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4

테 아나우에서 송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철수한 다음날 원래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 남섬 여행의 백미인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할때 여행 첫날밤 창문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잠이 드는 바람에 감기 기운이 있으셨던 아버지가 결국 앓아 눕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일단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보니 장시간 이동은 어려워 보였고, 하는 수 없이 테 아나우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아버지가 극구 거부를 하시는 바람에 일단 캠핑장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계속 캠퍼밴에 있는 것은 별로 회복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캠핑장에 있는 시설물들을 살펴보니 마침 노천 온천이 있었습니다. 야외에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 있고, 그 안에 마련되어 있는 뜨거운 물이 담긴 통 속에 가족 4명이 들어가 땀을 흘리니 감기 기운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통을 나와 야외 샤워장에서 샤워까지 하고 나니 마치 바닷가로 휴가를 온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말린 후 조카와 커다란 체스판으로 체스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도 약간 회복되신 듯 해서 저와 매형은 캠핑장에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주변의 호숫가와 상점들을 돌아보면서 며칠 동안 계속 운전을 해서 달려오느라 쌓였던 피로를 어느 정도 풀 기회를 가졌습니다. 맑은 호숫가를 여유있게 걸으면서 매형과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테 아나우에서의 둘째날도 그렇게 흘러가고, 저녁에는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다음날 일찍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저에게 먼저 일어난 매형이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지금 밖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그때 든 생각은 사실 ‘완전 망했다’였습니다. 원래 테 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가는 길은 자연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뉴질랜드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이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비가 많이 오면 밀포드 사운드에서 유람선이 운항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캠퍼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비바람이 몰아치며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광경을 보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매형이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해본 후 여기까지 와서 밀포드 사운드를 안 갈 수는 없고,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사이 비가 그칠 수도 있으니 원래 일정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매형은 비가 많이 오긴 하지만 조심해서 운전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면서 그렇다면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한 후 아침을 간단히 먹은 우리 가족은 멋진 풍경은 고사하고, 쏟아지는 비로 인해 속도를 줄여가며 천천히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은 좁은 산속의 꼬불꼬불한 도로였는데, 원래 예상했던 1시간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창문으로도 그 유명한 멋진 풍경을 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꾸역꾸역 비를 뚫고 사고 없이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제가 차에서 내려 유람선 티켓을 구입하려고 하니, 티켓을 파는 직원은 비가 많이 와서 유람선이 뜰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티켓을 구입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비가 계속 내리고는 있는데,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어 좀 기다리면 운항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차로 돌아와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한 결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후 상황을 본 후 유람선을 타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비바람을 뚫고 오느라 다들 떨고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따뜻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산 후 나눠먹으면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서서히 하늘 한쪽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유람선을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고, 샌드플라이 퇴치제를 뿌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줄달음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착장이 생각보다 멀어서 간신히 시간에 맞춰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줄을 서면서도 진짜 탈 수 있는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고 있자니 드디어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유람선에 타자 마침내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향해 출발~~

막상 유람선에 타고 보니 구름은 가득했지만 이제는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 걸쳐 있는 것이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절벽에는 새로 생긴 폭포들도 많았습니다. 마침내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밀포드 사운드의 유람선에 탔다는 생각에 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헤치고 폭포와 멋진 풍경들을 지나가다보니 어느 새 비는 그치고, 하늘을 맑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쏟아진 비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긴 폭포들이 절벽을 따라 물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밀포드 사운드까지 오는 길에 졸였던 마음이 다소 안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바다와 접해 있는 피오르드로 물개들과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물개는 보통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만 봤는데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물개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물개들은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에 익숙해진 듯, 널찍한 바위 위에서 편안하게 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개의치 않고 쉬고 있는 물개들을 뒤로 하고 유람선은 다시 또다른 폭포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어 하늘과 녹색의 피오르드 절벽, 떨어지는 하얀 물방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노르웨이에서 피오르드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절벽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은 기억 속 피오르드의 모습과는 다른 압도적인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돌고래로도 유명한데,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동안 돌고래가 나타나지 않아 좀 실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방향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유람선 뱃머리 앞 물속에 무언가 작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니 갑자기 위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마침내 등장한 돌고래 3마리가 유람선을 따라 헤엄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본 것도 신났지만, 이렇게 우리가 탄 배를 따라오는 것을 보니 함께 논다는 느낌이 들어 더 신기했습니다. 유람선은 이제 처음 출발한 선착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와 달리 파랗게 개인 하늘에 산등성이를 감싸며 넘어가는 하얀 구름, 교과서에서 배웠던 저 멀리 보이는 U자형 협곡까지… 비록 가는 길에는 별별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밀포드 사운드는 꼭 한번 가볼 만한 멋진 곳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다시 테 아나우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비가 그쳐 가는 길에 보지 못해 아쉬웠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맑아지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운전 역시 더 편해졌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가 늦어져 비록 비행기 시간에 맞춰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야 하긴 했지만, 소형버스 크기인 캠퍼밴을 운전해보는 좀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모자라 세계 최초로 번지점프를 시작했던 다리에서 번지점프를 해보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쉽습니다.

여행 막바지에 와인잔 하나가 깨져 새로 구입해서 보충해둬야 하는 줄 알고 여러 마트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 없어 반납할 때 사실대로 말했더니 직원은 보험이 있다고 신경도 쓰지 않은 일, 매형이 마지막에 크라이스트 처치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워넣어 반납하려고 좌회전을 하다가 역주행하는 반대차선으로 들어섰다가 기절할 뻔한 일 등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계속된 여행답게 마지막까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추억거리가 계속 쌓여 갔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이 캠퍼밴을 반납하면서 뉴질랜드 남섬을 종회무진 달렸던 캠퍼밴과 사진 한장을 남기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추억거리들로 가득한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

Views: 288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3

캠핑 첫날의 교훈으로 서둘러 도착한 뉴질랜드 퀸즈타운의 홀리데이 파크는 캠퍼밴에 전기와 수도를 공급받을 수 있고, 별도로 마련된 편의시설로 깨끗한 화장실과 주방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멋진 캠핑장이었습니다. 물론,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좋은 곳을 고른 것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뉴질랜드에서의 두번째 밤을 보낸 캠핑장

