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술선지’, ‘연결하라’는 세종대왕 말씀

얼마 전 아무런 예고 없이 제 사무실에 액자 한 점이 도착했습니다. 제가 이사로 있는 공익법인의 예전 이사장이셨던 대표님이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사업에 바쁘셔서 한동안 연락이 뜸했었는데 우연히 저희 법인의 다른 변호사님과 만나서 제 얘기를 듣고 선물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받은 액자는 캘리그래피 작가로 유명한 강병인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액자에는 한글로 ‘연결하라’고 써있습니다. 강병인 작가는 드라마 ‘미생’과 소주 ‘참이슬’, 전통주 ‘화요’ 글씨를 개성있게 쓴 분입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셔서 그런지 추사체처럼 글씨체가 현대적인 형태에 무게를 더한 느낌입니다.

액자의 ‘연결하라’는 문구는 세종실록에 있는 ‘소술선지(紹述先志)’라는 문구의 의미를 재해석한 것이라 합니다. 소술선지는 글자 그대로는 옛 뜻을 이어받아 이룬다는 것으로 세종대왕이 여러 인재들과 교류하며 뜻을 모아 새로운 성취를 이룬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선례와 전통을 중시하는 법학도 그렇지만, 기존의 것을 시대에 맞도록 다듬어 새로운 것으로 빚어내는 것이 가장 큰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공간을 종횡으로 살펴 이전 자료를 참조해 새로운 자료를 만들고, 제가 아는 네트워크에서 함께 할 구성원들을 찾고는 하는데, 이 또한 같은 이치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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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Deep Seek)의 출현과 대중국 기술 봉쇄의 한계

이번 설 연휴에는 딥시크라는 중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AI 모델이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좀 더 세세히 들여다봐야 하긴 하겠지만 서양의 빅테크 기업들이 들인 비용과 노력의 1/10도 안 되는 수준으로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는 것이 큰 충격을 줬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AI 개발을 막기 위해 최첨단 기술과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봉쇄를 했는데도 낮은 성능의 반도체로도 이 정도로 뛰어난 AI 모델을 만들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핵무기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NPT 체제를 거부한 인도가 서방 강대국들의 경제 제재로 인해 오히려 성냥에서 인공위성까지 자체적으로 만드는 기술력을 갖추게 된 것처럼 중국에 대한 기술이나 첨단 산업 부품 수출 제한도 마찬가지로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미 세계 2위의 내수 시장에, 14억이 넘는 인구와 다양한 자원이 부존하는 세계 4위의 국토 면적을 가진 중국의 첨단 기술 산업 발전을 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오히려 철 지난 중상주의 정책으로 동맹국들을 옥죄려 하는 미국의 최근 행보는 세계 리더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흔드는 자충수로 보입니다.

일반/범용 인공지능의 출현이 임박했다는 여러 주장들이 나오는 현 시점에서 과연 어느 국가가 미래 인류 문명의 방향을 설정할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이 격변의 시점에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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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위헌, 위법적 비상계엄 선포와 헌법 질서 회복

2024년 12월 3일 밤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재우고 있었고, 저는 다른 방에서 밀린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 중 이상한 기사가 속보로 뜨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윤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처음에는 가짜 뉴스인가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였습니다.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방송을 보다 보니 역사책에서 봤던 비상계엄 상황에 언뜻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러다 계속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국민들을 우습게 봤으면 무려 2024년에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이 자신의 장기 집권을 위해 군대를 동원해 국민들을 살해하고 헌법 질서를 파괴하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단 말인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화가 나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국회의원들이 빠르게 대응해서 헌법 절차에 따라 계엄 해제가 의결되었고, 몇 시간 지체되긴 했지만 계엄이 해제됐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실패한 쿠데타의 결과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의결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육아로 바빠서 1차 국회 탄핵 의결 때는 집회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더 이상 두고 봤다가는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도 엉망이 될 것 같아 2차 탄핵 의결 시점에 맞춰 여의도 국회 앞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기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을 너무 자주 탄핵하는 것은 국가에 혼란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윤대통령의 거듭되는 실정으로 탄핵을 말할 때도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상계엄은 그 자체로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었기에 대통령을 탄핵하고 다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를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의도 집회는 국회의사당 앞부터 여의도 역까지 집회 인파가 가득 들어찰 정도로 엄청난 인원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 국민들의 마음이 전달됐는지 다행히 2차 탄핵 의결은 가결되었고, 집회에 참석했던 저를 포함한 국민들은 가결 204표라는 국회의장의 발표에 다들 환호를 했습니다.

