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친구와 태국 여행

제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후 한동안 바쁘게 지내다가 변호사들에게 비수기라는 약간 한가한 동절기가 되자 잠시 바람을 쐬러 해외로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대학 친구에게 해외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면서 당시 사정을 고려해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는 동남아시아를 가게 되었습니다. 제 대학 친구는 군대를 제대한 후 함께 국내 여행을 했던 친구인데, 마침 이 친구도 회계사로 회계법인에 있다가 사내 회계직원으로 이직한 후 전보다 여유가 좀 있어서 같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먼저 태국에 가서는 배낭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방콕 카오산 로드를 들러 약간 거리가 있는 아유타야라는 시암왕국의 이전 수도를 다녀오는 것이 전체적인 계획이었습니다. 저나 제 친구나 역사나 건축물에 관심이 좀 있는 편이었고, 또 이제는 대학생이 아니니 너무 빡빡하게 다니기보다는 쉬엄쉬엄 맛있는 것들도 먹으면서 여유를 즐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태국 수완나폼 공항에서 차를 타고 호텔 앞에 도착해보니 빨간 셔츠 시위대가 대로에 텐트까지 치고 도심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약간 걱정은 되었는데, 막상 제가 도착하기 전 날에는 폭발물 사건까지 있었다고 하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호텔은 중심대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라 다행이란 생각으로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어 놓은 후 친구와 함께 주변 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저는 동남아시아에서 나는 열대 과일 중에서 망고스틴을 아주 좋아해서, 동남아시아에 여행을 가면 꼭 사먹고는 합니다. 망고스틴은 제철이 있어서 어떤 때는 열심히 찾아다녀도 전혀 먹지 못한 적도 종종 있어서 일단 마트에 가자마자 망고스틴을 찾아봤는데, 아쉽게도 망고스틴은 없고 망고나 다른 열대 과일들만 있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큰 망고들을 골라 담은 후 가만히 보니 말린 두리안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두리안은 냄새가 심해서 고급 호텔에서는 생두리안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하는데 말린 두리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써 있어서 한번 사봤습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친구와 맥주를 한잔 하면서 사온 말린 두리안을 먹었는데, 예상보다도 맛이 좋고 냄새도 안 나서 대만족이었습니다. 친구와 다음날 카오산 로드 여행 일정을 정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 시간이 힘들었는지, 맥주 탓인지 푹 잠을 잘 잤습니다. 다음날 친구는 자신이 전에 배를 타고 카오산 로드를 가봤다고 앞장을 서서 카오산 로드를 구석구석 돌아다니기에 저는 천천히 따라만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파는 수박주스와 팟타이를 사먹기도 하고, 발마사지도 받으면서 여유를 즐겼습니다. 저녁에는 방콕에서 유명한 루프탑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면서 서늘해진 바람을 즐기다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은 드디어 처음 가보는 아유타야로 가는 날이어서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를 해서 아유타야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예상보다 햇빛이 강하고 습도가 높아서 고생 좀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표를 사서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저 멀리 아주 큰 탑이 보였습니다. 계단이 가파르기도 하고 날이 좀 덥기도 해서 약간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탑을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다소 힘들었지만 위에서 본 주변 모습은 올라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탑을 내려와서 사원 주변을 돌다보니 부서진 탑들과 열대기후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사원 옆으로 가니 아유타야 관광 안내 자료에 나와 있는 큰 와불이 보였는데, 우리의 다소 후덕한 모습이 아닌 동남아시아 특유의 날씬한 모습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불상을 보면 더운 기후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적 수행을 강조하는 소승불교의 영향인지 날씬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바짝 마르기까지 한 모습에서 우리가 보아왔던 불상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일부는 무너진 탑이나 사원 건물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온전했을 때 웅장했을 모습이 연상되고, 그런 모습이 여전히 보존되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전쟁이 끼치는 해악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특히 같은 불교를 믿으면서도 전쟁 중 침입해 불상의 머리를 모두 잘라버린 버마군의 잔재에서 전쟁의 잔혹함이란 종교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지 되묻고 싶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잘린 불두 중 하나를 나무가 감싸 안은 광경은 신기한 모습이었고, 그 옆에서 평온하게 여유를 즐기는 강아지 한 마리가 왠지 모르게 부럽기도 했습니다.

날이 좀 더워져서 그늘진 사원 유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응달진 곳에 앉아 땀을 식히며 친구와 사는 얘기도 나누다 보니 시간이 흘러갔는데, 제대하고 친구와 여름 여행을 갔었던 추억이 생각나 한참을 옛날 얘기를 하며 떠들어댔습니다. 더위가 좀 가시자 다시 일어나 천천히 유적지를 걷다보니 곳곳에 특이한 문양이나 장식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세밀한 장식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눈길이 가는 곳이 많았습니다.

