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는 곳 3

평소 한국에서나 여행을 가서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비몽사몽인 제게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본다는 것은 나름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침마다 침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저라도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곳이자, 환상적인 일출 명소인 앙코르와트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들면 좋은 자리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기사를 불러 앙코르와트로 출발했습니다. 앙코르와트 입구에 내렸더니 아직 새벽이라 깜깜하기에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걸어가는데, 저와 같은 관광객들이 많은지 마치 반딧불처럼 여기 저기서 하얀 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하구나 하고 혼자 웃기기도 했습니다. 앙코르와트 입구를 지나면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수면에 3개의 탑이 비쳐 가장 아름답다는 일출 명당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점점 일출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더니 제 앞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까지 나타나서,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멀리에서 희미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이제 옆 사람은 잠시 잊고 점점 커지면서 눈부시게 빛나는 해와 데칼코마니처럼 연못에 비친 탑의 모습을 보면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구름 뒤로 숨고, 세상 전체가 밝아진 후 저도 자리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앙코르와트 내부를 꼼꼼히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원 내부 1층 회랑에는 제가 좋아하는 인도의 2대 힌두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에 관한 부조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조각된 이야기에는 신들과 악마인 아수라, 천상의 무희들인 압사라 뿐만 아니라 영웅들과 왕들까지 등장해 다양하고 화려했습니다. 오늘은 빨리 가자고 눈치를 주는 가이드도 없어서 조각들을 하나씩 여유있게 감상하면서 사진으로도 많이 남길 수 있었습니다.

1층 회랑의 조각들을 살펴본 후에는 사원의 담 안쪽의 넓은 공간으로 나갔습니다. 조각들로 가득한 회랑을 계속 돌다가 널찍한 마당으로 나오니 분위기도 밝고, 가슴도 탁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안에 있을 때는 잘 알지 못했는데, 밖에서 바라보니 사원의 회랑과 벽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사원의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사원의 중심부를 향해 가는 통로의 벽에도 조각들과 신상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중앙에 있는 탑은 주위를 둘러싼 여러 가파른 계단 형태 중 실제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만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데, 철제 계단으로 보다 오르기 쉽게 만들었음에도 경사가 급한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높은 곳은 아무래도 멀리까지 보여 경치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줄줄이 비엔나처럼 줄을 서서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중앙탑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중앙탑에 오르느라 힘이 들었는지, 오전 8시가 되기도 전인 이른 아침인데도 얼굴에 땀이 났습니다. 탑 상층부에 올라서 돌아보니 여기에도 이곳저곳 아름다운 조각들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는 불상의 광배를 나가 형상으로 만든 것이나 천수관음처럼 여러 손이 조각된 신상이 특이해보였습니다. 사람들 틈새를 헤치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창문쪽으로 갔더니 역시나 높은 곳이라 그런지 사원 밖 저 멀리 숲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었습니다.

중앙탑에서 경치를 즐기면서 살살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나니,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졸음이 솔솔 몰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볼 것들은 어느 정도 봤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가 잠을 보충하고, 느지막이 점심 이후에 일어나 호텔 수영장 한 켠에서 가져간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호모 사피엔스였는데, 두어 시간 책을 읽다가 햇살이 다시 강해지길래 다시 방에 돌아가 책을 놓아둔 후 짐을 챙겨들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습니다.

저는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면 마사지를 자주 받는데, 이번에는 많이 걷기도 해서 마사지를 제대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발마사지 레슨을 받고, 강습이 끝난 후에는 마사지를 받는 프로그램이 있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마사지 레슨을 받는 곳은 처음 가봐서 여러 상품 중 마음에 드는 발 마사지 프로그램을 고른 후 1시간 정도 1:1 레슨을 받았는데, 강사와 서로 마사지를 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레슨 프로그램에는 마사지 교본까지 포함되어 있어 그 교본을 보면서 나중에도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사지 레슨이 끝난 후에는 커피 껍질을 이용한 아로마 전신 마사지를 받았는데, 커피 껍질을 넣은 오일은 온 몸에 바르고 그 위를 비닐로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마사지를 많이 받아봤지만 마치 소세지 빵처럼 몸을 돌돌 감싸는 방식의 마사지는 처음이라 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돌아다녀서 노곤했는지 어느 순간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시간이 다 됐는지 마사지사가 저를 깨워서 레슨 때 받은 교본과 제 나머지 짐을 챙겨들도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마사지를 받고 숙소에 와서는 푹 휴식을 취했는데, 이렇게 관광을 하고 휴식도 취하고 나니 학위 논문을 쓸 준비가 된 것 같아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저는 앙코르와트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주변 맛집에 가서 캄보디아 맥주와 캄보디아 전통 음식으로 기념했습니다. 다음 날 숙소를 나오는데 갑자기 호텔 지배인이 카드 한 장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나름 여행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정성들여 카드를 직접 써서 주는 곳은 본 적이 없어 신기하면서도 은근히 기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카드를 보면서 많이 상업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순박한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귀국 비행기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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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는 곳 2