루지를 타러 나가기 전에 미리 전기선과 수도호스를 연결해 충전도 하고 물탱크도 완전히 채워뒀던지라 저녁식사를 마친 후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어제보다 몸이 좀 회복되셨는지 설거지는 자신이 하시겠다면서 설거지 거리들을 가지고 제 조카와 함께 캠핑장에 있는 시설로 가셨습니다. 저와 매형은 식탁을 정리하고, 잘 준비를 위해 침대를 꺼내면서 침구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한 20분 정도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시지 않아 제가 주방이 있는 건물로 갔더니 아버지가 여전히 설거지를 하지 못하고 한쪽에 앉아 계셨습니다. 알고보니 일본에서 온 듯한 다른 팀이 설거지를 30분 가까이 하고 있어서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 아버지께 그냥 캠퍼밴에서 하자고 말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식기들을 챙겨들고 돌아와 캠퍼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설거지를 잘 하지 않으셨는데, 연세가 드시고 어머니와 시골로 내려가 정착해 사시면서 적응을 위해 설거지를 하시게 됐습니다. 집안 청소를 할 때도 깔끔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설거지도 깨끗하게, 식기에 고춧가로 하나 없이 깔끔하게 하시곤 합니다. 설거지 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오랜시간 공들여 설거지를 마치셨습니다.

아버지의 설거지가 끝나자 다들 양치질과 간단한 세면을 한 후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끄려는 찰나, 제 눈에 화장실 문 앞에 물기가 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누군가 세면을 하다가 물이 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장지를 뜯어 물기를 닦은 후 화장실 변기에 버릴 생각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화장실 안에 오수가 가득 차서 찰랑찰랑~~거리면서 화장실 밖으로 조금씩 넘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화들짝 놀란 저는 매형에게 가서 큰일 났다면서 화장실에 오수가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와 매형은 약간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시면서 물을 많이 쓰셨는데, 원래는 싱크대의 물이 바로 바로 배출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꿀럭꿀럭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물이 빠져나가길래 저도, 매형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싱크대를 통해 배출된 오수가 오수탱크 용량을 넘어 화장실 바닥의 배출구를 통해 다시 나오다보니 공기가 통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높이로 봤을 때 싱크대보다 화장실 바닥이 낮으니 압력으로 인해 화장실 바닥을 통해 오수가 넘쳤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는 깨끗한 물탱크와 오수 탱크의 용량이 같은데, 우리가 캠핑장에 주차를 해놓은 후 물탱크를 가득 채워놨더니 오수탱크의 용량을 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어쩐다… 일단 진정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간이 갈수록 싱크대의 오수는 압력 때문에 화장실 바닥을 통해 점점 더 배출될 것이 확실하고, 그런 상태로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를 통해 오수를 버리자니 화장실 안에서 출렁거리던 오수가 밖으로 마구 넘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생각해낸 방법은 화장실 변기에 넘친 오수를 퍼서 부은 후 변기를 통해 버려지는 오수를 모아두는 통을 끌고가 오수를 버린 후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으면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로 오수를 배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화장실에 물을 뜰만한 바가지 같은 것이 하나 비치되어 있어서 부지런히 오수를 퍼서 변기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변기에 오수를 붓다 보니 생각보다 변기에서 배출되는 오수를 담는 통은 빨리 찼습니다. 결국, 물을 퍼서 변기에 붓고, 그 오수가 담긴 통을 끌고 오수를 버리는 장소에 가서 버리고, 다시 돌아와 변기에 붓고, 끌고갔다가 오고… 이걸 한 5번은 한 끝에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뉴질랜드 퀸즈타운에서 달밤의 체조를 2시간 가까이 한 끝에 간신히 골치 아픈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밤 중에 캠핑장에서 이게 뭐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또다른 한편 잊지 못할 우스운 추억거리도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ㅎㅎ

달밤의 체조를 하면서 오갔던 오수 처리장 입구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전날 밤 체조 덕분인지 몸이 좀 쑤셨는데, 아버지는 전날 밤 자신 때문에 저와 매형이 고생을 했다고 생각해서인지 평소같지 않게 눈치를 좀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아침식사를 하고, 아버지가 쉬실 수 있게 캠퍼밴 뒤쪽에 있는 침대를 펴놓고 누워서 가실 수 있게 조치를 한 후 전날 받은 캐리어에 있는 감기약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괜찮다면서 한사코 약을 안 드시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출발을 했는데, 저도 좀 피곤하기는 했나 봅니다. 매형이 운전을 하다가 제가 교대를 했을 때 찍어준 사진을 나중에 보니 얼굴이 좀 탄데다가 초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 목적지는 테 아나우였는데, 테아나우는 뉴질랜드 남섬의 하이라이트인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관문이었습니다. 테 아나우 자체도 호반의 도시여서 무지개 송어낚시로도 유명했기에 우리 가족은 송어를 많이 잡아 송어구이 요리를 해먹자는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테 아나우에도 일찍 도착해서 얼른 호수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어 경치가 좋은 테 아나우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짐을 간단히 정리한 후에는 근처 상점에 가서 송어 낚시를 하기 위한 낚시대를 빌리고, 찌도 구입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등록도 해야 하기 때문에 낚시대를 빌려주는 상점에서 4명 모두 송어 낚시 등록증도 발부받았습니다. 송어 낚시를 할 생각에 다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신이 나서 차를 몰고 송어가 가장 잘 잡힌다는 강으로 이동했습니다. 낚시대를 챙겨 다들 강에 던지면서 어리숙한 송어가 초보 낚시꾼들의 찌를 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명의 어설픈 낚시꾼들이 낚시대를 드리운지도 1시간, 2시간… 시간은 잘도 흘러갔지만 역시 뉴질랜드 송어들은 생각보다 영리했습니다. 저는 주로 강바닥의 이끼를 낚아 올리거나, 어떤 때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끌려오길래 잔뜩 기대를 하고 당겼더니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발이 떡!!하니 올라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조카에게 낚시 던지는 방법을 알려주시고는 좀 피곤하셨는지 일찌감치 낚시는 접고 그늘에 앉아서 강바람을 쐬고 계셨습니다. 저와 매형, 조카는 그래도 송어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낚시줄을 던졌지만 결국 뉴질랜드 송어는 마트 생선코너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산천어 축제에서 산천어를 잡는 것과는 역시 천지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날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낚시도구를 정리해서 다시 차를 끌고 캠핑장으로 철수했습니다. 낚시대는 빌렸던 곳에 반납하고, 주변 음식점, 상점들과 공원도 둘러봤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후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다들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연일 계속된 이동과 오후에 했던 낚시로 인해 모두 피곤했나 봅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갔습니다.