천천히 둘러보다보니 어느 새 아유타야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방콕으로 돌아가 친구와 함께 야시장에서 맛있는 야식거리도 사먹고, 더위 속에서 걷느라 지친 몸을 마사지로 풀고 숙소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는 태국에 가면 헬스랜드라는 프랜차이즈 마사지샵을 종종 가곤 하는데 가격도 적당하면서 실내 인테리어나 마사지사의 기술도 수준급이라 갈 때마다 만족스러웠습니다.

다음날에는 방콕 중심가인 수쿰빗에서 쇼핑을 좀 한 후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랫만에 대학 친구와 함께 한 여행으로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많이 풀린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그 친구는 결혼해서 애까지 키우느라 바쁘지만, 대학시절 함께 했던 국내여행 뿐만 아니라 태국여행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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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한 제주여행 3

숙소인 휘닉스 아일랜드에서 천천히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러 근처 성산일출봉 인근에 있는 맛집을 찾아갔습니다. 독특한 것이 길 옆에 있는 다소 허름한 식당들이 맛집으로 유명했는데, 식당 이름이 ‘해녀집’, ‘형제집’, ‘자매집’ 등 투박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이었습니다. 해녀분들이 그날 직접 해산물을 채취해오면, 그 해산물을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데, 규모가 크지 않고 안내표지판도 따로 없어서 찾는데 약간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도 헤매다가 찾아간 식당에서 먹은 성게 미역국은 부모님도 모두 만족하실 정도로 신선하고 맛이 좋았습니다.

식당을 나서 우도로 가는 배를 타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이나 저나 제주도에는 여러 차례 가 봤지만 우도에 가본 적이 없어서 배에 차를 싣고 한 바퀴 돌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우도에 도착해 바닷가에 가 보니 하얀 모래와 푸른 바다가 대비를 이뤄서 마치 동남아시아의 해안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바닷가를 거닐다보니 여유있는 여행을 즐기는 여행객의 눈 탓인지 뒷짐지고 천천히 걷는 것 같은 새도 보였습니다.

바닷가를 떠나 다시 차를 타고 가다보니 유명한 우도 땅콩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차를 세워 부모님과 아이스크림을 한개씩 샀는데, 맛을 보니 생각보다 달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명성만큼 좋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가다보니 언덕이 나와서 시원원 바닷바람을 즐기면서 잠시 시간을 보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여는데도 여러 고민이 많았지만, 막상 사무실을 열고서도 계속 고민거리가 늘어서 머리가 복잡했는데, 바람을 맞고 있으니 그런 고민들을 잊을 수 있어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 것 같았습니다.

우도를 계속 돌다보니 작은 선착장도 있고, 하얀 백사장도 있는데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하게 여행을 즐기기에 좋았습니다. 특히 해안이 많이 오염되지 않아서 바닷물도 아름답고 산책을 하는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우도를 한 바퀴 돈 후 다시 배를 타고 제주도로 다시 돌아와 성산일출봉을 지나 공항으로 가려는데,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들어 차를 세웠습니다. 바닷가에서 보는 성산일출봉은 역시 언제 봐도 멋진 모습입니다. 성산일출봉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후 부모님과 함께 한 제주도여행을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차를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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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한 제주여행 2

한라산 영실코스 단풍구경을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중문으로 이동했습니다. 예전에 사법연수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 갔을 때 중문에서 요트 투어를 했는데, 요트에서 보는 바다의 경치도 좋고 낚시도 하는데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특히 낚시를 잘 하면 잡은 물고기로 회도 떠줘서 술과 한잔 할 수 있는데 저는 운 좋게 우럭 한 마리를 낚아서 사진처럼 제가 잡은 우럭회를 연수원 조원들과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요트 투어에 대한 즐거운 기억이 있어서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에 갈 때도 요트 투어를 꼭 해보려고 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요트 투어는 일몰 투어였는데, 요트를 타고 주상절리를 본 후 낚시 포인트로 가서 물고기를 잡고, 일몰을 즐기는 코스였습니다. 아버지가 요트를 타고 즐기는 낚시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실제로 물고기를 잡아서 추억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낚시가 끝난 후에는 요트에 있는 주류와 안주를 먹으면서 일몰을 즐겼는데, 바다에 둥둥 뜬 요트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었습니다.

요트에서 일몰을 본 후 표선면에 있는 해비치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해비치 호텔은 표선면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데, 중문처럼 관광단지가 아니라 조용한 편이었고, 바닷가쪽 잔디밭도 잘 가꿔져 있어 산책을 하기에도 좋았습니다. 저는 이런 표선면의 한가로운 정취에 반해서 나중에 법무부에서 마을 변호사 신청을 받았을 때 제주도 표선면 마을변호사 신청을 해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라산 등산까지 해서 쌓인 피로를 편안한 숙소에서 풀고 다음날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오전에 느긋하게 출발해서 근처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에 들렀는데, 제주도를 사랑한 사진작가 답게 제주도의 속모습을 액자에 잘 담아 두었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 약간 실망을 했는데, 갤러리 밖으로 나오니 야외에도 제주도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조경이 되어 있어 마음이 좀 풀렸습니다.

