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국선변호사건 일부 무죄 파기환송 판결

여행을 하다보면 목적지를 찾아 처음 가는 길을 걷고는 합니다. 그러다 간혹 이쪽 모퉁이에서 만나 같은 골목길을 걷다가 갈래길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던 다른 여행객을 한참 떨어진 목적지에서 마주치기도 합니다. 가는 방향이 달라도 마지막에 도착하는 목적지는 같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맡은 소송에서도 그런 일이 생기고는 합니다.

지난 주에는 대법원에서 상고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제가 국선변호인으로 맡았던 사건이었는데, 소송기록을 보며 상고이유서를 작성할 때부터 기존 1심, 2심 판결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러 범행 중 실제로 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기죄 인정 여부에서 임대차계약이 종료한 후 임차인의 점유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저는 피고인이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이런 문제는 민사적으로 해결해야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임대차계약이 종료한 후라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받을 권리와 임차건물 반환이 동시이행 관계에 있으니 임차권도 여전히 인정될 듯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보증금이 없는 임대차계약도 있을 수 있고, 보증금이 소액이고 월세가 고액이면 보증금의 이자 상당액과 차임이 등가관계가 아닐 수도 있어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결국 이렇게 임차건물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물권인 점유권의 존재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동시이행항변권이라는 채권에 근거해 반환 거부가 위법하지 않기 때문인지 고민이 됐습니다.

원래 상고심 형사사건은 징역 10년 이상의 중대한 형이 선고된 경우에만 대법원에서 심판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쟁점이 있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판단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도 양형으로는 대법원에서 다룰 사건이 아니었지만 법리적인 쟁점이 있는 사건이라 국선변호인으로서 상고이유서 작성에 공을 들였습니다. 물론 예전에 했던 다른 사건에서도 법리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대법원에서 그냥 기각이 되어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법원에서 사기죄와 관련해 기존 1심과 2심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해 파기하고, 다시 재판을 하라고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내는 일부 무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에 얼른 판결문을 발급받아 내용을 살펴보니 사기죄의 보호법익에서 재물의 사용수익은 제외하기 때문에 점유권에 대해서는 사기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의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한 판단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생각했던 논리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점유권의 성격에 대한 제 고민이 결과적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대법관의 관심을 끌었나 봅니다. 결국 제 의뢰인은 이번 대법원의 파기환송판결로 일부 범행이 무죄로 인정되어 형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목적지로 가는 길은 처음 계획과 다소 달랐지만, 제가 처음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제 의뢰인에게는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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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이 걸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

설 연휴가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영화 한편을 보게 됐습니다. 제목은 ‘브라이언 뱅크스’, 촉망받던 미식축구 선수였던 브라이언이 거짓 피해 진술로 누명을 쓰고 수감생활을 한 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내용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시스템이 한번 잘못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그것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많은 힘이 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1월말에 제 의뢰인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문재인 정권 1호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언론에도 많이 보도됐었던 사건인데, 저를 포함한 변호인단이 2018년 1심부터 담당했던 사건입니다. 치열한 법정 다툼 속에서 1심에서는 유죄로 징역 4년이 나와 의뢰인이 법정 구속되었다가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된 후 1심 판결이 완전히 뒤집혀 전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시간이었는데, 항소심에서 형사법의 원칙에 충실한 판결문을 읽고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도 이런 결론이 나와서 놀랍기도 하고 변호인으로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의뢰인만이 아니라 변호인들도 1심과 항소심의 결론이 달라 혹시라도 항소심 판결이 뒤집히지는 않을까 다소의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침 대법원 선고기일에 지방에 재판이 있어 선고를 듣지는 못했는데, 선고를 들은 변호사님이 공유한 소식은 검사의 상고기각. 6년의 짧지 않은 기간 의뢰인과 변호인들의 마음이 마침내 자유를 찾은 순간이었습니다.

공판 기간동안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에 관한 법리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범죄사실 확인에 있어 컴퓨터, 통신 기술 측면에서도 참 많은 의견서와 증인신문, 공방이 오간 사건이었습니다. 의뢰인과 변호인의 모든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입니다. 다만, 1심 유죄 판결에는 언론사들에서 수십개의 기사가 쏟아졌는데, 항소심 무죄 판결에는 고작 몇 개의 기사만 나왔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지만 해당 판결을 다룬 기사는 단 1개도 없는 것을 보면 우리 언론사들이 과연 진실을 전달할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물음표가 그려집니다.