Views: 586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2

여행 첫날밤을 보내기로 했던 테카포 호수는 잔잔한 물결이 치는 조용한 곳이었는데, 그 호숫가에는 홀리데이 파크라는 캠퍼밴을 주차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일찍 출발해 야영장에 주차를 한 후 호숫가를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위탁수하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서 예상보다 출발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 가족이 홀리데이 파크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야영장이 캠퍼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구글지도를 보면서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는 다른 캠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테카포 호수 옆에 있는 알렉산드리나라는 작은 호수 옆이었는데, 테카포 호수 야영장과 달리 물과 전기를 끌어다 쓸 수는 없는 곳이었지만 저는 일단 차를 주차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졌지만 출발하기 전 사뒀던 육류와 채소, 와인으로 늦은 만찬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차 안에 있는 주방에서 고기를 굽다보니 차 안에 연기가 뿌옇게 차서 환기를 하는데 고생을 좀 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시간이 좀 흐르자 다행히 연기가 빠져나갔습니다. 처음 캠핑카를 이용하다보니 아무래도 시행착오들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얼른 식사를 한 후 다들 지쳤는지 침대를 펴놓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좀 춥길래 잠시 일어나서 옆으로 젖혀뒀던 이불을 다시 덮고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각도 하지 못했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환기를 한다고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 것을 깜빡했는데 열어뒀던 그 창문 맞은편에서 주무셨던 아버지가 밤새 호수에서 불어온 찬 바람을 맞고 감기 기운이 드셨던 것입니다. 자꾸 기침을 하시면서도 일정에 차질에 생기는 것이 걱정되셨는지 아버지는 따뜻하게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차량 뒤쪽에 침대를 편 후 이불을 덮고 쉬시게 한 후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토스트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테카포 호수에 가서 경치를 즐길 계획이었기에 서둘러 출발 준비를 마치고 다시 테카포 호수로 갔습니다.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테카포 호수는 선한 목자의 교회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인데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높은 마운트 쿡도 보입니다. 19세기 유명한 쿡선장을 딴 이름을 가진 마운트 쿡은 무려 높이가 3,724m에 이르는데, 높이가 있어서 그런지 산 윗부분은 만년설이 쌓여 있었습니다. 선한 목자의 교회는 돌로 지은 매우 작은 건물인데, 그 안으로 들어서면 호수쪽으로 난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는데, 그 바람을 맞고 있자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남섬에 가면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라 생각이 됩니다. 세면도구가 전날 실종된 위탁수화물 가방에 들어 있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더니 상태는 폐인 모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끝내줬습니다.

호수와 마운트 쿡 산의 경치를 즐기다가 다시 다음 목적지인 퀸즈타운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 테카포 호수에서는 구름에 가려서 완전하게 보이지 않던 쿡산이 제대로 보이길래 그냥 가기 아쉬워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역시 새하얀 만년설로 뒤덮인 산은 언제 보아도 언제 보아도 멋진 모습입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첫날부터 차를 운전했던 매형이 장시간 운전을 해서 피로해보였습니다. 원래 여행 계획을 짤 때 저보다는 운전이 익숙한 매형이 운전을 더 많이 하기로 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가 교대해서 차를 몰아 보기로 했습니다. 매형에게 어느 정도 가서 교대하자고 말을 했는데 착한 매형은 별로 힘들지 않다면서 계속 운전하길래 제가 저 앞 표지판 근처에서 세운 후 교대하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너무 급하게 세우자고 한 것인지, 차가 무거워서 밀린 것인지 길 옆에 차를 대다가 그만 길가에 있는 나무와 차량의 왼쪽 사이드미러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왼쪽 귀 아랫부분이 박살이 나 있었고, 다른 부분도 흠집이 나 있었습니다. ㅜㅜ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이 캠퍼밴을 렌트할 때 보험의 보장 범위를 넓게 설정해뒀는데 계약할 때는 비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막상 사고가 나고 나니 더 많은 비용을 내고 보험을 들어두길 참으로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ㅎㅎ 렌트했던 차량이 벤츠라서 보험으로 처리가 되지 않으면 수리비를 많이 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황하는 매형에게는 보험으로 처리가 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일단 사진을 찍어 사고를 정리한 후 다시 출발했습니다.

매형과 교대해서 막상 캠퍼밴을 운전해보니 일단 차폭이 넓고, 앞뒤 길이도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더구나 뉴질랜드는 고속도로도 왕복 2차선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 승용차는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이지만 우리 가족이 탄 캠퍼밴은 크기가 커서 제한속도가 시속 90km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뒤에서 승용차들이 빨리 가라고 바짝 붙어 오기도 해서 가끔 옆에 있는 이면도로로 피해 가면서 주행을 하다보니 신경이 더 쓰였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도로와 차량과 달리 뉴질랜드는 영국처럼 왼쪽으로 달리다보니 우회전을 할 때 특히 더 헷갈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갔더니 우리는 왼쪽으로 달린다는 포스터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ㅎㅎ

우회전을 할 때 더 크게 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도로에 익숙하다보니 작게 우회전을 해서 상대 차선으로 들어서는 역주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저도 고속도로에서 한번 사고를 쳤는데, 크롬웰이라는 작은 도시에 들러 식사를 하고 가려고 우회전을 하다가 상대방 차선으로 들어서 버린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포스터까지 붙일 정도로 관광객들이 사고를 많이 쳐서 그런지 상대방 차선에 있는 차들이 양보를 해주면서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가라는 말까지 해줬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한 경계석을 과감하게 넘어서 원래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휴…

크롬웰에서 식사를 하고, 마트에도 들렀다가 공원에서 좀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장시간 차를 타고 가느라 다들 좀 지쳐 있었기 때문에 좀 걸으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기 기운이 있으신 아버지가 좀 걱정이 되어서 감기약을 사서 먹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여쭤봤더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때 약을 사서 드시게 했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고집에 저와 매형의 낙관이 나중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해서 다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퀸즈타운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퀸즈타운으로 가면서 저는 또 열심히 뉴질랜드 항공사와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실종된 수화물 3개가 퀸즈타운 공항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공사에서는 운항 일정 때문에 오후 늦게나 수화물이 도착할 것이라고 해서 일단 캠퍼밴을 캠핑장에 주차한 후 공항에 가서 짐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서둘러서 출발한 덕분인지, 우리가 원하던 크릭사이드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전기와 물을 보충한 후 아버지와 조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저와 매형이 공항에서 짐을 찾아왔습니다.

