바퀴 선회를 하더니 갑자기 울란바토르를 뒤로 하고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나오길 기상 상황이 호전되지를 않아서 착륙이 어렵기에 일단 베이징 공항으로 회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도착하는 날 저녁에 일행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회항을 하게 되면 일행들에게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베이징으로 돌아가면 공항이나 숙소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후 연락을 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세기는 했지만 큰 문제없이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임시 입국증을 발급받아 항공사에서 배정해 준 공항 인근의 호텔로 이동을 했습니다. 항공사에서는 다음날 새벽에 다시 몽골로 가는 일정이 예약되었다고 안내를 해줘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온 여행객과 호텔방을 같이 쓰게 되었는데, 배도 고프고 베이징에서 어차피 하루 묵게 된 김에 근처 식당에 가서 훠궈를 먹기로 했습니다. 함께 간 독일인을 고려해 홍탕이 아닌 덜 매운 백탕을 선택했고, 청경채 볶음을 함께 먹었는데 생각보다 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예상치 않게 포식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몽골에 이미 도착해 있던 일행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제가 단체 카톡방에서 기상 문제로 회항을 해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고 하니 다음날 한국에서 몽골로 가는 일행들은 자신의 비행기도 연착할까 걱정하고, 이미 몽골에 있던 일행들은 제가 다음날 오후에 도착하는 것을 고려해 일정을 변경해 제가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에 공항에 도착해서 저를 태워서 여행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룸메이트와 함께 항공사가 제공한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공항에서 수속을 하고 항공기를 타고 보니, 제 독일인 룸메이트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어제 항공기에 타고 있었던 승객들이라 반갑기도 했습니다. 다시 제가 탄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시간이 흘러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이 보이자 이번에는 착륙을 하겠지 하면서 다소 숨을 죽이고 착륙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탄 항공기 전에 다른 항공기가 공항에 착륙하는 것이 보여서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항공기가 머리를 숙여 하강하면서 칭기즈칸 공항 활주로를 향해 내려가 2, 3미터 고도에 다다르고 착륙할 것 같았는데, 웬일인지 갑자기 다시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상승한 항공기가 공항을 한 바퀴 도는가 싶더니 갑자기 다시 고도를 높여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일어나 승무원에게 가서 왜 돌아가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다시 돌아간다고 대답을 하길래, 다른 항공기들은 착륙을 하고 있는데 왜 이 항공기만 착륙을 못 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승무원은 제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하면서 계속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착륙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만 반복했습니다. 이에 제가 어제 비행기가 회항을 해서 지금 일행이 공항에 와서 나를 태워가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항의를 했더니 여전히 기상 얘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승무원에게 항의를 한 후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잠시 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비바람이 거세서 안전을 위해 다시 베이징 공항으로 회항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 항공기 안에서는 탄식 소리와 항의하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기장이 회항을 한다는데 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일행에게 너무 미안했고, 일행이 울란바토르를 떠나면 몽골 대평원에서는 전화나 인터넷도 잘 안 되는데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야 했습니다.

베이징 공항으로 돌아온 후 항공사에서는 다음 비행시간이 언제 확정될지 모르니 공항에서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대기하라고 공지를 했는데, 일부 승객들은 항공기로 가기 어려우면 기차나 자동차를 이용해 몽골에 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그 얘기를 듣고 정보를 찾아 보니 기차는 이미 오전에 출발을 해서 탈 수가 없었고, 자동차는 국경을 넘어 도착하는데 16시간 이상이 걸린다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룸메이트를 비롯한 일부 승객들은 매해 여름마다 몽골에서 열리는 승마 마라톤 경기에 참여할 목적으로 가는 것이라 마음이 더 급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일단 일행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항 라운지에 가서 와이파이로 카톡방에 비행기가 다시 회항을 했다는 황당한 사정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일행들은 울란바토르를 벗어났는지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어 차라리 그냥 귀국을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여행 계획을 다함께 짜면서 서로 믿고 준비를 했는데, 이제 제가 가지 않으면 그런 신뢰를 저버리는 셈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만일 제가 가지 않으면 다른 일행들이 여행경비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찌 되었든 몽골로 가서 일행들을 찾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조바심을 낸다고 갑자기 해결할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 일단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고,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항공사에서 다시 출발할 시간을 공지하길 기다렸습니다.