김영갑 갤러리를 나와 당시 트렌드였던 오름 여행의 백미인 다랑쉬 오름과 용눈이 오름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오름을 보러 가는 길에 점심식사를 하게 됐는데, 어머니가 길가에 있는 아담하지만 예쁘게 생긴 이탈리아 음식점이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 그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가던 길에 그냥 들어간 곳이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주문한 음식도 맛있어서 대만족이었습니다. 여행의 묘미는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인가 봅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차를 타고 다랑쉬 오름을 찾아갔습니다.

다랑쉬 오름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올라가는 것이 만만치 않아 보였는지 아버지는 자꾸 밑에서 기다리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천천히 올라가면 된다고 계속 얘기했더니 결국 따라 올라오셨습니다. 다랑쉬 오름이 좀 특이한게 올라가는 동안은 별로 주변이 보이지 않았는데 어찌어찌 가장 위까지 올라가니 주변 풍경이 아끈다랑쉬 오름부터 멀리 성산일출봉까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멋진 풍경을 보고 감탄을 하면서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이 순식간이 흘러갔습니다.

저는 옆에 있는 용눈이 오름까지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재촉해 옆에 있는 용눈이 오름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용눈이 오름은 한 눈에 보기에도 다랑쉬 오름보다 오르기가 쉬워 보였고, 전체적인 인상이 참 편안했습니다. 오름 여기저기에는 산소가 있고,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오름을 오르면서 보니 해가 점점 지고 있는데, 지는 해의 약한 햇살이 비치면서 나른한 황혼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무덤에 생긴 명암으로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아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름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 후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의 글라스 하우스로 유명한 숙소인 피닉스 아일랜드를 찾아갔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한 후 산책을 하면서 글라스 하우스를 둘러보고 왔는데, 글라스 하우스도 괜찮았지만, 조명이 은은한 산책길도 산책의 기쁨을 키워줬습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는 다음날 우도 여행을 위해서 일찍 푹 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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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한 제주 여행 1

지금까지 살면서 제주도를 몇차례 다녀왔습니다. 어렸을 때는 길가의 야자수, 만장굴, 천지연폭포, 여미지의 이국적인 풍경, 비싼 귤 등 매력적인 관광지였지만, 해외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제주에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법연수원에서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온 후 그런 선입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올레길, 오름 투어, 다양한 박물관 등 어릴 적 제주도와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고 생각해보니 사법시험 준비를 한다고 오랫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된 후 사무실이 대강 정리된 후 부모님을 모시고 일종의 효도여행을 한번 계획했습니다. 다행히 부모님도 늦가을에는 어느 정도 할 일이 정리되셔서 가을의 제주도를 즐기러 출발했습니다.

제주도 도착 첫날, 오후 늦게 제주공항에서 렌트카를 타고 숙소가 있는 애월읍으로 향했습니다. 연세가 좀 있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하는 것이라 일정을 여유있게 잡았기 때문에 제주 도착 첫 날은 숙소에서 쉬고 주변을 천천히 돌기로 했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자동차길을 따라 일몰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는데 부모님과 내려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부모님과 여행을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소로 잡은 빌라드애월은 한적한 곳으로 시설도 깔끔하고, 주변의 풍광이 멋진 곳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숙소에 짐을 풀고 숙소 주변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바닷가인데도 소금기가 많이 느껴지지 않고, 가을 저녁의 상쾌한 바람이 귓가를 스쳐지나가니 저도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숙소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숙소가 최고급 호텔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개성있는 인테리어를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건물 주변에는 억새를, 건물 옆 공간에는 바닥과 벽 위에 장독들을 배치해뒀는데, 그냥 장식인지 아니면 장을 담가서 다른 사업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연한 배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너무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스타일과 따뜻한 햇살이 어우러져 여행객의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줬습니다.

