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합격 후 핀란드, 터키 여행 2

핀란드의 소박한 모습에서 잠시 여유를 즐기다가 본격적인 여행을 위해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저는 많이들 여행을 가는 지중해쪽이 아닌 동남아나톨리아 지역부터 여행을 할 계획이었기에 이스탄불에서 바로 수천년 이상 된 교역도시였던 마르딘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탔습니다.

마르딘에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마땅한 숙소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교사 연수원 같은 곳이 있기에 들어가서 제가 한국에서 여행을 왔는데 혹시 숙박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평소 외국인이 별로 방문하지 않는 지역이라 그런지 놀란 표정으로 알아볼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잠시 후 돌아온 직원이 제게 숙박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방을 배정해주었는데, 조식 포함한 숙박비가 매우 저렴해서 이번에는 제가 놀랐고, 더구나 숙박객이 없어서 화장실까지 딸린 방을 저 혼자 여유있게 사용할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제가 마르딘에 간 이유는 역사책에서나 보았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젖줄이었던 유프라테스강과 그 문명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르딘에 가보니 실제로 높은 고지대에 위치한 마르딘에서 주변이 다 내려다보이고, 마르딘의 여러 건물들도 오랜 세월을 견뎌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종교 건물들은 정성들여 정교하게 조각한 장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마르딘에서 이틀 정도 머물며 카페에서 차이와 바클라바를 먹으며 해가 지는 것도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길을 떠나 버스를 타고 하산 케이프로 출발했습니다. 하산 케이프는 1만년 가까이 된 옛 유적들이 있는 지역으로, 제가 하산 케이프에 갔을 때만 해도 차가 지나가면 다리 상판이 떨어져나갈 듯 흔들리는 오래된 다리 옆에 새로운 교량을 짓고 있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2020년 터키 정부의 댐 건설 사업으로 수몰될 예정입니다.

하산 케이프에 도착하니 마을 입구에 반 자른 드럼통으로 쾨프테와 고추 등 꼬치를 구워 팔고 있는 상인들이 보였습니다. 표지판도 없어 유적을 찾아가려면 정확히 어디로 올라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배도 채울 겸 쾨프테를 사먹으면서 성과 동굴집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상인이 꼬치를 건네주면서 제가 들고 있는 가이드북의 지도에서 어디로 올라가는지 설명을 해주었는데, 마침 꼬치를 굽는 드럼통 옆에 드래곤볼 손오공 열쇠고리도 팔고 있어 제가 그걸 가리키자 같이 웃더니 제게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터키까지 진출한 드래곤볼 손오공

좀 전에 올라간 사람들도 동양인 같은데 아는 사람들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계속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저도 궁금해하던 차라 가만히 무슨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들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적이 있는 곳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속주의국가라는 터키에서도 지방이나 동부쪽은 보수적인 이슬람 신자들이 많은데, 당시 우리 언론에도 문제가 되고 있었던 이른바 ‘땅밟기’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 저러다가 무슨 일 생기는 것 아닌가 걱정되어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대충 둘러대고 일어섰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하산 케이프 성과 동굴집이 보였는데, 유프라테스강을 내려다보는 천혜의 요새로 감시도 하고, 무역 거점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산 케이프 성을 둘러보고 있는데 마을 아이들 몇명이 저를 따라오면서 자꾸 돈을 달라고 하길래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더니, 청년들이 몇명 올라와서 아이들을 쫓아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어디서 왔냐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자신들은 디야르바크르 대학에 다니는 쿠르드족이라면서 소개를 했습니다.