퀸즈타운 공항에서 마침내 여행 캐리어 3개를 받고 나니, 마치 잃어버린 강아지들을 찾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며칠 동안 옷도 갈아 입지 못 하고, 양치질과 세면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상태로 지냈더니 여행 가방에 있는 세면도구들을 가지고 캠핑장에 있는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오면서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옷도 갈아 입고, 다양한 레포츠로 유명한 퀸즈타운에 왔으니 외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조카가 좋아할 것 같은 루지를 타기로 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루지 출발점인 스카이라인을 향해 가면서 조카와 사진을 찍었는데, 3일 동안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했더니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호수쪽 풍경을 봤더니 뒤로 펼쳐지는 경치가 전해 들었던 것처럼 엄청났습니다. 푸른 호수와 거친 산맥, 하얀 구름이 떠있는 하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루지를 탈 시간입니다. 루지는 저를 포함해 우리 가족들도 처음 타보는 것이었는데, 다운힐 MTB 같은 느낌이어서 나름 스릴도 있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경치도 즐기고 루지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낸 후에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어제와 비교해서는 매우 평화로운 저녁식사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이튿날은 하루가 잘 마무리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운명의 여신은 우리 가족의 여행 이틀째를 그렇게 쉽게 마무리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Views: 24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1

뉴질랜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한 나라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간고사를 얼마 안 남겨놓은 주말에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교실로 참고서를 찾으러 왔다가 구석 한 책상 위에 우연히 반지전쟁 번역본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력적인 제목이라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시험기간 동안 반지전쟁 전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중간고사 성적은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ㅎㅎ

저는 반지전쟁의 원래 제목이 반지의 제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전편인 호빗을 찾아 헤매다가 완역이 되지 않은 호빗이 아동용 도서로 번역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크를 귀신으로, 드워프를 난쟁이로 번역한 어린이용 호빗을 대형 서점에서 찾아내 몇시간 동안 서서 다 읽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기도 하지만 저는 아마 그때 톨킨의 팬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톨킨이 남긴 반지의 제왕, 호빗 이전의 역사를 다룬 다른 원고들을 편집한 실마릴리온을 읽고, 반지의 제왕, 호빗을 영어 원서로 다시 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톨킨의 작품에 빠져 있었던 제가 영화로 나온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놓칠 수는 없었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희망을 알았는지, 어느 날 누나가 이번 겨울에 남자들만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던졌습니다. 저와 아버지, 매형과 남자 조카 4명이 뉴질랜드를 캠핑카를 끌로 여행하는 코스였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경험해봤던 저였지만 캠퍼밴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고, 평소 운전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소형 버스 크기의 캠퍼밴을 운전할 수 있을지 다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자 가족들만 모여 여행을 한다는 것이 나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여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떠나게 된 뉴질랜드는 저와 여행을 함께 한 다른 가족들에게 예상치 못한 수많은 난관과 에피소드를 선사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출발하는 인천공항에서부터였습니다. 뉴질랜드는 직항이 별로 없고 항공권 가격도 비싸서 뉴질랜드 도착 시간과 한국 입국시간이 가장 적절한 것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좋은 항공권이 중국 광저우를 거쳐 뉴질랜드에 입국하고, 귀국할때는 경유하지 않고 바로 입국하는 항공권이었습니다. 출발은 수요일 오전 8시 30분 비행기라 공항에 별로 탑승객들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2시간 반 전인 6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 도착해보니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공항이 미어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시는 제2터미널이 완공 직전이라 더욱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약한 항공사가 대한항공과 공동운항편으로 운행되고 있어서 대한항공에서 탑승 수속을 하려고 했는데 대한항공 데스크 앞 대기줄은 이미 전체 섹터를 두번이나 빙 돌아서 감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대기줄에 일단 서있다가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이렇게 그냥 있다가는 제때 탑승수속을 마치고 타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셀프로 간단하게 탑승수속을 하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가 항공권을 받으려고 하니, 해당 기기로는 직항편만 가능하고 경유하는 항공편은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대기줄은 더 길어져 있었고… 6시 40분 정도 된 상황에서 다시 대기줄에 서서 속만 태우면서 하염없이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대한항공 데스크를 휘감았던 줄이 한바퀴로 줄어들었을때 쯤 갑자기 저쪽에서 대한항공 직원 한명이 단체 여행객이 있냐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얼른 우리 가족이 4명인데… 셀프 탑승 수속을 하려다 안되고, 출발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소연을 했더니 다행히 일단 단체 여행객 탑승 코너로 가자고 했습니다.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이 산더미였던 저는 다른 가족들에게 어서 따라오라고 말하면서 직원을 따라 단체 여행객 데스크로 갔습니다. 안내 직원에게 여권과 항공권 예약 출력물을 보여준 후 광저우로 가는 항공권과 광저우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가는 항공권까지 잘 받았습니다. 이제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위탁수화물을 올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직원이 전화를 해보더니 수화물이 너무 많아서 수화물을 싣는 운반 시스템이멈췄다고 설명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는데 이미 시간은 9시가 넘은 상황이었습니다. 탑승객이 많아 탑승권을 받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면 보안검색에도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저와 가족들은 점점 더 초초해졌습니다.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10분 정도 지나니 다시 수화물 운반 장치가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저는 시간이 촉박할 거 같아 직원에게 이제 보안검색을 받으러 가도 늦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희 아버지가 연세가 좀 있으셔서 패스트트랙 대상자이니 가족 모두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하면 된다면서 카드를 하나 줬습니다.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습니다. 막판에 서둘러서 다행히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광저우 공항에 도착한 후 환승구역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출발했습니다. 유럽에 가는 것 못지 않은 장거리, 장시간 비행이었지만 저는 그래도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즐기고 싸고 맛있는 고기들과 와인을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문제가 저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목적지는 오클랜드가 있는 뉴질랜드 북섬이 아니라 뉴질랜드 남섬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클랜드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남섬의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국내선 항공기의 예약 시간이 도착시간으로부터 1시간 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맡긴 수화물을 찾아 세관을 지나 입국을 하려면 약간 시간이 걸리고, 다시 국내선 항공권을 발권받아 항공기에 탑승하려면 또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가족들에게 서둘러서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우리 가족은 최대한 빨리 항공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렇게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린 후 위탁수화물을 찾는 곳에 1등으로 도착해 수화물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무슨 일인지 우리 가족의 수화물이 통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짐을 찾아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다른 탑승객들은 다들 짐을 찾아 나가는데 우리 짐은 30분이 지나도록 나오질 않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니 위탁 수화물 4개 중 1개가 나왔는데, 다른 짐들은 어딨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미 비행기에서는 모든 짐을 내린 상황이고… 결국 수화물 처리 부서를 찾아가 수화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담당 직원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우리 가족이 맡긴 수화물이 다른 비행기에 실려서 지금 뉴질랜드로 오고 있는데, 내일이나 도착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선 비행기 뿐만 아니라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캠퍼밴 예약도 이미 되어 있는 상황이라 지체할 수가 없었던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일까지 오클랜드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 수화물을 우리 일정을 고려해 퀸즈타운 공항으로 보내달라고 얘기한 후 국내선을 타고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예약했던 국내선 항공기는 이미 출발한지 오래였습니다.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해 사정을 얘기하니 다행히 자신들의 책임으로 수화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으니 무료로 다음 비행기의 항공권을 발권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참 다행이네~~ 저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안심한 우리 가족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으며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한 후 캠퍼밴을 예약한 현지 여행사로 이동했습니다. 여행사 주차장에서 예약한 6인용 캠퍼밴을 둘러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서 운전하기에 좀 부담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고에 대비해 보험상품을 충분하게 가입해둔 것이 위안이 됐습니다. 그래도 자동차 안에서 식탁과 침대도 조립해 사용할 수 있고, 화장실과 조리용 인덕션까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일단 대형마트에 가서 식재료와 필요한 생필품들을 모두 사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마트에 갔더니 기대했던대로 국내보다 육류가 저렴해서 양고기와 쇠고기, 닭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육류와 뉴질랜드에서 많이 먹는 다소 생소한 채소, 과자 등 간식과 음료 등 일주일치 식재료를 이것저것 잔뜩 샀습니다. 뉴질랜드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편인데도 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저렴해보였습니다. 든든하게 장을 본 후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해 첫날 숙박 예정지인 테카포 호수를 향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Views: 85

