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투어를 갔더니 피곤해서 그런지 숙소에서 늘어지게 잔 후 가벼워진 몸으로 일어나 여유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조식으로 나온 음식의 플레이팅이 예뻐서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식사로 눈과 배가 기대치보다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날은 아내와 느긋하게 시내를 돌아다니며 지역 맛집들을 탐방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간 곳은 빵을 좋아하는 아내가 일찌감치 찍어 놓은 베이커리 카페였습니다. 가는 길에 더위가 심해서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좀 시간을 보내다가 밖에 있는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서 아내와 얘기를 하며 빵을 먹었습니다. 빵 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인기가 많은 곳이라 자꾸 사람들이 옆에 기다리고 있어서 서둘러 일어나 다시 쇼핑몰이 있는 시내로 향했습니다. 쇼핑몰에서 아내 귀걸이를 하나 사주고, 최신 인테리어의 카페에서 인기 있는 음료를 마시며 음악을 듣기도 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긴 후 Na Nirand란 이름의 다른 리조트로 옮겼습니다. 새로 옮긴 숙소가 마음에 들어 아내와 함께 숙소 내부를 돌아다녔습니다. 방도 마음에 들었지만 정원에 제가 좋아하는 큰 나무가 있어서 기념으로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수령이 무려 100년이 넘은 나무로 이 리조트를 처음 지은 사람이 심었다고 하는데, 이후 세월이 흘러 이 곳의 상징이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날 저녁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 후 일찍 자고, 다음날 또 다른 투어를 위해 체력을 비축했습니다. 다음날 아침부터 차를 타고 출발해 치앙마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사원을 찾았습니다. 사원은 다양한 불상과 건물, 불화 등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다만, 처음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야 한다고 해서 신발과 양말을 다 벗긴 했는데 비가 계속 와서 나중에 다시 양말을 신을 때 좀 찝찝한 기분이 들긴 했습니다. 그래도 저 멀리 안개 사이로 보이는 치앙마이 시내의 전망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번에는 치앙마이에 있는 태국 왕실의 여름 궁전을 방문했습니다. 이 곳은 장미 정원을 비롯해 궁전 건물보다는 궁전을 둘러싼 정원이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아마 태국 왕실도 여름에 덥고 습한 방콕보다는 기온도 시원하고 뽀송뽀송한 느낌이 드는 치앙마이가 좋을 것 같았습니다. 슬슬 정원을 걷다가 다양한 색상의 장미꽃도 보고, 조각상도 보면서 산책하며 여유를 즐겼습니다.
오전에 투어를 빨리 마치고, 오후에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아내는 망고주스를, 저는 좋아하는 수박주스를 마시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머물던 숙소에는 한가운데 수영장이 있었는데 선베드가 있어서 여유있게 아내와 함께 물에 들락날락하며 햇살도 즐겼습니다. 수영장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니 배가 고파져서 슬슬 옷을 챙겨입고 숙소 주변의 야시장을 찾았습니다. 북적북적한 야시장을 둘러보다가 굴전과 치킨볶음밥을 사서 아내와 함께 나눠 먹은 뒤 모기에 쫓겨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수영장에 숙박객이 아무도 없어서 낮에는 찍지 못한 멋진 수영장 사진 한 장을 건져서 객실로 들어갔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이 되니 머물렀던 숙소의 주변 풍경이 멋져서 그냥 체크아웃을 하기 아쉬웠습니다. 조식을 먹고 아내와 함께 정원을 둘러보면서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되면 가족들과 함께 와서 묵어가자고 얘기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얘기를 한 후 숙소 옆을 유유히 흐르는 물결이 아름다워 추억으로 사진을 남겼습니다.
숙소를 떠나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방콕을 방문한 것이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이런저런 변화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숙소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식당이 있어 들어갔는데, 가수가 기타를 치면서 라이브 음악을 하는 곳이었는데 꽤나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마침 신청곡도 받고 있어서 태국의 마지막 밤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술도 한잔 기울이며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방콕에서는 아내와 함께라 전에 다녔던 곳과 좀 다른 곳들로 찾아다녔는데 쇼핑몰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쇼핑몰은 제가 좋아하는 망고스틴을 사기 위해서였는데, 여러 곳을 가봐도 제철이 아닌지 통 망고스틴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건조 망고스틴 한 봉지를 대신 사고, 전에 사먹지 않았던 두리안을 골라봤습니다. 연유와 두리안을 쌀밥에 섞어 먹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별로 냄새도 나지 않고 맛이 아주 좋아서 놀랐습니다. 남은 태국 바트화로 마지막 저녁식사도 푸짐하게 한 후 아내와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총총총 떠났습니다.
태국의 제2도시인 치앙마이(Chiang Mai)는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태국을 3번 정도 여행하면서 항상 방콕을 통해 입국했기 때문에 북부에 있어 거리가 먼 치앙마이까지 가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방콕보다 여유가 있고, 란나 왕국의 문화를 물려받은 치앙마이는 은근히 마음을 당기는 여행지였습니다. 아내가 여름 휴가를 가자고 해서 적당한 후보지를 고르다가 동남아시아에서 너무 덥지 않고, 덜 붐비는 곳으로 적당해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마음 먹고 방콕을 거쳐 치앙마이로 향했습니다. 숙소도 주로 작은 부티크 호텔로 정해서 치앙마이 고유의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처음 도착한 곳도 하얀 색 외관에 섬세한 조각으로 치장된 부티크 호텔입니다. 오랜 시간 비행에 지쳤는데, 친절한 호텔 직원들의 미소와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애프터눈 티세트에 고단함이 확 풀렸습니다. 시원한 음료수와 각종 케이크로 배를 채운 후 호텔 수영장에 가서 더위를 식혔습니다.
방안에 들어가 짐을 푼 후 주변에 있는 사원을 찾아갔습니다. 아내가 사원을 보고 싶다고 해서 좀 늦기는 했지만 유명한 사원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밤이라 오히려 방문객들이 없어 좋았는데, 조명에 비친 개금된 불상과 도금된 벽장식이 화려하면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원을 다 돌아본 후에 사원 밖으로 나갔더니 사거리에 허리에 띠를 두른 세 왕의 조각상이 서있었습니다. 과거 수코타이, 파야오, 란나 세 왕국의 왕들이 평화협정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밤이 되니 기온도 낮아 시원했고, 사람들도 적어 한적한 거리를 산책하다 숙소에 들어와 쉬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미리 예약한 현지 투어를 갔습니다. 다국적 여행객들이 미니 버스에 타고 미리 예정된 관광지들을 도는 것이었는데,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곳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목적지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이었는데, 첫번째로 와치라탄 폭포에 갔습니다. 저는 마침 우의를 입고 갔는데, 바람에 날리는 폭포수가 너무 거세서 하마터면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가 될 뻔했습니다. 폭포 앞에서 안개로 인해 생긴 무지개도 봤는데 이렇게 가깝게 무지개를 본 것은 오랜만이었습니다.
