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의 ‘카르멘’

요절한 프랑스의 천재 작곡가 비제. 저도 조르주 비제의 곡을 많이는 듣지 못했는데, ‘진주조개잡이’나 ‘카르멘’ 정도이고, ‘아를의 여인’이라는 관현악곡도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카르멘’ 음반은 아그네스 발차가 집시 여인인 카르멘 역을 맡고, 3대 테너로 유명한 호세 카레라스가 돈 호세로 노래한 도이치 그라모폰의 1983년 하이라이트곡 음반입니다. 전체적으로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가 가수들이 부르는 곡을 탄탄하게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돈 호세를 유혹하는 카르멘의 ‘하바네라’, 투우사인 에스카미요의 ‘투우사의 노래’ 등 널리 알려진 노래들이 신나게 펼쳐집니다. 어떻게 보면 집시 여인을 사랑하는 군인이 질투로 살인에 이르는 비극적 스토리인데도, 전체적인 노래와 기악 연주곡은 이와 대조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로 흐릅니다.

작곡가인 비제는 프랑스에서 초연한 카르멘이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자 해외 공연을 준비하다가 돌연 36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맙니다. 비제 사후 해외 공연에서는 카르멘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춘희),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함께 3대 오페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제의 짧은 생애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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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한 와인 ‘마데이라’

결혼을 한 이후 아내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종류의 술을 즐기는 저는 혹시라도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다행히 제 아내는 맛있는 식사와 반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는 풍류를 알아서 기쁩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갖고 있던 와인 중 마데이라를 꺼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래 대서양에 있는 마데이라 제도에서 생산되어 그 명칭을 얻은 마데이라는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인보다는 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와인은 알콜 도수가 11도 내지 14도 정도인데, 이 정도 알콜 도수는 보관 중 변질되는 것을 막기 어렵습니다. 이런 와인에 다른 알콜 도수가 높은 브랜디나 주정을 넣어 알콜 도수를 높이면 장기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기간 항해에도 적합합니다. 이런 이유로 대서양을 지나는 선박들이 마데이라 제도에서 생산된 와인을 싣고 항해를 하게 된 겁니다.

마데이라는 일반적인 와인보다 알콜 도수가 높고, 달콤한 다보니 식사와 반주로 마시기보다는 식사 후 디저트와 함께 마시곤 합니다. 보통 디저트 와인으로는 귀부와인, 아이스와인, 천천히 수확해 농익은 포도로 만든 레이트 하비스트 와인, 포트와인, 셰리주로 알려진 헤레즈 와인 등을 마시는데, 이번에 만나게 된 마데이라는 처음 마시는 것이라 약간 기대가 됐습니다.

제가 마신 마데이라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질감이 가볍게 느껴졌고, 달콤하고 약간 새콤한 맛이 났습니다. 또 건포도 향이 강하게 났는데, 견과류의 풍미도 약간은 났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향이나 맛은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같은 장소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달리 느껴지기 때문에 너무 와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내와 결혼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마실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제가 처음 마데이라 제도를 알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컴퓨터로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에서 전세계를 여행하면서였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 마데이라에서 생산된 술을 아내와 함께 마시는 날이 오게 되다니, 인생은 참 우연의 연속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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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 사람도 풍족한 중국 쓰촨성 여행 2

다음날 아침에는 모두 일찍부터 일어나 미리 예약했던 투어 버스를 타고 아미산 관광을 시작했는데, 그 첫 목적지인 러산대불로 이동했습니다. 아미산은 무협소설이나 무협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주변 풍광이 좋고, 볼 만한 유적지도 많은 중국의 불교 명산이자 영산이기도 합니다. 이동하다 보니 생각보다 숙소에서 거리가 좀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큰 불상을 보기는 쉽지 않아 나름 기대가 됐습니다. 강가에 도착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생각보다 강변에 안개가 많이 끼어 조짐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입장 시간을 거의 1시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러산대불이라고 새겨진 돌을 지나 입장을 시작했는데,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러산대불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유적이나 유물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자세히 둘러보고 올 시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역시 중국에서 주말에 여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힘들게 대불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니 사찰의 문이 하나 있었고, 그 곳을 지나니 마침내 엄청난 크기의 불두가 보였습니다. 신기해서 더 가까이 가보니 불상 전체가 보였는데, 그 크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고, 어떤 곳은 벽돌을 쌓아 형태를 보완한 것 같았는데 사실 옆에서 봐서 그런지 조형미가 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나오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불상이란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좀 아쉬웠던 것은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강 건너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안개가 만이 낀 탓에 유람선도 운항을 하지 않아 러산대불을 한 눈에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러산대불을 둘러보고 옆에 있는 사찰의 전각으로 다가가니 능운사라는 현판이 보여, 역시 평소에도 주변에 안개가 자욱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찰에는 달마화상 같은 후덕한 분도 계시고, 우리나라와 좀 달리 매우 화려하게 치장된 사천왕상도 있었는데, 역시 중국이라 그런지 표면에 개금을 많이 해서 번쩍번쩍 눈이 부셨습니다.