물론 마음 한 구석에는 생각보다 너무 적은 찬성표로 인한 실망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 다시 법에 정한 절차대로 나라가 운영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많은 인원이 모여서 집에 가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여의도를 떠나며 하늘에 뜬 달을 보니 그래도 우리나라가 다시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촬영하고 귀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예상보다도 더 휘청거리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윤대통령의 권한대행이었던 총리 역시 이 사태를 정리할 모든 방안을 거부하다 마찬가지로 탄핵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024년 마지막 날 드디어 그 다음 권한대행인 경제 부총리가 탄핵심판을 심리하고 결정할 헌법재판관 2인을 임명한 것입니다. 이런 결정에 찬반이 엇갈리고 있지만 최소한 탄핵심판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게 되어 한숨 돌리게 된 것 같습니다. 빨리 이 상황이 정리되어 경제도 제자리를 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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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데이터 산업 포럼 패널 참석

지난 주에는 의료 데이터 산업의 현황과 생태계 조성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포럼에 참석했습니다. 제가 몇 년 전부터 참여하고 있는 대한의료데이터협회가 한국산업연합포럼과 함께 개최한 포럼이었는데, 저는 전체 주제 중 제가 많이 관여하고 있는 인공지능 관련 내용에 대한 지정토론을 맡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의료계 등 보건복지 업무를 담당했던 분들과 데이터를 활용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 업무를 담당했던 분들이 함께 한 자리다 보니 현장의 경험과 법 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해 풍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맡았던 인공지능의 경우 의료 빅데이터가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 세트로 이용되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도 높았습니다.

제가 발표한 내용은 인공지능 학습용 의료 데이터 구축을 위한 제도와 학습용 의료 데이터 세트의 품질 확보가 필요하다는 내용과 향후 해당 분야 발전을 위한 제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가명화 등 비식별화 방안 및 마이데이터 사업에 대한 내용, 의료 데이터의 소유권, 기 구축 의료 데이터의 품질 평가 필요성 및 향후 구축할 의료 데이터의 품질 향상을 위한 인센티브 제공 등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업이 발전하려면 민간 업계도 시장을 만들어가는데 노력해야 하지만 행정부와 입법부에서도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 정책을 마련해줘야 미성숙한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포럼에 보건복지 분야와 의료 데이터에 관심이 있는 국회의원과 관계 정부 부처에서 참석한 것을 보고 저도 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기반 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가 좀 더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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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선한 후배와의 영원한 이별

봄철인 요새는 새로운 기운이 움트는 시기라 결혼식 소식이 자주 들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라 그런지 지인들로부터 갑작스런 비보도 들려오곤 합니다. 최근에는 제가 맡고 있는 사건의 사건관계인이 사망하시기도 하고, 대학 후배의 장인이 돌아가시기도 하는 등 안타까운 일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는 친했던 후배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났던 후배인데, 제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그 형이 저와 동창이기도 한 여러 인연이 얽혀 있는 후배입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심성이 착하고, 인상도 밝아서 저도 잘 챙겨주려고 했는데 마침 제가 신림동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할 때 그 후배도 변리사 시험 공부를 해서 신림동을 지나다니며 가끔 보기도 했습니다.