폭포 옆 계단을 오르다가 오른쪽 발목을 살짝 삐기도 했는데, 여행 중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다행히 투어 당일 트레킹에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사람 크기만 한 바나나잎을 헤치며 걸어가니 다시 멋진 폭포가 나왔습니다. 다시 길을 걷다 보니 다시 멋진 폭포가… 나왔고… 그렇게 사진을 찍다 걷다 하다가 마침내 널찍하게 계단식 논이 펼쳐진 탁 트인 공간으로 나왔습니다. 온통 녹색으로 아래까지 펼쳐진 논이 참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논둑길을 걸어 내려오니 반갑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얼른 차에 올라 이번에는 소수 민족인 화이트 카렌족 마을로 향했습니다. 마을에 도착해 현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한 잔씩 마시며 얘기를 들어보니 그 마을은 과거에는 아편을 재배해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었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돌아가신 국왕이 커피와 차 묘목을 재배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서 이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커피와 차를 판매하고, 해외에 수출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업으로 화려한 패턴과 색감의 수제 옷감도 지어 팔고 있었는데, 저와 아내는 원단 가게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강아지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소수 민족 마을을 떠나 다음 목적지인 태국의 최고봉으로 향했습니다. 고도가 100m 높아질수록 0.5도씩 기온이 떨어지는 원리에 따라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의 최고봉은 열대인 태국답지 않게 춥고, 안개가 많이 낀 곳이었습니다. 안개 때문인지 나무와 조각상에는 이끼가 가득했는데, 예상보다 추워서 벗었던 겉옷을 다시 입어야 했습니다. 정상부를 둘러본 후 호텔로 오는 길에 저와 아내는 미리 저녁식사를 예약해둔 식당 근처에서 따로 내렸습니다. 적당한 시간에 도착한 식당에서 진저 에일에 망고와 스테이크를 먹고, 하루의 피로를 푼 후 호텔로 돌아와 노곤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와이너리에서 돌아온 후 엑상 프로방스에서 마지막 날을 보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몇번 지나가는 동안 봤던 엑상 프로방스 대성당에 들렀습니다. 엑상 프로방스도 역사적으로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라 대성당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았습니다. 아내와 대성당 안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갑자기 바이올린과 오르간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만보니 원래 공연 일정이 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연주를 듣고 있자니 천장에 소리가 잘 울려서인지, 은은한 조명 덕인지 뭔가 마음도 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 배가 슬슬 고파져 대성당을 떠나 주변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엑상 프로방스가 대학교가 많은 도시라 그런지 대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은 햄버거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먹음직스럽게 보여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프렌치 프라이도 곁들여 나왔는데 양도 푸짐했습니다. 엑상 프로방스의 명물인 분수에 들러 엑상 프로방스를 떠나기 전에 기념 사진도 하나 찍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엑상 프로방스를 떠나 프랑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 도시인 마르세유로 향했습니다. 어렸을 적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의 주인공 고향이자, 제가 좋아했던 컴퓨터 게임인 대항해시대에서 지중해 연안 프랑스 남부의 주요 도시로 설정되어 있는 마르세유는 현재도 프랑스 제2의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혼여행의 마지막 숙박이라 아내가 좀 무리를 해서 마르세유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잡았는데, 마르세유 항구가 바라보이는 18세기에 건축된 유서깊은 건물로 내부 인테리어나 외부 조경이 모두 훌륭했습니다. 특히 호텔 포토존에서는 마르세유의 상징인 대성당을 한눈에 조망하고 있었습니다.
호텔 리셉션에서 아비뇽 호텔에 놓고 온 물건이 우편물로 왔는지 확인했더니 다행히 그날 오전에 도착했다고 제게 물건을 건네줬습니다. 여행 동안 가슴 한켠에 있던 걱정거리가 해결되서 마음 편히 호텔을 나와 마르세유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가까운 곳에 있는 롱샴 궁전에 갔는데 계획과 달리 막상 도착하고 보니 박문관과 미술관들이 모두 휴관 상태였습니다. 애써 찾아왔는데 맥이 풀렸지만 햇살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풀밭에 누워 여유를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잠시 햇살을 즐기다가 이번에는 마르세유 항구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마르세유 항구에 가보니 생각보다 요트들이 많아서 놀랐고, 오래된 구시가지라 그런지 거리도 좀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마르세유에 왔으니 여기에서 유명한 부야베스를 한번 먹어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서 간신히 문을 연 곳을 찾아 부야베스를 주문했습니다. 가만 보니 이 식당도 지역에서 유명한 맛집이었는데 다양한 해산물이 들어 있는 스프라 맛이 괜찮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주변 술집에 들러 마지막 밤을 기념해 아내와 술 한잔 하고 숙소에 들어가 푹 쉬었습니다.
공항에 가기 전에 마르세유 대성당을 구경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대성당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예전에 방문했던 제노바 성당처럼 화려한 황금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한 색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이했던 것은 이 곳이 항구라서 그런지 배를 수호하는 성모마리아상이 세워져 있고, 천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선박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마르세유 시 전체 전망이 쫙 펼쳐져 있어서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는데, 망원경으로 보니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에서 당테스가 갇혀 있던 이프섬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풍경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신혼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르세유 공항에 도착했는데, 마르세유 공항의 천장 인테리어가 독특했습니다. 마르세유의 푸른 지중해와 같은 색상에 천장 가득 비춰드는 햇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출국 수속을 위해 항공사에 가서 탑승권을 발급받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항공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PCR 검사 증명서를 달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다시 확인해달라고 했더니 한국에 귀국할 때 PCR 검사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무슨 날벼락인가 해서 다시 알아봤더니 대한민국에 입국할 때 격리는 없지만 해외에서의 PCR 검사 증명서는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미리 PCR 검사를 받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출국할 수 없어진 것입니다… ㅜㅜ
걱정이 많아진 아내를 잘 위로해 다시 항공권을 찾아보니 다행히 이틀 후 니스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왕 이렇게 된 바에는 아내가 가장 좋아했던 니스로 다시 돌아가서 일정이 바빠 가지 못했던 마티스 미술관도 가고, 다른 곳들도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서둘러 공항에서 PCR 검사를 받은 후 렌트카를 반납했던 사무실로 돌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다시 차를 빌리려고 하니 이제는 하이브리드카만 남았다고 해서 얼른 그것이라도 빌렸습니다. 2시간 반 동안 정신없이 고속도로를 달려 니스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저녁을 먹었는데, 프랑스에서 마침내 크림 브륄레를 먹어서 다소 위안이 됐습니다.
다음날은 마티스 미술관에 갔습니다. 지난 번에 방문했던 도시라 도심에서는 주차가 어렵다는 교훈을 이미 얻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렌트카는 호텔에 두고 시내버스를 타고 가볍게 이동했습니다. 마티스 미술관은 기대처럼 멋진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마티스의 자화상 같은 회화 작품이나 강렬한 원색의 면직물 같은 작품도 좋았지만 얇은 십자가 조각상이 특히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태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마티스 미술관을 나와 옆에 있는 공터에 갔는데 그 곳은 오래된 유적지 같았습니다. 로마시대의 유적지인 원형 경기장이나 극장 같았는데 곳곳에 이런 유적이 남아 있다니 프랑스도 이탈리아처럼 조상들의 덕을 좀 보는 듯 합니다. 시간이 좀 있어서 도심에 있는 라기올이라는 나이프 전문점에 들렀습니다. 저는 예전에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괜찮은 소믈리에 나이프를 하나 갖고 싶었지만 가격이 좀 비싸서 망설이다가 이번에 프랑스 현지에 와서 구입을 하게 됐습니다. 다 좋아 보여서 한참을 고르다가 손잡이가 스네이크 우드로 된 것이 마음에 들어 선택을 했습니다.
늦은 오후가 되자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그런지 저와 아내 모두 배가 고팠습니다. 전에 니스에 왔을 때 예약을 하지 못해 가지 못한 해산물 전문점이 있었는데 아내가 좋아하는 굴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예약을 할 수 있어서 시간을 맞춰 식당을 찾았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굴과 새우 등 음식들을 주문한 후 추천을 받은 화이트 와인과 함께 먹어 보니 우리나라에서 먹은 굴보다 바다의 향이 더 강하게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만찬을 마지막으로 의도치 않게 추가로 얻은 이틀의 휴가를 즐긴 후 다음날 저와 아내는 마침내 PCR 검사 증명서를 가지고 니스 공항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마음에 들었던 니스를 떠나는 것이 아쉬웠는지 니스 상징물 앞에서 기념 사진도 하나 찍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는 진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ㅎㅎ 처음에는 떠나기 아쉬웠지만, 막상 한번 발목을 잡혀 프랑스를 떠나질 못하니 비행기가 이륙을 할 때 기분이 묘했습니다. 앞으로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안녕~~
앙티브에서 유명한 곳 중 피카소 미술관이 있습니다. 피카소가 노년을 보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인데 예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피카소 특별전을 관람할 때 봤던 피카소의 화풍 변화이 흥미로웠습니다. 피카소의 작품은 영감을 주는 여인들이 바뀌면서 함께 변해왔는데, 앙티브는 마지막 작품 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미술관은 전날 저녁 식사를 했던 식당이 있는 거리 옆에 있었습니다. 해산물이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오징어 링 튀김과 생선 구이로 식사를 한 후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피카소 미술관에 가보니 박물관 바깥은 코로나로 관광객들이 없어 한산했습니다. 미술관 안에 들어가 보니 영국에서 온 노인들이 많았는데, 앞에 깃발을 든 가이드가 있는 것을 보니 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단체 관광을 온 것 같았습니다. 아시아에서 단체 관광을 오지 않으니 유럽 다른 나라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전시실을 보니 며칠 전 갔던 샤갈 미술관보다 다양한 작품들이 많아서 좋았는데, 야외 전시 작품들과 바닷가의 풍경이 특히 환상적이었습니다.