몇 시간 후 항공사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공지를 하기에 공항에서 대기하던 승객들이 다들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기상 상황도 문제지만 비행기가 너무 작고 낡아서 다른 항공기들은 착륙을 하는데도 우리만 다시 회항한 것이 아닌가 해서 이번에 갈 때는 더 큰 다른 항공기를 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항 게이트에서 셔틀을 타고 비행기에 도착하니 또 같은 비행기여서 3번째 회항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일단 항공기가 베이징 공항을 떠난 후 항공기 내부를 봤더니 거의 2/3 이상의 승객들이 이미 같은 항공기를 타고 울란바토르에 갔다가 함께 회항한 승객들이라 얼굴들이 눈에 익었습니다.

드디어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저를 포함한 승객들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기색이 완연했습니다. 기장의 안내 방송과 함께 비행기가 하강을 시작하자 입 안의 침이 마르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활주로가 보이고 항공기의 바퀴가 내려간 후 10미터, 5미터, 2미터 지상을 향해 항공기가 내려가다가 마침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퀴가 활주로에 닿았습니다. 이어서 항공기의 속도가 줄어들자, 항공기 내부는 박수를 치고 기쁨에 차 환호성을 지르는 승객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이틀에 걸쳐 2번이나 회항한 끝에 마침내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먼저 투어를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일행들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막막한 과제가 저에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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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휴양지,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2

전날 래프팅과 시내 관광으로 좀 피곤했는지, 다음날에는 가족들이 다들 편히 쉬기로 했습니다. 저도 오전에는 정원 한 구석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었는데, 점심때가 되니 점점 더워졌습니다. 그래서 객실로 돌아와 수영복을 챙겨들고 리조트의 야외 수영장으로 갔습니다. 야외 수영장에서는 바다가 잘 보였는데 수영장에 들어가서 바다에서 파도가 치고, 멀리 구름이 떠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수영장에서 나와 샤워를 한 후 객실로 가는 길에 보니 도마뱀 한 마리가 보행로 아래 물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며칠 전에 봤던 도마뱀인가 해서 잠시 도마뱀을 보고 있는데, 슬슬 물속으로 들어가 헤엄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도마뱀이 기둥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쪽으로 가는 것인가 싶었는데, 새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도마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휴가를 왔지만, 여기 사는 새와 도마뱀에게는 순간순간 생존의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이 각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 후 저녁에는 미리 예약을 한 리조트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전반적으로 좋긴 했는데,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이 태국의 유명한 게요리인 뿌빳뽕커리였습니다. 게와 커리로 만드는 이 음식은 보통 게살 뿐만 아니라 게 껍질 자체도 다 함께 씹어 먹습니다. 그래서 이 요리에 사용하는 게는 원래 껍질이 부드러운 소프트쉘 게를 사용해야 하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레스토랑에서는 껍질이 딱딱한 일반 게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좀 씹어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치아가 아프고 나중이 되니 잘못하면 치아가 다 부러질 거 같아서 결국 먹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질 않는데, 막상 그 당시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다들 뭔가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열심히 그 게껍질을 붙들고 먹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렵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리조트 공연팀에서 공연을 한다고 의상을 입고 준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잠시 산책를 하고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공연은 횃불을 든 공연자가 횃불을 돌리면서 무대 주변을 도는 것으로 시작했고, 이후 입으로 불이 뿜거나 불이 붙은 후프 안을 통과하는 등 서커스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공연자들이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발리의 전통 문화를 보여줬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1시간 정도 공연을 본 후 다들 피곤했는지 다들 일찍 객실로 돌아가서 발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발리에서 보낸 마지막 날이었던 다음날 오전은 날씨가 좋아 가족들이 모두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모여 앉아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잠시 가족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청솔모 한 마리가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노리고 다가왔습니다. 코를 킁킁대면서 먹을 것을 찾는 모습이 우스워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이 함께 웃었습니다.