점심을 먹고 잠시 그늘에서 더위를 식힌 후 수심이 별로 깊어 보이지 않은 저수지를 건너는 것으로 투어의 후반부가 시작됐습니다. 저수지 위에 널판지가 깔린 길을 걷다보면 섬이 하나 나오는데, 이 곳이 프라삿 닉 포안이라는 사원이었습니다. 좀 특이하게 이 사원은 작은 섬 위에 있는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부처가 열반에 이른 것을 기리는 뜻으로 세워져서 4개의 연못에 둘러싸인 중앙에 있는 1개의 연못은 히말라야에 있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연못을 본따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가이드는 이 사원에는 코끼리, 사자, 말, 사람의 모습을 한 4개의 분수가 있는데, 이 분수에서 성수가 나와 병을 고쳐준다고 하여 순례자들이 찾는다고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저수지 위를 걸어 돌아나와 다음 사원으로 이동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좋아하는 정교한 조각상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표정과 동작을 한 많은 조각상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기에 저는 각각의 조각들을 사진 촬영하느라 다시 빨리 오라는 가이드의 재촉도 못본 척 해야 했습니다.

정교한 조각상들을 많이 본 후에는 다시 이스트 메본 사원으로 향했는데, 원래는 저수지 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물이 모두 말라버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긴 했지만, 사원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 서있는 늠름하고 힘이 넘치는 사자상과 두툼하고 긴 코를 늘어뜨린 코끼리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원 위로 올라가니 여러 개의 탑이 있었는데, 탑에 사용된 석재가 다른 사원들보다 더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어 마치 대리석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좋은 재질 위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은 계속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게 했고, 벽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참 넋을 잃고 보고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다소 일찍 투어가 끝나 마지막 목적지인 일몰 명소인 프놈 바켕으로 향했습니다. 다른 곳들을 더 구경할 수 있는데 너무 일찍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다소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해가 지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글들을 읽은 탓에 미리 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프놈 바켕 사원은 해가 쨍쨍한데 그늘은 별로 없어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저는 사원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일본 커플이 자리를 펴고 일몰 구경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서 슬슬 일몰을 보기 좋은 위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햇빛이 강한 탓에 계속 앉아만 있기는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모자를 꺼내 쓰고는 가져간 책을 읽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슬슬 해가 약해지면서 다른 관광객들도 슬금슬금 제 옆자리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일찍 와서 자리를 잡은 덕분인지 가장 앞쪽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평선 아래로 산산히 흩어지며 내려앉는 해를 보면서,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마음을 썼던 부질없는 일들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장엄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뭔가 슬픈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황혼을 뒤로 하고, 제 가이드를 찾아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땡볕에 돌아다녀서인지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니 온 몸이 노곤했습니다. 저는 구글맵을 검색해 숙소 주변에 있는 추천 식당에 가서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 다음날 새벽 앙코르와트 일출을 보기 위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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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는 곳 1

어렸을 적 과학잡지에서 보았던 앙코르와트의 모습은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탐험의 대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주변에서 하나 둘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사람이 생겼고, 크메르루즈의 악명으로 더 유명해진 크메르 제국이 남긴 영광의 상징인 앙코르와트에 가보고 싶다는 저의 바램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본격적인 학위 논문 작성과 심사을 앞두고 얼마쯤 푹 쉬면서 심신의 휴식이 필요했던 저는 훌쩍 캄보디아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친한 친구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을 다녀오는데 태국에서 버스를 타고 8시간인가 걸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시엠립 옆에는 공항이 따로 하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상전벽해라 할만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몸과 마음을 편히 쉴 곳을 찾았는데, 너무 크고 화려한 호텔이 아닌 조용하고 안락한 Butterfly Pea라는 이름의 부티크 호텔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많이 피는 보라빛깔의 꽃 이름인데, 보라색을 좋아하는 제 마음에도 쏙 들었습니다.