미술관 관람을 끝낸 후 기념품 샵을 보다가 아내가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다고 해서 작은 판화 작품을 하나 샀습니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이 나는 것을 보니 시대적으로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피카소의 청색 시대 작품들이 생각났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액자에 넣어 놨더니 액자와도 잘 어울려서 맘에 들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보니 미술관 옆에는 성당도 하나 있었는데, 철근으로 만든 십자가가 인상적이어서 안으로 들어갔더니 환한 햇빛으로 빛내는 스테인드 글라스 속에 예수님이 두 팔을 벌리고 내려오는 모습이 왠지 모를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피카소 미술관을 나와 프랑스인들의 휴양지라는 별칭에 걸맞게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던 앙티브에 이별을 고했습니다. 차를 몰고 이번에는 물의 도시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엑상 프로방스에 도착했습니다. 엑상 프로방스의 첫날 저녁은 Mickael Feval이라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했습니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앙티브에서 출발하기 전에 예약해서 갈 수 있었다는 것은 코로나로 힘들게 여행을 가던 시기에 누린 예상치 못한 호사이기도 했습니다. Mickael Feval 레스토랑은 특히 모던한 내부 인테리어가 멋지긴 했는데, 서비스는 다른 미슐랭 레스토랑들에 비해 좀 떨어져서 다소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주변을 구경하다가 관광객들이 많은 광장을 지났는데,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얼른 들어갔습니다. 이 가게는 프랜차이즈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다른 곳보다 더 다양한 아이스크림 종류가 있어서 맘에 드는 걸 골라서 아내와 나눠 먹으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종일 많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저녁 식사도 든든히 먹었더니 아내와 저는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제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와이너리 투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프랑스 루아르 지역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했는데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에 이번에 아내와도 함께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가기로 한 와이너리는 Chateau La Coste라는 곳이었는데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다가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어 좀 헤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와이너리에 도착해 안내도를 보니 생각보다 큰데다가 다양한 조각품이나 건축물이 많아 기대가 커졌습니다. 처음 마주한 정문도 안도 타타오의 작품이라 감탄을 하면서 안내도에 있는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다녔습니다.
쭉 펼쳐진 포도밭을 따라 걷다 보니 예쁜 돌다리가 하나 나왔습니다. Laurence Neufeld라는 건축가의 2013년작 ‘DONEGAL’이라는 작품이었는데, 다리의 아름다운 곡선이 고창 선운사의 다리 같이 우아했습니다. 다리가 마음에 들어 다리 위를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안도 타타오의 작품인 의자가 또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금속판으로 만든 작품이었는데, 천장도 있어서 비가 오더라도 가만히 앉아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 위로 올라가니 겉에는 무덤 같고, 내부는 새둥지 같은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외장은 석재로 되어 있지만 안은 나뭇가지로 벽을 따라 촘촘하게 쌓아둬서 상당히 아늑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니 작은 미로처럼 벽돌벽이 높이 쌓여 있었는데, 안에서 말을 하면 메아리처럼 크게 울렸습니다. 안에서 아~ 아~ 하며 아내와 장난을 치다가 다시 다음 작품으로 이동했습니다. 나무로 된 집이나 투명 유리 주택도 있었는데 안에 있는 그림도 볼 수 있었습니다.
걷다 보니 반갑게도 우리나라의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돌이 박석 위에 놓여 있고, 마치 그림자 형상의 검은 색 자갈들이 아래에 깔려 있었는데 해시계처럼 태양이 주위를 돌면서 특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한번은 맞는다고 했는데, 이 해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언제인지도 궁금했습니다. 더불어 안도 타다오나 세계의 유명 작가들과 함께 이우환 화백도 멋진 작품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제 우리나라의 예술가도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와이너리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안도 타다오 작품인 예배당을 찾았습니다. 아담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운 건물 벽 사이의 공간을 통해 들어오는 십자가 모양의 햇빛이 작은 공간을 채워줬습니다. 엄숙함이 깃들어 있는 공간에서 고요함을 느끼다가 밖으로 나오니 마당에 빨간 공을 연결해 놓은 듯한 예쁜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예배당을 본 후 다른 작품들까지 모두 감상하고, 출발했던 본관 건물에 있는 주류점에 들러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들을 살펴본 후 기념으로 와인도 좀 사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긴 시간을 달려 마침내 영화화되기도 한 소설 향수의 배경인 그라스에 힘들게 도착했습니다. 그라스는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는데, 아내가 가고 싶어 하는 식당 앞으로 갔더니 일방통행 도로였습니다. 천천히 진입을 했는데, 갑자기 앞에 서 있던 경찰관들이 손을 흔들면서 차를 세우더니 뒤로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것과 달리 보행자 전용 도로여서 차가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라 다시 아래로 차를 몰아 공영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언덕길을 올라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에 도착하니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속이 출출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니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테리어에 밝고 선명한 식물 도안으로 벽이 장식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식 맛도 좋고, 식당 여사장님도 친절해서 즐겁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식사 후 옆에 있는 수제 사탕 가게와 향수 가게에 들러 아내의 조카들에게 줄 막대 사탕과 저희 누나에게 줄 선물을 샀습니다. 향수 가게는 그라스에서 유명한 프라고나르 향수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바로 옆에는 프라고나르 향수 박물관도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내친 김에 향수의 역사도 한번 보고 가자는데 의견이 일치해서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고대부터 현대까지 향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병에 담겼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된 내용 중 아기자기한 약병들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프라고나르 박물관 아래에도 향수 상점이 있었는데, 상품도 다양했지만 그 포장지의 문양과 색감이 참 화려하고 예뻐서 사진을 한장 남겼습니다.
이제 그라스를 떠나 숙소가 있는 앙티브로 향했습니다. 코트다쥐르 해변에 위치한 앙티브는 프랑스에서 휴양도시로 유명한데 주변에 있는 니스와 다른 도시들을 방문하기 좋았습니다. 앙티브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푼 후 저녁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압생트 바를 찾아 30분 가까이 밤거리를 걸어가면서 거리의 많은 식당들과 술집들이 문을 닫을 것을 보고 혹시 코로나의 영향으로 여기도 문을 닫은 것은 아닐까 약간 불안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구글지도를 보고 찾아간 압생트 바는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고흐가 즐겨 마시던 압생트를 파는 곳인데 문 앞에 아무런 공지는 없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은 것 같았고, 아내와 기념으로 사진만 찍었습니다. 다음날 낮에 다른 곳을 가다가 문을 연 것을 보고 다시 찾은 압생트 바는 이제 술을 판매만 하고, 마실 수는 없는 곳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가게 사장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래도 기념으로 녹색 악마의 술이라고 불렸던 압생트 미니 사이즈를 보니 귀여워서 하나 사들고 나왔습니다.
압생트 바에서 식사를 할 수 없어 옆에 있는 다른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분위기나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중해 연안이라 그런지 신선해보이는 채소와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들이 잘 나왔습니다. 프랑스이니 당연히 와인도 한잔 곁들였습니다. 식사를 한 후에는 숙소로 돌아가 라운지 바에서 술을 한잔 주문했는데, 칵테일에 섞어 마시는 주스 종류를 물에 섞어 준 것이라 나중에 알고 나서 아내와 한참 웃었습니다.
다음날은 30분 정도 차를 몰고 가서 맑은 날씨의 니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군제대 후 유럽여행을 했었는데, 당시 파리를 떠나 야간기차를 타고 이른 아침 니스에 도착했었습니다. 마트에서 맛있는 천도복숭아를 사서 하나 먹은 다음 너무 졸려서 니스 해변가에 누워 2시간 정도 잠을 청했다가 다리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익었습니다. 니스 바닷가에서 푸른 바닷물과 빛나는 모래를 보니 젊은 시절의 서툴었던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해변을 본 후 우리는 니스 해변가에 있는 식당을 찾아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식당 이름은 프랜친이었는데, 아내가 찾은 식당으로 랍스터, 뇨끼, 달팽이 요리가 유명했습니다. 저나 아내나 제대로 된 에스카르고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이번 점심에는 에스카르고를 위주로 먹어 봤습니다.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잔을 마신 후 다른 요리들을 함께 즐긴 후 기대했던 대로 맛이 좋아서 서로 나중에 다시 오자고 말하면서 식당을 나섰습니다.