발리에서는 하얀 꽃잎에 노란 술이 보이는 꽃들이 달린 나무가 많았는데, 땅에 딸어진 꽃향을 맡아보면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꽃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프란지파니’라는 꽃이었는데,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저는 길을 가다가 떨어진 프란지파니 꽃잎을 몇개 주워서 향을 맡아 보기도 하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프란지파니 오일이 있길래 하나 골랐는데 프란지파니 오일은 인도네시아에서도 귀한지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습니다. 그래도 안 샀다가 나중에 후회할까봐 사가지고 귀국해서 디퓨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날은 리조트에서 마시고 싶은 음료수들과 간식들을 챙겨 먹으면서 리조트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부모님도 계시고, 업무로 지친 몸을 쉬고 싶었기에 휴식을 취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리조트 내에서 주로 시간을 많이 보내고, 그 동안 읽지 못한 책을 읽으면서 따로 계획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런 방식으로 휴가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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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휴양지,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1

한 때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나왔던 인도네시아 발리. 신혼여행이나 개인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찾았던 여행지입니다. 더불어 가족들이 함께 가서 쉬기에도 좋은 리조트들이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을 맡아서 관리해주는 자체 프로그램이 있어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맡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클럽메드 리조트도 있는데, 제 조카를 맡기고 푹 쉴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부모님과 누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리조트와 항공권이 포함된 여행상품을 구매했더니 발리 공항에 도착하자 리조트로 가는 버스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 약간은 긴 비행시간에 지쳐서 버스에 얼른 몸을 싣고 리조트로 향했습니다. 버스에서 잠시 졸았나 싶었는데 리조트에 도착해서 가족들이 머물 방을 안내받았습니다. 부모님, 누나 부부, 저와 제 남자 조카가 방을 같이 쓰게 되었는데, 리조트 상품에 식사와 음료, 주류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어서 서둘러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당은 뷔페식과 예약이 필요한 레스토랑들이 있었는데, 첫날이라 예약을 하지는 못해 뷔페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기내식을 먹어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지만, 음식이 기대보다 다양하고 맛도 괜찮아서 가족들과 즐겁게 식사를 마쳤습니다. 배가 부르니 소화를 시키고 싶어 리조트 내부를 산책 겸 한번 둘러본 후 다음날 일정을 정한 후 각자 방으로 들어가 쉬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러 가는데 식당으로 가는 데크 다리 아래쪽에 도마뱀 한 마리가 느긋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방 천장과 벽에도 작은 도마뱀들이 붙어서 걸어다니는 걸 본 터라 잠자는 동안 달려들지나 않을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도마뱀도 아침 햇살을 즐기는 것을 보면서 저도 휴양지에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한 후에는 전날 계획한 것처럼 리조트 안에 있는 다양한 체육시설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클럽메드는 전세계에 많은 리조트가 있는데, 각 리조트마다 특색이 있어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프로그램들이 달랐습니다. 발리 리조트에는 리조트 내에 양궁, 테니스, 골프 등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아버지, 매형이 한 팀, 저와 조카가 한 팀으로 양궁 경기를 하기도 하고, 짧은 Par 3 9홀 골프를 치기도 했습니다. 이전에는 가족들이 그렇게 함께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지금 생각해도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더운 낮에 계속 운동을 해서 땀이 좀 나서 음료수를 무제한으로 제공해주는 장소에 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수박주스와 망고주스를 마시면서 그곳에서 좀 쉬다가 숙소로 가보니 누나와 어머니는 낮잠을 자면서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나와 다음날 계획인 래프팅, 원숭이 사원 방문에 대해 의논을 한 후 제 방에 가서 쉬다가 매형과 함께 주변 마트에서 장을 봐오기로 했습니다. 