이후 저와 후배가 시험에 합격해 각자 개업을 하고 지낼 때 제가 주최하는 와인 모임에 초대하기도 했고, 서로 일하는 영역의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면서 도움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4년 정도 전에 후배에게 맡길 만한 일이 있어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고, 이후 전화가 오지도 않아서 업무가 많이 바쁜가 했습니다. 시간이 좀 흐른 후 후배한테 전화가 왔는데 몸이 안 좋아서 사무실도 닫고 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통화를 할 때는 잘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길래 좀 건강이 회복되면 얼굴 한번 보자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에 한번 정도 간간이 통화를 했는데 작년 봄에는 다행히 많이 회복이 됐다고 해서 같이 식사도 한번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많은 얘기를 하다가 더 몸이 좋아지면 전처럼 와인도 같이 한 잔 하자는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부고가 와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아리 선후배들과 언제 조문을 할지 조율하다가 저는 시간이 맞지 않아 점심 때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장례식장을 들어가는 제 손에는 후배와 마시자고 했던 와인 한 병이 들려 있었습니다. 절을 한 후 후배의 부인, 형과 후배와 있었던 얘기를 하면서 들고 온 와인을 건네면서 장지에 뿌려 달라고 말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후배 부인도 와인을 받더니 후배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등학교 친구 중 참 착한 친구 한 명도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신은 좋은 사람들을 먼저 데려간다고 하더니 후배도 그렇게 선택을 받았나 봅니다. 기화야, 더 좋은 곳에서 아프지 말고 편안하게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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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경제학사 산책 – 새뮤얼슨 vs 프리드먼, 그림동화 완역본

  •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경영학과에서는 경제학이 전공 필수과목이라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을 배웠는데, 당시 아주 오래된 고전 경제학에 대한 내용을 주로 배우고 케인즈학파나 통화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배운 기억이 없습니다. 물론, 이젠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다른 내용도 많이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사실 프리드먼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나와 있는 것처럼 사실 프리드먼은 통화주의를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제학에서는 많은 유산을 남기지는 못했고, 오히려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치를 통해 더 알려진 것 같습니다. 저도 폴 새뮤얼슨보다는 밀턴 프리드먼이 훨씬 익숙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제가 잘 몰랐던 폴 새뮤얼슨이란 경제학자가 참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경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것과 경제 상황에 따라 적용될 수 있는 해법이 달라 그 중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보다 나은 방법론은 자유주의를 강조한 밀턴 프리드먼의 이론이 아니라 폴 새뮤얼슨의 케인즈주의 통합이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때 정치와 경제에서 자유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쳤지만 개개인의 자유 추구만을 이상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선전은 제 경험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만일 대학에서 경제학 이론을 배우기 전 역사적인 경제 상황의 변동과 그에 따른 경제학 이론의 대응을 알 수 있는 경제학사를 먼저 배웠다면 경제학 공부를 훨씬 더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어렸을 적 그림동화 중 일부 발췌본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유럽의 민담이 우리와는 좀 다르다는 느낌 정도였는데 나이가 들어 어디선가 그림동화가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잔인한 내용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좀 잔인한 내용들이 있었던 것도 같았습니다. 또 하나 놀랐던 건 제가 그림동화라고 알고 있었던 책의 제목이 책의 저자였던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의 이름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전 그때까지 동화에 삽화가 많이 있어 즉, 그림이 있어서 그림동화라고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200년 전 그림형제가 모은 벨기에, 독일 등 유럽 전역에서 모은 민담들을 번역해 2권의 두툼한 책으로 출간했는데, 원래 이런 내용이었나 싶은 것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읽어서인지 이야기의 뒷부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다른 내용으로 기억하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림동화 자체도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내용들이 조금씩 변화되어 제가 읽은 판본과 완역본의 내용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초 그림형제가 출간했던 민단의 내용 그대로 읽는다는 것은 당시 유럽 사회의 실상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그나저나 계모는 어디서나 악인으로 묘사되는데, 뭔가 문화권 사이에서도 상호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인간이 보편적으로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른들도 생각할 것들이 많이 생기니 이제 아이들에게만 그림동화를 읽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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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 이름의 무게