어느 정도 둘러본 후에는 다시 다음 목적지인 금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안개가 잔뜩 끼고, 가랑비도 조금씩 내려서인지 입장권을 파는 곳에서 방수용 점퍼도 한 벌씩 대여해줬습니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간식을 파는 점포들이 있는데, 그 중 제가 좋아하는 군옥수수를 파는 곳이 있어 일행들과 함께 옥수수를 사먹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중국 옥수수는 우리나라 옥수수보다 더 아삭거리는 씹는 식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군옥수수는 숯불에 너무 구워서인지 1/3 가까이가 숯이 되버려서 아깝지만 일부는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행길이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점퍼까지 입고 가려니 약간 숨이 가빠오는 찰나, 마침내 금정이라는 표지판이 서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금정 가까이 도착했는데, 반짝거리는 금정은 보이지 않고 온통 안개만 자욱했습니다. 심지어 안개에 향에서 나는 연기까지 더해서 탑이나 금정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럴거면 뭐하러 힘들게 여기를 올라왔나 하는 약간의 실망감이 몰려왔으나, 일단 우리 일행의 여행이 안전하게 끝나고 모두 건강하길 비는 뜻에서 향에 불을 붙여서 하나 올리기로 했습니다. 향을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물 덕인지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탑과 금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금정은 글자 그대로 금으로 칠을 해뒀는데, 햇빛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반짝거리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본 후에는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올라갈 때보다 안개가 자욱한 산의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몽환적인 분위기도 났습니다. 산의 이름도 아미산이라 그런지 저 쪽 안개 속에서 학을 탄 신선이라도 금방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니 벌써 저녁이 가까워졌는데, 아침에 아미산으로 가는 길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혀서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다들 지쳐서 호텔 가까운 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얼른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마신 후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오전은 각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 터라 더욱 마음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전날 피로가 심했는지 침대에서 뭉기적거리고 있는데, 어떤 일행분들은 일찍 일어나서 벌써 아침 식사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단체 카톡방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슬쩍 보다 보니 저도 더 이상 침대에서 버티지 못하고, 인근 공원에서 차를 한잔 마시기로 했습니다. 공원은 숙소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너무 붐비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공원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서있는 항일 전쟁 당시 전몰자 기념비와 그 밑에 있는 꽃다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착검한 총만이 아니라 칼과 방패까지 등에 지고 있는데, 전에 봤던 ‘명장’이란 중국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방패를 들고 공성전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공원 안에서는 태극권을 하는 노인분들도 있고,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 물길도 있어서 산책하기가 참 좋았습니다. 또 공원 한켠에는 찻집도 있었는데, 쓰촨 지역에서 유명한 차들을 팔고 있어 한가로이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다보니 돈을 받고 귀를 파주는 노인 한 분이 자꾸 와서 귀후비개를 들어보이는데, 안전한지 약간 걱정이 된 탓에 용감하게 제 귀를 내주지는 못했습니다. 나중에 찻집을 나오다 생각해보니 색다른 경험인데, 한번 해볼껄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습니다.

다시 숙소에 돌아온 우리 일행은 두보초당을 방문하는 길에 그 앞에 있는 유명한 마파두부집에서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진마파두부라는 간판이 붇어 있는데, 유명세만큼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마파두부 자체는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치즈 같은 식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스 역시 보기보다는 많이 맵지 않고, 밥과 함께 먹으면 밥도둑 같은 느낌이 드는 국내 중국음식점에서는 맛보기 힘든 탁월함이 느껴졌습니다. 건두부는 다소 알싸한 향이 났는데, 마침 사간 중국의 명주 노주노교와 함께 마시니 그 맛이 더욱 훌륭했습니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이제 두보 초당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주당이었던 이백이 시선이라면 두보는 시성이라 불리는데, 안록산의 난을 피해 쓰촨성의 성도로 피신을 했다가 머문 곳이 바로 이 두보 초당이었습니다. 처음 입구에 있는 두보의 조각상을 보면 너무 마른 할아버지의 상이라 그만큼 고생이 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초당을 둘러보다 보면 후대에 두보의 시를 사모한 권력자들이 너무 화려하게 꾸며 놓아서 그런지 ‘초당’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기는 하지만, 여러 건물들에 걸린 두보의 작품들과 후대 찬시까지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곳곳에 여러 시대를 걸쳐 지어진 건물들과 제가 좋아하는 대나무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는 두보 관련 자료들이나 시집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일생 동안 갖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후손들이 자신을 기리는 것을 보면 두보도 이제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다는 부러움이 순간적으로 가슴 한켠을 스치기도 했습니다.

두보 초당을 모두 둘러본 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귀국 가방을 싸면서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이렇게 업무적으로 만나던 인연으로 함께 해외여행까지 하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얼마 후 우리 모두의 삶을 강타한 코로나로 한동안 해외로 나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유롭게 출입국이 가능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 국내외적으로 서로 분열되고, 반목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 좀 걱정되기도 하는데 앞으로 다시 이런 편안한 여행을 다시 계획할 날이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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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 사람도 풍족한 중국 쓰촨성 여행 1

중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국지를 한번 정도는 읽어 봤을 겁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통일을 도모하자는 제안을 하는 천하삼분지계와 관련해 나오는 지역이 익주인데, 현재 기준으로는 사천성, 중국어로는 쓰촨성입니다. 소설에서도 나온 것처럼 옛부터 쓰촨성은 물산이 풍부하고, 자연 경관이 수려해서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던 곳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손꼽는 8대 명주 중 무려 3개에 해당하는 노주노교, 우량이에, 검남춘이 사천성에서 나기도 해서 맛있는 술을 즐기는 제가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쓰촨성은 제가 예전에 여행을 했었던 윈난성과도 바로 붙어 있어 있는데, 윈난성 리장을 여행할 당시 만났던 다른 여행객들 중에는 윈난성의 옥룡설산과 호도협을 지나 쓰촨성으로 넘어가는 경로를 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리장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위안양의 계단식 논을 구경하려고 했기 때문에 쓰촨성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윈난성 못지 않게 쓰촨성도 좋은 곳이 많다고 들어서 나중에라도 한번 가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 속으로 쓰촨성 여행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던 어느 날, 제가 속해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 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같이 식사를 하던 중 위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변호사분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가자고 의기투합을 하게 됐습니다. 다들 술을 한잔 해서인지 아니면 업무만이 아니라 현지에서 중국 문화를 느껴보자는 생각이었는지, 어쨌든 식사 겸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5명의 변호사들이 중국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사람들 중 한 변호사님이 중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서 현지인 못지 않게 중국어를 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여행계획을 짜게 되었습니다. 여행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 이런저런 의견을 내다가 여행을 가는 멤버들이 기존에 여행을 가지 않았던 곳이면서 중국의 자연풍경과 문화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쓰촨성이 1등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의 쓰촨성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고맙게도 중국어에 능통한 변호사님이 전체적인 여행계획을 준비해주셔서 저는 투어 여행을 가는 것처럼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단 첫날은 평일인 금요일 밤이라 밤늦게 도착하게 되어 숙소에서 짐을 풀고 쉬었는데, 중국 호텔답게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인테리어가 된 로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유가 있었던 다른 일행과 달리 우리 여행을 준비했던 변호사님은 다음날부터 주변을 둘러볼 투어 상품을 예약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녀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같은 위원회 사람들이 함께 중국에 온 첫날이라 중국에서 유명한 마라탕 음식점에서 여행 기념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원래 마라탕은 쓰촨지역과 충칭지역에서 유래했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많아지면서 다양하게 변화를 준 특색을 갖는 마라탕 음식점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원조의 맛을 찾는 사람들은 전통의 마라탕 맛을 찾아 쓰촨지역으로 오는데, 그 중 우리 일행이 찾은 마루비엔비엔이라는 음식점은 너무 맵지 않으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고 있답니다.