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4

호치민은 베트남전쟁 전후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이었기에 대통령궁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전쟁 중 미군이 철수한 이후 북베트남군의 탱크가 호치민으로 진격해 점령했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이 대통령궁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궁에 진입했던 탱크 2대가 대통령궁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안으로 들어가면 남베트남 당시 대통령의 다양한 일상과 업무 공간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옥상에는 북베트남군이 진격해오자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이 탈출하려고 했던 것인지 헬기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분단된 국가이기는 했지만 한 국가가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아 뭔가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비까지 내린 날이라 더욱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대통령궁 앞마당은 주인을 잃은 옛 고궁의 정취마저 느껴졌습니다.

통일궁이라고도 불리는 대통령궁을 나선 후 전쟁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과의 전쟁 이전에 이미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 프랑스와 벌인 전쟁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고, 미군이 진주한 이후에는 우리나라 군대도 참전한 아픈 과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전쟁박물관에 가보면 물론 식민지 시대 프랑스, 미국 군대의 잔인한 학살과 만행에 대한 고발 내용도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살포한 에이전트 오렌지라 불린 고엽제나 지뢰로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들만이 아니라, 군복무 당시 노출된 고엽제로 고통받는 미군이나 심지어 우리나라 군인의 모습이나 증언까지도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물론 일부 선전의 의미도 있겠지만, 이제 베트남은 기존의 증오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신감과 힘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직 분단의 고통이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크나큰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 그것을 극복해낸 베트남이 약간 부럽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것일 뿐이니 이해한다고 말한다는데,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날은 그런 복잡미묘한 생각에 잠겨서 조용한 바에 앉아 술을 한잔 했습니다.

베트남 여행의 후반부를 보냈던 호치민에서는 비로 인해 계획했던 일정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호치민 시내 구경을 마친 다음날에는 원숭이들이 주인인 껀저섬 투어를 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진입로가 물에 잠긴데다 뻘처럼 변해서 저를 포함한 일행들의 신발을 잡고 놔주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의 반 이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원숭이들은 함께 걷던 한 일행의 선글래스를 번개같이 낚아채 간 후 공원 관리인들이 주는 바나나와 교환하는 쇼맨쉽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몇년 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개발도상국의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나라 전역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역동성이 마치 우리나라의 1990년대, 2000년대 초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이전보다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되어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Views: 16

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3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과거 안남왕국의 수도였던 ‘후에’와 작은 도시지만 옛 베트남의 정취가 남아 있다는 ‘호이안’이었습니다. 호이안은 전통 상점 등 아기자기한 멋이 있고, 여행 중 한번 정도 참여해보고 싶었던 쿠킹 클래스도 진행되는 곳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다낭을 떠나 호이안으로 가는 길에는이러한 기대 때문인지 더욱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호이안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 무렵이었는데, 출발 전 미리 여행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호이안의 호숫가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넘실거리는 수면에 비치는 아름다운 주황빛에 잠시나마 근심걱정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일행들과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정해진 시간에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던지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의자에 앉아 노을만 보고 있는데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 일행과 만나 호이안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갔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대기줄이 길지 않아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식당에서 유명한 모닝글로리 볶음과 추천 메뉴를 먹어보니 역시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습니다. 이후 일행들과 함께 기념품 상점들을 돌아다니면서 기념품을 몇 가지 산 후 숙소로 돌아갔는데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느라 피곤했는지 깊이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먼저 귀국해야 하는 일행들과 이별을 하고, 혼자 호이안 곳곳을 여유있게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호이안은 역시 다낭이나 이후 갔던 호치민 같은 대도시에 비해서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특히 곳곳에 조용한 사당이나 사찰 같은 곳이 있어서 구경할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방문했던 곳은 길가 옆에 있는 연못에 연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곳이었는데 연꽃들을 보다 보니 시간이 금새 흘러갔습니다.

다시 길을 나서 식사를 한 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제가 찾았던 한 사당은 사당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나 설명들을 보면 특정한 가문에서 지은 곳처럼 보였는데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제단 위에 걸려 있어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호이안 골목을 걷다보니 LEE Laundry, KANG Restaurant 등 익숙한 우리나라 성이 붙은 가게들이 보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하던 지역 근처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게 주인이 라이따이한들이라면 살아오면서 적국 군인의 자식으로 겪었을 고난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려오기도 했습니다.