시엠립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웰컴 드링크 한잔을 주고, 체크인 후 방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방에는 몇가지 과일이 든 바구니가 하나 있었는데, 사실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과일들도 있어서 숙소를 떠날 때까지 그대로 둔 과일도 있습니다. 짐을 푼 후 리셉션에서 다음날 투어를 예약한 저는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밤거리를 구경하러 나갔습니다. 제가 머문 숙소는 도시를 관통하는 강변에 위치해 있었는데, 조금만 걸어가면 번화한 중심거리가 나와 쇼핑을 하거나 식사를 하기에도 좋았습니다. 다만, 호텔을 나갈 때마다 길가 한쪽에 서있는 직업 여성들이 자꾸 “오빠 멋있어요~”라고 하면서 다가오는 것이 좀 부담스럽기는 했습니다. ㅎㅎ

첫날 푹 잠을 잔 저는 다음날 일찍 앙코르와트 투어를 하기 위해 가이드와 함께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보통 앙코르와트 투어는 그랜드 투어, 스몰 투어로 나뉘는데 저는 그랜드 투어를 선택해서 많은 곳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있는 데바과 아수라들이 나가를 당기면서 ‘우유의 바다’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 그 모습에서 진지한 사원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 바이욘 사원 등 건물에는 사방에 제가 좋아하는 조각들이 전체적으로 새겨져 있어 그 조각들을 감상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그래서 자꾸 가이드가 다른 곳에 가자면서 끌고 가는 것이 좀 아쉽게도 느껴졌습니다.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경우 더 시간을 두고 감상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더 좋은 곳들이 있으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앙코르톰을 지나 관세음보살상이나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도 알려진 평화로운 얼굴 조각이 있는 바이욘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바이욘 사원과 다른 장소에서 가이드가 자신만의 기술로 찍어준 사진을 보면 가이드 투어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바이욘 사원은 아름다운 조각상들로 유명한데 특히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드러나는 음영의 대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사원 앞에 있는 와불은 노란 장삼 한장만을 걸쳤는데 무언가 쓸쓸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이욘 사원의 문을 보면 마찬가지로 석재를 사용해 끼워맞춘 잉카문명의 문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사원 내부는 바깥보다 좀 조용한 편이었고 다산을 상징하는 남근석과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는 듯한 불상이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고요하면서도 알 수 없는 울림이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안내를 맡았던 가이드는 일종의 트릭 사진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는지, 아이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신기한 사진들을 더 많이 남겨주었습니다.

바이욘 사원 벽에는 아름답게 부조된 조각들이 많아서 계속 넋을 잃고 조각상들을 보다가 가이드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바이욘 사원을 둘러본 후에는 큰 불상이 보관되어 있는 전각을 지나 무지개 다리를 통해 바푸온 사원으로 갔습니다. 원래는 시바신을 모시는 사원이었는데, 이후 불교 사원으로 바뀌면서 탑의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바푸온 사원에서는 특히 통로 위 천장을 아치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햇빛이 스며드는 벽 기둥 사이로 보이는 완벽한 아치가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유럽 고딕양식처럼 대칭의 둥근 아치와 빛을 이용한 아름다움이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가이드로부터 사원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보니, 처음에는 사원의 가장 꼭대기에 시바신을 상징하는 남근상을 세워두었었다고 하는데 힌두교의 시바신은 브라흐마신처럼 창조의 신이 아닌 파괴의 신인데 시바신의 상징이 다산과 창조를 의미하는 남근상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소멸이 있어야 새로운 생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인지…

바푸온 사원의 정상까지 올라가 주변을 내려다보니 정글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주변에 나무들이 무성했습니다. 다시 넓은 길가로 나와서 보니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테라스가 보였는데, 테라스들에도 섬세한 부조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문둥왕이란 이름은 테라스 위에 있는 좌상이 이끼 때문에 얼룩덜룩하게 보여 나병으로 죽은 야소바르만 1세를 연상해서 지어진 것이라는데, 알고 보니 좌상에 새겨진 15세기의 글을 보면 좌상은 죽음의 신인 야마(Yama)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미 문둥왕 테라스로 널리 알려져서 그 후로도 계속 문둥왕 테라스라고 불린다니 역시 이름은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가 힘들긴 한가 봅니다.