얼마간 얘기를 하다 보니 자기들도 하산 케이프에는 처음 와본다면서 이 곳을 개발한다고 하여 유적들이 없어지기 전에 온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래된 유적들이 훼손된다니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말이 좀 통하는 청년들을 만난 것이 반가워 아래로 같이 내려가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하여 강변으로 같이 내려갔습니다.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바라보는 하산 케이프는 곳곳에 유적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땅 밑에는 아마도 더욱 오래된 역사가 잠들어 있는 곳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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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합격 후 핀란드, 터키 여행 1

2010년 드디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11년 1월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터키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문명의 발상지이자, 교차점이었던 소아시아 지역, 지금의 터키는 볼 것도 많고, 맛있는 먹을 것도 많을 뿐 아니라, 물가도 많이 비싸지 않아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행지입니다. 시험 합격 후 함께 여행을 갈 친구들을 찾아봤지만 20일 가까이 휴가를 내서 여행을 가기는 어려워 혼자 출발한 후 여행하는 중간중간 동행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핀란드는 이전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 여름이라 백야를 보았기에, 겨울철에는 오로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경유지로 넣은 곳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제 계획에는 큰 착오가 있다는 것을 핀란드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핀에어를 타고 핀란드 헬싱키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는데, 공항은 우리 버스터미널처럼 아담했고, 마침 밖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함께 타고 있었던 한국인이 있어 얘기를 나누었는데,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방학 때 한국에 왔다가 다시 미국에 가는 길에 헬싱키를 들러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럼 같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해서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당시 서울은 뜻밖의 강추위가 몰려왔던 때라 거의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던 상황이었기에 영하 5도 정도 되는 북유럽 헬싱키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져 그런 얘기를 하면서 웃기도 했습니다. 저는 저녁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서 숙소직원에게 이른바 ‘산타마을’이 있는 로바니에미로 가는 교통편을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직원의 답변을 듣고 제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로바니에미로 가는 비행기는 보통 6개월 전에 예매가 끝나고, 로바니에미로 가는 기차도 이미 매진된지가 오래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처럼 오로라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어쩔 수 없이 남은 이틀을 헬싱키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제가 헬싱키를 돌아다니다 보니 전통시장에서 순록과 곰 그림이 그려진 살라미를 발견하고 상인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순록과 곰고기로 만든 살라미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유럽을 여행할 때 다양한 고기로 만든 살라미를 사서 먹어봤지만 순록과 곰고기는 처음이라 얼른 사서 챙겼습니다. 이 중 곰고기 살라미는 이후 터키를 여행하면서 장거리 버스를 탈때 다른 승객들에게 나눠줬더니 인기 폭발의 아이템이 되기도 했습니다.

헬싱키에서는 몇 가지가 기억에 남는데, 가구 박물관의 관람객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들이 오로지 나무로만 만들어져 있어 첫 눈에는 딱딱하고 불편해보였지만, 막상 앉아보니 너무 편해서 놀랐습니다. 또, 대통령궁은 도심 길가에 있는데, 소박한 건물이라 대통령의 권위를 앞세우는 우리 정서와 비교가 되었습니다. 특히 헬싱키 인근인 수오멘린나 요새에 가는 길에 봤던 북해의 바닷물이 얼어 떠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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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2차 시험 합격 발표 전 필리핀 세부 여행

군대를 제대한 후 시작한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항상 그렇듯 제 계획보다 한참 시간이 지난 2010년이었습니다. 부모님께는 호기롭게 3년 반 내에 시험을 끝내하겠다고 말한 후 시작했지만, 1차 시험에서 1등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2차 시험을 4번 본 끝에 다행히(?) 사법시험에 최종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갔다온 후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시험준비를 하는 것이 죄송해, 2차 시험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했는데, 2010년에도 6월에 2차 시험을 본 후 10월 합격자 발표가 있을 때까지 스마트폰 직무교육 프로그램 검수 아르바이트와 대입 논술시험 채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시 아르바이트 급여로는 나름 괜찮게 급여를 받아서 생활비를 하고도 다행히 여유가 좀 있어 합격자 발표 전에 마음도 정리할 겸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평상시 여행을 갈 때는 배낭여행을 선호했는데, 당시에는 혼자서 여행을 갈 준비를 할 시간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 그냥 무난한 패키지 여행상품을 선택해서 여행 출발을 했습니다.