뒷골목을 이리저리 둘러본 후에는 관광 안내소를 찾아가 쿠킹 클래스 신청을 했습니다. 쿠킹 클래스는 정해진 시간에 신청자들이 모여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시장에서 요리재료를 산 후 자신이 산 요리재료들을 들고 배를 타서 도착한 작은 섬에 마련된 교실 건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음식을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는데 강사가 알려주는대로 따라하다보니 그래도 다행히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그런지 제가 만든 요리여서 왠지 맛도 더 괜찮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ㅎㅎ

호이안에서 혼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 후에는 마지막 여행지인 호치민으로 이동했습니다. 호치민은 과거 베트남 전쟁에 이은 베트남의 통일 이전까지는 사이공으로 알려졌던 도시로 수도인 하노이보다도 더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경제수도로도 불리는 호치민의 모습은 역시나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점령해 활기가 넘치고, 곳곳에 고층 빌딩이 서 있는 발전된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호치민 중심부를 흐르는 강을 따라서는 시민들이 여유있게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는데 잔디밭에는 낚시꾼들이 잡았는지 메기 같은 모습의 물고기가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호치민시에서는 현지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은 생각에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했는데, 덕분에 집안에 가파른 나선형 계단이 있는 4층 집에 머물게 됐습니다. 각 층의 방이 마치 스킵 플로어 구조처럼 배치되어 있었는데 오래된 집이긴 했지만 주인 아주머니와 친해져서 식사 외에도 옥수수와 다른 간식들도 얻어 먹으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숙소에는 연세가 있는 독일인도 한명 장기 투숙 중이었는데, 원래 독일 IT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독일의 경제성장률이 점점 떨어지자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프리카에 갔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 베트남으로 와서 일을 한다고 해서 현재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케냐에서 베트남으로 원목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베트남이라고 하면 1차 원자재를 수출하는 곳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제 베트남도 원목을 수입해서 가공해 판매하는 산업으로 확실히 옮겨 갔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최근 국내 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에 하이테크 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베트남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60세가 넘은 나이에 베트남에 와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찾고 있는 독일인 사업가를 보면서 그 도전정신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Views: 516

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2

옛 베트남 왕국의 수도였던 후에 여행을 마친 후 다시 다낭으로 돌아와 뒤늦게 출발한 일행을 만났습니다. 다낭은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했던 지역 부근으로 한국군의 휴양지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트랑(나짱)이 미군의 휴양지로 유명했던 것과 대비되는 곳인데, 이러한 역사로 인해 다낭에는 이른바 ‘라이따이한’들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는 다낭에 한국기업들이나 한국 자본이 많이 진출하여 몰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여 해변에 초고층 호텔과 식당 등 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다낭에서의 첫날 아침은 해변을 따라 호텔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 지리를 익히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시설들을 짓느라 그런지 여기저기 공사장이 많았습니다. 저와 일행은 자전거를 호텔에 다시 반환한 후 전날 의논한 것처럼 다낭 시내에서 멀지 않은 마블 마운틴으로도 불리는 오행산을 찾았습니다. 오전에 출발해서 그런지 다행히 관광객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는데, 관람티켓을 사려고 했더니 매표소가 2곳이나 있어서 좀 헷갈렸는데 자세히 보니 입장을 위한 티켓을 파는 곳과 엘리베이터 티켓을 파는 곳이 구분되어 있어서 산에 온 김에 걸어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습도가 높아 약간 땀을 흘리며 오행산을 올라 정상에 서니 다낭 시내와 바다가 한 눈에 보였습니다.

오행산 정상에서 다시 내려가니 사찰이 하나 보였습니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자 한쌍이 보였는데, 폐유리 타일로 장식이 되어 있어 가우디 작품인 스페인 구엘 공원에서 보았던 조각품들이 연상되었습니다. 옛부터 내려온 사원인지 아니면 최근에 지어진 것인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디자인이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서 베트남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인상깊은 사원을 지나 오행산의 유명한 대리석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동굴 안에는 관음보살상과 부처상 등 불교 관련 유물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채로운 빛의 조명을 받아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천장에서는 빛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는데, 어두운 동굴에서 머리 위 구멍을 통해 내리쬐는 빛을 보고 있자니 아마 예전에 불상들을 보러 왔던 신자들은 마치 하늘에서 영험한 기운이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동굴을 나와 아래로 내려와 출구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대리석산이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조각상을 만들어 파는 상점이 많이 보였습니다. 사자나 다른 동물 등 멋진 작품들이 보이기에 구경을 좀 하다보니 시간도 흐르고 햇빛이 강해서 덥기도 하여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동남아시아에 가면 제가 많이 주문하는 음료수는 수박이나 망고로 만든 주스인데 날도 더워서 수박음료를 한잔 마시니 시원한 것이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식사까지 마친 후 숙소로 돌아갔다가 선선해진 저녁에 야시장을 구경한 후 밤 늦게까지 여는 바에서 일행과 함께 칵테일을 마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좀 피곤해서 천천히 일어났는데, 일행과 함께 다낭 근처에 있는 바나힐에 갔습니다. 바나힐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미지였을 당시 프랑스인들의 휴양지 명목으로 고지대에 건설된 리조트인데 최근에 시설들을 다시 리모델링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를 설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길이가 길어서 그런지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을 올라간 후 주변 경치를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경치도 좋고 리조트의 놀이시설도 재밌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나힐에서 생전 처음 루지를 신나게 타보고, 기념품 가게에서 기념으로 손톱깎이도 하나 사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좀 고파졌습니다. 그래서 함께 간 일행과 함께 식당에서 감자칩과 닭꼬치를 사먹고 광장 쪽으로 걸어가다보니 시원하게 물이 솟구치는 분수대 옆에서 예전에 스페인 라플라스 거리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전신에 금분을 칠하고 화려한 복장을 한 채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관광객에 대한 홍보 차원에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바나힐과 어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예상치 않게 유럽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다시 다낭으로 돌아간 우리 일행은 그날 저녁에 각자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해변으로 가서 비치 파티에 참여했습니다. 듣던 것보다 해변에 관광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신나는 노랫소리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드면서 손에 든 병맥주를 마시다보니 금새 자정이 지났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관광객들이 줄어들어서 우리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너무 늦어서인지 교통편을 구할 수가 없어 좀 헤매다가 다행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침대에 지친 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다낭에서의 일정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Views: 15