스마트폰의 구글지도에 의지해서 리조트 인근 쇼핑몰에 다녀오면서 괜찮은 식당이나 마사지샵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발리의 마트에 가서도 제가 좋아하는 망고스틴을 파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아쉽게도 망고스틴 철이 아니라 마트에 들어오는 양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아침에 들어오자마자 모두 판매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쉽지만 물, 맥주 등 음료와 다른 과일, 과자 등 안주와 다른 필요한 물품들을 사서 리조트로 돌아가는데, 마침 깔끔한 마사지샵이 보이길래 가격을 알아보고 명함도 하나 챙겨서 돌아갔습니다. 리조트에 돌아가서는 가족들이 모여서 맥주를 한잔씩 하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다음날 래프팅과 시내 관광을 기대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발리에 가기 전에 가족들이 다같이 여행을 가니 함께 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하나 정도 해보자고 했는데, 부모님이 마침 래프팅을 해보신 적이 없어서 래프팅을 골랐습니다. 리조트에서 출발하여 택시를 탔는데 기사에게 래프팅을 할 수 있는 여행사에 가자고 하니, 자신이 아는 곳을 소개해준다길래 그 여행사로 갔더니 제가 알아본 가격보다 한참 비싼 가격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나와 상의해서 너무 비싸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더니 기사가 흥정을 해서 다소 가격을 할인받았습니다. 원래 그 가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도 함께 돌아다니다보니 다른 여행사를 다시 찾아보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에 결국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그 여행사에서 래프팅을 하기로 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가이드가 나눠주는 구명조끼와 노를 들고 차를 탄 후 강 상류로 이동해서 계곡을 내려가는데 땡볕에 예상보다 많이 걷게 되어서 부모님이 약간 걱정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아버지는 당시 폐가 안 좋으셔서 호흡이 가쁜 편이라 등산이 힘든 상황이었기에 일부러 가족들이 천천히 걷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강가에 도착해 보트를 타자 다들 즐겁게 급류를 즐기면서 래프팅을 했고, 항상 그렇듯 다른 보트와 물 튀기기 놀이도 하면서 순식간에 하류에 도달했습니다. 부모님은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있었다고 얘기하셔서 준비했던 저도 기분이 좋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가벼운 마음으로 발리 시내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발리 시내에서는 원숭이 사원을 가기로 했는데, 들어가는 길에 주의 표지판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주의사항은 원숭이들이 물건을 훔쳐갈 수 있으니 먹을 것이나 모자, 안경 등 물건을 잘 간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원숭이 하나에게 먹을 것을 주면 다른 원숭이들도 달려들 수 있어 조심하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이 그 표지판 옆에서는 원숭이들에게 주라면서 바나나를 팔고 있었습니다. 주라는 건지 주지 말라는 건지…

가족들이 일단 사원 안 쪽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뒤를 돌아봤더니, 제 조카가 바나나를 들고 가는데 큰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제 조카한테서 바나나를 빼앗아가려고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 조카는 초등학교 6학년 정도여서 겁에 질려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른 조카에게 달려가서 일단 조카가 들고 있는 바나나를 달라고 해서 제가 들고, 조카는 누나에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바나나를 한번 본 원숭이는 쉽게 포기를 하지 않고 계속 따라왔는데 제가 쉽사리 주지 않으면서 눈싸움을 하니, 이번에는 제 바지를 잡고 늘어지면서 바나나를 달라고 시위를 했습니다. 가만보니 덩치도 상당히 커서 두목 원숭이 같았는데, 손톱이 날카로워서 제 바지를 잡고 늘어지니 바지에 구멍이 뚫릴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바나나를 한번에 주지는 않고, 조그맣게 잘라서 몇 번 준 후 나머지 바나나를 풀숲으로 던졌더니 두목 원숭이는 몰려드는 다른 원숭이들을 물리치고 바나나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니 제 매형한테도 원숭이가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ㅎㅎ