특히 여러 재료들을 스스로 골라들고 계산을 한 후 꼬챙이네 꽂아 익혀 먹는데, 처음에는 걱정했던 것보다 맵지 않아서 먹을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먹다보니 혀와 입술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마라에 들어 있는 화자오가 마비시키는 성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많이 맵다고 느껴지면 달콤한 땅콩소스에 찍어먹으라고 하던데, 그렇게 해도 어느 순간부터는 술이나 꼬치의 맛이 느껴지지 않게 됐습니다. 다들 그렇게 술과 마라에 거나하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저는 음식이 매운데다 알콜까지 많이 먹어서 그런지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삼성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저도 쓰촨성 여행을 가기 전에는 삼성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전부터 3,000년전까지에 이르는 고촉문화 유적으로 매우 정교한 청동기 문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 문화의 유물들과 상당히 다른데,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이 어떻게 보면 중남미 지역의 마야나 올멕 문명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외계 문명이 남긴 유산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에 기록된 문명보다 더 이전의 초고대 문명에 관심이 많은데, 삼성퇴 문명의 기원이 오래되기도 했을 뿐 아니라, 20세기에 들어서 유물들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기록도 없어서 완전히 잊혀진 문명이었다는 것에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박물관 내부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많은 유물들을 촬영했는데, 일부 청동기 표면에는 마야나 아즈텍 문명의 문자처럼 형이상학적인 상형문자 같은 것이 있어서 더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박물관을 한참 돌아본 후 밖에 있는 조각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목도 마르고 다리도 좀 아팠습니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공원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캔 마시니 좀 살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좀 쉬다가 다시 공원 주변을 걷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저쪽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어린 학생들이 사생대회를 하는 것도 보였습니다. 아마도 주말이라서 가족들이나 학교에서 함께 나온 것 같았습니다.

다함께 삼성퇴를 본 후에는 다시 삼국시대 유비와 제갈량을 모시고 있는 무후사로 향했습니다. 삼국지나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을 곳인데, 삼국지에도 나오지만 원래 촉한의 황제였던 유비는 백제성에서 세상을 떠나지만, 이후 능은 수도였던 청두에 한소열묘를 조성했습니다. 황제였던 유비와 유비가 총애한 승상 제갈량이 함께 모셔져 있는 곳이라 더 특이하기도 했습니다.

무후사 안으로 들어가면 도원결의로 유명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와 제갈량을 비롯한 다른 신하들의 조각상이 좌우로 도열해 있었습니다. 기록을 바탕으로 나름 외모와 성격을 반영해 각자의 조각상을 만들어놓았는데, 문관들과 무관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에는 개성이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아래까지 길게 늘어진 귀를 가진 유비나 가슴까지 수염을 늘어뜨린 관우, 단정하게 앉아 학익선을 들고 있는 제갈량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분들을 잘 표현해 놓았습니다. 사당을 지나니 한소열지릉라는 편액과 비석이 있는 문이 있는데, 그 문 안쪽에는 유비의 능이 있었습니다.

무후사 안을 돌아다니다보니 붉은 칠을 한 벽과 녹색의 대나무가 잘 대비되는 길고 곧은 길이 있는데, 그 길에 들어가는 길에는 무지개 형태의 문지붕이 있어 더 예뻤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길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걸어가기도 하고 길을 배경을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저 역시 이 곳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부탁했습니다.

무후사를 둘러본 후에는 뭔가 기념할 것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기념품샾에서 도원결의 잔 세트를 발견했습니다. 무후사에 온 기념도 될 것 같고, 나중에 친한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잔을 나눠가져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잔 세트를 사서 무후사를 나섰습니다. 무후사를 나설 때는 이미 저녁이 되어 곳곳에 조명을 밝혔는데, 조명 덕분인지 떠나는 우리 일행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제갈량의 모습이 더욱 화려해보였습니다.

무후사를 나와서는 그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해결습니다. 중국에서 많이 먹는 건두부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들이 유명한 곳이었는데, 음식점을 들어가기 전 샀던 중국 8대 명주 중 하나인 검남춘을 곁들이니 맛난 술과 음식에 혀가 행복해지고, 시간이 지나니 흥취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일행들 모두 쓰촨성에서 생산되는 검남춘의 훌륭한 맛에 취하고, 매콤하게 조리된 쓰촨 요리의 조합에 감탄하면서 바삐 돌아다닌 하루의 피로를 풀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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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는 곳 3

평소 한국에서나 여행을 가서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비몽사몽인 제게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본다는 것은 나름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침마다 침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저라도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곳이자, 환상적인 일출 명소인 앙코르와트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들면 좋은 자리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기사를 불러 앙코르와트로 출발했습니다. 앙코르와트 입구에 내렸더니 아직 새벽이라 깜깜하기에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걸어가는데, 저와 같은 관광객들이 많은지 마치 반딧불처럼 여기 저기서 하얀 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하구나 하고 혼자 웃기기도 했습니다. 앙코르와트 입구를 지나면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수면에 3개의 탑이 비쳐 가장 아름답다는 일출 명당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점점 일출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더니 제 앞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까지 나타나서,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멀리에서 희미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이제 옆 사람은 잠시 잊고 점점 커지면서 눈부시게 빛나는 해와 데칼코마니처럼 연못에 비친 탑의 모습을 보면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구름 뒤로 숨고, 세상 전체가 밝아진 후 저도 자리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앙코르와트 내부를 꼼꼼히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원 내부 1층 회랑에는 제가 좋아하는 인도의 2대 힌두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에 관한 부조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조각된 이야기에는 신들과 악마인 아수라, 천상의 무희들인 압사라 뿐만 아니라 영웅들과 왕들까지 등장해 다양하고 화려했습니다. 오늘은 빨리 가자고 눈치를 주는 가이드도 없어서 조각들을 하나씩 여유있게 감상하면서 사진으로도 많이 남길 수 있었습니다.