식사 후에는 샤갈 미술관으로 갔는데, 주차를 하느라 좀 고생을 했습니다. 다행히 미술관 뒤쪽에 차를 댄 후 안으로 들어가 작품들을 살펴봤더니 노년의 샤갈이 활동했던 곳이라 그런지 우리가 평소에 알던 작품들보다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내는 천주교 신자인데 종교와 관련된 주제의 작품들을 보고 더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샤갈 미술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에즈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해변을 따라 가는 길이 생각보다 좁고 구불구불해서 예상보다 늦게 에즈에 도착했고,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계단을 올라 에즈 가장 높은 곳에서 주변 경치를 볼 수 있는 식물원이 이미 문을 닫은 후였습니다. 아쉽지만 식물원 앞에서 사진 한장을 찍은 후 계단을 다시 내려와 앙티브로 돌아왔습니다.
앙티브에 오자 이미 밤이 깊어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오늘 저녁은 어제처럼 문 닫은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곳을 예약해서 가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라주르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담하고, 지하 동굴처럼 생긴 내부 구조를 가진 아라주르는 깔끔한 인테리어만큼이나 요리의 맛과 플레이팅도 훌륭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요리를 먹으면서 지금까지 프로방스에서 먹어 본 음식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이 가격에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연신 감탄했습니다.
사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요리가 꽤나 만족스러워서 제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식사를 끝낸 후 아내와 여기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오자고 말하면서 조용한 골목길을 거닐다 숙소로 돌아가 바쁜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복잡한 아비뇽의 구도심을 떠나 우리는 산 위의 아름다운 마을인 고흐드로 향했습니다. 아내가 들르고 싶어한 곳이기도 하고, 우리의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기도 해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아비뇽에서 고흐드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라 금방 도착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언덕길에서 반대쪽을 보니 아름다운 절벽과 그 위에 있는 집들이 보여 차를 세우기 싶었는데, 주차장을 찾느라 한참 헤맸습니다.
몇 곳을 지나친 후 다행히 빈 주차장을 찾아 차를 댔습니다. 마을의 전망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둘러본 후 아내가 예약한 L’Artegal에서 간단하게 가지볶음, 고기 필라프와 샐러드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한 후 주변을 산책하는데,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광고판이 보였습니다. 프로방스가 라벤더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라벤더 아이스크림은 처음 봐서 한번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한 입 떠먹는 순간, 라벤더의 강렬한 보라빛 향기와 실크처럼 부드럽게 녹는 식감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감탄사를 쏟아내는 저를 지켜보던 아내도 커피를 테이블에 놓고 숟가락을 받아 떠먹더니 엄청난 맛이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라벤더 아이스크림의 향을 맡으며 다시 골목길을 걷던 우리는 전망이 좋은 절벽 한쪽에서 고흐드에서의 멋진 순간를 기록했습니다.
고흐드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오늘의 숙소가 기다리고 있는 무스띠에 셍-마리로 차를 몰았습니다. 고흐드에서 무스띠에 셍-마리까지는 시골길을 따라 2시간 이상 걸렸는데, 목적지로 다가갈수록 주변 풍광이 멋있어져서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 또한 커져갔습니다. 2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좀 피곤했던 저는 숙소에 도착하기 전 잠시 차를 세우고 아내와 휴식을 취하면서 해가 지기 전에 무스띠에 셍-마리 마을 주변을 멀리서 카메라로 잡아봤습니다.
이윽고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마침내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좁은 숲길을 따라 갔더니 나타난 숙소는 약간 시골 산장 같은 곳으로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차를 세운 후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가는데, 숙소의 사장님 같은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2층에 있는 우리 방까지 무거운 캐리어를 들어 주셨습니다. 2층 방에 들어가보니 영화에서 보던 옛날 저택처럼 방이 있고 그 옆에는 매우 넓은 화장실과 파우더룸이 있는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시골길을 따라 운전하느라 좀 지친 저는 짐을 풀고 잠시 쉬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비뇽에 있는 호텔에서 서둘러 나오느라 호텔 방 금고 속에 넣어 놨던 신용카드와 현금 800유로를 놓고 나온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앞으로 여행에 사용할 경비였던 현금과 신용카드였기 때문에 큰 일이라는 걱정과 함께 다시 가서 받아와야 하나,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그래서 일단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아비뇽 호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비뇽 호텔 전화벨이 울리는 동안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다 마침내 여성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호텔에 머물 때 인사를 나눴던 호텔 사장의 부인이었는데 제 얘기를 듣더니 금고의 비밀번호와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설정한 비밀번호와 금고 속에 있는 현금 등에 대해 설명을 했고, 잠시 후 확인을 해보겠다고 하더니 물건들을 찾았다며 어떻게 보내줄까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아비뇽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이윽고 이메일을 서로 주고받았는데, 저는 우리가 프랑스에 마지막으로 묵게 될 마르세유의 호텔을 알려주고, 그 곳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걱정말라면서 내일 아침에 우체국 택배로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메일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거듭한 후 아내와 생 마리 마을로 저녁 식사를 하러 차를 타고 나갔습니다.
10분 정도 운전을 한 후 주차장에 차를 댔는데, 이미 시간이 좀 늦어서인지 아니면 코로나인데다 관광 비수기라서 그런지 생 마리 마을은 거의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매우 조용한 마을 곳곳을 둘러보다가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전에 쇼핑을 했던 음식들로 저녁을 간단히 해결했습니다. 그날 밤은 운전을 길게 한 데다가, 아비뇽에 현금을 놓고 온 문제를 해결하느라 긴장했는데 잘 해결이 되어서 그런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바깥 기온이 상당히 쌀쌀했습니다.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서 숙소 주변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숙소 사장님이 1층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보다가 아내와 얘기해보니 마을 위쪽에 있는 예배당이 경치도 좋고, 분위기도 있을 것 같아서 일단 차를 몰고 그 곳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예배당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조각상들이 길 옆에 서 있고, 뒤를 돌아보니 셍-마리 마을도 보였습니다. 고개를 더 높이 들어 보니, 절벽 사이로 무스띠에 셍-마리 마을의 명물인 별도 보였습니다. 이 마을이 유명해진 이유는 십자군 원정을 갔던 기사가 자신이 고향에 살아 돌아가면 신에게 감사의 의미로 별을 걸겠다고 기도를 했고, 무사히 돌아온 기사가 자신의 약속을 지켜 절벽 사이에 별을 매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예배당 올라가는 길이 좋았지만 특히나 예배당 바로 앞의 계단이 운치가 있고 아름다웠습니다.
저와 아내가 가뿐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라가 예배당을 들어섰는데, 마침 예배당에서 종을 치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부부의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느낌이 들어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무로 된 예배당 문에는 조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처음 들어선 예배당 안은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매우 어두웠습니다. 잠시 적응하고 나니 십자가와 예수님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약한 빛줄기를 통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희만 있는 고요한 예배당에서 알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한참 멍하니 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이제 내려가자는 말을 해서 슬슬 예배당을 나왔습니다.
예배당을 내려와서 마을에 가보니 엄청 큰 다리와 폭포가 있었습니다. 가파른 산비탈에 마을을 만들다보니 그렇게 토목공사를 크게 했던 것 같습니다. 마을에서 올려다보니 절벽에 걸린 별이 마찬가지로 잘 보였습니다. 아침부터 등산을 해서인지 저나 아내나 둘다 배가 고파서 일찍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나섰는데, 마침 평이 좋은 식당이 문을 연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쌀쌀한데 돌아다녀서 그런지 빵과 따뜻한 음료를 마시니 몸이 좀 녹았습니다.