빌라드애월을 숙소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숙박료에 포함되어 있는 조식의 맛이 괜찮다는 것이었기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차를 타고 서둘러 한라산 영실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한라산 영실은 한라산에서 유일하게 가을 단풍이 드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다소 고도가 높은 주차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등산을 하기에도 좋은 코스였습니다. 영실에 도착해 천천히 산을 오르니 듣던 바대로 예쁜 단풍이 든 나무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천천히 단풍을 구경면서 산을 오르다가 부모님을 보니, 오랜만에 등산을 하셔서 그런지 좀 힘에 부쳐 하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발걸음을 늦춰 부모님의 보폭에 맞춰 걸으면서 부모님이 어느새 연세가 많이 드셨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구석이 좀 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모님도 한라산에 단풍이 드는 영실코스는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같이 올라가시겠다고 했는데, 제가 괜히 무리하게 하신 것은 아닌가 해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좀 나아지셨고, 올라갈수록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서 부모님도 잘 올라왔다고 하시니 기운이 났습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영실을 다 올라가니 저 멀리 윗세오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보는 윗세오름은 무언가 신령한 기운이 감싸고 있는 듯한 범상치 않은 모습이어서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멋졌습니다. 윗세오름까지 가는 길은 평탄한 편이었는데 주변의 크고 작은 언덕들도 기생화산인 오름인가 궁금했습니다. 윗세오름 가까이 가니 휴게소가 있고 컵라면을 파는 곳이 있어 부모님과 따뜻한 라면 국물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배까지 고프니 라면이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라면을 다 먹은 후 잠시 쉬었다가 천천히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 한라산 영실 등산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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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 여행 3

리장에서 쿤밍을 거쳐 다시 위안양에 있는 티티엔(계단식 논)을 보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고된 경험이었습니다. 일단 쿤밍에서 위안양으로 가는 길이 다리나 리장에 가는 것처럼 고속도로가 아니어서 비슷한 거리인데도 2, 3배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마치 기차에 있는 침대칸처럼 침대버스가 있는데, 높지 않은 버스에 아래에는 여행가방을 넣는 짐칸과 그 위에 2개의 침대를 배치해서 침대칸에 누우면 간신히 머리만 들 정도 공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비포장길이라 버스가 많이 흔들렸지만, 다행히 머리를 많이 부딪히지는 않고 위안양에 도착했습니다.

위안양은 작은 마을이라 미리 숙소를 예약하기도 어려웠고, 정확히는 어디에 숙소가 있는지도 정확히 알기 어려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탈 때 제가 여행가방을 올려준 중국인 노부부가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자 제게 어디에 가냐고 묻기에 라이스 테라스(계단식 논)를 보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들도 거기에 간다면서 저보고 같이 가겠냐기에 중국인 일행이 있으면 시골에서 여행하기에도 훨씬 수월할 것 같아 그렇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려 얘기를 해보니 그 중국인 부부는 사진 촬영이 취미라 난징에서 위안양의 라이스테라스 사진을 찍으러 여행을 온 것이었는데, 부인은 학교 선생님이고 남편은 엔지니어로 간략하게 영어를 할 줄 알았습니다.

중국인 노부부를 만난 덕에 숙소도 쉽게 구하고, 숙박비도 현지인 수준으로 저렴하게 지급할 수 있게 되었기에 식사비는 제가 내겠다고 했더니, 자신들은 2명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면서 계속 제 식사비까지 내주셨습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그냥 음식점에서 파는 메뉴대로 주문을 해서 먹었는데, 중국 현지인과 함께 식당에 가니 손님이 음식재료들을 고르면 식당 주인이 그 재료들로 반찬을 해서 손님에게 제공하는 식으로 운영됐습니다. 그렇게 색다른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길고 힘든 버스 여행에 지쳐 얼른 잠을 청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출을 보기로 했습니다.

같이 여행을 한 중국인 노부부는 오랫동안 계획하여 위안양의 라이스 테라스로 여행을 와서 저보다도 훨씬 라이스 테라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곳의 일출, 일몰 사진 촬영 포인트들을 알고 있어서 현지에서 차를 빌려 이곳저곳으로 발빠르게 움직였는데, 전 따라 다니기만 해도 돼서 덕분에 아주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찍 준비해 일출 포인트에 갔더니 벌써 여행객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모여 있었고, 쌀쌀한 날씨 탓인지 하니족 여성이 파는 따뜻한 차와 달걀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드디어 해가 뜨기 시작하자 흩어져 있던 여행객들이 모두 카메라를 들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면서 점점 몸이 따뜻해지고, 논에 햇빛이 반사되면서 더 다양한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멋진 일출과 다랭이논을 렌즈에 담는데에만 정신이 없었는데, 주변이 점점 밝아지자 계단식 논의 다양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해가 다 뜨자 슬슬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 일행을 찾아나섰는데, 제 일행은 연세가 꽤 있으신 분들인데도 사진 삼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평소에 사진 촬영이 취미라고 하시더니 지치지도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조용히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행분들이 삼각대를 접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다음 사진 촬영지를 향해 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농부가 농사를 짓는 멋진 곳이 있어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햇빛에 비치는 색이 여러 가지라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붉은 색으로 보이는 논은 논에 붉은 이끼가 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계단식 논이 더 넓게 펼쳐져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곳의 계단식 논은 가장 아래에서 위까지 논의 층수가 1,300개가 넘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과연 그 곳에 도착해보니, 압도적인 광경에 경탄하고 그처럼 높은 지대에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계단식 논을 조성한 하니족 사람들의 끈기와 노력,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솟아났습니다. 장소를 옮겨 일몰 포인트 지점까지 이동해서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이 참 빨리 흘렀고, 바쁜 하루의 일정을 소중한 사진들로 보상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사진 포인트들에서 사진들을 모두 찍은 후에는 지친 몸을 끌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숙소 옆에는 나름 큰 마트가 있었기 때문에 일행이었던 중국인 노부부와 함께 장을 보러 갔는데 전부터 한 번 사서 마시고 싶었던 중국산 와인인 만리장성 와인이 있기에 한 병을 샀습니다. 저녁식사 후 조용히 숙소에서 즐긴 중국 와인은 달면서도 새콤한 맛이 강한 편이었고,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도록 깊은 잠 속으로 인도해줬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짐을 꾸려 일행과 함께 버스를 타고 쿤밍으로 향했습니다. 위안양에서 여행을 하면서 중국인 부부에게 신세를 많이 졌기 때문에 헤어지기 전에 제가 식사를 한 번 대접하겠다고 하여 쿤밍에 도착한 후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인 부부는 이후 중국과 라오스 접경도시를 향해 간다고 하여 쿤밍에서 헤어지게 된 것인데, 식사 대접이 고맙다면서 나중에 난징에 한번 놀러오라고 했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귀국하고 얼마 후에 진짜 이메일로 사진들을 보내줬는데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사진촬영을 전문적 수준의 취미로 가지고 계셔서 그런지 그 수준이 제가 찍은 것과 비교가 안 됐습니다.