크메르 제국의 왕들이 연회와 행진을 즐겼다는 테라스를 지나다 보니 어떻게 사원 건축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벽의 구조가 노출된 것이 보였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많은 라테라이트라는 흙이 햇볕을 받고 건조해지면 붉은 색의 매우 단단한 재질이 되는데, 이 흙으로 벽돌을 만든 후 그 위에 화려하게 장식으로 조각된 부드러운 사암을 붙이는 식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원에서는 사암과 테라코타가 확연히 구분되지 않았는데, 테라스를 보고 있자니 밝은 빛 속에서 마치 화이트 초코 케이크 한 쪽이 흘러내려 안의 빵이 보이는 것 같은 장면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널찍한 길을 따라 가루다상이 있는 앙코르 톰의 문을 지나서 다시 프레아 칸이라는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프레아 칸은 원래 불교 사원이었지만, 일부는 힌두교에서 유지의 신으로 불리는 비슈누에게, 또 다른 부분은 파괴의 신인 시바에게 바쳐진 특이한 곳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각에서 산신이나 북두칠성, 용왕을 기리고 있는 것과 비슷해보였는데, 불교의 포용력이 보편적으로 컸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프레아 칸은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 않는지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특히 사원 천장 가까이에 난 창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 빛을 받아 탑인 스투파가 빛나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해 줬습니다. 다른 사원과 다른 건물들도 눈에 띄었는데, 장경각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프레아 칸 사원에는 건물에 뿌리박고 하늘을 향해 곧게 서있는 나무가 인상적인데, 제가 찍은 사진들만 봐도 이제는 관광객들에게 사원보다 나무가 더 눈길을 끄는 것도 같습니다.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다녔더니 배도 고프고, 점점 더워지는 것도 같은 차에, 마침 가이드가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고 해서 오전 투어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배를 채운 후 다시 오후 투어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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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연수라 쓰고 극기훈련이라 읽다.

고독사하신 분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현재는 법인이 되어 제가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한데, 몇년 전에는 그냥 공익단체로 종종 법률자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눔과나눔의 사무국장님이 함께 고독사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셔서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체 프로젝트에서 고독사한 분들이 생전에 자신의 사망 이후 법률관계를 미리 결정할 수 있는 사후자기결정권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연수는 원래 알고 있던 사무국장님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까지 함께 준비를 해서 일본으로 가게 되었는데,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했던 교수님이 주로 일정을 계획했는데, 일본에 지인들도 많고 여러 곳에 미리 약속을 잡아서 무리없이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룸젝트의 주제는 “내 맘대로 장례, 내 뜻대로 장례”로 정했습니다.

처음 목적지인 오사카 가마카사키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지방에서 올라와 정착했던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인데 그 중 재일동포도 많았습니다. 우리 연수팀의 첫 숙소는 코코로룸이란 곳이었는데, 인테리어나 식사 메뉴가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숙소 주변에는 가마카사키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곳들이 많이 있었는데, 노숙인들이나 실업자들을 위한 시설들도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오래된 유곽도 있었는데, 저녁이 되니 독특한 색의 조명을 비추고 여성 한 명이 앉아서 영업을 하는 것이 특이한 느낌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재일동포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기 해서 가슴 한켠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본 후에는 고양이 신사에 들러 운세를 점치기도 하고, 도톤보리에서 구경을 하다가 오사카에서 유명한 오코노미야키 맛집에서 식사도 했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광고판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글리코맨이라는 글리코 제과회사의 유명한 광고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나 싶었는데,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명물이라고 합니다.

다음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노숙인 쉼터 센터장, 오랫동안 고독사 장례를 지내왔던 스님, 실업자 지원단체 NPO 대표을 비롯해 우리 숙소인 코코로룸 이사장까지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녁에는 술을 즐기시는 교수님 덕분에 가마카사키 거리의 여러 술집을 순례하면서 주민들과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일본의 고도로 유명한 교토로 갔습니다. 교토의 오래된 절인 청수사에 가는 길에는 마침 일본의 명절이었는지 전통복장인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습니다. 청수사는 층층이 높은 목조건물이었는데, 공중에 매달려 있는 바람개비와 소원을 비는 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수사를 방문한 날은 너무 날이 뜨거워서 사실 많이 돌아다니지 못하고,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길거리의 상점들에서 기념품을 사기도 했는데 곳곳에 예쁜 사찰들이 있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바빴습니다.

