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항적 레이더 영상 공개와 법원의 증거채택 문제

법원에서 소송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법원이 민사사건의 정확한 사실관계 확정이나, 형사 및 행정 사건의 실체진실 발견에 너무 소극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사자가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변론주의 원칙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당사자가 증거를 신청하면 증거채택에 대해서는 잘 인용해주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당사자가 주장하는 쟁점과 관련 없는 증거 신청이 많아 재판이 지연되는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사건이 너무 많아 부담이 되니 빨리 재판을 끝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최근 한 행정사건 변론기일에서도 재판장이 저의 사실조회와 증거제출명령 신청에 대해 자신이 판단할텐데 사실조회는 왜 하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법리적인 판단은 법원이 하지만 다양한 증거자료를 통해 사실관계가 명확히 확정되어야 더 정확한 법리적인 판단이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변론하면서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를 일컬어 “신의 일을 대신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판사들이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은 신의 일을 대신 한다고 자신이 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판사는 신이 아니므로 판단에 있어 오류를 범할 수 있고, 그런 오류를 줄이기 위해 민사에서는 당사자들의 증거 제출을 원칙으로 하되 석명도 하도록 하며, 형사 및 행정사건에서는 직권주의가 가미된 소송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것임에도 자신의 무오류성을 과신하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세월호 사건 당시 세월호의 항적이 기록된 해군의 영상자료에 대한 증거보전 사건에서 법원에 영상자료의 제출을 신청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심문기일에 군사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경우 일부만 제출하고, 특히 해당 영상에 세월호 항적 관련해 문제가 되는지 법관이 비밀심리절차에 따라 확인하고 제출 여부에 대해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고, 법원에서도 고심 끝에 비밀심리절차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실제 영상 제출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후 절차에서 담당 법관이 해군으로부터 임시로 비밀취급인가를 받아 해군 지휘통제실에서 영상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비밀심리절차를 실제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당시 판사는 나름 자신의 권한 내에서 할 바를 다 했던 것입니다. 물론, 법원도 당사자가 신청하는 모든 증거를 다 채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맡았던 사건의 의뢰인들이 우리 사법부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불신은 소송지휘의 공정성에서 비롯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도 무리하게 증거 신청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모든 분쟁의 최종적 해결의 장이 법정이라면 당사자들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모두 법정에 현출시켜 다툴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만일 그랬다면, 설령 그 결론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승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이 자신이 신청하는 증거조차 받아주지 않는다면 당사자는 어떤 결론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의뢰인들이 변호사인 제게 가장 많이 묻는 말이 “이런 서면과 증거를 내면 판사님이 다 보시긴 하나요?”입니다. 저는 물론 “당연히 다 보시죠.”라고 답변하지만, 우리 사법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부끄러운 상황이 투영된 말입니다. 법관이 신의 일을 대신 한다면 최소한 당사자들이 재판 후 최선을 다해 다퉈봤으니 후회는 없다면서 혹시 지더라도 신만은 진실을 알 것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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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유족급여 지급은 언제나 제자리를 찾을까?

요새 신문에서 건설현장을 비롯해 제철소 등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분들의 기사가 자주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1만명당 발생하는 산업재해 사망자를 의미하는 산재 사망만인율이 OECD 국가 중 1위를 고수하고 있는데, 산재보험은 이상하게도 매년 수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산재처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거나, 산재로 처리해야 할 것을 공상으로 처리하여 보험금 인상을 기피하는 풍조에 기인한 것입니다.

제가 담당했던 사건 중 산업재해로 인한 유족급여 사건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에 근무하던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는데, 유족이 유족급여 신청을 하였지만 근로복지공단이 거부하였던 경우였습니다. 사망한 노동자는 원래 자신이 작업장에서 다뤘던 부품에 석면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생각해 이를 근거로 치료비를 청구했다 사망했고, 유족 역시 동일하게 주장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는 작업장을 실제 조사한 결과 당시 작업장에 석면이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어 다른 가능성은 따로 고려하지 않고, 유족급여 지급청구를 거부했습니다.