쿤밍으로 돌아와서는 숙소를 잡고, 쿤밍 무역전시장에 가서 쇼핑을 했는데 디자인이 조잡한 제품들이 많았지만, 신기한 아이디어 상품들도 있었고 또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들도 있어서 약간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뭐든지 크다는 중국에 대한 인식처럼 무역전시장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서 건물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도가도 반대쪽 끝이 나오지 않아서 가다가 결국 포기하고 다시 돌아서 원래 출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쿤밍에 있는 월마트에서 음식 등 쇼핑을 한 후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타러 쿤밍 공항으로 갔는데 새로 지은 쿤밍 공항은 당시에도 인천공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당시 중국의 빠른 발전에 놀라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요즘 중국의 발전 속도를 보면 더욱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중국을 가장 길게 느껴봤던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저는 개업을 하여 드디어 변호사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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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 여행 2

다리 고성을 벗어나 다음 목적지인 리장으로 향했습니다. 리장 고성은 중국 국내에서도 이국적인 느낌으로 인기있는 여행지라 연말 연휴 기간에 어디로 숙소를 잡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다리고성에서 머물렀던 숙소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여행객들로부터 평년보다 높은 기온 때문에 리장의 옥룡설산에 눈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들었었고, 리장 고성에는 숙소를 잡기도 어렵고 비싼 편이니 그 옆의 수허구전이라는 마을을 추천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리장에 가는 고속버스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수허구전에 숙소를 잡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막상 리장에 도착해보니 리장이 해발 2,400m에 위치해 있는 도시라 그런지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이 많이 부셨습니다. 일단 수허구전으로 가서 숙소를 찾아다녔는데, 마침 조용해 보이는 곳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마음에 드는 싱글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 며칠 머물기로 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숙소에서 옥룡설산이 바로 보이는 것도 선택을 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숙소를 잡았으니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 택시를 타고 리장고성으로 향했습니다. 리장ㅍ고성은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명성처럼 옛 건물들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또, 나시족들이 모여서 전통춤을 추기도 하고, 그 옆에는 나시족이 사냥에 썼던 매가 얌전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나시족은 자신들의 고유한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를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데 리장ㅍ고성 곳곳에서는 이러한 동파문자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동파문자도 중국 갑골문자나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처럼 부드러운 그림체인데 귀여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리장 고성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니 성 전체가 한 눈에 보이고, 멀리 옥룡설산까지 보여 풍광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성 내부 구경을 마친 후에는 나시족의 전통 음악 공연도 봤는데, 악기 소리가 매우 낭랑하고 다함께 부르는 노래소리도 듣기 좋았습니다.

전통 공연을 듣고 공연장 밖으로 나오니 벌써 땅거미가 내린 밤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배도 고파서 식당과 주점들이 있는 골목으로 향했는데, 밤의 리장 고성은 낮의 조용했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식당에서는 엄청나게 크게 노래를 틀어놓고, 휘황찬란하게 불을 켜놓았는데, 많은 손님들로 북적북적댔습니다. 아마 제가 리장 고성에 갔던 날이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더 흥에 겨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흥겨운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와 술 한잔을 하고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가 있는 수허구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크리스마스를 그냥 숙소에서 보내기가 아쉬워서 다시 분위기 좋은 주점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마침 일정 금액을 내면 몇 잔의 술과 안주를 주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곳을 발견해서 한번 어떤 파티인지 물어봤더니 어서 참석하라고 해서 기쁜 마음에 파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점 이름이 사쿠라김이라길래 주점 주인이 한국인인지 물어봤더니 한국인은 아니고 일본인인데 리장에 여행을 왔다가 리장이 마음에 들어서 정착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파티에 온 사람들과는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제 생각보다 중국인들과 잘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파티 주최자가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을 불러줬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얘기를 나누다가 중국인 학생이 당시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 얘기를 하면서 여성이 총통(중국에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총통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이 되었다니 대단하다는 말도 했고, 한국과 중국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다 같이 말춤을 추기도 하고, 소원지를 담은 풍등을 날리면서 미리 생각하지 못한 즐거운 추억도 쌓았습니다.