두목 원숭이를 뒤로 하고 원숭이 사원 내부를 둘러보니 관광객한테서 얻었는지 공을 가지고 노는 원숭이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특이하게 힌두교를 믿는 발리섬이라 그런지 원숭이 사원 내부에는 여기 저기 힌두교를 상징하는 문양들과 조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원숭이 커플이 나란히 다리 난간에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더 안 쪽으로 가보니 원숭이 가족들이 사원 담장 위에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는데, 서로 꼭 끌어안고 있기도 하고, 털을 골라주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원숭이들도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원숭이 사원을 나와서는 시내를 둘러보고 간단히 쇼핑을 한 후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숙소에 돌아가서는 옷을 갈아입고, 하루 전 알아본 마사지샵에 가서 래프팅으로 지친 몸을 풀었습니다. 아버지, 매형, 저와 조카가 같은 방에서 마사지를 받았는데, 오일 마사지를 택했더니 손바닥만한 팬티 하나를 주고는 그걸로 갈아입고 마사지를 받으라고 해서 좀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전통적인 마사지를 받고, 오일까지 발라주니 낮의 뜨거운 햇빛에 시달린 피부가 좀 회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사지를 받아서 노곤해진 상태로 숙소로 돌아갔더니, 가족들 모두 빨리 잠자리에 들고 싶어 해서 발리에서의 세번째 하루가 서둘러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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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화유산 여행 2

비를 맞아 지친 몸을 좀 쉬고 난 후 다시 경주의 야경을 보러 숙소를 나섰습니다. 첫날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택시에서 숙소 가까운 곳에 고분군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더운 낮보다는 서늘해진 저녁에 고분들 사이를 거닐고 싶었습니다. 천천히 걸어 가보니 대릉원이라 표지판이 있고, 조명을 받은 고분들이 조용히 낮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은은한 조명에 비친 고분들은 부드러운 곡선이 손으로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었습니다. 이미 어두워서 그런지 산책나온 사람들도 거의 없어 저는 천천히 고분들 사이를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복잡한 머리도 식혔습니다.

경주에서의 마지막 밤에 대릉원을 한가로이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숙소에서 짐을 정리한 후 아침식사를 하고 배낭을 메고 근처에 있는 분황사를 찾아갔습니다. 분황사는 황룡사지 옆에 있는 사찰로 현재는 아주 큰 규모가 아니지만 예전에는 상당한 규모였다고 하는데, 모전석탑이 유명합니다. 분황사에 가보니 모전석탑이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오래되었는데도 전체적인 전탑 양식과 금강역사상이 어우러져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모전석탑을 한참 보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제가 좋아하는 목어가 있었습니다. 사찰마다 운판이나 목어, 종이 있는데 그 문양이나 모양이 제각각이라 자세히 보다 보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특히나 분황사 목어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그 모습이 심해에 사는 물고기처럼 생겼는데, 눈이 툭 튀어 나오고, 등지느러미도 뾰족한 것이 마치 현대미술작품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분황사를 마지막으로 경주에 있는 문화유산들을 살펴보는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간만에 여유있게 구경을 하고, 잠도 푹 자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에 이후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법률지원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 쉬어야 할 때는 쉬어줘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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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화유산 여행 1