이후 제가 사건을 맡게 되어 관련 내용을 살펴보니 근로복지공단의 조사 결과처럼 작업현장에 석면은 없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렇다면 해당 물질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다가,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제적으로 석면보다 더 많은 폐암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결정체 산화규소(결정형 유리규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사망한 노동자가 실제로 작업했던 부품을 찾기 위해 전국의 중고부품사이트를 확인했고, 결국 10년 전에 생산된 해당 부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그 부품을 구매해 법원에 감정을 신청했고, 회사에서 동일하게 작업을 재연하는 현장감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부 부품에서 결정체 산화규소가 확인되었고, 그 측정치가 규제 기준치에 가까운 정도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사건을 의뢰하면서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유족은 남편이 사망하게 된 원인을 찾게 되었다면서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저도 중요한 고비를 하나 넘었다는 생각에 매우 기뻤지만, 이후 진료기록감정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 좋은 예감은 왜 잘 들어맞는 것인지, 재판부에서는 감정 결과의 신뢰성에 대해서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진료기록 감정 결과에서도 감정 결과 측정된 결정체 산화규소 및 기타 용접흄 등 유해화학물질이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제가 진료기록감정을 신청해 감정결과 회신이 왔는데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가 불리한 내용으로 감정결과를 작성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사망한 노동자의 직접적 사인인 폐암은 10년 이상의 잠복기가 있는데, 그 기간에 미달하는 기간 동안 결정체 산화규소에 노출된 것으로 보이고, 용접흄과 기타 폐암을 표적으로 하는 유해물질들도 복합적으로 폐암 발생의 원인으로 볼 근거가 부족한 반면, 사망한 노동자의 흡연력이 폐암 발생 원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감정결과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워 재판부에 기존 감정결과에 대한 보완 감정을 신청해 다시 회신을 받았으나, 오히려 기존 내용을 강조하는 회신만을 받았습니다. 그 회신 결과는 대법원이 최근 인정한 여러 유해물질들이 질병 발생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회신 내용을 받아본 저는 어이가 없어 감정의가 자신의 최초 의견을 고수하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실제 폐암의 발병 원인과 잠복기와 관련해 더 전문적인 조언을 구하고자 아버지의 지인인 의사분과 통화를 해서 감정과 관련한 내용을 물어봤습니다. 국내에서 호흡기내과학회 회장도 하셨던 의사분의 답변은 담배와 관련해서는 국내외 담배소송 과정에서 연구가 많이 되어 그 연구 결과는 있지만, 여러 유해물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이 되는지는 재현가능성이 낮아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그런 연구가 이루어지거나 그 결과가 발표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서면을 작성해 재판부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재판부도 진료기록 감정 결과가 너무 불리하게 회신되는 바람에 쉽게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못했고, 결국 패소하게 되었습니다. 의뢰인은 남편이 사망하고, 새로 직장을 다니면서 어렵게 생활을 꾸려나갔고, 어떻게든 남편의 사망 원인을 밝혀보려 했지만, 2년 가까이 진행되었던 1심에서 패소하자, 이제는 새로운 삶에 충실해야겠다면서 결국 항소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해당 사건을 하면서 저는 전문가로서 제가 하는 상담이나 자문에 대해 다시 한번 신중하게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료기록 감정을 했던 의사는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회신을 했을 것이지만, 자신이 틀릴 수 있고,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저 역시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100년 동안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와 그 가족이 모든 고통을 안고 가야 한다니… 이것이 진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에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사건 마지막 준비서면을 유족들의 상황과 우리의 법현실에 대해 이 사건 마지막 준비서면을  아래와 같이 진술하면서 마무리했습니다. 재판부에서 당시 어떤 고민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건에서 외면한 유족의 외침을 앞으로 다른 사건에서라도 좀 더 전향적으로 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몽테스키외는 자신의 저서인 ‘법의 정신’에서 “최악을 두려워해 소악을 방치하고, 최선을 의심해 차선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발암 잠복기가 길지 않은 원고의 사례가 혹시 다른 사건의 선례가 될까 하여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원고를 비롯한 망인과 가족들에게 모든 고통을 지우는 것으로 소악을 방치하는 것이자, 폐암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의과학적 인과관계를 의심하여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최선의 길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미 제시된 많은 증거자료들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를 고려하시어 재판부에서 원고와 그 가족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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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서버 이메일의 압수수색 문제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관련 판사들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과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해 다투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위와 같은 내용들은 기존 국가보안법 사건 등 공안사건에서 변호사들이 지속적으로 다툰 결과 정립된 법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동변호인단으로 참여했던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도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을 다퉜는데, 검찰이 공소장에는 공소사실만 적도록 한 형사소송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공소장에 범죄사실이나 양형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주로 판사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사건의 무게를 강조해서 판사들에게 부담을 주기 위함이기도 할 것인데, 어쨌든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은 잘 인정되지 않는 경향입니다.