제가 파티에서 중국인들과 풍등을 날리면서 느낀 바가 있었는데, 풍등이 생각보다 잘 날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풍등은 날아가다가 불이 붙어 타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풍등은 잠시 올라가다가 바람을 제대로 타지 못하고 떨어져버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날린 풍등도 어느 정도나 멀리 날아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생처럼 풍등도 어떤 때는 인생의 바람을 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다리 고성 숙소에서 들은 것처럼 옥룡설산에 눈이 별로 없다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샹그릴라나 호도협 트래킹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천천히 일어나 짐을 정리한 후 만약을 위해 준비했던 다른 코스인 위안양의 계단식(다랭이) 논을 보기 위해 쿤밍을 향해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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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 여행 1

2013년초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여러 곳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등 바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계속되는 취업 준비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번 바람을 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제 취업을 하고 나면 언제 긴 휴가를 내서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 어디로 여행을 갈까 하다가 고지대에 위치해 봄의 도시라 불리는 쿤밍(곤명)이 겨울에도 따뜻할 것 같아 훌쩍 윈난성으로 출발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하느라 여행에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한 터라 이번에는 동행자도 구하지 않고 혼자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비행기 티켓과 쿤밍 숙소만 예약한 터라 이동하면서 계속 숙소도 찾아야 했는데, 쿤밍에 도착해보니 예상대로 밤에도 섭씨 18도 정도여서 상쾌한 기분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후 짐을 풀고 먼저 ATM에 가서 현금카드로 중국 위안화를 인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인출이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순간 국제미아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생겼는데, 다행히 비상용으로 가져간 다른 현금카드를 이용하니 인출이 가능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숙소로 돌아와 바에서 음식과 맥주를 마시면서 다음날 향할 다리성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고 잠이 들었습니다.

쿤밍 버스터미널에서 물어물어 어렵사리 다리 고성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고속버스 기사 바로 뒷자리에서 앉았습니다. 그런데 고속버스 기사가 2개 차선 가운데로 달리면서 덤프트럭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얼마나 무섭게 버스를 운전하는지 불안해서 잠을 자기가 어려웠습니다.  차선 변경을 할 때도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보내면서 과속까지 해대니 얼른 버스에서 내리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삶은 옥수수를 사먹었는데 우리나라 옥수수와 맛이 약간 달랐지만 더 탱글탱글한 식감으로 맛이 괜찮았습니다.

다리 고성은 옛 다리국(大理國)의 수도였는데 대리국은 대리석(大理石)이라고 부르는 무늬가 아름다운 돌의 산지로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다리 고성을 걷다보면 대리석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품을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장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다리 고성에 도착해서는 무거운 배낭을 풀어놓고,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저녁식사 후 밤에 걷는 고즈넉한 고성도 나름의 멋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을 먹은 후 다리고성 주변의 숭성사 삼탑과 얼하이호를 보려고 서둘러 자전거를 빌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전거를 빌리는데 여권을 보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는 경우 다시 발급받기도 어렵고, 혹시라도 여권으로 다른 문제가 생길수도 있어서 망설이다가 다른 자전거 대여점에 갔는데, 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여권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 대여점 사장에게 여권을 맡겨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자전거를 돌려받으려면 여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는 생각이 들어 믿고 여권을 맡긴 후 자전거를 빌렸습니다.