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1

베트남은 다양한 매력이 숨겨진 여행지인 것 같습니다. 2009년에 가족들과 함께 하롱베이, 하노이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구경할 것도 많고 음식도 입에 잘 맞아서 여행을 다시 가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베트남 북부가 아닌 가보지 못한 중부 이남을 가보고 싶었는데 2017년 여름 마침 여유가 있어서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일정이 맞는 친구가 없어서 여행카페에서 함께 여행갈 동료들을 찾아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베트남 중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여행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베트남 다낭으로 입국을 하였습니다. 다낭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예전 베트남 왕국의 왕도였던 후에로 이동하기 위해 현지 여행사로 가서 예약을 했습니다. 예약을 한 후 약간 시간이 남아서 여행사가 있는 골목 한 구석에 천막을 치고 쌀국수를 파는 가게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돈으로 700원 정도 하는 쌀국수가 국물이 아주 진하면서 풍미가 있고, 서비스로 함께 준 바게트와도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좋게 배를 채운 후 베트남으로 여행 오길 참 잘했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버스를 탔습니다. 후에에 도착해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자 금새 저녁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과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앞으로 어떻게 여행을 할지 여행가이드북을 읽으면서 계획을 짠 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후에 왕궁과 왕궁 인근의 사원을 둘러보는 계획을 잡았기 때문에 서둘러 호텔을 나섰습니다. 후에 왕궁은 과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중국풍에 베트남 고유 양식이 혼합된 느낌의 건물과 조형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자가 적힌 문과 솥은 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유물들과 똑 닮아 있기도 했습니다. 또 후에 왕궁에는 현재 베트남어와 달리 한자가 많이 적혀 있었는데 마치 우리 조선시대처럼 과거 베트남에서도 지배층은 한자를 주로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궁을 보다 보니 우리나라 창덕궁 후원의 꽃무늬 담장과 유사한 담도 보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조선왕궁 중에서는 창덕궁 후원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물론 창덕궁보다는 장식이 좀 더 화려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느낌이라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왕궁의 각 구역들을 잇는 붉은 색 담장도 길게 처져 있어 중국 같은 느낌도 났습니다.

왕궁을 다 둘러본 후에는 왕궁을 나와 부근에 있는 강변의 사원을 찾았습니다. 사원은 강변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길에 지나야 하는 문들도 많았고, 관광객들도 꽤 북적북적하는 정도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사원 내부를 둘러보다가 높이 솟은 탑을 보게 되었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벽돌을 쌓아 만든 육각형의 전탑 형식으로 곳곳에 탑의 각 층별로 지붕과 창문이 있고, 창살에는 만자나 꽃무늬 장식으로 되어 있는 아름다운 형상이었습니다.

사원까지 모두 구경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왔는데, 중간중간 비도 오고 많이 걸어다녀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더 돌아다니지 않고 쉴 생각으로 숙소 주변 시장에 위치한 미용실에 가서 이발을 했는데, 두피 마사지를 포함해 이발 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9천원 정도 줬습니다. 해외에서 이발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떤 스타일로 할 것인지 좀 걱정도 됐는데 기대보다도 더 세련된 스타일로 이발을 한 후 비누 거품을 낸 상태에서 두피 마사지까지 해줘서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이발을 한 후에는 시장에서 제가 좋아하는 망고스틴을 사서 호텔로 돌아와 마사지를 예약한 후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일단 먹은 것을 어느 정도 소화시킨 후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전에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스웨디시 마사지를 받기로 했습니다. 스웨디시 마사지는 뜨거운 돌을 이용해 온 몸 곳곳에 올려놓아 몸의 근육과 긴장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마사지를 하는 것인데, 사실 누워있는데 뜨거운 돌을 몸에 올리길래 처음에는 좀 뜨거워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뜨겁다고 마사지를 안 받겠다고 치워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좀 참고 있으니 점점 식어서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잠시 후 다시 뜨거운 돌로 바꿔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흑흑…

그렇게 마사지를 받으며 2시간 정도 뜨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제 방으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여기저기 뭉쳤던 곳이 많이 풀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좀 뜨겁기는 했지만 처음 경험했던 스웨디시 마사지도 다른 마사지들 못지 않게 나름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은 후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티비를 보다가 어느 순간 푹 숙면을 취했습니다.

Views: 17

휴식과 미식의 대만여행 2

우리 일행은 전날까지 타이베이 시내를 둘러봤으니 이제는 타이베이를 벗어나 타이베이 근교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타이베이 근교 여행은 예류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묶어 예스진지 투어라고 해서 택시나 개인 투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만의 기차를 타보고 싶다는 일행의 의견을 따라 기차로 진과스와 지우펀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이고, 더구나 대만에서 기차를 타는 것이니 다소 설레기도 했는데, 막상 기차를 타보니 우리 전철처럼 승객이 양쪽에 앉아 서로 쳐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지우펀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되었는데 일단 자리가 있길래 얼른 앉아 철로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지우펀 근처 역에 도착했습니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곳으로, 좁은 골목 곳곳에 다양한 먹을 거리와 상품들을 파는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관광객이 너무 많다보니 좀 답답한 기분도 들고 높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안개가 끼고 비도 자주 내려서 불편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먹어보지 못한 간식들도 먹고, 기념품도 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와 누나네 가족은 지우펀에서 각자의 띠를 상징하는 자그마한 형광 도자기 인형들을 샀습니다. 저는 앙증맞게 생긴 인형이 마음에 들어 제가 퇴근한 후에도 제 방을 지키라는 의미로 사무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는데 퇴근할 때 불을 끄면 형광빛이 나면서 지금도 제 방을 밝히곤 합니다.

지우펀에서 주변 경치도 둘러보고, 배도 채운 후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다는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유명세를 타서인지 골목길은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보니 전망도, 분위기도 좋은 전통 카페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다말다 하면서 추위가 느껴졌기 때문에 차를 한잔 마시고 가자고 하여 안개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서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니 몸이 좀 풀리면서 피로도 좀 사라졌습니다.

지우펀을 둘러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진과스로 향했습니다. 진과스는 과거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일본이 광산을 운영했던 시절의 영향이 컸는지 상당수 건물이 일본풍의 건축양식이었습니다. 과거 실제 금광이 운영되던 시절 역사와 금덩어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내부를 둘러보고 광산에서 캐낸 광석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체험 코스에 참여했습니다. 바닥의 모래를 바구니에 넣고 잘 흔들고 돌려서 사금을 골라내는 것인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어 일행들이 모두 집중해서 열심히 금을 찾아냈습니다.