한국 사회에서 2014년은 앞으로 오랫동안 세월호 사건으로 기억될 해일 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에 관여하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구성한 세월호 법률지원단에 참여해 세월호 사건 관련 증거보전을 위한 재판에 함께 했고, 충북 오창에 있는 M사에서 이루어진 세월호 CCTV 복원 작업을 위해 서울과 오창을 많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또 더운 한여름에 종종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에 대한 지원을 하느라 좀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를 길게 가지는 못 해도 잠시 바람을 쐬고, 휴식을 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즐겨 읽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경주에 있는 불국사, 남산, 석굴암, 안압지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시간이 되면 경주의 문화유산들을 차근차근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이번이 혼자서 국내여행을 할 만한 기회라 얼른 경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예약을 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숙소를 찾아 짐을 푼 후 조용히 주변 지역을 돌아봤습니다. 여름 휴가철이지만 숙소가 좀 낡아서 그런지 숙박객이 많지는 않았는데, 냉방시설이나 침대는 잘 갖춰져 있어서 오히려 푹 쉬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녁에는 천천히 나가서 불국사를 둘러봤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어렸을 때 갔던 불국사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석가탑은 보수공사 중이었는데, 가건물로 석가탑 전체를 둘러싸고 석재들을 옮겨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잠시 다보탑과 불당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나오셔서 법고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복되는 장단과 웅장한 소리에 취해 넋놓고 법고 소리를 듣다가 주변이 점점 어두워져서 서둘러 불국사를 나왔습니다.

불국사를 나와서는 안압지로 향했습니다. 밤에 조명을 받은 안압지가 멋지다고 해서 어두운 내천을 따라 가는데, 표지판을 보지 않아도 어둠 속 저 멀리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니 안압지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밤이라 그런지 안압지에는 방문객이 많지 않았는데, 조용히 산책을 하면서 멋드러지게 조명을 받은 모습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았습니다.

안압지에서 야경을 즐기다 경주 황남빵을 하나 사들고 숙소로 걸어갔습니다. 조용한 거리를 혼자 걷다가 맥주 한 캔을 사들고 숙소에 들어갔는데, 다음날 경주 남산 등산을 위하 딱 한잔만 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늘이 꾸물꾸물하니 비가 많이 올 것 같아 좀 불안해서 우산을 가지고 길을 나섰습니다. 삼릉숲을 거쳐 남산을 올라가다 보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온 것처럼 곳곳에 불상과 문화유적들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신기해서 계곡 곳곳을 둘러보며 올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제가 남산을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내리기 시작한 비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어느 순간 폭우로 바뀌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비에 산길을 재촉하는데 나중에는 길에도 물이 넘치고, 어디가 어디인지 정확히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바람이 쳐서 우산을 썼는데도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처럼 속옷까지 완전히 다 젖었습니다. 급해지는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어차피 다 젖었으니 안전하게 하산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늦추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마음을 차분하게 먹으니 길을 잃지는 않아서 원래 계획했던 하산길로 안전하게 내려갔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칠불암 마애석불을 찾아 가다 보니 다행히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혼자 산행을 하다보니 좀 불안하기도 했는데 이정표가 보이니 마음이 안정되고, 힘이 났습니다. 쫄딱 비에 젖은 상태로 칠불암에 도착하니 감사하게도 스님 한 분이 암자에 들어와서 차 한잔을 마시고 가라고 권해주셨습니다. 스님이 타주시는 따뜻한 율무차 한 잔에 있던 몸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칠불암은 비구니 암자였는데, 저 이후에도 다른 등산객들이 암자에 와서 같이 율무차를 마시면서 어떻게 남산에 오게 됐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늦은 오후라 스님이 공양을 준비하시다가 식사를 못 했으면 같이 하자고 하시기에 몇 번 거절하다가 염치없게 밥 한끼를 얻어 먹게 되었습니다. 따뜻하게 밥 한공기를 먹고 나니 몸도 따뜻해지고, 다시 힘이 났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 한 후 빗줄기도 다소 약해졌기에 다시 칠불암을 나서 옆에 있는 국보 마애석물을 보러 갔습니다. 마애석불이 좀 전에 지쳐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지나가더니 이제는 다시 힘이 나냐고 눈빛으로 묻는 듯 했습니다.

마애석불을 지나 하산을 하다보니 염불사지와 잘생긴 염불사 삼층석탑이 보였습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비가 더 오다말다 했는데, 그래도 산 정상에서 쏟아지던 비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큰 길을 찾아나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니 피곤했는지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비로소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잠이 쏟아져서 한숨 자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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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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