필리핀 세부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를 배정하는데, 이상하게 저는 작은 차량에 타라고 해서 알 수 없는 불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여행 출발 당시에는 여행을 가서 동행객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차에 타서 기다리고 있자니, 총 7명이 차량에 탑승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만 살펴보니, 아뿔싸… 저를 제외한 나머지지 여행객은 3커플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 자체도 아담했지만, 전체 객실에 우리 7명 외에는 거의 손님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우리 일행이 수영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저만 방을 혼자 썼기 때문에 하루 여행 일정이 끝난 밤마다 일행들이 제 방에 모여서 같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알고보니 일행 중에는 제 대학 남자 후배도 있었고, 한 커플은 워낙 술을 좋아해서 출국할 때마다 보드카를 사서 현지에 도착하면 주스와 섞어 칵테일로 만들어 먹거나, 물과 섞어 소주로 마신다고도 했습니다.

세부 여행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주었던 넓은 바다와 바닷바람,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편하게 밤마다 술자리를 가졌던 일들입니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함께 여행했던 커플들이 각자 시간을 가지고 싶었을텐데, 밤마다 제 방에서 술마시자고 해서서 좀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ㅎㅎ

세부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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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의상능선 산행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등산 동호회 산행에 참여했습니다.

북한산은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산인데, 어렸을 때나 대학원에 다닐 때 몇번 올랐던 산입니다. 대학원에서 강의를 들을 때는 한 교수님이 해당 과목의 전통이라고 하시면서 토요일 오전에 정독도서관에서 세미나를 하고, 오후에는 북한산 등산을 하셔서 몇번 따라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북한산 등산로

등산 동호회분들은 역시 베테랑들이시라 그런지 평이한 등산로가 아닌 처음 듣는 의상능선이란 등산로를 타고 오르게 되었는데, 등산로 초입에 있는 안내판에 있는 등산로 난이도를 보고 예상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른 길은 저 노란 길도, 녹색 길도, 붉은 길도 아닌 시작하자마자 새까만 그 길이었습니다. 처음 1/3은 매우 어려운 검은색, 그 뒤는 1/3은 어려운 자주색, 다시 1/3은 매우 어려운 검은색…

오랜만에 시작하자마자 급경사를 밧줄을 잡고 오르기 시작하니 운동을 하는 것 같아 나쁘지 않았는데, 몇 시간을 그렇게 걷다보니 나중에는 다리에 힘이 좀 빠졌습니다. 더구나 절벽에 있는 밧줄을 잡고 계속 오르다보니 다리힘보다는 팔힘으로 오르면서 균형이 잘 안 잡혀 순간적으로 휘청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구간을 지나 주변 경치를 살펴보니 왜 의상능선이 북한산 최고 절경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3개의 봉우리는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이고, 바위 사진은 토끼 바위라고 하는데, 옆에서 보면 토끼가 돼지랑 뽀뽀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등산하기에 날씨도 딱 좋고, 하루 전에 내린 비로 계곡에 물도 있어서 하산하는 길에는 즐거운 물소리를 들으면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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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유럽배낭여행기 2

지난 글에 이어 군 제대 후 유럽배낭여행 당시 일화입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원래 계획에 없었던 북유럽 여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체코 프라하 한인민박집에 머물던 어느날 저녁 6개월째 배낭여행 중이라는 형을 한 명 만났는데 다음날 백야를 보러 북극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체코 가는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가 추천해준 체스키 크롬로프를 갔다가 독일에 오래 머물 생각이었는데, 백야와 북극이란 단어가 저를 너무도 강렬하게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새 고민하다가 일정을 전부 변경해 그 형과 북극에 가기로 하고 다음날 아침 노르웨이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일단 체코에서 우리가 가려는 노르웨이 나르빅역까지는 기차로만 2박 3일을 가야 하는 먼 거리였습니다. 북유럽의 물가가 어마무시하다는 얘기를 전부터 듣고 있었던 우리는 일단 일용할 양식을 사서 기차를 타야겠다는 생각에 커다란 식빵 2봉지, 2리터짜리 생수 2통, 살라미 1개, 딸기잼 작은 병, 맛있는 체코 맥주 5병(아무리 돈이 없어도 맛있는 체코 맥주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음)을 사서 기차에 탔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여행한 얘기도 하고, 빵에 잼을 바른 후 살라미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면서 나름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꼬박 기차를 타고 스웨덴 국경을 통과해 올라갈 때가 되니, 점점 지루해지고 식빵만 먹는 것도 힘들어졌습니다. 더구나 스웨덴은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아 크로네만 사용할 수 있어 스웨덴에서는 물건도 전혀 살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사철(사기업이 운영하는 기차)을 타고 나르빅에 가는데, 문제는 유레일 패스로 기차를 탈 수는 있는데 좌석 예약은 불가능해서, 좌석이 없는 경우 서서(!!)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낮에야 어찌어찌 타고 가더라도 문제는 밤에 잠을 잘 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동행한 형과 저 모두 한창 젊은 나이라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객실에는 자리가 없으니 승하차하는 계단이 있는 복도에 침낭을 깔고 자기로 했습니다. 당시 기차에 타고 내리는 다른 승객들이 좁은 공간에서 한국인 2명이 침낭에 들어가서 계단을 피해 옆으로 누워 새우처럼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뭐라고 생각했을지 지금도 궁금하긴 합니다.