마을에서 식사를 한 후 숙소로 짐을 챙기러 돌아왔습니다. 숙소 사장님에게 인사를 한 후 차를 몰아 아내가 가고 싶어했던 생트 크화 호수의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보트를 탈지, 카약을 탈지 고민하면서 수영복을 미리 입어야 할지도 걱정을 했는데, 막상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띠로리~~ 이상하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요트나 카약도 호수에 떠있지를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초봄이라 비수기인데다 코로나 상황까지 겹쳐 운영을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쉬워하는 아내를 달래서 호수 주변 마트에서 들러 오렌지 주스와 천도복숭아 등 간식을 산 후 멋진 풍광으로 유명한 베흐동 협곡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달려 베흐동 협곡으로 들어서는데, 나무들 사이로 멀리 터키석같이 아름다게 빛나는 생트 크화 호수가 보였습니다. 아내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려고 차를 세운 후 잠시 내려 호수를 구경한 후 다시 출발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베흐동 협곡의 수백미터 절벽을 따라 난 왕복 2차로를 달리는데, 좁고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인데도 제한속도가 시속 80km나 됐습니다. 프랑스에서 운전을 하면서 많이 느낀 것인데,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사람들보다도 운전을 훨씬 거칠게 해서 깜짝 놀랐고, 베흐동 협곡같은 좁은 길에서도 제가 모는 차 후미에 차를 들이대고 빨리 가라고 재촉을 해대는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저는 초행 길인데다 차도 익숙하지 않은데, 계속 이렇게 위협을 하니 자꾸 위축이 되고 마음이 많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전망이 좋은 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잠시 내려 바람을 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습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아내와 함께 전망대로 걸어갔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에!! 위로는 병풍처럼 둘러친 높은 암봉들이 서 있고, 아찔한 낭떠러지 아래로는 푸른 계곡물이 흘러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구경하는 여행객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봐 철제 난간까지 설치해둔 것을 보니, 이 곳이 인기있는 전망대는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전망대에서 휴식을 취한 후 마음의 안정을 찾은 저는 다시 차를 몰고 협곡의 아래에 있는 길까지 달려내려갔습니다. 제가 이 길을 택한 이유는 저도 그렇지만 아내가 멋진 절벽과 바위가 있는 풍경을 좋아해서였는데, 막상 2시간 가까이 좁은 산악길을 달리다보니 아내가 멀미를 해서 바깥 경치를 볼 수도 없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괜히 넓은 길을 두고 이 길로 왔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미 들어선 길, 되돌아 갈 수도 없어 계속 아래로, 위로 달리다보니 마침내 샌드위치 같은 고원지대가 호쾌하게 펼쳐진 지형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이런 산길도 끝났다는 안도감에 아내와 함께 차에서 내려 고산지대의 상쾌한 바람을 맞은 후 기념 사진도 찍었습니다. 마구 불어대는 바람에 저와 아내의 머릿카락이 흩날리는데, 얼굴은 환하게 웃는 장면이 마치 큰 고난이라도 끝나 마음이 편해진 듯 합니다.
마치 큰 과제를 끝마친 것처럼 산길을 천천히 내려와서 들판을 따라 달리다 보니 길 양 옆으로 키가 작은 관목 같은 식물들이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식물들이 뭔지 알지 못했는데, 계속 식물들이 심어져 있어 마침내 그것이 라벤더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랬습니다. 바로 이 길은 향수로 유명한 그라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아를을 벗어나 1시간 정도를 달려 우리에게 아비뇽 유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 아비뇽에 도착했습니다. 교황청이 있었던 곳이자, 유서 깊은 구시가지가 남아 있는 아비뇽은 천주교 신자인 아내가 꼭 방문하고 싶어하던 도시였습니다. 저 역시 역사가 오래된 골목길과 문화유적을 좋아하니 서로 의견이 일치했던 셈입니다.
오래된 도시답게 아비뇽은 자동차에 매우 불친절한 편이었습니다. 일단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제한되어 있고, 골목도 매우 좁아서 까딱하면 차량이 벽에 부딪히기 쉽게 생겼습니다. 골목에 숨어 있는 숙소를 찾는데 고생을 좀 하다가 호텔에 전화를 하니 주인이 직접 나와서 자동차를 다른 곳에 주차해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골목 한켠에 주차해뒀던 차를 끌고 다시 주차장을 찾아 거리를 빙빙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지하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차를 주차한 후 저와 아내의 캐리어를 끌고 자갈로 포장된 길을 따라 숙소인 La Banasterie에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서 이동하다가 제 캐리어 바퀴 하나가 부서지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숙소에는 잘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묵은 호텔은 오래된 주택2채를 연결해 리모델링했는데, 짐을 들고 나르는 계단이 좁은 것을 제외하고는 옛 건물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숙소를 찾고, 3층까지 짐을 옮기느라 다소 지친 저는 방을 배정받자 침대에 대(大)자로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ㅎㅎ
방에서 짐정리를 하고, 기운을 차린 후 호텔 사장님에게 아비뇽에서 방문할 만한 곳들을 문의했더니 교황청과 다리, 미술관들과 좋은 레스토랑들을 소개해줬습니다. 저와 아내는 일정을 확인한 후 첫날에는 아비뇽에서 가장 유명한 교황청부터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들어간 교황청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내부를 둘러보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아비뇽 교황청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 있었다는 것도 의외였습니다.
아비뇽 교황청이 만들어진 것이 프랑스왕의 영향력 때문이어서 그런지 교황청 안에도 프랑스 왕가와 관련된 상징물이나 조각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부르봉 왕가의 루이 10세를 기념하는 조각상에서는 왕과 왕비가 중심에 있고, 교황은 그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공간적 배치를 통해 아비뇽에 있었던 교황이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아비뇽 교황청도 곳곳이 정교한 장식과 웅장한 천장을 통해 교황의 권위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교황청 내부를 모두 돌아보고 나면 보통 그렇듯이 기념품 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이 곳은 교황과 관련된 물건들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특히 아비뇽에 있던 교황이었던 요한 22세의 여름 별장이 있던 마을에서 재배한 포도로 빚은 와인을 팔고 있었습니다. 교황의 새로운 성이란 의미의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 와인은 훌륭한 맛으로 유명한데, 특히 이 곳에서는 창고에서 오랜 시간 보관해 먼지가 쌓인 와인을 판매하고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추억으로 아비뇽 교황청 마그넷도 하나 샀습니다.
교황청을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금방 가버려 배에서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미리 예약해뒀던 Avenio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관광객들이 없었던 덕분인지, 이 레스토랑은 미슐랭 원스타 등급인데도 당일 점심에 예약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 레스토랑은 전채부터 메인 요리를 거쳐 디저트까지 합리적인 가격에 아름다운 플레이트와 프로방스의 풍성한 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양 어깨살 스테이크와 디저트에 만족했고, 저는 특히 프로방스에서 유명하다는 비둘기 요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비뇽의 옛 이름이라는 Avenio에서 행복한 저녁을 마치고, 적당히 취한 한국인 부부가 밤거리를 어슬렁거렸습니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렇게 여유있게 한적한 유럽의 밤거리를 걸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밤하늘 아래 오래된 골목길들을 이리저리 유람했습니다. 자동차로 이동도 했고, 많이 걷기도 한데다 와인까지 한 잔한 터라 숙소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저 모두 푹~~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분위기있는 숙소의 응접실에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호텔은 구도심에 있어 크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실내 인테리어나 가구들이 모두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호텔 사장님이 직접 구운 빵과 차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프랑스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민요에 나온다는 아비뇽 다리를 보러 갔습니다. 생 베네제교라 불리는 다리는 원래 12세기부터 론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였는데, 이제는 2/3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요금을 내면 다리 위로 올라가 구경을 할 수도 있다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기온도 낮고, 요금도 생각보다 비싸서 그냥 옆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아비뇽 다리까지 본 후 드디어 본격적인 쇼핑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아비뇽에서 사고 싶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바로 수제 초콜렛과 프랑스 전통 리큐르인 샤르트뢰즈(Chartreuse)였습니다. 아비뇽에는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수제 초콜렛 가게가 있어 선물도 하고 몇개 먹어보고 싶었고, 샤르트뢰즈는 연애할 때 바에서 우연히 함께 마시게 됐는데 그 맛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프랑스에 가면 꼭 사서 마시자고 했었던 술이었습니다.
약간 시간이 일러서 수제 초콜렛 가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던 탓에 먼저 주류점에 가서 샤르트뢰즈를 사기로 했습니다. 먼저 들렀던 와인 상점에서는 팔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상점을 찾아가다가 우연히 큰 길가에서 주류점을 발견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서 샤르트뢰즈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술이 있냐고 물었더니 어떤 걸 원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샤르트뢰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을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사장님이 카운터 옆에 전시되어 있는 샤르트뢰즈들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이는 녹색과 노란색 뿐만 아니라 화려하게 디자인된 스페셜 에디션도 있엇습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특별한 것을 사자는데 아내와 의견이 일치해서 Cuvee des Meilleurs Ouveriers de France Sommeliers라는 이름의 샤르트뢰즈를 샀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마신 이 술은 130종의 약초를 섞어 만든다는 비법 덕분인지 45%라는 알콜도수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에 다채로운 향과 달콤하면서도 크리미한 맛으로 우리를 사로잡았습니다.