청수사를 떠나 일본에서 만난 재일동포 중 한 분이 운영하는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저녁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눠보니 재일동포였던 그 분의 사촌오빠가 한국에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오랫동안 감옥에 수감됐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교로 와서 유학 중 공작의 희생물이 되어 옥고를 치렀다가 수십년 후 재심재판에서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40년 가까운 시절 그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이란 짐작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오사카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아침에 다시 임의후견과 장례 지원을 하는 단체가 있는 나고야로 출발했습니다. 나고야 성 근처에 있는 기즈나노회는 후견계약을 맺고, 피후견인의 재산과 신변관리를 해주는 단체인데 사망 후 법률관계도 관리해주는 곳이었습니다. 단체를 방문해 법률관계를 담당하는 변호사와 미팅을 했는데 덕분에 우리와 다른 일본의 법률 실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미팅 후에는 나고야에서 유명한 미소라멘집에서 식사를 한 후 이제 다시 도쿄로 이동했습니다.

도쿄로 이동한 날 저녁은 신쥬쿠에서 초밥을 먹고, 야경을 본 후 다소 이색적인 게이바에 갔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반인들도 게이바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하나의 이색적인 문화라는데 지하에 있는 게이바에 가보니 실제로 남녀 연인들이 함께 놀러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게이바의 바텐더는 쇼맨쉽이 좋았는데, 손님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우리에게 계속 진로를 팔면서 매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막상 게이바에 가니 원래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가장 힘들었던 것이 게이바가 지하에 있는데, 사방에서 담배를 피어대는 통에 완전히 두더지굴이 따로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쁘게 생긴 냅킨 하나를 기념품으로 챙긴 후 적당한 시간에 숙소로 향했습니다.

전날 밤 마신 소주로 인한 숙취를 이겨내고 다음날에는 리스 시스템을 방문했습니다. 리스 시스템의 대표님은 일제시대 대구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사업으로 돈을 번 후 후견과 장례 관련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엇습니다. 우리 프로젝트 주제와 매우 비슷해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는데만이 아니라 나눔과나눔의 미래 비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리스 시스템을 나와서 평화 영원이라는 공동묘지를 방문했는데, 태평양 전쟁 당시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폭격으로 사망한 아이들을 위한 나비 추모공원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사회복지사 출신인 동경가정대학 교수님을 만나 일본의 생활보호법과 묘지 매장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해 들었는데, 우리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모태라 그런지 내용이 매우 유사했습니다. 법률사무소에 들러서는 일본의 성년 후견제도와 임의 후견제도에 대해 일본 변호사님으로부터 어떻게 제도가 운영되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 관련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된 후 우리 연수팀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요코하마로 바다를 보러 갔습니다.

요코하마에서 예쁜 벽돌로 만든 쇼핑몰을 둘러본 후 도쿄로 복귀해 야키니쿠로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즐겼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연수팀 중 일부와 먼저 귀국하면서 마지막으로 신사의 앞을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두껍고 큰 목재로 만든 신사의 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낀 것처럼 일본의 정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사 문의 나무처럼 일본의 곳곳을 받치고 있는 시민들의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더 다양한 면을 많이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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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위로의 오키나와 여행 2