그렇게 2박 3일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기차만 타고 도착한 노르웨이 나르빅은 유럽 최북단 기차역이었습니다. 거기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로포텐 제도까지는 다시 유람선을 타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기차에서 내렸는데, 저 앞에서 왠지 한국인 같은 여성들이 여럿 보였습니다. 배낭을 메고, 하나같이 머리에 천으로 된 정글모자를 썼는데, 당시 유럽에서 그런 모자를 쓴 사람들은 거의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곳까지 오는 다른 한국인들도 있구나”하는 반가운 마음에 서로 인사를 하고 보니, 그 분들은 학교 선생님들이었는데 그분들도 마찬가지로 로포텐 제도에 가려고 온 것이었습니다. 의기투합한 우리 일행은 함께 마트에서 연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연어가 엄청나게 비쌌는데, 거기선 연어 1마리를 살만 발라 포장한 상품이 1만원 정도 였음)를 비롯한 식료품을 사서 유람선을 탔습니다. 북해의 찬 바람을 가르고 로포텐 제도에 도착한 후 백야를 보면서 연어로 스테이크도 굽고, 샐러드 해 먹고, 연어 라면도 끓여먹은 후 캐러밴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북해의 바람을 가르며 로포텐 제도로 가는 유람선에

백야에는 새벽 3시 정도까지 온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드는데, 그 시간이 지나 5시 정도면 어두워지기보다는 하늘이 다시 밝아지면서 새벽이 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백야라도 잠을 자야하니 아주 두꺼운 커튼을 치고 잠을 잔다는데 우리는 백야를 감상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다음날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계속 졸아야 했습니다.

로포텐 제도에서는 원주민들이 벼룩시장을 열기도 하는데, 거기 걸려 있는 하얀 북극여우 가죽을 16만원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원주민들에게만 사냥을 허용한다는데 어머니 선물로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제 입장에선 비싸기도 하고, 올무로 잡느라 여우 발 하나가 없어서 마음이 좀 그렇기도 해서 결국 사지는 못했습니다.

로포텐 제도에서 나와서는 게이랑게르 피요르드에서 유람선을 타면서 유람선을 쫓아오는 갈매기들에게 빵을 던져주기도 했는데, 영종도 가는 유람선에서 던져준 새우깡을 잘 받아먹는 우리나라 갈매기들처럼 노르웨이 갈매기들도 빵을 뭉쳐 던져주면 잘 받아먹는 것을 보고 신이 나기도 했습니다. 브릭스달에서는 빙하기에 다 녹지 않은 빙하가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 캔디바 같은 색이어서 신기했는데, 가까이 하니 원래 하얀 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등산하다가 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는 것처럼 빙하가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시고 있는데, 지나가던 다른 여행객이 그 물에 수만년 전 빙하에 들어갔던 박테리아가 있을지도 모르니 마시지 말라고 해서 얼른 뜬 물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계곡 위로 올라가니 빙하 조각이 떨어져 나와 물에 둥둥 떠있길래 제가 얼른 위에 올라탔는데 빙하가 밑으로 쑥~ 가라앉았다가 다시 위로 떠올라서 주변 여행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저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노르웨이 여행을 하는 동안 정부가 카페, 유랑선, 마트 등 사방에 설치해 놓은 슬롯머신을 보면서 무료한 삶에 대한 위안거리라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 바로 앞에서 2번이나 큰 금액이 당첨되어 마트 쇼핑 바구니에 동전을 쓸어담는 것을 보고 당첨확률이 높다고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여행을 했던 형이 당첨 운이 있는 편이라길래 함께 돈을 모아 슬롯머신을 하기도 했는데(우린 당시 슬롯머신을 줄여 ‘땡김이’라고 부르기도 했음), 한번은 슬롯머신으로 약간의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여행경비에 충당하기도 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런던의 1만원짜리 빅맥세트보다 비싼 11,500원짜리빅맥세트를 파는 노르웨이를 여행하면서 저는 배는 다소 고프더라도 북유럽의 앞선 기술, 여유있는 삶의 태도, 수준 높은 공공인프라 시설에 감탄하고, 참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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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유럽배낭여행기 1