원하던 술을 산 기쁨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초콜렛 가게로 향했습니다. 개장 시간이 된 초콜렛 가게에서 우리보다 먼저 온 일본 관광객들이 가게 이름이 적힌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본 우리는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상점 안에는 작은 크기의 다양한 초콜렛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격표를 보니 오래된 역사와 명성이 가격에도 포함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가게라고 하니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몇 개 구입한 후 우리가 먹을 것들도 골라서 챙겼습니다.
쇼핑에 정신이 팔린 사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서 막상 체크아웃을 하려고 하니 시간이 좀 빠듯했습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서 새로 사온 물건들을 캐리어에 집어 넣은 후 다시 낑낑대며 짐을 아래층으로 옮겼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돌 바닥을 지나 멀리 주차장까지 이동하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아 아내가 숙소에서 짐을 지키고 있고, 제가 차를 몰고 숙소 근처로 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가다가 교황청 옆에 있는 아비뇽 대성당을 들렀습니다.
대성당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백의 깔끔한 인상을 주는 성당이었는데, 성당 내부의 기도하는 조각상 및 스테인드 글라스와 대성당 앞에 있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아내가 나중에라도 보고 싶어할 것 같아 아비뇽 대성당 내부를 부지런히 사진 촬영한 후 아내가 오래 기다린다는 생각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차에 시동을 건 후 골목골목을 돌아 호텔 앞에 세운 후 얼른 짐을 싣고 아내와 함께 다음 여행지인 고흐드로 향했습니다.
2022년 3월은 제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리는 시점이었습니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생긴 때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제 결혼이 늦은 편이라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인지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오랜 시간을 찾아헤맨 끝에 다행히 저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제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가정을 이룬 후 저도 마침내 든든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여자친구가 아내가 되는 다양한 절차와 노력을 거쳐 결혼식을 앞두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결혼식 3주 전 제가 코로나에 걸려 1주일을 집에서 격리하기도 했고, 결혼식 3일 전에는 오미크론 대확산이 절정에 이르러 하루에 코로나 확진자가 60만명씩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결혼식을 못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여자친구와 한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결혼식은 어찌어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와 저는 결혼식보다는 오히려 신혼여행에 더 정성을 쏟았습니다. 사실 신혼여행을 준비하던 초기에는 입국 시 격리가 있던 터라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분위기가 입국 시 격리가 해제될 것 같아서 일단 항공기와 숙소는 예약해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나 결혼식을 1주일 앞두고 입국 시 격리가 해제되어 폭등하는 항공권 가격을 보면서 미리 예약해두길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훌쩍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지 아내가 아직 여자친구일 때 많은 얘기를 한 끝에 프로방스 지방을 택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접해 있는 프랑스 남동부의 프로방스는 작은 도시와 마을들이 퍼져 있는 곳인데, 오랜 역사만큼이나 옛 모습을 잘 간직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아내가 천주교 신자라 아비뇽에 가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해서 저도 많이 이동하지 않고, 천천히 즐길 수 있는 프로방스에 찬성하게 됐습니다.
예식이 끝난 후 인사도 하고, 뒷정리를 한 후 비행기를 타느라 저녁 9시 좀 넘은 시간에 약간 빠듯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인지 공항에 이용객이나 공항직원들이 거의 없어서 고요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한적한 공항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항공사나 여행사를 비롯해 그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희는 터키항공을 탔는데 오랜만에 먹는 기내식은 더 맛이 있었고, 피곤해서인지 술 한잔을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비행시간이 전보다 길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중간에 이스탄불에서 경유를 해서 걷기도 하고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피로를 좀 풀었습니다. 다시 마르세유행 비행기를 타고 총 15시간 이상 걸리는 머나먼 이동을 끝내고 나니 마르세유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미리 렌트카를 예약해뒀는데, 다행히 렌트카 업체가 공항 바로 앞에 있어서 별 고생하지 않고 차를 빌려 바로 숙소가 있는 아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아를(Arles)은 마르세유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로, 론강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론강은 주변이 와인산지로도 유명하지만 고흐의 그림 배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첫번째 머물게 된 아를에서는 매번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고, 고흐가 남긴 유산을 찾아다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5시가 조금 안 되어 숙소인 오텔 쥘 세자르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호텔을 나서는데, 호텔 앞에 조명이 멋지게 켜져 있었습니다.
예약할 때는 호텔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듯 말듯 했는데, 현지에 와서 직접 스펠링을 보니 율리우스 카이사르 즉, 줄리어스 시저였습니다. 찾아봤더니 이 곳은 17세기에 카르멜회 수녀원이었는데,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호텔로 개장한 곳이었고, 호텔 방 내부도 오래된 가구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짐정리를 하고 나오느라 약간 시간이 지체되어 6시로 예약한 식당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첫 식사라 프로방스 가정식을 하는 곳을 골랐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저희가 갔을 때는 손님들도 많지 않고 밝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프로방스에서 유명한 로제와인과 현지 채소와 치즈 등 유제품으로 만든 메뉴들로 건강식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프랑스 작은 마을의 조용한 뒷골목을 걷노라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물론, 비도 오고 여기저기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내일 어디에 갈지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바깥공기는 시원해서 산책을 하기에는 참 좋았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가니 장거리 여행으로 인한 노독이 몰려왔는지 침대에 쓰러져 푹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아를 인근에 있는 님(Nimes)에 가기로 했습니다. 님은 로마의 판테온과 더불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메종 카레라는 로마시대 신전과 원형 경기장으로 유명한데, 원형 경기장은 아를에도 있어서 신전을 보러 간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아들들에게 봉헌된 메종 카레는 서기 4~7년에 건립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정도 된 건축물입니다. 님은 또 청바지의 원료인 데님(Denim)의 대표적 산지인데 원래 Serge de Nimes에서 유래된 명칭이라는 것입니다.
님에 도착해 신전에 가기 전 아내가 여기에 유명한 제과점이 있다면서 거기에 먼저 들르자고 했습니다. 그 말에 혹해서 Maison Villaret로 갔더니 아내 말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지 못한 빵들과 예술작품 같은 초콜렛들이 진열장에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날도 춥고 배도 고프던 차라 아침을 따뜻한 차, 초콜렛, 파이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덥힌 후 제과점을 나섰는데, 가까이에서 본 메종 카레는 최근에 새로 보수공사까지 해서 몇년 전에 지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하얗고 깔끔했습니다. 님에 가게 된 것은 바로 이 로마신전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우리가 님에 간 날에 메종 카레에서 프랑스의 역사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서 입장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메종 카레를 빙 둘러서 본 후 사진을 찍고 다시 아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님과 아를은 차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님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흐가 랑글루아교라는 도개교를 그린 장소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원래 있던 도개교는 너무 낡아서 철거하고 새로 설치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고흐 그림에 있는 도개교와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도개교보다도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개교 인근 강변의 풍경이었는데,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 참 목가적이고 평화로웠습니다. 아내가 사진도 찍어줘서 잠시 포즈도 취하고, 함께 강변을 잠시 걷다가 차를 몰고 아를 시내에 있는 공동묘지, 알리스캉으로 이동했습니다.
알리스캉(Alyscamps)은 로마시대부터 부유층들이 뭍혔던 공동묘지로, 고흐가 고갱을 초청해 함께 작품을 그렸던 포플러나무와 단풍나무가 길 양편에 우람한 기둥처럼 서있는 곳입니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묘지들과 세밀한 조각이 새겨진 묘비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단풍이 드는 가을에 왔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떨어지는 낙엽과 처연한 묘지가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아서입니다.
묘지를 나와 아를 시청 지하에 있는 터널을 둘러본 후 다시 아를 원형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를이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라 시청에서 원형 경기장까지 거리도 걸어서 얼마 안 걸렸는데, 계단을 한참 걸어 원형 경기장 위에 오르니 론강과 아를 시내 전경이 사방으로 훤히 보여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원형 경기장 위에서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을 즐기다 졸음이 몰려오는 듯 해서 몸을 일으켜 다시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원형 경기장 아래에 기념품 가게에 들렀는데, 마르세유 공항에 내린 후 처음으로 한국인 커플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 부부가 신혼여행을 갈 당시가 코로나 대확산기라 프랑스에서도 거의 한국인들을 볼 수 없었는데, 아마도 그 한국인들도 신혼여행을 온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더니 배도 고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와인과 안주거리를 사서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인근 마트에 갔더니 이럴 수가~~ 프로방스 현지 생산 와인들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마트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이 분홍빛깔의 로제 와인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로제 와인들을 사기로 했는데, 워낙 종류가 많다보니 어떤 걸 살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매의 눈으로 와인들을 고르고 있는 제가 신기했는지 아내가 쇼핑하는 제 모습을 찍기도 했습니다. 숙소에 돌아가서는 아내와 마트에에서 사온 와인과 안주들로 포식을 했습니다.