자전거를 빌린 후 신나게 페달을 밟아  숭성사로 향했습니다. 숭성사에 있는 세 탑은 9세기에서 12세기까지 지어진 것들인데, 맑은 하늘 아래 석탑이 우뚝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전거로 주변을 돌면서 탑을 보다보니 특색이 있고, 주변의 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한 그림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숭성사를 구경한 후 다시 자전거를 얼하이호로 몰았습니다. 얼하이호는 귀처럼 생긴 매우 큰 호수인데, 호숫가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거리는 120km에 달하기 때문에 전체를 다 돌 수는 없어 1/3 정도 돌다가 다시 돌아오는 배를 타고 오기로 했습니다. 호숫가를 따라 달리다보니 푸르른 호수의 색에 감탄하고, 호숫가에 있는 예쁜 수형의 나무들, 그물을 던지는 어부들의 모습 등 중국의 삶과 풍경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호숫가를 따라가면서 보니 옆에 서있는 것은 나무만이 아니었습니다. 가로등처럼 생긴 기둥에 태양광과 풍력 발전 장치가 함께 붙어 있었는데 디자인이 많이 세련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중국도 이제 신재생에너지에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약간 놀라기도 했습니다. 2013년을 기준으로 보면 일부 영역에서는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의욕적으로 미래사업을 추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3, 4시간 달리다 보니 오랜만에 장시간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서서히 엉덩이가 아파왔습니다. 그래도 이왕 타기 시작한 거 참고 계속 자전거를 탔는데 나중에는 너무 아파서 일어서서 자전거를 타다가 끌기도 하면서 힘들게 계속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 원래 계획은 전체 1/3 정도 가면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유람선이 있어야 하는데, 막상 가보니 겨울은 여행 비수기라서 유람선이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할 수 없이 주변 마을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어찌어찌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힘들어서 그런지 자전거를 반납하고 나니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래서 얼하이 호에서 잡히는 잉어로 요리한 유명한 잉어요리를 먹었는데, 가시도 너무 많고 비늘도 제대로 제거가 되지 않아서 많이 실망했습니다. 가이드북에서 맛있는 요리라고 해서 비싼 가격에도 주문했는데 제 취향은 아니라서 할 수 없이 함께 주문한 맥주만 다 마시고 잉어 요리는 많이 남긴 채 그냥 일어났습니다. 자전거를 계속 타서 그런지 다리와 엉덩이가 쑤시기도 해서 그런지 숙소로 돌아가 침대에 쓰러져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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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겨울 유럽 여행 5

짮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이탈리아를 떠나 마지막 여행지이자 귀국하는 항공편이 출발하는 스위스로 이동했습니다. 루체른을 거쳐 인터라켄으로 가기로 했기 때문에 유람선을 타고 루체른 호수을 지나 루체른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는데, 하늘이 참 맑고 햇빛이 좋아서 경치를 즐기며 갈 수 있었습니다.

루체른에 도착한 후 유람선에서 내려 다시 인터라켄으로 향해 다소 늦은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인터라켄에서는 생전 처음 스위스 전통 음식인 퐁뒤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고, 고소한 치즈향이 좋아서 다들 바닥까지 다 긁어먹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장거리 이동을 한 후 다들 지쳐서인지 푹 쉬고, 다음날에는 드디어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 전망대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해발 3,400m가 넘는 위치에 있는 융프라우 전망대에 막상 도착하고 보니, 계단으로 전망대 2층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데도 발걸음이 갑자기 무거워지고 갑자기 머리를 머리띠가 조이는 것처럼 두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고산병이구나 싶어서 천천히 움직이는데 메스꺼운 느낌도 있어서 화장실을 찾아다니다가 신라면 컵라면을 들고 다니는 여행객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아픈 것도 잊고 여행객들에게 맛있기로 유명한 융프라우 전망대의 신라면을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줄을 서서 컵라면을 받은 후에 물을 받아 라면을 먹다보니 신기하게도 아팠던 머리도 낫고, 메스꺼운 느낌도 더 이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전망대를 나와서 다들 스키를 타러 갔는데, 저는 국내에서 스키를 몇 번 탄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스키를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대학생 시절 검도관에서 다 같이 스키장에 놀러갔을 때 관장님이 스키 신는 방법과 11자로 서서 걷는 방법, A자로 멈추는 방법을 알려주시더니 바로 리프트를 타라고 한 후 내려오는 식으로 대충 배웠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더구나 자연설은 인공설보다 잘 멈춰지지 않는다고 들어서 더욱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니 일부 썰매를 타는 사람들은 다들 일본 사람이나 한국 사람인 것 같아서 좀 무리되더라도 스키를 타보기로 했습니다.

막상 스키 장비를 타고 출발해보니 처움에는 생각보다 경사가 급하지 않고, 미끄럽지도 않아서 괜찮다고 생각이 됐습니다. 그런데 점점 속도가 붙고, 급한 내리막길이 나오면서 속도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알프스 스키 로프는 원래 여름에는 하이킹 코스로 사용되는 곳이라 코스를 따라 아무런 안전망이 없고, 그 옆에는 낭떠러지로 눈이 잔뜩 쌓여 있었기 때문에 잘못해서 옆으로 떨어지면 진짜 눈이 녹는 봄에나 발견되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불안해지자 자꾸 넘어지기도 했는데, 특히 한번은 급한 내리막길 이후 앞에 장애물이 있어서 말 그대로 휙 날아서 떨어졌는데 한쪽 스키가 뒤로 땅에 박혀 버렸습니다. 워낙 큰 소리를 내면서 떨어져서 같이 스키를 타던 동료들이 걱정을 하면서 주변으로 몰려왔고, 저도 혹시 무릎이 돌아간 것 아닌까 겁이 났는데, 다행히 원래 무릎이 튼튼한 편이어서 그런지 별 부상없이 털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그런 일을 겪자 더욱 소심해져서 좀 속도가 붙으면 자꾸 넘어지면서 뒹굴게 되어 몸도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스키를 타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같이 내려오던 동료들과 중간에 식사도 하고 내려왔습니다. 처음 출발한 산 능선에서 산 아래까지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거리가 워낙 길다보니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도 거의 2시간 반 가까이 스키를 탄 셈이 됐습니다. 그렇게 지친 상태로 산 아래까지 내려오고 나니 이제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내려와서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기분도 들었습니다. ㅎㅎ