얼마 전에 제 딸이 태어났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지 2년이 조금 안 되었는데, 딸이 태어나자 아내가 이제 진짜 가족이 된 것 같다는 말에 다시금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봤습니다. 부부가 된 후 다시 자녀가 태어나 3인 가족이 되는데 주변에서는 이제 많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태어났을 때 마치 제 딸처럼 머리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로 지내다가 가족, 친척 및 사회의 도움을 받아 어엿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걷기도 한다는 데, 그렇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이 되기까지 사람은 참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밥을 먹다가 잠이 들고, 잠을 자다가 방긋 웃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한 제 딸이 가정과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살아갈 때까지 뒤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제가 앞으로 할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 이 시간에도 많은 아빠들이 자녀들의 웃는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겁니다. 이제 저도 아내와 함께 사랑스러운 딸의 미소를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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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스와 분열의 정치

최근 넷플릭스에서 바이킹스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습니다.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을 지배하던 시기,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이킹들이 영국을 침략하고, 프랑스에서는 노르망디를 지배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부 상상을 가미한 역사 드라마입니다. 예전에 월터 스콧이 쓴 ‘아이반호’를 읽으면서 앵글로 색슨족과 바이킹이 시조인 노르만족의 갈등에 대해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바이킹들이 영국을 침략했던 것은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살펴본 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바이킹스에서 주인공이었던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그 아들들의 인생과 모험 얘기도 흥미진진했지만, 그 후속작인 바이킹스-발할라는 단순히 재미를 떠나 제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바이킹스의 이야기로부터 100년 정도가 흐른 후 크누트 대왕의 영국 점령을 배경으로 하는데, 영국에서 대왕으로 불리는 단 2명이 하나는 바이킹의 공격을 막아냈던 웨섹스의 알프레드 대왕과 그 이후 웨섹스를 비롯한 영국 전역을 점령한 바이킹 크누트 대왕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나 바이킹-발할라에는 크리스트교가 전래된 후 다수가 크리스트교로 개종하여 기존 오딘 등 전통신을 믿는 사람들과 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특히나 같은 민족으로서 영국을 침략해 점령하고자 하는 동일한 목표가 있지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말하는 소위 ‘뺄셈의 정치’, 서로 다른 것을 강조하면 분열과 전쟁의 시대가 바로 지척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이킹스에서도 주인공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는 척박한 스칸디나비아를 벗어나 영국에서 기름진 농경지를 받아 농사를 짓고 싶어 하기도 하고, 다른 바이킹들은 평화롭게 살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심지어 북아메리카 뉴펀들랜드 섬으로 이주하기도 합니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죽은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여러 다른 종교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은 ‘카테가트’라는 항구도시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서로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강조하여 다른 것이 잘못된 것이라며 분열과 다툼의 시대를 재촉하는 세력이 있고, 상호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 평화와 번영의 길임을 강조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차이을 강조하는 정치를, 공존이 아닌 상대방을 절멸시키려는 정치로는 평화의 길이 요원합니다. 주변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위태로워질수록 우리 내부에서는 이러한 분열의 길을 벗어나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양의 로마가 그랬고, 동양의 당나라가 그랬듯이 서로 다른 것을 용인하는 포용과 화합이 번영의 길이기도 합니다. 사실과 가상이 혼합된 역사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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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휴정 기간 독서 – 군주론, 전쟁의 기원