1층 회랑의 조각들을 살펴본 후에는 사원의 담 안쪽의 넓은 공간으로 나갔습니다. 조각들로 가득한 회랑을 계속 돌다가 널찍한 마당으로 나오니 분위기도 밝고, 가슴도 탁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안에 있을 때는 잘 알지 못했는데, 밖에서 바라보니 사원의 회랑과 벽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사원의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사원의 중심부를 향해 가는 통로의 벽에도 조각들과 신상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중앙에 있는 탑은 주위를 둘러싼 여러 가파른 계단 형태 중 실제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만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데, 철제 계단으로 보다 오르기 쉽게 만들었음에도 경사가 급한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높은 곳은 아무래도 멀리까지 보여 경치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줄줄이 비엔나처럼 줄을 서서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중앙탑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중앙탑에 오르느라 힘이 들었는지, 오전 8시가 되기도 전인 이른 아침인데도 얼굴에 땀이 났습니다. 탑 상층부에 올라서 돌아보니 여기에도 이곳저곳 아름다운 조각들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는 불상의 광배를 나가 형상으로 만든 것이나 천수관음처럼 여러 손이 조각된 신상이 특이해보였습니다. 사람들 틈새를 헤치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창문쪽으로 갔더니 역시나 높은 곳이라 그런지 사원 밖 저 멀리 숲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었습니다.

중앙탑에서 경치를 즐기면서 살살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나니,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졸음이 솔솔 몰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볼 것들은 어느 정도 봤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가 잠을 보충하고, 느지막이 점심 이후에 일어나 호텔 수영장 한 켠에서 가져간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호모 사피엔스였는데, 두어 시간 책을 읽다가 햇살이 다시 강해지길래 다시 방에 돌아가 책을 놓아둔 후 짐을 챙겨들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습니다.

저는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면 마사지를 자주 받는데, 이번에는 많이 걷기도 해서 마사지를 제대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발마사지 레슨을 받고, 강습이 끝난 후에는 마사지를 받는 프로그램이 있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마사지 레슨을 받는 곳은 처음 가봐서 여러 상품 중 마음에 드는 발 마사지 프로그램을 고른 후 1시간 정도 1:1 레슨을 받았는데, 강사와 서로 마사지를 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레슨 프로그램에는 마사지 교본까지 포함되어 있어 그 교본을 보면서 나중에도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사지 레슨이 끝난 후에는 커피 껍질을 이용한 아로마 전신 마사지를 받았는데, 커피 껍질을 넣은 오일은 온 몸에 바르고 그 위를 비닐로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마사지를 많이 받아봤지만 마치 소세지 빵처럼 몸을 돌돌 감싸는 방식의 마사지는 처음이라 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돌아다녀서 노곤했는지 어느 순간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시간이 다 됐는지 마사지사가 저를 깨워서 레슨 때 받은 교본과 제 나머지 짐을 챙겨들도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마사지를 받고 숙소에 와서는 푹 휴식을 취했는데, 이렇게 관광을 하고 휴식도 취하고 나니 학위 논문을 쓸 준비가 된 것 같아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저는 앙코르와트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주변 맛집에 가서 캄보디아 맥주와 캄보디아 전통 음식으로 기념했습니다. 다음 날 숙소를 나오는데 갑자기 호텔 지배인이 카드 한 장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나름 여행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정성들여 카드를 직접 써서 주는 곳은 본 적이 없어 신기하면서도 은근히 기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카드를 보면서 많이 상업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순박한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귀국 비행기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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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는 곳 2

점심을 먹고 잠시 그늘에서 더위를 식힌 후 수심이 별로 깊어 보이지 않은 저수지를 건너는 것으로 투어의 후반부가 시작됐습니다. 저수지 위에 널판지가 깔린 길을 걷다보면 섬이 하나 나오는데, 이 곳이 프라삿 닉 포안이라는 사원이었습니다. 좀 특이하게 이 사원은 작은 섬 위에 있는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부처가 열반에 이른 것을 기리는 뜻으로 세워져서 4개의 연못에 둘러싸인 중앙에 있는 1개의 연못은 히말라야에 있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연못을 본따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가이드는 이 사원에는 코끼리, 사자, 말, 사람의 모습을 한 4개의 분수가 있는데, 이 분수에서 성수가 나와 병을 고쳐준다고 하여 순례자들이 찾는다고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저수지 위를 걸어 돌아나와 다음 사원으로 이동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좋아하는 정교한 조각상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표정과 동작을 한 많은 조각상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기에 저는 각각의 조각들을 사진 촬영하느라 다시 빨리 오라는 가이드의 재촉도 못본 척 해야 했습니다.

정교한 조각상들을 많이 본 후에는 다시 이스트 메본 사원으로 향했는데, 원래는 저수지 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물이 모두 말라버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긴 했지만, 사원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 서있는 늠름하고 힘이 넘치는 사자상과 두툼하고 긴 코를 늘어뜨린 코끼리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원 위로 올라가니 여러 개의 탑이 있었는데, 탑에 사용된 석재가 다른 사원들보다 더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어 마치 대리석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좋은 재질 위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은 계속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게 했고, 벽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참 넋을 잃고 보고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다소 일찍 투어가 끝나 마지막 목적지인 일몰 명소인 프놈 바켕으로 향했습니다. 다른 곳들을 더 구경할 수 있는데 너무 일찍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다소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해가 지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글들을 읽은 탓에 미리 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프놈 바켕 사원은 해가 쨍쨍한데 그늘은 별로 없어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저는 사원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일본 커플이 자리를 펴고 일몰 구경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서 슬슬 일몰을 보기 좋은 위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햇빛이 강한 탓에 계속 앉아만 있기는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모자를 꺼내 쓰고는 가져간 책을 읽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슬슬 해가 약해지면서 다른 관광객들도 슬금슬금 제 옆자리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일찍 와서 자리를 잡은 덕분인지 가장 앞쪽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평선 아래로 산산히 흩어지며 내려앉는 해를 보면서,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마음을 썼던 부질없는 일들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장엄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뭔가 슬픈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황혼을 뒤로 하고, 제 가이드를 찾아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땡볕에 돌아다녀서인지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니 온 몸이 노곤했습니다. 저는 구글맵을 검색해 숙소 주변에 있는 추천 식당에 가서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 다음날 새벽 앙코르와트 일출을 보기 위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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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는 곳 1