아를에서의 마지막 날은 고흐 미술관, 고흐의 그림 중 노란 테라스로 유명한 카페,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을 감상할 계획이었습니다. 먼저 좁은 골목골목을 차를 몰고 힘들게 고흐 미술관을 찾아갔더니 웬걸~~ 주차장이 없다고 해서 다시 차를 끌고 좀 떨어져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걸어가기에 멀지는 않아 미술관에 갔더니, 고흐 미술관 직원이 설명하길 현재 미술관에는 고흐 작품이 1점만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작품들은 다른 곳에 전시하기 위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허탈해진 우리는 미술관 앞에서 기념 사진만 찍고 인근에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흐의 그림 ‘아를의 포룸광장의 카페 테라스’로 유명한 카페는 아침이라 아직 영업을 하기 전이었습니다. 원래 그림에 있는 것과 거의 유사하게 다시 리모델링을 한 것이라는데 영업 시작 전이라 아쉽게도 차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차는 마시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진을 한 장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카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한 장 남겼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인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를 찾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정신병원으로 운영되지 않고 도서관과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흐가 화려한 그림으로 남겼던 정원에는 여전히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어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기쁘게 해줬습니다.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아름다운 꽃들에 취해 있다가 한쪽을 보니 예쁜 기념품들을 파는 곳이 있어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사막여우 스노우 볼을, 고흐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고흐 머그컵을 각각 기념으로 샀습니다.
아를에서 고흐와 관련된 장소들을 어느 정도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가는데, 우리 호텔 앞에 있는 성당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성당의 외벽에 장식된 조각을 봐도 상당히 오래된 느낌이 들어 한번 안에 들어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부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도 웅장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이 성당은 생트로핌 아를 성당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2개의 건물이 결합된 형태인데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등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최후의 심판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검은색 대리석 기둥 사이에는 성인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나중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성당에서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렸다고 하는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태양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강렬함에서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정적이고 편안했던 아를에서 고흐의 흔적을 따라 다닌 우리는 프로방스와 첫 대면을 기분좋게 시작했습니다. 아를이 과거에는 화려하고 큰 도시였다는 알게 된 후 도시의 흥망성쇠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프로방스에서 유명한 또 다른 도시 아비뇽을 향해 다시 출발합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모두 일찍부터 일어나 미리 예약했던 투어 버스를 타고 아미산 관광을 시작했는데, 그 첫 목적지인 러산대불로 이동했습니다. 아미산은 무협소설이나 무협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주변 풍광이 좋고, 볼 만한 유적지도 많은 중국의 불교 명산이자 영산이기도 합니다. 이동하다 보니 생각보다 숙소에서 거리가 좀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큰 불상을 보기는 쉽지 않아 나름 기대가 됐습니다. 강가에 도착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생각보다 강변에 안개가 많이 끼어 조짐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입장 시간을 거의 1시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러산대불이라고 새겨진 돌을 지나 입장을 시작했는데,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러산대불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유적이나 유물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자세히 둘러보고 올 시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역시 중국에서 주말에 여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힘들게 대불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니 사찰의 문이 하나 있었고, 그 곳을 지나니 마침내 엄청난 크기의 불두가 보였습니다. 신기해서 더 가까이 가보니 불상 전체가 보였는데, 그 크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고, 어떤 곳은 벽돌을 쌓아 형태를 보완한 것 같았는데 사실 옆에서 봐서 그런지 조형미가 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나오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불상이란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좀 아쉬웠던 것은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강 건너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안개가 만이 낀 탓에 유람선도 운항을 하지 않아 러산대불을 한 눈에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러산대불을 둘러보고 옆에 있는 사찰의 전각으로 다가가니 능운사라는 현판이 보여, 역시 평소에도 주변에 안개가 자욱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찰에는 달마화상 같은 후덕한 분도 계시고, 우리나라와 좀 달리 매우 화려하게 치장된 사천왕상도 있었는데, 역시 중국이라 그런지 표면에 개금을 많이 해서 번쩍번쩍 눈이 부셨습니다.
어느 정도 둘러본 후에는 다시 다음 목적지인 금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안개가 잔뜩 끼고, 가랑비도 조금씩 내려서인지 입장권을 파는 곳에서 방수용 점퍼도 한 벌씩 대여해줬습니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간식을 파는 점포들이 있는데, 그 중 제가 좋아하는 군옥수수를 파는 곳이 있어 일행들과 함께 옥수수를 사먹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중국 옥수수는 우리나라 옥수수보다 더 아삭거리는 씹는 식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군옥수수는 숯불에 너무 구워서인지 1/3 가까이가 숯이 되버려서 아깝지만 일부는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행길이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점퍼까지 입고 가려니 약간 숨이 가빠오는 찰나, 마침내 금정이라는 표지판이 서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금정 가까이 도착했는데, 반짝거리는 금정은 보이지 않고 온통 안개만 자욱했습니다. 심지어 안개에 향에서 나는 연기까지 더해서 탑이나 금정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럴거면 뭐하러 힘들게 여기를 올라왔나 하는 약간의 실망감이 몰려왔으나, 일단 우리 일행의 여행이 안전하게 끝나고 모두 건강하길 비는 뜻에서 향에 불을 붙여서 하나 올리기로 했습니다. 향을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물 덕인지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탑과 금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금정은 글자 그대로 금으로 칠을 해뒀는데, 햇빛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반짝거리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본 후에는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올라갈 때보다 안개가 자욱한 산의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몽환적인 분위기도 났습니다. 산의 이름도 아미산이라 그런지 저 쪽 안개 속에서 학을 탄 신선이라도 금방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니 벌써 저녁이 가까워졌는데, 아침에 아미산으로 가는 길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혀서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다들 지쳐서 호텔 가까운 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얼른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마신 후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오전은 각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 터라 더욱 마음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전날 피로가 심했는지 침대에서 뭉기적거리고 있는데, 어떤 일행분들은 일찍 일어나서 벌써 아침 식사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단체 카톡방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슬쩍 보다 보니 저도 더 이상 침대에서 버티지 못하고, 인근 공원에서 차를 한잔 마시기로 했습니다. 공원은 숙소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너무 붐비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공원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서있는 항일 전쟁 당시 전몰자 기념비와 그 밑에 있는 꽃다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착검한 총만이 아니라 칼과 방패까지 등에 지고 있는데, 전에 봤던 ‘명장’이란 중국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방패를 들고 공성전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공원 안에서는 태극권을 하는 노인분들도 있고,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 물길도 있어서 산책하기가 참 좋았습니다. 또 공원 한켠에는 찻집도 있었는데, 쓰촨 지역에서 유명한 차들을 팔고 있어 한가로이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다보니 돈을 받고 귀를 파주는 노인 한 분이 자꾸 와서 귀후비개를 들어보이는데, 안전한지 약간 걱정이 된 탓에 용감하게 제 귀를 내주지는 못했습니다. 나중에 찻집을 나오다 생각해보니 색다른 경험인데, 한번 해볼껄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습니다.