사실 그보다 훨씬 법리적으로 치열하면서도 판사들도 실무상 엄격하게 다루는 것은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한 부분입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민형사, 행정 등 대다수 사건에서 법원에 제출되는 카카오톡 메시지, 문자 메시지를 비롯해 이메일 등 상당수 증거들이 디지털 증거들입니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에는 국디지털포렌식센터를 만들어 대응할 정도로 형사소송법상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과 관련한 내용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디지털 증거와 관련해서는 원본과 사본의 동일성, 증거가 수집된 후 폐기시까지 오염되지 않아야 하는 무결성, 원본 및 원본을 이미징한 사본 보관의 연속성이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해외에 있는 서버의 이메일을 국내에서 서버에 접속해 디지털 정보를 가져와 압수수색한 경우 증거능력이 문제된 것입니다.

당시 제가 이 부분에 대한 의견서를 담당했는데, 최초 접근은 국가의 형사재판관할권과 관련된 내이었습니다. 즉, 국내가 아닌 해외에 있는 서버에 저장되어 있는 이메일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형사재판관할권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해외 서버에 위 이메일이 존재하는 한 국내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 위 이메일에 대한 강제처분을 하더라도 이는 재판관할권이 없는 영역에 대한 것이어서 압수수색영장이 무효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위 이메일을 확보하려면 해당 서버가 존재하는 국가와 형사사법공조를 통해 현지 사법당국이 압수한 이메일을 넘겨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효인 압수수색영장에 기해 확보된 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이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학계와 실무의 대다수 논문들이 이와 동일한 내용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그 작성자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부장검사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당시 공판기일에 출석해 다른 사안에 대해서 검찰에 유리한 증언을 했던 교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내용은 국제법상 역외 관할권 관련 문제와 밀접하기 때문에 미국과 EU의 기존 판례들도 함께 언급하면서 다퉜는데, 특히 미국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아일랜드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이 적법한지에 대한 사건에서 그 압수수색이 적법하지 않다는 미국 뉴욕 연방항소법원의 판결문도 핵심 부분을 발췌 번역해 함께 제출하였습니다.

당시 제출한 의견서에는 위와 같은 내용 이외에도 해쉬값을 통해 원본 동일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 그 이메일 내용의 공유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 여러 주장이 함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위와 같은 내용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제 의견을 받아들여 해당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고등법원 판결이 나오자 해외 서버에 저장되어 있는 이메일 등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및 그 방법에 대한 최초 판결이어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위 판결에 대해 관련 학회에서 논의가 되고, 위 판결과 다른 판단을 한 이후 다른 사건과 비교하는 논문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는 압수수색영장의 효력을 인정하였지만,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형사소송의 특성을 반영해 해당 공소사실에 대한 무죄를 유지하였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 이후 미국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동일한 사안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는데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도 계속적으로 논쟁만 있다가 미국내 전자통신프라이버시법 개정으로 사실상 역외 관할권을 인정하게 되면서 심리기각되어 사건이 그냥 종료되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마지막까지 판단을 했다면 우리 대법원의 판결과 비교해 보면서 법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2년 정도 다양한 쟁점에 대해 다퉜던 사건이 종결되고, 검사가 12년 구형을 했는데 최종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이제는 형을 마치고 석방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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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고수익의 유혹과 유사수신행위

우리가 소위 피라미드 사기라고도 부르는, 피라미드 조직을 만들어 투자금을 모집한 후 부당이득을 얻고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안기는 행위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또는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유사수신행위의 피해자를 대리해 손해배상소송을 하기도 했고, 유사수신행위의 피의자를 변호한 적도 있는데 그러한 구조를 떠받치는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요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폰지 사기(Ponzi scheme)이라고도 부르는 실제 이윤 창출 없이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인 경우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미한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구조는 보통은 투자 권유를 하면서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보다 매우 큰 수익을, 제3자가 생각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큰 수익을 약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도저히 유지될 수 없는 사업구조를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대리했던 손해배상청구 사건은 의뢰인이 종교 공동체를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봤던 경우인데, 처음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권유를 받고 소액을 투자했더니 실제로 몇달 많은 수익을 받게 되자 투자금액을 점점 늘렸다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큰 손해를 본 사례였습니다. 자신의 기대보다 큰 수익을 받게 되자 욕심이 생겨 자신들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도 함께 투자를 하자고 하여 더 큰 손해가 난 경우였습니다.

당시 투자했던 사람들이 수천명에 달하고, 피해액만 수백억에 달한 사건이었는데, 결국 피라미드 조직의 핵심 간부들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의뢰인은 자신에게 투자를 권유했던 핵심 간부의 부인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인데, 실제로는 그 부인도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습니다.