어렸을 적 과학잡지에서 보았던 앙코르와트의 모습은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탐험의 대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주변에서 하나 둘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사람이 생겼고, 크메르루즈의 악명으로 더 유명해진 크메르 제국이 남긴 영광의 상징인 앙코르와트에 가보고 싶다는 저의 바램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본격적인 학위 논문 작성과 심사을 앞두고 얼마쯤 푹 쉬면서 심신의 휴식이 필요했던 저는 훌쩍 캄보디아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친한 친구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을 다녀오는데 태국에서 버스를 타고 8시간인가 걸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시엠립 옆에는 공항이 따로 하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상전벽해라 할만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몸과 마음을 편히 쉴 곳을 찾았는데, 너무 크고 화려한 호텔이 아닌 조용하고 안락한 Butterfly Pea라는 이름의 부티크 호텔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많이 피는 보라빛깔의 꽃 이름인데, 보라색을 좋아하는 제 마음에도 쏙 들었습니다.

시엠립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웰컴 드링크 한잔을 주고, 체크인 후 방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방에는 몇가지 과일이 든 바구니가 하나 있었는데, 사실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과일들도 있어서 숙소를 떠날 때까지 그대로 둔 과일도 있습니다. 짐을 푼 후 리셉션에서 다음날 투어를 예약한 저는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밤거리를 구경하러 나갔습니다. 제가 머문 숙소는 도시를 관통하는 강변에 위치해 있었는데, 조금만 걸어가면 번화한 중심거리가 나와 쇼핑을 하거나 식사를 하기에도 좋았습니다. 다만, 호텔을 나갈 때마다 길가 한쪽에 서있는 직업 여성들이 자꾸 “오빠 멋있어요~”라고 하면서 다가오는 것이 좀 부담스럽기는 했습니다. ㅎㅎ

첫날 푹 잠을 잔 저는 다음날 일찍 앙코르와트 투어를 하기 위해 가이드와 함께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보통 앙코르와트 투어는 그랜드 투어, 스몰 투어로 나뉘는데 저는 그랜드 투어를 선택해서 많은 곳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있는 데바과 아수라들이 나가를 당기면서 ‘우유의 바다’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 그 모습에서 진지한 사원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 바이욘 사원 등 건물에는 사방에 제가 좋아하는 조각들이 전체적으로 새겨져 있어 그 조각들을 감상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그래서 자꾸 가이드가 다른 곳에 가자면서 끌고 가는 것이 좀 아쉽게도 느껴졌습니다.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경우 더 시간을 두고 감상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더 좋은 곳들이 있으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앙코르톰을 지나 관세음보살상이나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도 알려진 평화로운 얼굴 조각이 있는 바이욘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바이욘 사원과 다른 장소에서 가이드가 자신만의 기술로 찍어준 사진을 보면 가이드 투어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바이욘 사원은 아름다운 조각상들로 유명한데 특히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드러나는 음영의 대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사원 앞에 있는 와불은 노란 장삼 한장만을 걸쳤는데 무언가 쓸쓸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이욘 사원의 문을 보면 마찬가지로 석재를 사용해 끼워맞춘 잉카문명의 문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사원 내부는 바깥보다 좀 조용한 편이었고 다산을 상징하는 남근석과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는 듯한 불상이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고요하면서도 알 수 없는 울림이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안내를 맡았던 가이드는 일종의 트릭 사진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는지, 아이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신기한 사진들을 더 많이 남겨주었습니다.

바이욘 사원 벽에는 아름답게 부조된 조각들이 많아서 계속 넋을 잃고 조각상들을 보다가 가이드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바이욘 사원을 둘러본 후에는 큰 불상이 보관되어 있는 전각을 지나 무지개 다리를 통해 바푸온 사원으로 갔습니다. 원래는 시바신을 모시는 사원이었는데, 이후 불교 사원으로 바뀌면서 탑의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바푸온 사원에서는 특히 통로 위 천장을 아치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햇빛이 스며드는 벽 기둥 사이로 보이는 완벽한 아치가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유럽 고딕양식처럼 대칭의 둥근 아치와 빛을 이용한 아름다움이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가이드로부터 사원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보니, 처음에는 사원의 가장 꼭대기에 시바신을 상징하는 남근상을 세워두었었다고 하는데 힌두교의 시바신은 브라흐마신처럼 창조의 신이 아닌 파괴의 신인데 시바신의 상징이 다산과 창조를 의미하는 남근상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소멸이 있어야 새로운 생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인지…

바푸온 사원의 정상까지 올라가 주변을 내려다보니 정글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주변에 나무들이 무성했습니다. 다시 넓은 길가로 나와서 보니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테라스가 보였는데, 테라스들에도 섬세한 부조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문둥왕이란 이름은 테라스 위에 있는 좌상이 이끼 때문에 얼룩덜룩하게 보여 나병으로 죽은 야소바르만 1세를 연상해서 지어진 것이라는데, 알고 보니 좌상에 새겨진 15세기의 글을 보면 좌상은 죽음의 신인 야마(Yama)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미 문둥왕 테라스로 널리 알려져서 그 후로도 계속 문둥왕 테라스라고 불린다니 역시 이름은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가 힘들긴 한가 봅니다.