제 의뢰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동안 자신이 구치소에서 겪었던 고통스러운 수감생활 뿐만이 아니라 십여년이란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사업이 모두 망가져 이제는 공사 현장에서 노무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가족들의 생활비와 자녀들의 학비,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의뢰인이 또 다른 생계수단을 찾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철저히 망가져 버렸는데, 이런 상황을 만든 수사기관이나 사법체계는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을 하고 있지만 구금으로 인한 보상에 그칠 뿐이고, 피고인이 구속되어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망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무죄 판결문을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시하는 것 외에 기존에 손상되었던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다른 조치들이 없습니다. 이미 잘못된 정보들이 세상에 퍼졌는데 다시 돌이키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런 상황을 바꿔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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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항소 인용 ‘피고인은 무죄’

지난 주에는 참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1심부터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유죄로 인정됐던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 전부 무죄로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 1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알려졌는데, 북한 출신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유통한 것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기존에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인데, 뉴스나 스트레이트 등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도 많이 알려진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중국에서 북한 개발인력을 활용해 뛰어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국내에 납품하고, 세계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정치적 상황이 변화됐고, 그에 따라 피고인의 사업도 위기를 맞았을 뿐 아니라 기업의 대표였던 피고인은 공포의 대상인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굴레를 쓰고 구속이 되었습니다.

1심이 진행되면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되어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피고인의 행위가 과연 국가보안법이 처벌하려고 하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정도인지, 피고인이 그런 행위라는 것을 인지했는지, 제출된 증거의 증거능력이 있는지 등 수많은 쟁점들이 3년 동안 공판정에서 다투어졌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일부 내용에 대해서만 무죄를 인정하였을 뿐 대부분 혐의에 대해서 유죄로 보아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을 법정구속했습니다.

변호인단의 앞에서 피고인이 법정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하니, 피고인 본인뿐만 아니라 변호인단이었던 저 역시 당황스럽고, 힘이 쭉 빠지게 됐습니다. 한동안 변호인단도 힘을 내지 못하던 차에 새로 변호사분들이 참여하면서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법리적인 부분과 사실 인정에 대해 치밀하게 의견서를 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공판이 장기간 진행되어 1년 반 가까이 흐르자 다시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변론이 종결되었는데, 선고기일이 다가오자 떨리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선고를 하는 날, 공판정에 들어가 30분 가까이 선고를 듣는데 처음에는 변호인단의 남북교류협력법 적용 주장을 배척하고, 일부 사실에 대해서만 혐의 인정을 배척하여 불안감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선고가 이어지면서 피고인의 범죄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없었다는 설명이 나오면서 저나 변호인단의 다른 변호사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재판장님이 피고인을 일어서게 하고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 피고인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피고인이 공을 들였던 사업이 모두 무너지게 된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고, 그래도 우리 법원에서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법리에 따른 판단을 하는 판사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 수년간 피고인의 공판마다 오셔서 방청하시며 아들의 무죄를 호소하셨던 피고인의 아버님이 박수를 치고 일어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또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1심에서부터 검찰에서는 이 사건이 정치적 사건이 아닌 경제적 목적의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했는데, 생각해보면 중국을 경유한 삼각무역이나 남북경협사업을 이런 식으로 사후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범죄로 처단하다 보면 향후 어떻게 남북간 민간의 경제적 교류가 가능할 것인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처럼 우리 사회를 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어 가는 노력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정치적 대립이 완화되고, 공존공영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고 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는 피고인을 보면서 피고인과 그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다시 한번 생각났습니다. 가정의 중심이었던 아버지가 구속되자 생활비와 학비 걱정을 해야 했던 가족들, 보석 기간에는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어놓겠다며 하루도 쉬지 않고 공사 현장에서 나가 일을 하던 피고인을 보며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저는 쉽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그렇기에 보람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변호인단과 헤어져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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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쓴 남북경협 사업가