오키나와에 도착하면 누구나 한번씩 가본다는 곳이 만좌모와 아메리칸 빌리지입니다. 만좌모는 해식 절벽에 면해 있는 넓은 들판인데, 절벽을 옆에서 잘 보면 코끼리 얼굴 모양이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사실 처음 만좌모에 갔을 때는 이게 왜 유명한 관광지인가 싶을 정도로 별 것이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주기적으로 파도가 와서 부딪치는 절벽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투명하고 예쁜 바닷물색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누나와 같이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만좌모를 둘러본 후 다음으로 아메리칸 빌리지를 찾았습니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한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일본에 주둔하게 된 미군 중 상당수가 오키나와에 머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군의 진군을 막아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는데, 여기에다 일본 본토와 떨어진 오키나와에 미군기지 상당수를 배치하기까지 했으니 일본 본토 국민들의 불만은 줄였을지 모르지만, 원래 일본과 다른 국가였던 류쿠 왕국의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인들은 이러한 차별대우에 더욱 분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찾은 아메리칸 빌리지는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만좌모를 둘러보고 오느라 다소 배가 고팠던 누나와 저는 아메리칸 빌리지의 맛집인 철판 스테이크집을 찾아갔습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아 대기줄이 길다고 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는 별로 손님이 많지 않아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요리사가 채소와 고기를 철판 위에 놓고 기름을 부으면서 불쇼를 보여줬는데, 불 속에서도 넙적한 칼로 고기와 채소를 뒤집고 자르면서 먹음직스런 요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배가 고픈 우리는 구워진 요리를 얼른 먹었는데, 뜨거운 불로 빨리 익혀서 그런지 겉은 바싹 익었는데, 고기 속은 육즙이 충분히 남아 있어 맛이 꽤 괜찮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누나와 아메리칸 빌리지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는데, 아기자기한 예쁜 공예품을 파는 곳도 있었고, 다양한 종류의 사케와 뱀술 등 제가 좋아하는 주류들을 잔뜩 갖추고 일본 전통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상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칸 빌리지를 한번 둘러본 후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유명한 가게에 들러 콘 아이스크림을 각자 하나씩 사먹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누나와 함께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걸어다녔던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오랜만이라 누나와 자랐던 어릴 적 추억이 많이 떠올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후를 보낸 아메리칸 빌리지를 떠나 슬슬 해가 질 듯 해서 일몰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제가 머물던 숙소는 호텔체인에 속해 있어 오키나와에 같은 다른 숙소의 편의시설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몰 명소로 유명한 해변가를 끼고 있는 다른 숙소로 이동을 했는데, 그 해변은 호텔 이용객만 이용할 수 있어서 한적하게 해가 지는 멋진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져서 어스름해지자 저와 누나는 오늘은 숙소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숙소 앞에 있는 마을에 손님이 붐비는 식당이 있어서 그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숙소에 주차를 한 후 걸어나왔습니다. 누나와 함께 한적한 도로 옆 인도를 걸어나오면서 옛날에 제가 잘못했던 것들에 대해 사과도 하고, 어렸을 때 함께 봤던 만화영화 주제가와 어릴 적 유행했던 가요들을 함께 불렀는데, 누나와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후련하기도 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식당에 도착했는데 그 곳은 음식도 괜찮았지만, 알고보니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오키나와의 전통 노래와 춤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벽에 전시된 악기들과 사진들을 보니 식당 사장님 가족들은 전통 공연으로 우리 식의 무형 문화재 지정 같은 것은 받은 것 같았습니다. 맛있는 오키나와 전통 음식과 술에 뜻밖에 전통 공연까지 본 후 누나와 저는 더 기분이 좋아져서 숙소로 돌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여행 마지막날이었던 다음날에는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한 후 오키나와에 있는 여러 성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키나와 중부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츠렌 성부터 찾아갔는데, 우리가 생각한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돌을 정교하게 쌓아서 유려한 곡선의 성벽을 만들어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 눈에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는데 막상 걸어올라가다보니 기온이 높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땀이 나기도 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땀을 식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성벽 한쪽 구석에 핀 붉은 꽃도 다소 차가운 회색벽과 대조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성 가장 위로 올라가보니 주변 경치가 쫙 펼처져 있는 것이 시원해서 좋았습니다.

가츠렌 성 다음에는 과거 류쿠 왕국의 도성이었던 슈리성을 찾았습니다. 슈리성은 처마가 치솟고, 벽과 기둥, 기와가 모두 핏빛처럼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아기자기하고 예쁜 실내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일본식 정원이 곳곳에 있었는데, 차경이나 자연스러운 맛이 강한 우리 조경과 다르게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절제된 매력이 있어서 그것 역시 또다른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리성을 다 둘러본 후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누나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은 후 나하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누나와 공항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샀는데, 누나가 갑자기 제게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산 것이 참 오랜만이라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누나가 그동안 조카를 키우면서 매형과 참 알뜰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누나와 이번 여행을 온 것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후 인천공항에서 헤어지는데, 누나의 그렇게 밝은 얼굴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저도 기분이 참 좋아졌습니다. 계속 손을 흔들고 있는 누나를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저는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또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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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위로의 오키나와 여행 1