다시 숙소에 돌아온 우리 일행은 두보초당을 방문하는 길에 그 앞에 있는 유명한 마파두부집에서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진마파두부라는 간판이 붇어 있는데, 유명세만큼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마파두부 자체는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치즈 같은 식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스 역시 보기보다는 많이 맵지 않고, 밥과 함께 먹으면 밥도둑 같은 느낌이 드는 국내 중국음식점에서는 맛보기 힘든 탁월함이 느껴졌습니다. 건두부는 다소 알싸한 향이 났는데, 마침 사간 중국의 명주 노주노교와 함께 마시니 그 맛이 더욱 훌륭했습니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이제 두보 초당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주당이었던 이백이 시선이라면 두보는 시성이라 불리는데, 안록산의 난을 피해 쓰촨성의 성도로 피신을 했다가 머문 곳이 바로 이 두보 초당이었습니다. 처음 입구에 있는 두보의 조각상을 보면 너무 마른 할아버지의 상이라 그만큼 고생이 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초당을 둘러보다 보면 후대에 두보의 시를 사모한 권력자들이 너무 화려하게 꾸며 놓아서 그런지 ‘초당’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기는 하지만, 여러 건물들에 걸린 두보의 작품들과 후대 찬시까지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곳곳에 여러 시대를 걸쳐 지어진 건물들과 제가 좋아하는 대나무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는 두보 관련 자료들이나 시집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일생 동안 갖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후손들이 자신을 기리는 것을 보면 두보도 이제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다는 부러움이 순간적으로 가슴 한켠을 스치기도 했습니다.
두보 초당을 모두 둘러본 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귀국 가방을 싸면서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이렇게 업무적으로 만나던 인연으로 함께 해외여행까지 하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얼마 후 우리 모두의 삶을 강타한 코로나로 한동안 해외로 나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유롭게 출입국이 가능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 국내외적으로 서로 분열되고, 반목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 좀 걱정되기도 하는데 앞으로 다시 이런 편안한 여행을 다시 계획할 날이 왔으면 합니다.
중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국지를 한번 정도는 읽어 봤을 겁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통일을 도모하자는 제안을 하는 천하삼분지계와 관련해 나오는 지역이 익주인데, 현재 기준으로는 사천성, 중국어로는 쓰촨성입니다. 소설에서도 나온 것처럼 옛부터 쓰촨성은 물산이 풍부하고, 자연 경관이 수려해서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던 곳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손꼽는 8대 명주 중 무려 3개에 해당하는 노주노교, 우량이에, 검남춘이 사천성에서 나기도 해서 맛있는 술을 즐기는 제가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쓰촨성은 제가 예전에 여행을 했었던 윈난성과도 바로 붙어 있어 있는데, 윈난성 리장을 여행할 당시 만났던 다른 여행객들 중에는 윈난성의 옥룡설산과 호도협을 지나 쓰촨성으로 넘어가는 경로를 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리장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위안양의 계단식 논을 구경하려고 했기 때문에 쓰촨성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윈난성 못지 않게 쓰촨성도 좋은 곳이 많다고 들어서 나중에라도 한번 가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 속으로 쓰촨성 여행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던 어느 날, 제가 속해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 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같이 식사를 하던 중 위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변호사분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가자고 의기투합을 하게 됐습니다. 다들 술을 한잔 해서인지 아니면 업무만이 아니라 현지에서 중국 문화를 느껴보자는 생각이었는지, 어쨌든 식사 겸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5명의 변호사들이 중국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사람들 중 한 변호사님이 중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서 현지인 못지 않게 중국어를 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여행계획을 짜게 되었습니다. 여행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 이런저런 의견을 내다가 여행을 가는 멤버들이 기존에 여행을 가지 않았던 곳이면서 중국의 자연풍경과 문화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쓰촨성이 1등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의 쓰촨성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고맙게도 중국어에 능통한 변호사님이 전체적인 여행계획을 준비해주셔서 저는 투어 여행을 가는 것처럼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단 첫날은 평일인 금요일 밤이라 밤늦게 도착하게 되어 숙소에서 짐을 풀고 쉬었는데, 중국 호텔답게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인테리어가 된 로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유가 있었던 다른 일행과 달리 우리 여행을 준비했던 변호사님은 다음날부터 주변을 둘러볼 투어 상품을 예약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녀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같은 위원회 사람들이 함께 중국에 온 첫날이라 중국에서 유명한 마라탕 음식점에서 여행 기념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원래 마라탕은 쓰촨지역과 충칭지역에서 유래했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많아지면서 다양하게 변화를 준 특색을 갖는 마라탕 음식점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원조의 맛을 찾는 사람들은 전통의 마라탕 맛을 찾아 쓰촨지역으로 오는데, 그 중 우리 일행이 찾은 마루비엔비엔이라는 음식점은 너무 맵지 않으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고 있답니다.
특히 여러 재료들을 스스로 골라들고 계산을 한 후 꼬챙이네 꽂아 익혀 먹는데, 처음에는 걱정했던 것보다 맵지 않아서 먹을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먹다보니 혀와 입술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마라에 들어 있는 화자오가 마비시키는 성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많이 맵다고 느껴지면 달콤한 땅콩소스에 찍어먹으라고 하던데, 그렇게 해도 어느 순간부터는 술이나 꼬치의 맛이 느껴지지 않게 됐습니다. 다들 그렇게 술과 마라에 거나하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저는 음식이 매운데다 알콜까지 많이 먹어서 그런지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삼성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저도 쓰촨성 여행을 가기 전에는 삼성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전부터 3,000년전까지에 이르는 고촉문화 유적으로 매우 정교한 청동기 문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 문화의 유물들과 상당히 다른데,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이 어떻게 보면 중남미 지역의 마야나 올멕 문명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외계 문명이 남긴 유산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에 기록된 문명보다 더 이전의 초고대 문명에 관심이 많은데, 삼성퇴 문명의 기원이 오래되기도 했을 뿐 아니라, 20세기에 들어서 유물들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기록도 없어서 완전히 잊혀진 문명이었다는 것에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박물관 내부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많은 유물들을 촬영했는데, 일부 청동기 표면에는 마야나 아즈텍 문명의 문자처럼 형이상학적인 상형문자 같은 것이 있어서 더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박물관을 한참 돌아본 후 밖에 있는 조각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목도 마르고 다리도 좀 아팠습니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공원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캔 마시니 좀 살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좀 쉬다가 다시 공원 주변을 걷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저쪽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어린 학생들이 사생대회를 하는 것도 보였습니다. 아마도 주말이라서 가족들이나 학교에서 함께 나온 것 같았습니다.
다함께 삼성퇴를 본 후에는 다시 삼국시대 유비와 제갈량을 모시고 있는 무후사로 향했습니다. 삼국지나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을 곳인데, 삼국지에도 나오지만 원래 촉한의 황제였던 유비는 백제성에서 세상을 떠나지만, 이후 능은 수도였던 청두에 한소열묘를 조성했습니다. 황제였던 유비와 유비가 총애한 승상 제갈량이 함께 모셔져 있는 곳이라 더 특이하기도 했습니다.
무후사 안으로 들어가면 도원결의로 유명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와 제갈량을 비롯한 다른 신하들의 조각상이 좌우로 도열해 있었습니다. 기록을 바탕으로 나름 외모와 성격을 반영해 각자의 조각상을 만들어놓았는데, 문관들과 무관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에는 개성이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아래까지 길게 늘어진 귀를 가진 유비나 가슴까지 수염을 늘어뜨린 관우, 단정하게 앉아 학익선을 들고 있는 제갈량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분들을 잘 표현해 놓았습니다. 사당을 지나니 한소열지릉라는 편액과 비석이 있는 문이 있는데, 그 문 안쪽에는 유비의 능이 있었습니다.
무후사 안을 돌아다니다보니 붉은 칠을 한 벽과 녹색의 대나무가 잘 대비되는 길고 곧은 길이 있는데, 그 길에 들어가는 길에는 무지개 형태의 문지붕이 있어 더 예뻤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길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걸어가기도 하고 길을 배경을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저 역시 이 곳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부탁했습니다.
무후사를 둘러본 후에는 뭔가 기념할 것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기념품샾에서 도원결의 잔 세트를 발견했습니다. 무후사에 온 기념도 될 것 같고, 나중에 친한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잔을 나눠가져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잔 세트를 사서 무후사를 나섰습니다. 무후사를 나설 때는 이미 저녁이 되어 곳곳에 조명을 밝혔는데, 조명 덕분인지 떠나는 우리 일행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제갈량의 모습이 더욱 화려해보였습니다.
무후사를 나와서는 그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해결습니다. 중국에서 많이 먹는 건두부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들이 유명한 곳이었는데, 음식점을 들어가기 전 샀던 중국 8대 명주 중 하나인 검남춘을 곁들이니 맛난 술과 음식에 혀가 행복해지고, 시간이 지나니 흥취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일행들 모두 쓰촨성에서 생산되는 검남춘의 훌륭한 맛에 취하고, 매콤하게 조리된 쓰촨 요리의 조합에 감탄하면서 바삐 돌아다닌 하루의 피로를 풀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