제 의뢰인은 쉽지 않은 소송이라는 설명에도 자신의 손해를 전보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진행하길 원했기에 소를 제기하였으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데다 손해와 인과관계, 이익을 누가 얻었는지 등 입증자료가 부족해 안타깝게도 결국 손해배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언론기사에서도 전국에 수천명 피해자들이 존재한다고 했고, 제 의뢰인 말로는 피해자들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증거로 설득해야 하는 재판에서는 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유사수신행위 사건을 하다보면, 유사수신행위 사건의 가해자는 때로는 그 자신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어떤 가해자들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피해자인양 행동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사실관계가 아닌 그 밑바탕에 있는 근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제출할 수 있는 증거도 별로 없고,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최종적 판단이 오히려 진실과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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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정치적 박해로 인한 인도적 체류 허가

제가 국내에 체류하는 난민들에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구성했던 난민구금 TF에 참여하게 되면서였습니다.

처음 수행했던 사건은 2013년말부터 동남아시아의 소수민족 출신으로 종교적,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신청을 하였는데, 증거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은 난민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난민신청자는 난민신청이 거부되어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었고, 화성외국인 보호소에 보호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사건은 이전부터 난민소송 조력을 해오셨던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님과 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와 함께 진행했는데, 국적국의 주류 민족이 소수민족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데다가 서로 종교도 달라 제 의뢰인이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결국, 제 의뢰인에게 종교 활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고, 사원을 파괴하는 등 박해의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이에 제 의뢰인은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였다가 정부의 눈을 피해 우리나라로 피신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의뢰인의 난민지위인정 신청이 거부되었고, 행정소송 1심과 항소심에서도 증거가 부족하고, 여권에 기재된 성명의 동일성 여부가 문제된다는 이유로 패소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 제 의뢰인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3년 가까이 보호(사실상 구금)되어 있었는데, 자신이 겪는 시련도 신이 내린 것이라면서 50이 가까운 연세인데도 인내심을 갖고 잘 견뎌내었습니다. 또한, 제가 면회를 가면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힘들텐데도 항상 웃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해서 종교인이라 뭐가 다르기는 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후 저와 박영아 변호사님은 의뢰인과 의논해 난민신청을 다시 하기로 하였고, 다행히 이의신청 단계에서 법무부 난민위원회가 난민지위는 인정되지 않지만 국적국으로 귀국시 박해의 위험은 있다며 인도적 체류허가는 허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제 의뢰인은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후 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해제되어 제 법인 사무실 앞까지 오셨는데, 가장 먼저 한 얘기는 너무 고맙고 제게 신의 은총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외국인보호소 밖에서 보니 더 반갑다고 축하인사를 건넸고,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유엔난민기구(UNHCR)과 난민지원단체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제 의뢰인은 이후 난민지원단체에 잠시 머물다가 종교활동을 하면서 인연이 있는 종교시설로 옮겨가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한동안 제 의뢰인의 국적국 국가정황이 호전되어 제 의뢰인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는데, 안타깝게도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되어 제 의뢰인은 앞으로도 국적국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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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권판결에 대한 불복의 소 사건

제가 변호사가 되면서 다양한 사건을 해보고 싶었고, 실제로 다양한 사건들을 다뤄봤지만, 솔직히 제권판결에 대한 불복 사건을 하게 되리라고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사건 의뢰를 받기 전에는 제권판결과 관련된 내용이나 법적 절차도 상세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제권판결이란 유가증권이 도난, 분실 등 사유가 있는 경우 법원의 판결로 그 증권의 효력을 무효화시키는 것인데, 제 의뢰인이 이전에 인수한 유가증권에 대해 발행인이 이전에 제권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

발행인이 제 의뢰인의 채무자가 소지하게 된 해당 유가증권을 잃어버렸다면서 제권판결을 받았는데, 위 채무자는 제 의뢰인에게 돈을 차용하면서 위 유가증권을 담보로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가증권을 중간에 소지했다가 제 의뢰인의 채무자에게 배서해 양도한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그 사람의 행방이 묘연한데다 금융기관에서 개인정보라는 것을 이유로 인적사항을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유가증권에 배서되어 있는 주소나 전화번호로도 배서인을 찾기가 힘들어 고민을 하다가 제가 전에 사법연수원 시보 시절 실무수습을 했던 금융감독원의 절차를 이용해보기로 했습니다.