지난 달 말에는 3년 반 가까이 진행되었던 형사사건의 선고가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사건과 달리 검사의 주장처럼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각 인식 프로그램 개발 및 유통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있는 사업가와 주고받은 개발자금과 프로그램을 국가보안법상 금품수수와 자진지원이라고 기소한 사건이었고, 문재인 정부에서 기소된 1호 국가보안법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언론사의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피고인은 중국 현지 사업가와 동업으로 시각 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중국 사업가의 산하에 북한의 프로그램 개발팀이 있어 문제가 된 사건입니다. 재판부가 판단한 것처럼 이러한 프로그램 개발과 그 유통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사건 판결에서는 법리나 기술적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고, 그 중 가장 문제가 있는 부분들은 아래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먼저, 피고인의 사업을 남북교류협력법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면서 피고인이 프로그램 개발을 한 것이 남북교류협력의 목적이 아니라 피고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 것입니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향후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 남한의 경제 사업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는 자선사업만 해야 한다는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해석론이라면 앞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완화되더라도 누구도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할 엄두를 낼 수 없어 오히려 남북교류협력법의 제정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은 자신의 사업 파트너인 중국 현지 사업가와 10년 넘게 수많은 이메일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피고인의 프로그램 개발사업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조직과 업무지시 체계를 갖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수백쪽에 달하는 전체 대화 내용 중 문맥과 전후 사정을 무시한 채 오로지 한두번 언급된 단어만으로 사실관계를 단정하고, 그 외 수십 차례에 달하는 다른 증거들은 외면했으니 증거를 취사선택하는데 오류를 범해 사실관계를 잘못 확정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기술적 부분에 있어서 검찰이 제시한 수사기관과 협력기관들의 보고서만을 믿었을 뿐, 코딩이나 프로그램 개발에 있어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믿을 수 없다며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판결의 근거로 든 보고서의 내용들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그 기술적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증언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서류 등으로 반박이 된 것임에도 이러한 기술적 내용들에 대해 편향된 의도를 갖고 작성된 보고서의 내용만을 믿고 내린 잘못된 판단이라 보입니다.

최종적으로 피고인 2명 중 1명이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1심 진행 중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던 피고인이 1심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이 되어 선고를 듣고 있던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 법원이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단한다는 씁쓸한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미리 결론을 정해 놓고 그에 맞는 증거들만을 택해 판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들어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구속된 피고인이 가족들과 변호인단에 보낸 편지를 읽다보니 국가보안법이 옥죄고 있는 우리의 삶을 더욱 절절히 느끼게 됩니다. 항소심에서는 보다 냉정하게 증거를 검토해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 재판부를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만일 이러한 판결과 법 해석이 굳어진다면 향후 남북간 긴장이 완화된 후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 누구도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고, 이는 남북관계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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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약상 인세 미지급과 저작권, 상표권 위반 사건 승소

얼마 전에는 약 4년에 걸쳐 진행했던 민사사건과 관련 형사사건의 결론이 나왔습니다. 영어교재 출판계약을 맺은 저자와 출판사 간 인세 미지급과 출판계약 해지 후 무단 인쇄로 인한 저작권, 상표권 침해가 핵심이었던 사건입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의뢰받을 당시 의뢰인이 혼자서 진행했던 고소사건에서 이미 일부 사실관계에 대해 검찰의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이 나와 있던 터라 이후 사건 진행에 애를 좀 먹기도 했습니다.

의뢰인과 최초 상담을 할 때는 상대방인 출판사에게 미지급 인세 정도만 청구한 후 합의해서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웬걸 출판사에서 갑자기 제 의뢰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해서 상황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진행됐습니다. 제가 맡았던 공사대금 사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는데, 자신이 줄 돈이 있는 경우 오히려 채권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소송을 지연시키면서 돈도 적게 줄 수 있다는 법적 조언을 해주는 것이 트렌드인지…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조언들을 받았더라도 그런 생각은 제가 맡은 사건들에서 모두 잘못된 것이었음이 밝혀지게 됩니다.

제 의뢰인은 출판계약상 출판사로부터 선인세를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출판사는 선인세가 아니라 판매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후인세이고, 제 의뢰인이 이후 자신과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출판업자와 개정판을 내는 바람에 손해를 입었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었습니다. 형사고소 사건이 불기소가 되면서 민사소송 역시 시작은 좀 어렵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출판사측은 자신이 원고이면서도 손해배상 관련 주장이나 입증을 하지 않고 계속 절차를 지연시키기만 했고, 1심 민사재판은 2년 가까이 끌다가 계약상 선인세 지급이 맞고, 계약 해지 역시 정당하지만 미지급 인세나 저작권을 위반해 무단으로 인쇄된 저작물에 대한 부당이득금 지급이나 손해배상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결 내용 자체로 모순된 판단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저와 의뢰인은 항소를 하면서 사건 진행을 다시 검토해봤습니다.