골드러시 못지 않은 열기로 체험을 끝내고 나니 힘이 들었는지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진과스에 오면 다들 한번씩 먹는다는 광부 도시락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출발했습니다. 식당에 가니 둥그런 스테인리스통에 든 광부도시락을 팔았는데, 겉은 정성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고 안의 도시락 구성도 고기와 채소가 푸짐하고 맛도 괜찮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맛있는 도시락과 따뜻한 국수로 식사를 배부르게 하고 나니 계속 걸어다니느라 힘들었던 것도 잊고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진과스에서 식사까지 마친 후에는 다시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 외곽의 단수이로 향했습니다. 단수이 해안가에 위치한 위성도시로서 일몰로 유명한데 제가 중국어 학습 스터디를 하면서 공부했던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오는 담강고등학교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단수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단수이는 바닷가답게 해산물 요리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즐겨찾는다는 맛집을 찾아가 새우요리 등 저녁식사를 거하게 한 후 타이베이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종일 추운 곳을 걸어다녔더니 호텔방에 들어가자 완전히 지쳐서 간단히 따뜻한 물로 샤워만 한 후 바로 꿀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대만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수천년 역사를 지닌 중국의 역대급 보물들을 감상한 날이었는데, 바로 고궁박물관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넘어올 당시 대륙의 박물관에서 중국 역사상 중요한 유물들만 엄선해 싣고 왔다고 하는데 그 보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 고궁박물관입니다. 베이징 자금성도 중국에서는 고궁이라고 부르는데 아마 자금성에서도 유물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명칭을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도 배추 형태의 옥인 취옥백채와 동파육 모양의 옥인 육형석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상아 투각 조각품이나 청명상하도 등 수십만 점이 넘는 보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작품들이 너무 많아 연 4회 작품들은 전면 교체한다고 합니다. 저는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워낙 명작들이 많다보니 나중에는 꼼꼼히 보는 것을 포기하고 눈길이 가는 작품들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오니 다리가 아파서 얼른 음식점으로 가서 앉아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박물관 옆에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전시품인 육형석을 닮은 동파육이 가장 유명한 메뉴라길래 시켜서 먹었는데 우리가 먹는 삼겹살 부위인 것 같은데 훨씬 부드럽게 조리를 해서 입에 넣으니 녹아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렸던 배를 달랜 후 하얀 박물관 밖에서 사진을 한장 찍는 것으로 대만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대만여행은 온천을 비롯해 즐길 거리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물가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라 아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한번 가본다면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Views: 70

휴식과 미식의 대만여행 1

한동안 대만 여행 붐이 분 적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보다 가깝고, 일본보다 물가는 싸지만 온천 등 휴양지나 맛집도 많아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선호도가 높아졌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봤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타이베이 옆 단수이에 있는 담강고등학교였기 때문에 대만여행을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제 누나네 가족들이 시간이 맞아서 함께 대만으로 출발했습니다.

예약할 때 고급 숙소도 생각보다 저렴해서 저녁에 호텔에 도착했을 때부터 매우 만족스럽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다음날은 일단 다들 가는 용산사부터 들렀습니다. 용산사는우리와 달리 불교에 도교 및 유교까지 함께 모시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향을 피우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사찰 안이 뿌옇게 연기로 차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도 향에 불을 붙여 간단하게 소원을 빌었는데, 가만히 보니 공물로 일본어가 잔뜩 적힌 롯O 과자들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대만은 모두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 방식이나 상황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보니 양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에 일본과의 관계나 국민들의 감정도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용산사를 나와 시내로 이동해 딤섬으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지점이 들어와 있는데 대만 본점과 우리나라 지점의 맛 차이에 대해 약간 논란이 있긴 했는데, 저는 사실 차이를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둘 다 맛있었습니다. ㅎㅎ 식사 후에는 주변 상점들을 돌면서 예쁜 상품들을 살펴봤는데, 나무로 만든 모빌이나 오르골 등 고급스러운 제품들이 많이 있어서 하나 사고 싶은 유혹을 느꼈습니다. 구경을 하다가 배가 좀 고파서 파인애플이 들어간 펑리수라는 간식을 사먹었습니다.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마트에서 사먹었던 밀크티처럼 펑리수도 꼭 먹어봐야 하는 필수 코스처럼 되어 있었는데, 많이 달지 않아서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실 좀 퍽퍽해서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시내를 돌면서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 저녁이 되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높은 타이베이 101 빌딩은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최상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멋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자 타이베이 101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전망대 티켓 가격이 생각보다 좀 비싸서 볼 것이 많은가 하는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꽤 이동속도가 빨라서 귀도 좀 멍멍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해서 밖의 야경을 보다가 한 층 위로 올라가니 엄청나게 큰 철구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뭐지 하고 깜짝 놀랐는데, 설명을 보니 타이베이 101 빌딩이 워낙 높은 빌딩이라 태풍 등 센 바람이 불거나 지진 등 진동이 큰 경우 건물이 흔들리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철구가 흔들리면서 빌딩이 무너지지 않도록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초고층 빌딩들에도 그런 장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전망대에서 야경까지 구경하고, 아래로 내려오니 산호나, 옥 등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귀한 재료로 만든 공예품들이 많이 있어 다 둘러보고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해서인지 호텔로 돌아온 후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장개석 총통을 기념하는 중정기념관을 갔다가 노천 온천에 가기로 했습니다. 중정기념관은 학창시절 중국어 교과서 표지에도 그려져 있었던 건물인데, 실제로 보니 책에서 보던 것보다 더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중국 전통 청기와가 하얀 벽과 어울렸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꽤 길어서 땀이 나고 숨이 좀 찰 정도였습니다. 건물 안에는 삼민주의를 강조하는 장개석 총통의 동상도 있었는데, 대만에서 수십년 동안 계엄령을 통한 독재로 종신 집권을 했던지라 다른 독재자들처럼 엄청나게 큰 동상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정기념관 내부를 둘러본 후 간단한 기념품도 사서 우리 일행은 노천 온천을 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대만은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상 화산지대에 위치해서인지옛부터 유명한 온천이 많았다는데, 그 중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노천 온천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막상 도착해보니 거의 무료인 것은 맞는데, 탈의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수영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온천탕에 들어가니 뜨거운 온천이 쌓여 있던 피로를 확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온천을 즐기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한 번 정도 온천을 경험해보는 정도로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노천 온천을 하고 나니 배가 좀 고프기도 하고, 조카가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회전 초밥집에 갔는데 생각보다 저렴하고 맛도 있어서 역시 대만은 미식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배를 채운 후 좀 어둑어둑해지자 먹거리와 볼거리로 유명한 스린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점이 들어오기 전이었던 대왕 카스테라도 사먹고, 큐브 스테이크도 먹으면서 구경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서 호텔로 돌아가 간단히 맥주 한 잔을 마신 후 잠이 들었습니다.

Views: 572

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Privacy Overview

This website uses cookies so that we can provide you with the best user experience possible. Cookie information is stored in your browser and performs functions such as recognising you when you return to our website and helping our team to understand which sections of the website you find most interesting and use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