크메르 제국의 왕들이 연회와 행진을 즐겼다는 테라스를 지나다 보니 어떻게 사원 건축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벽의 구조가 노출된 것이 보였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많은 라테라이트라는 흙이 햇볕을 받고 건조해지면 붉은 색의 매우 단단한 재질이 되는데, 이 흙으로 벽돌을 만든 후 그 위에 화려하게 장식으로 조각된 부드러운 사암을 붙이는 식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원에서는 사암과 테라코타가 확연히 구분되지 않았는데, 테라스를 보고 있자니 밝은 빛 속에서 마치 화이트 초코 케이크 한 쪽이 흘러내려 안의 빵이 보이는 것 같은 장면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널찍한 길을 따라 가루다상이 있는 앙코르 톰의 문을 지나서 다시 프레아 칸이라는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프레아 칸은 원래 불교 사원이었지만, 일부는 힌두교에서 유지의 신으로 불리는 비슈누에게, 또 다른 부분은 파괴의 신인 시바에게 바쳐진 특이한 곳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각에서 산신이나 북두칠성, 용왕을 기리고 있는 것과 비슷해보였는데, 불교의 포용력이 보편적으로 컸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프레아 칸은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 않는지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특히 사원 천장 가까이에 난 창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 빛을 받아 탑인 스투파가 빛나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해 줬습니다. 다른 사원과 다른 건물들도 눈에 띄었는데, 장경각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프레아 칸 사원에는 건물에 뿌리박고 하늘을 향해 곧게 서있는 나무가 인상적인데, 제가 찍은 사진들만 봐도 이제는 관광객들에게 사원보다 나무가 더 눈길을 끄는 것도 같습니다.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다녔더니 배도 고프고, 점점 더워지는 것도 같은 차에, 마침 가이드가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고 해서 오전 투어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배를 채운 후 다시 오후 투어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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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연수라 쓰고 극기훈련이라 읽다.

고독사하신 분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현재는 법인이 되어 제가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한데, 몇년 전에는 그냥 공익단체로 종종 법률자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눔과나눔의 사무국장님이 함께 고독사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셔서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체 프로젝트에서 고독사한 분들이 생전에 자신의 사망 이후 법률관계를 미리 결정할 수 있는 사후자기결정권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연수는 원래 알고 있던 사무국장님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까지 함께 준비를 해서 일본으로 가게 되었는데,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했던 교수님이 주로 일정을 계획했는데, 일본에 지인들도 많고 여러 곳에 미리 약속을 잡아서 무리없이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룸젝트의 주제는 “내 맘대로 장례, 내 뜻대로 장례”로 정했습니다.

처음 목적지인 오사카 가마카사키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지방에서 올라와 정착했던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인데 그 중 재일동포도 많았습니다. 우리 연수팀의 첫 숙소는 코코로룸이란 곳이었는데, 인테리어나 식사 메뉴가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숙소 주변에는 가마카사키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곳들이 많이 있었는데, 노숙인들이나 실업자들을 위한 시설들도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오래된 유곽도 있었는데, 저녁이 되니 독특한 색의 조명을 비추고 여성 한 명이 앉아서 영업을 하는 것이 특이한 느낌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재일동포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기 해서 가슴 한켠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본 후에는 고양이 신사에 들러 운세를 점치기도 하고, 도톤보리에서 구경을 하다가 오사카에서 유명한 오코노미야키 맛집에서 식사도 했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광고판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글리코맨이라는 글리코 제과회사의 유명한 광고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나 싶었는데,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명물이라고 합니다.

다음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노숙인 쉼터 센터장, 오랫동안 고독사 장례를 지내왔던 스님, 실업자 지원단체 NPO 대표을 비롯해 우리 숙소인 코코로룸 이사장까지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녁에는 술을 즐기시는 교수님 덕분에 가마카사키 거리의 여러 술집을 순례하면서 주민들과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일본의 고도로 유명한 교토로 갔습니다. 교토의 오래된 절인 청수사에 가는 길에는 마침 일본의 명절이었는지 전통복장인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습니다. 청수사는 층층이 높은 목조건물이었는데, 공중에 매달려 있는 바람개비와 소원을 비는 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수사를 방문한 날은 너무 날이 뜨거워서 사실 많이 돌아다니지 못하고,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길거리의 상점들에서 기념품을 사기도 했는데 곳곳에 예쁜 사찰들이 있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바빴습니다.

청수사를 떠나 일본에서 만난 재일동포 중 한 분이 운영하는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저녁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눠보니 재일동포였던 그 분의 사촌오빠가 한국에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오랫동안 감옥에 수감됐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교로 와서 유학 중 공작의 희생물이 되어 옥고를 치렀다가 수십년 후 재심재판에서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40년 가까운 시절 그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이란 짐작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오사카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아침에 다시 임의후견과 장례 지원을 하는 단체가 있는 나고야로 출발했습니다. 나고야 성 근처에 있는 기즈나노회는 후견계약을 맺고, 피후견인의 재산과 신변관리를 해주는 단체인데 사망 후 법률관계도 관리해주는 곳이었습니다. 단체를 방문해 법률관계를 담당하는 변호사와 미팅을 했는데 덕분에 우리와 다른 일본의 법률 실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미팅 후에는 나고야에서 유명한 미소라멘집에서 식사를 한 후 이제 다시 도쿄로 이동했습니다.

도쿄로 이동한 날 저녁은 신쥬쿠에서 초밥을 먹고, 야경을 본 후 다소 이색적인 게이바에 갔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반인들도 게이바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하나의 이색적인 문화라는데 지하에 있는 게이바에 가보니 실제로 남녀 연인들이 함께 놀러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게이바의 바텐더는 쇼맨쉽이 좋았는데, 손님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우리에게 계속 진로를 팔면서 매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막상 게이바에 가니 원래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가장 힘들었던 것이 게이바가 지하에 있는데, 사방에서 담배를 피어대는 통에 완전히 두더지굴이 따로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쁘게 생긴 냅킨 하나를 기념품으로 챙긴 후 적당한 시간에 숙소로 향했습니다.

전날 밤 마신 소주로 인한 숙취를 이겨내고 다음날에는 리스 시스템을 방문했습니다. 리스 시스템의 대표님은 일제시대 대구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사업으로 돈을 번 후 후견과 장례 관련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엇습니다. 우리 프로젝트 주제와 매우 비슷해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는데만이 아니라 나눔과나눔의 미래 비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리스 시스템을 나와서 평화 영원이라는 공동묘지를 방문했는데, 태평양 전쟁 당시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폭격으로 사망한 아이들을 위한 나비 추모공원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사회복지사 출신인 동경가정대학 교수님을 만나 일본의 생활보호법과 묘지 매장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해 들었는데, 우리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모태라 그런지 내용이 매우 유사했습니다. 법률사무소에 들러서는 일본의 성년 후견제도와 임의 후견제도에 대해 일본 변호사님으로부터 어떻게 제도가 운영되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 관련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된 후 우리 연수팀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요코하마로 바다를 보러 갔습니다.