변호사들은 겨울의 절정기에 맞이하는 법원의 휴정기에 한숨 돌리며 휴식을 갖게 됩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여행을 하기도 하고, 독서나 다른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바쁜 업무로 밀린 서면들이나 집안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연말에 맞은 휴정기에 밀렸던 인터넷 교체나 등 수선 등 집안일을 처리하고, 아내와 주말을 껴서 겨울산과 바다를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번 휴정기를 맞으면서 결심했던 것이 하나 있는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업무시간에 활자를 많이 봐서 왠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제 업무 이외의 책을 잘 읽지 않았지만 이번 휴정기에는 시간을 내서 책을 제대로 좀 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휴정기에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 책들 중 먼저 읽은 것이 ‘군주론’과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입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지은 ‘군주론’은 널리 알려진 책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제가 더 젊었을 때 이 책을 여러 번 집어 든 적이 있었는데, 지금보다 젊은 나이였을 때라 그런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책의 내용에 거부감이 들어선지 조금 보다가 내려놓았었습니다. 이제 그 때보다는 세상을 더 경험해서 마음이 열린 것인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더 알고 싶어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군주론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보니 여러 버전의 군주론이 있었는데, 제가 고른 곽차섭 교수 번역본은 이탈리어 원전을 최대한 직역하고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보여주면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해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글을 쓴 배경을 알게 되면 글의 행간을 읽는데도 도움이 되고, 내용 자체도 더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대로 책 처음 부분에 마키아벨리의 삶과 당시 이탈리아의 정세, 군주론을 써서 당시 피렌체의 권력자에게 증정하려고 했었다는 내용을 알게 되니 군주론이 왜 그렇게 쓰여졌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군주론은 어떻게 보면 난세를 사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기도 하고, 정치 지도자의 처세서이기도 하며, 수많은 도시국가로 찢어진 이탈리아의 슬픈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군주는 사자이자 여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감부터 생겼는데, 인간의 심성보다도 상황이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군주론에 나온 것처럼 민주정이 아닌 군주정에서는 군주 자신의 생존이 곧 국가의 생존이기에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로 삼국지 게임을 즐기고,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 열국지나 삼국지, 초한지, 대망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제가 유독 마키아벨리의 주장에만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 한편 이상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것은 제가 군주론이 있었던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서나, 전쟁을 수단으로 하는 부국강병의 기술을 주장하는 병가의 측면이 아니라 일반적인 정치에서의 교활한 기술이나 무자비한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에 군주론을 읽으면서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군주론을 읽은 후에는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부제가 ‘석기 시대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까지’인데, 저자인 아더 훼릴은 원시 인류부터 전쟁이 존재해왔고, 전쟁이 인류의 주거 형태와 삶의 방식을 많이 결정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장갑보병으로 유명한 그리스와 로마의 전쟁 수행 능력이 과대평가되어 왔고, 소아시아 등 고대 근동 지역으로부터 우리 현대인은 전쟁과 관련된 훨씬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출현에 대해서도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는데, 농경의 발전으로 도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방어 목적으로 도시가 생긴 후 농경 등 식량의 축적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농업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농경의 등장이 인류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며, 농경으로 인한 식량의 증산은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이미 늘어난 인구수로 인해 인류 공동체가 기존 수렵 및 채집 경제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떠오르는 농경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합니다.

책 내용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투에서 각 부대가 어떻게 전투를 벌였는지 그림을 통해 설명하는 것과 게임에서 많이 경험한 것처럼 각 부대들의 특성에 따라 서로 상성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갑옷이 두꺼운 중장갑보병이라고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경보병보다 전투력이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아시아 원정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그리스의 중장갑보병 전술과 페르시아 등 근동 지역의 경보병, 전술, 병참, 조직등 전쟁 기술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켰던 덕분이란 점도 놀라웠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의 장점을 살리고, 타인의 것이거나 새로운 것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 장점을 잘 살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것이 바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그 아버지인 필립왕은 근본적인 혁신이 비주류인 변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한 것이라는 생각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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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의 세금 체납과 임차인의 피눈물

오늘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 제목을 보다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전입신고를 하기 전까지 임대인이 미납한 세금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국세징수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맡았던 사건의 의뢰인이 임대인의 체납 세금 때문에 살던 집이 공매가 되어 임대차보증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가 공매에 참여해서 임차했던 집을 자신이 낙찰 받을 수밖에 없는 사정에 처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임대인이 말해주지 않았기에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자신이 알 수도 없었던 임대인의 세금 체납 때문에 임차인이 손해를 보는 어이 없는 상황에 저도 어이가 없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이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은 여러 차례 국회에 발의된 적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임대인의 개인 금융정보이기도 하고 악용될 소지도 있어 쉽사리 개정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법개정이 이루어진 계기가 된 이른바 ‘빌라왕’ 전세 사기처럼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들이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는데도 너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제라도 법개정을 통해 임차인들이 임대인의 세금 체납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줄어들었기에, 늦었지만 천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제 몫을 하면 어려운 국민들이 그만큼 피해를 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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