저는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면서 워낙 고생을 해서 한국에 돌아가면 꼭 한번쯤은 제대로 스키 강습을 받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결국 몇 년 후 강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스키를 신고 알프스를 굴러내려오는 것으로 많은 추억을 남긴 여행의 마무리를 한 후 마침내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함께 했던 동기들과 보낸 시간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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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겨울 유럽 여행 4

스위스에서 국제기구들을 방문한 후 다시 이탈리아로 향했습니다. 밤에 도착한 이탈리아 북부의 중심도시 밀라노는 패션으로 이름 높은 탓인지, 거리에서도 멋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밀라노의 밤거리를 즐기자는 생각에 다들 호텔을 나서 밀라노 두오모까지 갔는데, 전에 가봤던 피렌체 두오모와 달리 거꾸로 매달린 고드름처럼 첨탑과 기둥들이 삼각편대를 이루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듯 보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테인드글래스 역시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고, 두오모 주변의 건물들과 동상에서도 오랜 역사가 느껴졌습니다.

다음날은 각자 자유 일정으로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이었는데, 저는 예전 이탈리아 여행때 중세 강성했던 도시국가였던 제노바를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제노바를 가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수원 같은 조 동생 1명과 함께 제노바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노바에 도착했을 때 첫 인상은 다소 퇴색된 어두운 느낌의 도시였는데, 제노바의 성당에 들어가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성당 내부가 온통 금으로 장식되어 말 그대로 번쩍번쩍 휘황찬란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더니 과거 찬란한 영광의 역사를 간직한 제노바는 그리 만만하게 볼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곳곳에 남아 있는 섬세한 장식을 한 건물들과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해시계 등 차근차근 살펴볼 곳들이 참 많았습니다.

제노바는 항구도시답게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식당이 많이 있었는데, 출출하기에 검색을 해보니 유명한 식당이 하나 있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같이 간 동생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고 싶어서 찾아간 식당에는 비수기라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아 더 여유있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식당의 대표 메뉴인 해산물 요리와 와인 1병을 마시고 나니 기분도 좋아지고 힘도 나서 다시 일몰을 보러 제노바에서 일몰이 멋지다는 전망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생각보다 길이 복잡해서 좀 헤매기도 했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이국적인 경치와 항구, 지는 해는 지금까지도 뇌리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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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겨울 유럽 여행 3

파리에서 며칠을 보낸 후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의 관광열차를 탔습니다. 나무로 인테리어가 된 고풍스러운 열차였는데 열차를 타고 둘러본 눈이 덮인 산악 풍경이 펼쳐진 스위스의 겨울은 예전에 방문했던 스위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유럽여행을 하면 와인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다양한 와인을 사서 나눠 마시곤 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관광열차를 타고 가다가 마트에서 구입한 스파클링 와인을 덮여 있는 눈 속에 묻어 바로 시원하게 칠링을 해서 마시기도 했습니다. 멋진 겨울 풍경을 보면서 마시는 와인 한잔은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향신료 같은 존재였습니다. 또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헝가리산 디저트 와인인 토카이 와인을 사서 즐기기도 했습니다. 루이 자도의 본 로마네 와인 역시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난민기구(UNHCR)을 방문해 내용을 담당하는 업무에 대해 듣고 질문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국제노동기구에서 설명을 들었을 때는 그 구성이 노동자, 사용자 및 정부가 동일한 비율로 참여한다는 얘기에 국내에서의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는 과거 사법시험 준비할 때 공부했던 국제법에 종종 나오던 국제기구여서 관심이 갔는데, 난민들에 대한 다양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후 난민 관련 업무를 하게 된 것에 유엔난민기구를 방문했던 경험이 무의식중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엔기구 건물 인근에는 유엔 설립의 취지처럼 전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의 조형물들과 기념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 대자보를 통해 알게 되었던 발칸전쟁 기간 중 있었던 비극인 스레브레니차 사건 기념비도 있었고, 전쟁에 사용되었던 포신이 묶인 포와 다리 하나가 부러진 의자도 있었습니다. 끔찍한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야 교훈을 얻게 된 인간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면서, 저 역시 매일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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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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