고민을 한 결과 저는 의뢰인과 상의를 해서 기존 불기소 처분 대상이 아니었던 다른 무단 인쇄 사실들이 있으니 이에 대한 출판사의 저작권과 상표권 위반을 다시 형사고소하기로 하였습니다. 새로운 증거들과 거래 업체의 관련자들 진술서를 수집해서 출판사와 출판사의 실질적 대표에 대한 고소를 진행한 결과 마침내 출판사와 실질적 대표가 기소되어 벌금형과 징역형이 선고되어 확정되었습니다. 오랜 고생 끝에 마침내 법원에서 저의 주장이 인정되자, 저는 얼른 민사 항소심 법원에 형사판결문을 제출했습니다. 제 예상대로 민사 항소심 법원에서는 더 심증 정도가 높은 형사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자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우리가 주장했던 기존 미지급 인세 뿐 아니라 부당이득금 거의 전액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최초 사건 상담 이후 무려 4년이 넘게 걸린 사건이었고, 1심에서는 사실상 패소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는데, 이런 결론을 뒤집고 승소를 하고 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승소 후 저를 만나 고맙다고 하는 의뢰인을 보면서 저 역시 마지막까지 저를 믿고 소송을 진행했던 의뢰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출판사는 항소심에서 패소한 후 상고를 했다가, 얼마 지나 상고를 취하했는데, 이제 남은 쉽지 않은 문제는 판결에 대한 강제집행이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출판사의 태도에 비춰보면 판결받은 금원을 얼마나 지급받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제 의뢰인의 저작물을 유통시켜 돈을 벌고 있으면서도 손해만 났다고 주장하는 뻔뻔함을 강하게 응징했다는 점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약간은 보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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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 변호와 판결 경향

얼마 전 대법원 국선 사건으로 맡았던 준유사강간 사건이 있었는데 기록을 열람, 복사하기도 전에 피고인의 모친으로부터 잘 부탁한다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복사한 사건 기록을 보다보니 20대의 대학생이 오랜 지인과 함께 술을 마신 후 술에 만취한 지인을 상대로 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 이전까지만해도 모범적이고 바른 삶을 살아왔던 학생이어서 의아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건을 맡았던 시점은 대법원 상고심 단계라 이미 사실확정이나 법리 적용이 끝난 상태였고, 형사소송법이 정한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고인의 모친에게 그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면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감될테니 피고인에게 미리 그러한 내용을 설명해두어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 충격을 덜 받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안내했습니다. 만일 제가 피고인의 사건을 제1심이나 최소한 항소심에서부터 맡았더라면 법리적으로는 좀 다퉈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라 더 이상 손을 써볼 길이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성범죄 형사 사건의 경우 그 특성이 있어 사건을 진행하는데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데, 제가 했었던 사건들 중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른바 ‘기습추행’이라고 불리는 유형의 사건이었는데, 사실관계를 잘 살펴보면 실제로는 강제추행이 아니라 단순 폭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사건으로, 제1심에서 유죄로 많은 액수의 벌금을 받아서 제가 항소심부터 수행했던 사건입니다. 사건을 수임하고 이러한 유형의 사건에 대한 논문들이나 외국법상 법리들을 정리한 후 사건 당시 피해자 이외 현장에 있었던 주변인들의 진술서와 증언을 근거로 강제추행 여부에 치열하게 다투면서 무죄를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아쉽게도 무죄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선고유예라는 좀 예외적인 형으로 감형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선고유예는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 제가 맡았던 사건에서 선고유예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 약간은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재판부도 피고인이 진짜 강제추행을 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1심 법원과 반대로 사실인정을 한 후 무죄를 선고할 만한 용기까지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피고인은 선고유예형을 받아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범죄경력이 소멸하게 되었고, 피고인이 이후 해외 입국비자를 발급받을 때 강제추행 등 성범죄 전력이 있으면 비자 발급이 거절되지만, 선고유예형이라는 이유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건은 오랜시간 시험 준비를 하던 젊은 청년이 길 가던 피해자들을 따라간 후 주거에 침입하여 강제추행을 하였던 내용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범죄 행위가 얼마나 중한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투정을 부리고, 불만을 터트리다가 나중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실형만은 면했으면 하고 빌곤 했습니다. 저는 사건 수임 당시 뿐만 아니라 사건을 진행하면서 성폭력특별법 적용을 받는 중대한 사건이라 여러 피해자들 중 일부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합의를 하면서도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피고인의 범행 당시 정황이 아주 질이 나쁜 것은 아니었던 탓인지, 몇 개월 동안 구치소에서 미결구금을 당하긴 했지만, 제1심 판결은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형이었습니다. 저는 판결 선고 당시 법정에 출석했었는데 집행유예를 받은 후 얼굴이 밝아진 피고인을 보고 있자니 기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에 이렇게 고생을 했으니 이제 정신차리고 이러한 범행을 다시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피고인의 경우는 자신이 강제추행한 직후 피해자를 쫓아가 사과를 하는 등 정신적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었고, 죄질이 많이 나쁘지는 않은 등 참작할 여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과거에는 너무 양형이 낮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실제 범행을 한 것인지 사실관계가 의문인 사건들도 피해자의 주장만으로 너무 쉽게 유죄로 인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비단 성폭력 사건만이 아니라 판결 일반에서도 피해자의 응보 심리 충족과 실체진실 발견이란 양 측면 사이에서 마치 시소처럼 특정 시점에는 하나의 측면이 강조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부작용이 발견되면 다른 측면이 강조되어 장기적으로는 일정한 평형상태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 대중은 신이나 성인이 아니다보니 항상 중용을 지키거나 모든 것을 고려해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피해자 보호 내지는 응보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려는 절차 및 실체법적 보장이 상호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 사건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확보한 신뢰성있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수밖에 없고,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피고인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적법하게 긍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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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관련 형사고소 사건의 어려움