요코하마에서 예쁜 벽돌로 만든 쇼핑몰을 둘러본 후 도쿄로 복귀해 야키니쿠로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즐겼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연수팀 중 일부와 먼저 귀국하면서 마지막으로 신사의 앞을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두껍고 큰 목재로 만든 신사의 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낀 것처럼 일본의 정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사 문의 나무처럼 일본의 곳곳을 받치고 있는 시민들의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더 다양한 면을 많이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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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위로의 오키나와 여행 2

오키나와에 도착하면 누구나 한번씩 가본다는 곳이 만좌모와 아메리칸 빌리지입니다. 만좌모는 해식 절벽에 면해 있는 넓은 들판인데, 절벽을 옆에서 잘 보면 코끼리 얼굴 모양이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사실 처음 만좌모에 갔을 때는 이게 왜 유명한 관광지인가 싶을 정도로 별 것이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주기적으로 파도가 와서 부딪치는 절벽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투명하고 예쁜 바닷물색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누나와 같이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만좌모를 둘러본 후 다음으로 아메리칸 빌리지를 찾았습니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한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일본에 주둔하게 된 미군 중 상당수가 오키나와에 머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군의 진군을 막아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는데, 여기에다 일본 본토와 떨어진 오키나와에 미군기지 상당수를 배치하기까지 했으니 일본 본토 국민들의 불만은 줄였을지 모르지만, 원래 일본과 다른 국가였던 류쿠 왕국의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인들은 이러한 차별대우에 더욱 분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찾은 아메리칸 빌리지는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만좌모를 둘러보고 오느라 다소 배가 고팠던 누나와 저는 아메리칸 빌리지의 맛집인 철판 스테이크집을 찾아갔습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아 대기줄이 길다고 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는 별로 손님이 많지 않아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요리사가 채소와 고기를 철판 위에 놓고 기름을 부으면서 불쇼를 보여줬는데, 불 속에서도 넙적한 칼로 고기와 채소를 뒤집고 자르면서 먹음직스런 요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배가 고픈 우리는 구워진 요리를 얼른 먹었는데, 뜨거운 불로 빨리 익혀서 그런지 겉은 바싹 익었는데, 고기 속은 육즙이 충분히 남아 있어 맛이 꽤 괜찮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누나와 아메리칸 빌리지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는데, 아기자기한 예쁜 공예품을 파는 곳도 있었고, 다양한 종류의 사케와 뱀술 등 제가 좋아하는 주류들을 잔뜩 갖추고 일본 전통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상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칸 빌리지를 한번 둘러본 후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유명한 가게에 들러 콘 아이스크림을 각자 하나씩 사먹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누나와 함께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걸어다녔던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오랜만이라 누나와 자랐던 어릴 적 추억이 많이 떠올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후를 보낸 아메리칸 빌리지를 떠나 슬슬 해가 질 듯 해서 일몰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제가 머물던 숙소는 호텔체인에 속해 있어 오키나와에 같은 다른 숙소의 편의시설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몰 명소로 유명한 해변가를 끼고 있는 다른 숙소로 이동을 했는데, 그 해변은 호텔 이용객만 이용할 수 있어서 한적하게 해가 지는 멋진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져서 어스름해지자 저와 누나는 오늘은 숙소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숙소 앞에 있는 마을에 손님이 붐비는 식당이 있어서 그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숙소에 주차를 한 후 걸어나왔습니다. 누나와 함께 한적한 도로 옆 인도를 걸어나오면서 옛날에 제가 잘못했던 것들에 대해 사과도 하고, 어렸을 때 함께 봤던 만화영화 주제가와 어릴 적 유행했던 가요들을 함께 불렀는데, 누나와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후련하기도 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식당에 도착했는데 그 곳은 음식도 괜찮았지만, 알고보니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오키나와의 전통 노래와 춤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벽에 전시된 악기들과 사진들을 보니 식당 사장님 가족들은 전통 공연으로 우리 식의 무형 문화재 지정 같은 것은 받은 것 같았습니다. 맛있는 오키나와 전통 음식과 술에 뜻밖에 전통 공연까지 본 후 누나와 저는 더 기분이 좋아져서 숙소로 돌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여행 마지막날이었던 다음날에는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한 후 오키나와에 있는 여러 성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키나와 중부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츠렌 성부터 찾아갔는데, 우리가 생각한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돌을 정교하게 쌓아서 유려한 곡선의 성벽을 만들어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 눈에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는데 막상 걸어올라가다보니 기온이 높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땀이 나기도 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땀을 식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성벽 한쪽 구석에 핀 붉은 꽃도 다소 차가운 회색벽과 대조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성 가장 위로 올라가보니 주변 경치가 쫙 펼처져 있는 것이 시원해서 좋았습니다.

가츠렌 성 다음에는 과거 류쿠 왕국의 도성이었던 슈리성을 찾았습니다. 슈리성은 처마가 치솟고, 벽과 기둥, 기와가 모두 핏빛처럼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아기자기하고 예쁜 실내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일본식 정원이 곳곳에 있었는데, 차경이나 자연스러운 맛이 강한 우리 조경과 다르게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절제된 매력이 있어서 그것 역시 또다른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리성을 다 둘러본 후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누나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은 후 나하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누나와 공항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샀는데, 누나가 갑자기 제게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산 것이 참 오랜만이라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누나가 그동안 조카를 키우면서 매형과 참 알뜰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누나와 이번 여행을 온 것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후 인천공항에서 헤어지는데, 누나의 그렇게 밝은 얼굴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저도 기분이 참 좋아졌습니다. 계속 손을 흔들고 있는 누나를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저는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또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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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위로의 오키나와 여행 1