제가 성년이 된 후 최초로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은 군대를 제대한 직후인 2002년 여름이었습니다. 군대 말년 휴가를 나와서 비행기표와 여행준비를 다 한 후 제대 3일 후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가서 다시 사회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행 경비는 제가 어렸을때부터 모았던 돈으로 준비했는데, 대학생이다보니 돈을 아껴쓰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저렴한 한인민박집에 자주 묵었는데, 혼자 여행을 하던 때라 예약을 잘 하고 다니지 않아서 방이 없는 경우에는 소파에서 절반 정도 숙박료만 주고 자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유럽배낭여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도시와 국가를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을 잘 하는 것으로 쳐주던 시절이라, 45일 되는 기간 동안 영국,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을 이른바 반시계 방향으로 열심히 여행했습니다.

제가 유럽에 도착했을 때가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한 직후여서 유럽 여행 중에도 월드컵 응원을 하기도 하고, 이탈리아 갔을 때는 혹시 이탈리아 사람들과 축구 얘기하다가 싸우기라도 할까봐 이탈리아 대표팀 토티가 축구를 잘 한다고 칭찬하고 다녔던 기억도 납니다.

처음 혼자서 간 해외 배낭여행이라 인상 깊어서 그런지 지금도 여행 당시 있었던 일들이 많이 떠오르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 몇 가지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저의 파리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망쳐놨던 파리 뒷골목 불량배들이 생각납니다. 제가 런던에서 TGV를 타고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가는데 갑자기 10시 반도 안 됐는데 지하철 운행이 종료됐다면서 다 내리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왜 그 시간에 운행이 종료됐는지 의아하지만, 일단 내리라니 내렸는데 생판 모르는 지하철역으로 나와 보니 숙소와 너무 멀었습니다.

2002년에는 지금처럼 여행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가이드북에 의지해 여행을 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숙소를 찾아가려니 막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군대 제대 후 보름도 되지 않았던 때라 걷는 것 하나는 자신있어서 지도를 보면서 거리에 적힌 도로명과 맞춰가면서 대략 숙소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다 보니 지름길을 찾아간다고 뒷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사거리에 젊은 애들 여럿이 드럼통 주위에 둘러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고, 그 옆 10미터 정도에는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당시가 여름인 7월초였는데 드럼통에 장작을 넣어 태우면서 파리에서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앉아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진짜 송아지만한 개를 데리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ㅎ

어쨌든 나는 얼른 숙소로 가고 싶어서 동네 양아치(?) 같은 사람들을 지나쳐 경찰에게 숙소 방향을 묻고, 경찰이 알려준대로 다시 반대 방향으로 오면서 그 사람들을 지나쳐 오는데, 그 중 2명이 슬그머니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쟤들도 저는 집에 가려나 하고 그냥 내 갈길 가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 2명이 저를 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 모퉁이를 돌면서 슬ㅉ 보니 2명이 어슬렁어슬렁 저를 쫓아오고 있었는데, 그 중 1명은 머리 위로 자전거 체인 같은 것을 빙빙 휘두르면서 오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이 좀 웃기기도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걷는데는 자신이 있었던 저는 만일, 내가 뛰면 그 애들도 뛸 거 같은데, 달리기가 제가 더 빠를지 장담할 수가 없어서 일단 빨리 걷기로 했습니다. 일단 옆으로 메는 가방을 몸에 바짝 붙이고, 최대한 빨리 걷기 시작했는데, 제가 빨리 걷자 그 애들도 따라서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소리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빨리 걷자 그 애들이 따라오는 것이 힘들었는지 갑자기 영어로 F*** y**, G** D*** 등 큰 소리로 욕을 막 하면서 저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무한 직진만 했더니 결국 3분에서 5분 정도를 따라오다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좀 황당하면서 웃기기도 하고, 생각하기에 따라선 좀 무섭기도 한 일이라 저는 그 다음날 계획했던 파리에서의 나머지 일정을 포기하고 바로 파리를 떠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2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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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와인 모임