얼마 전 1년 반 가까이 걸렸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형사 고소 대리 사건이 정식 공판 청구가 되었습니다. 고소 사건 상당수가 대부분 불기소처분으로 끝나곤 하는데, 수사기관에서는 고소인이 증거자료까지 다 수집해서 제출해주길 원해서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우스개소리로 밥상을 차려 떠먹여주기까지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다.

이번에 기소된 사건은 민사 사건도 함께 진행된 경우였는데, 출판계약에 따라 지급해야 할 인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으로 출판계약이 해지된 후에도 무단으로 제 의뢰인의 저작물들을 인쇄하여 유통시켰고, 이에 권리를 침해받은 의뢰인이 형사고소를 원했기에 의뢰인과 제가 다양한 증거를 수집해 고소장을 제출한 끝에 기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피고인이 무단으로 제 의뢰인의 저작물들을 인쇄하여 유통시켰다는 점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작물을 인쇄하고 유통시킨 업체들은 피고인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 그들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기가 어려웠는데, 수사기관에서는 계속 고소인인 제 의뢰인에게 증거를 찾아서 제출하라고 요구해서 곤혹스러웠습니다. 강제수사권이 없는 일반인이 증거를 모두 수집해 수사기관에 제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의 이러한 태도는 우선 과중한 업무가 원인일 것입니다. 제가 사법연수생으로 검찰청에서 시보를 할 때도 처리해야 할 엄청나게 많은 사건 수에 깜짝 놀랐는데, 지금이라고 많이 나아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복잡한 재산 관련 사건에서는 민법이나 지적재산권법 등 관련 법리를 충분히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수사기관에서도 변호사가 고소장을 작성해서 관련 법리와 증거자료까지 정리해서 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번 고소사건은 잘 마무리가 되어서 의뢰인이 저작권자로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배상받을 길이 생겨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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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고수익의 유혹과 유사수신행위

우리가 소위 피라미드 사기라고도 부르는, 피라미드 조직을 만들어 투자금을 모집한 후 부당이득을 얻고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안기는 행위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또는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유사수신행위의 피해자를 대리해 손해배상소송을 하기도 했고, 유사수신행위의 피의자를 변호한 적도 있는데 그러한 구조를 떠받치는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요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폰지 사기(Ponzi scheme)이라고도 부르는 실제 이윤 창출 없이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인 경우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미한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구조는 보통은 투자 권유를 하면서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보다 매우 큰 수익을, 제3자가 생각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큰 수익을 약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도저히 유지될 수 없는 사업구조를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대리했던 손해배상청구 사건은 의뢰인이 종교 공동체를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봤던 경우인데, 처음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권유를 받고 소액을 투자했더니 실제로 몇달 많은 수익을 받게 되자 투자금액을 점점 늘렸다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큰 손해를 본 사례였습니다. 자신의 기대보다 큰 수익을 받게 되자 욕심이 생겨 자신들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도 함께 투자를 하자고 하여 더 큰 손해가 난 경우였습니다.