금융감독원에는 일반 국민들이 은행 등 금융기관과 관련한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원 등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무수습 당시 같이 근무했던 금융감독원 소속 직원에게 관련 내용을 문의했더니 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을 듣고, 민원 서류를 작성해 접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법원에서 절차를 진행했더니 은행에서 급하게 관련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일단 해당 정보를 받고 난 후 의뢰인과 의논하여 유가증권을 무단으로 양도했던 사람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법적인 문제가 있으니 해결을 위해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 제 사무실로 전화가 왔는데 전화를 한 사람은 유가증권을 양도했던 사람의 남편이었는데 자신의 아내가 과거 유가증권을 주워 양도했던 것이 맞다고 하면서 아내가 매우 두려워한다면서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했던 가족이 있던 아내가 유가증권을 우연히 주웠는데, 잘못인 줄 알면서도 유가증권을 돈을 받고 넘겨 수술비를 마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아내는 언젠가는 그 유가증권과 관련해 자신을 찾아올 것을 알고 10년 넘게 불안해했다는 것인데 자신에게도 내용증명을 받고서야 울면서 얘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얘기를 듣고 의뢰인과 상의해서 우리의 목적은 채무자로부터 받은 유가증권의 원리금을 받는 것이 목적이지 그 유가증권을 마음대로 처분한 사람을 형사처벌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리금에 해당하는 금원을 준다면 더이상 과거의 일은 문제삼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에 남편이 해당 금원을 마련해와서 합의서를 작성하고, 결국 의뢰인 입장에서는 목적을 달성했기에 재판도 종결시키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건을 시작할 때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금융감독원의 민원 절차를 거쳐 생각보다 수월하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가족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의 유가증권을 함부로 양도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로 인해 10년 넘는 시간을 불안에 떨며 살았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고, 내용증명을 받자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법적인 책임을 지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래도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데 상황 때문에 한 순간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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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식칼과 살인 미수

사법연수원생들은 보통 연수원 2년차에 검찰, 법원 및 법무법인 등에 실무수습을 위해 시보를 나가는데, 제가 서울의 한 법원에 시보를 할 당시 국선변호인으로 변호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변호인으로는 처음 맡은 사건이어서 더욱 기억이 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건 당시 제가 맡았던 사건의 피고인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조리를 하던 중 술에 취한 손님이 시비를 걸자 귀가하라고 3, 4차례 계속 돌려보냈는데도 손님이 포장마차 밖에서 계속 행패를 부리자 이를 말리려고 포장마차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포장마차에서 나올 때 조리 중이라 무의식 중에 식칼을 들고 나왔는데, 손님을 돌려보내고 돌아서서 포장마차로 돌아오던 중 손님이 오히려 피고인을 쫓아와 폭행을 당하게 됐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손님을 제지하려고 부둥켜 안는 과정에서 손님이 식칼에 복부를 찔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피고인으로서는 매우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경찰은 피고인을 살인미수로 체포하고, 검사는 중상해로 기소한 후 살인의 고의까지 주장한 사건인데, 당시 사법연수생인 제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 맡겨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살인미수로 긴급체포되어 구속된 피고인을 접견하고, 당시 상황에 대해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피고인의 상황 설명을 듣고보니 피의자 신문조서 및 참고인 진술조서 내용이 서로 모순되고, 피고인이 왼손잡이여서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의 상처부위를 찌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그렇게 변론을 했습니다.

다행히 제 변론이 받아들여져 피고인의 살인의 고의까지는 인정되지 않고, 피고인은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아 석방되었습니다. 석방 이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피고인이 고맙다면서 자신의 여자친구와 같이 식사를 하자고 찾아왔는데, 함께 식사를 한 후 명품 넥타이를 선물이라며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고맙지만 국선변호인이라 추가적인 금전이나 금품은 받을 수 없다면서 선물은 거절하고, 앞으로 두 분이 혼인을 하신다니 축하의 의미로 내가 식사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미안해서 계속 그럴 수는 없다고 하던 피고인이 고맙다면서 나중에 자신의 포장마차에 찾아오면 안주를 잘 대접하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었습니다. 저는 이후 피고인이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있었던 곳 주변을 지나가면 그 약속이 생각나 한번씩 찾아보곤 했는데 이상하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정도 지난 어느 날 피고인의 여자친구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피고인이 죽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제가 국선변호를 맡았던 1심 이후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달라져 실형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피고인은 교도소에서 사건 당시 다쳤던 다리의 증상이 악화되고, 출소 후에도 몸이 불편해 병원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자친구와 혼인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비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왔던 피고인이 하늘에서라도 아무런 걱정없이 안식을 얻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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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다투다

이 곳에서는 제가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맡았던 민사, 형사 사건 등 소송과 관련된 내용이나, 업무와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할 생각입니다.


제가 다뤘던 사건들의 경우는 개인정보보호나 의뢰인과의 비밀유지를 위해 상세한 내용이나 신상과 관련한 내용은 기재할 수 없지만, 사건의 개략적인 내용을 위주로 기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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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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