피아니스트 친구가 새로 피아노 학원을 열면서 하우스 콘서트를 개최했는데 저는 선약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 친구가 아쉽다면서 몇몇 사람들과 와인 모임을 진행하니 같이 보자고 초대를 했습니다.

중식당에서 나오는 코스에 맞춰 가져온 와인을 마시는 모임인데, 친구는 아끼던 샹볼 뮤지니 와인을 들고 왔습니다. 2016년 빈티지라 처음 개봉했을 때는 제대로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다 다른 와인을 마신 후 시간이 지나자 풍부한 향을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모임에서 처음 만난 인테리어 업체 대표님은 오스트레일리아 시라즈를 가져오셨는데, 밸리 플로어 시라즈로, 밸런스가 잘 잡힌 좋은 와인으로 느껴졌습니다. 과일향도 풍부하고, 특히 고기와 매우 잘 어울렸습니다.

저는 포트와인을 가끔 사는데, 이번에는 전에 잘 보지 못했던 OSBORNE의 루비 포트와인을 가져갔습니다. 일반적인 포트와인들에 비해 단 맛이 조금 더 강하고, 깊은 향은 덜 했습니다. 하지만, 기름진 느낌이 들어 달기만 한 것보다는 다소 나았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친구 덕분에 밤안개가 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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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서구 클래식 음반들

서구 클래식 음악은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이후 잘 듣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락음악과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었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오히려 풍물패에 들어가 우리 전통 음악인 풍물을 연주했습니다. 제가 다시 다시 서구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계속 시험에 불합격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시험으로 스트레스가 쌓일 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안정되어서였습니다.

그렇게 시험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클래식 음악을 듣는 시간도 늘어났고, 클래식 음악을 어느 정도 듣다 보니 다양한 작곡가의 여러 장르 곡들에 관심이 생겨 관련 도서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중고로 스피커, 앰프 및 CD플레이어까지 사서 음악을 듣게 되었고, 클래식 음반을 400장 가까이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 후에는 전처럼 자주 듣지 않았는데, 요새 다시 음반에 손길이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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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 방울의 달콤함

다양한 와인과 와인 소모품들

군대를 제대하고 3일 만에 비행기를 타고 떠난 유럽에서 만난 와인은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존재입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술은 술인 줄만 알던 저에게 술에 단지 알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노력과 자연의 손길이 합쳐지면 그 곳에 삶이 있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이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변호사가 된 후 소믈리에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역시 와인은 식품이라 너무 무겁고, 어렵게 다가갈 것이 아니라 일단 많이 마셔보는 것이 최고입니다.

단, 자기 주량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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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행의 동반자들

여행가방들과 여행용품들

가장 왼쪽의 등산배낭은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짊어지고 국내외를 누비던 시절에 함께 했습니다.

이베이를 통해 캐나다에서 중고품으로 구매했는데, 신품같이 깨끗해서 좋았고, 일단 배낭을 짋어지면 무게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몸에 밀착이 되어서 감탄했습니다.

최근 해외여행에 가지고 다니는 가운데 여행용 캐리어는 등산배낭을 메고 다니다보니 무리가 되어서 이제는 짐을 끌고 다녀야 되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구입했습니다.

짧은 여행시 가지고 가는 오른쪽 작은 배낭은 사법시험 준비하던 시절 책가방이었는데 이제는 짧은 여행의 동반자로 쓰고 있습니다. 튼튼하고 가벼워서 때때로 등산을 할 때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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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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