당시 투자했던 사람들이 수천명에 달하고, 피해액만 수백억에 달한 사건이었는데, 결국 피라미드 조직의 핵심 간부들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의뢰인은 자신에게 투자를 권유했던 핵심 간부의 부인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인데, 실제로는 그 부인도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습니다.

제 의뢰인은 쉽지 않은 소송이라는 설명에도 자신의 손해를 전보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진행하길 원했기에 소를 제기하였으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데다 손해와 인과관계, 이익을 누가 얻었는지 등 입증자료가 부족해 안타깝게도 결국 손해배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언론기사에서도 전국에 수천명 피해자들이 존재한다고 했고, 제 의뢰인 말로는 피해자들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증거로 설득해야 하는 재판에서는 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유사수신행위 사건을 하다보면, 유사수신행위 사건의 가해자는 때로는 그 자신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어떤 가해자들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피해자인양 행동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사실관계가 아닌 그 밑바탕에 있는 근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제출할 수 있는 증거도 별로 없고,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최종적 판단이 오히려 진실과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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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식칼과 살인 미수

사법연수원생들은 보통 연수원 2년차에 검찰, 법원 및 법무법인 등에 실무수습을 위해 시보를 나가는데, 제가 서울의 한 법원에 시보를 할 당시 국선변호인으로 변호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변호인으로는 처음 맡은 사건이어서 더욱 기억이 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건 당시 제가 맡았던 사건의 피고인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조리를 하던 중 술에 취한 손님이 시비를 걸자 귀가하라고 3, 4차례 계속 돌려보냈는데도 손님이 포장마차 밖에서 계속 행패를 부리자 이를 말리려고 포장마차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포장마차에서 나올 때 조리 중이라 무의식 중에 식칼을 들고 나왔는데, 손님을 돌려보내고 돌아서서 포장마차로 돌아오던 중 손님이 오히려 피고인을 쫓아와 폭행을 당하게 됐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손님을 제지하려고 부둥켜 안는 과정에서 손님이 식칼에 복부를 찔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피고인으로서는 매우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경찰은 피고인을 살인미수로 체포하고, 검사는 중상해로 기소한 후 살인의 고의까지 주장한 사건인데, 당시 사법연수생인 제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 맡겨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살인미수로 긴급체포되어 구속된 피고인을 접견하고, 당시 상황에 대해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피고인의 상황 설명을 듣고보니 피의자 신문조서 및 참고인 진술조서 내용이 서로 모순되고, 피고인이 왼손잡이여서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의 상처부위를 찌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그렇게 변론을 했습니다.

다행히 제 변론이 받아들여져 피고인의 살인의 고의까지는 인정되지 않고, 피고인은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아 석방되었습니다. 석방 이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피고인이 고맙다면서 자신의 여자친구와 같이 식사를 하자고 찾아왔는데, 함께 식사를 한 후 명품 넥타이를 선물이라며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고맙지만 국선변호인이라 추가적인 금전이나 금품은 받을 수 없다면서 선물은 거절하고, 앞으로 두 분이 혼인을 하신다니 축하의 의미로 내가 식사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미안해서 계속 그럴 수는 없다고 하던 피고인이 고맙다면서 나중에 자신의 포장마차에 찾아오면 안주를 잘 대접하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었습니다. 저는 이후 피고인이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있었던 곳 주변을 지나가면 그 약속이 생각나 한번씩 찾아보곤 했는데 이상하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정도 지난 어느 날 피고인의 여자친구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피고인이 죽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제가 국선변호를 맡았던 1심 이후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달라져 실형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피고인은 교도소에서 사건 당시 다쳤던 다리의 증상이 악화되고, 출소 후에도 몸이 불편해 병원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자친구와 혼인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비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왔던 피고인이 하늘에서라도 아무런 걱정없이 안식을 얻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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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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