제게는 누나가 1명 있습니다. 4살 정도 나이 차이가 있는데 어렸을 때는 제가 잘 따라다니면서 고무줄 놀이도 같이 하고, 누나가 친구 집에 가면 저도 잘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제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누나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 수시로 투닥거리기도 했는데,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즈음부터는 누나와 침대에 누워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친해진 것은 서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이고,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사춘기 시절에는 누나와 끝없이 다투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중2이고,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와 누나가 동남아시아 여행을 함께 갔을 때였습니다. 원래 그 여행은 아버지가 회사에서 해외여행 부부동반권을 받으신 것인데, 부모님은 모두 동남아시아에 다녀오셨었기 때문에 누나와 제가 대신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생각이 많은 사춘기였던 저는 여행 내내 누나와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다투었고, 누나는 그렇지 않아도 낯선 외국에서 저와 다른 여행객들의 눈치까지 보느라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생각해보니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누나에게 참 미안하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조카가 사춘기를 맞으면서 저희 누나는 저를 닮은 제 조카와 다시 부딪히기 시작했고,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누나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저는 누나에게 예전에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저 때문에 고생했던 것에 대해 사과도 하고, 누나의 답답한 마음도 풀어줄 겸 오키나와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여행준비와 경비는 모두 제가 마련하는 조건이었습니다.

누나는 처음에는 말썽꾸러기 아들을 두고 며칠 동안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마침내 한번 바람을 쐬고 오면 가슴에 맺힌 것이 훨씬 풀릴 것이라는 제 말에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저와 누나의 화해를 위한 여행이자, 지친 누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오키나와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키나와는 19세기 일본 본토로 병합되었는데, 이전에는 류쿠 왕국이란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키나와는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온천도 있어서 겨울철에 건강을 돌보기 위한 여행을 위해서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제가 누나에게 제안한 힐링여행을 위해서도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사실 일본에는 군 제대 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갈 때 잠시 경유했었는데,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다시 가려고 생각하던 중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해서 방사능 우려 때문에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오키나와는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방사능 영향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여행을 가기로 한 겁니다.

출국하는 날은 평창 올림픽을 며칠 남기지 않은 날이어서 인천국제공항에는 해외에서 찾아오는 여행객들과 선수들을 반기는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가 홍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평소 귀여운 마스코트를 좋아했기 때문에 얼른 수호랑 옆에 가서 포즈를 취한 후 함께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은 처음 이용해봤는데, 새로 개장해서 그런지 시설도 깨끗하고 이용객도 적은 편이어서 쾌적한 느낌이었습니다. 곳곳에 휴식공간과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속을 거쳐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오키나와에 도착했습니다. 저와 누나는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내려 바로 예약해뒀던 렌트카 업체로 갔습니다. 그 곳에는 제가 예약한 토요타 하이브리드카인 아쿠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프리우스의 소형 모델이라고 보면 되는데, 처음 하이브리드를 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연비가 엄청 좋고, 소음도 매우 작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로 주행하는 동안에는 마치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는 것 같이 소음과 진동이 없는 부드러운 정숙성이 좋았습니다.

차를 몰고 도착한 숙소는 아타 테라스 클럽 타워즈라는 곳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유명한 테라스 호텔 중 하나로 골프장에 붙어 있는 리조트였습니다. 부에나 테라스 리조트가 더 규모가 크긴 하지만 아타 테라스가 조용하면서 시설도 깔끔하다고 해서 저는 이 곳을 택했습니다. 아타 테라스 클럽 숙박객은 부에나 테라스 리조트도 이용할 수 있어서 나중에 사우나를 하러 가봤더니 역시 숙박객이 적어 한적한 아타 테라스가 저와 누나의 취향에는 맞았습니다.

도착한 첫 날은 체크인이 좀 늦어서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누나와 느긋하게 일어나서 조식을 먹었는데, 서양식과 일본 전통식 중 서양식 메뉴를 먼저 먹어 봤습니다. 서양식 조식은 사방이 트여 있는 리셉션 하우스 1층에서 먹었는데, 겨울철인데도 바람이 별로 차지 않고 선선해서 역시 남쪽 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옆에 있는 풀장과 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켜보던 종업원이 저와 누나의 사진을 한장 찍어주겠다고 하여 호텔 풀장과 바다를 배경으로 누나와 사진도 한장 남겼습니다.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차를 몰아 추라우미 수족관을 찾았습니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컸다고 써있는 안내문을 보니 우리와 비슷한 면이 느껴져서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추라우미 수족관의 마스코트가 고래상어이기도 하고, 특히 고래상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하여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본 수족관에 들어가기 전에 옆에 있는 작은 수족관에서는 듀공과 매너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이 인어로 착각했다는 듀공은 알고 있었지만, 매너티라는 듀공의 사촌 같은 아이들도 함께 있어 신기했습니다. 그 옆에서는 바다거북 산란장도 있었는데, 바다거북이 모래밭에서 산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습니다.

이어서 들어간 대형 수족관에서는 가오리와 열대어들, 그리고 음악과 함께 등장한 고래상어 등 오랫만에 다양한 수중생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귀상어도 보였는데 머리가 망치처럼 생긴 것이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긴 것은 고래상어였습니다. 몸집 자체가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압도적인데다가 유영하는 모습이 힘차면서도 여유가 있어서, 보고 있으면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고래상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고래상어 배에 빨판상어가 붙어 다니는 것도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추라우미 수족관을 둘러본 후에는 더 북쪽으로 이동해서 벚꽃이 예쁘게 핀다는 공원을 찾아갔습니다. 오키나와가 남쪽이라고 해도 아직 벚꽃이 많이 필 계절은 아니라서 일단 벚꽃을 볼 수 있다는 곳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벚꽃으로 유명하다는 공원에는 벚꽃이 많이 피지는 않았고, 한쪽 구석에서 벚꽃 사탕만 팔고 있었습니다. ㅎㅎ 그래도 공원에 몇몇 나무들에는 예쁜 벚꽃 몽우리들이 달려 있고, 여기저기 의자도 많이 있어서 우리는 주차를 한 후 공원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좀 쌀쌀한 날씨였는지, 공원에서 얘기를 하다 피곤해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라운지에서 티타임을 즐겼습니다. 티타임에는 차와 간단한 와인 등 주류, 케익이나 치즈 등이 제공되었는데, 누나와 유쾌하게 술잔을 기울이면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누나도 저도 쌓였던 스트레스가 많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술을 한잔 하고 나니 급 피로가 몰려와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욕조에서 피로를 풀고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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