제게는 누나가 1명 있습니다. 4살 정도 나이 차이가 있는데 어렸을 때는 제가 잘 따라다니면서 고무줄 놀이도 같이 하고, 누나가 친구 집에 가면 저도 잘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제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누나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 수시로 투닥거리기도 했는데,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즈음부터는 누나와 침대에 누워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친해진 것은 서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이고,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사춘기 시절에는 누나와 끝없이 다투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중2이고,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와 누나가 동남아시아 여행을 함께 갔을 때였습니다. 원래 그 여행은 아버지가 회사에서 해외여행 부부동반권을 받으신 것인데, 부모님은 모두 동남아시아에 다녀오셨었기 때문에 누나와 제가 대신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생각이 많은 사춘기였던 저는 여행 내내 누나와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다투었고, 누나는 그렇지 않아도 낯선 외국에서 저와 다른 여행객들의 눈치까지 보느라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생각해보니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누나에게 참 미안하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조카가 사춘기를 맞으면서 저희 누나는 저를 닮은 제 조카와 다시 부딪히기 시작했고,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누나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저는 누나에게 예전에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저 때문에 고생했던 것에 대해 사과도 하고, 누나의 답답한 마음도 풀어줄 겸 오키나와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여행준비와 경비는 모두 제가 마련하는 조건이었습니다.

누나는 처음에는 말썽꾸러기 아들을 두고 며칠 동안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마침내 한번 바람을 쐬고 오면 가슴에 맺힌 것이 훨씬 풀릴 것이라는 제 말에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저와 누나의 화해를 위한 여행이자, 지친 누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오키나와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키나와는 19세기 일본 본토로 병합되었는데, 이전에는 류쿠 왕국이란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키나와는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온천도 있어서 겨울철에 건강을 돌보기 위한 여행을 위해서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제가 누나에게 제안한 힐링여행을 위해서도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사실 일본에는 군 제대 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갈 때 잠시 경유했었는데,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다시 가려고 생각하던 중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해서 방사능 우려 때문에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오키나와는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방사능 영향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여행을 가기로 한 겁니다.

출국하는 날은 평창 올림픽을 며칠 남기지 않은 날이어서 인천국제공항에는 해외에서 찾아오는 여행객들과 선수들을 반기는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가 홍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평소 귀여운 마스코트를 좋아했기 때문에 얼른 수호랑 옆에 가서 포즈를 취한 후 함께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은 처음 이용해봤는데, 새로 개장해서 그런지 시설도 깨끗하고 이용객도 적은 편이어서 쾌적한 느낌이었습니다. 곳곳에 휴식공간과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속을 거쳐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오키나와에 도착했습니다. 저와 누나는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내려 바로 예약해뒀던 렌트카 업체로 갔습니다. 그 곳에는 제가 예약한 토요타 하이브리드카인 아쿠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프리우스의 소형 모델이라고 보면 되는데, 처음 하이브리드를 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연비가 엄청 좋고, 소음도 매우 작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로 주행하는 동안에는 마치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는 것 같이 소음과 진동이 없는 부드러운 정숙성이 좋았습니다.

차를 몰고 도착한 숙소는 아타 테라스 클럽 타워즈라는 곳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유명한 테라스 호텔 중 하나로 골프장에 붙어 있는 리조트였습니다. 부에나 테라스 리조트가 더 규모가 크긴 하지만 아타 테라스가 조용하면서 시설도 깔끔하다고 해서 저는 이 곳을 택했습니다. 아타 테라스 클럽 숙박객은 부에나 테라스 리조트도 이용할 수 있어서 나중에 사우나를 하러 가봤더니 역시 숙박객이 적어 한적한 아타 테라스가 저와 누나의 취향에는 맞았습니다.

도착한 첫 날은 체크인이 좀 늦어서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누나와 느긋하게 일어나서 조식을 먹었는데, 서양식과 일본 전통식 중 서양식 메뉴를 먼저 먹어 봤습니다. 서양식 조식은 사방이 트여 있는 리셉션 하우스 1층에서 먹었는데, 겨울철인데도 바람이 별로 차지 않고 선선해서 역시 남쪽 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옆에 있는 풀장과 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켜보던 종업원이 저와 누나의 사진을 한장 찍어주겠다고 하여 호텔 풀장과 바다를 배경으로 누나와 사진도 한장 남겼습니다.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차를 몰아 추라우미 수족관을 찾았습니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컸다고 써있는 안내문을 보니 우리와 비슷한 면이 느껴져서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추라우미 수족관의 마스코트가 고래상어이기도 하고, 특히 고래상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하여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본 수족관에 들어가기 전에 옆에 있는 작은 수족관에서는 듀공과 매너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이 인어로 착각했다는 듀공은 알고 있었지만, 매너티라는 듀공의 사촌 같은 아이들도 함께 있어 신기했습니다. 그 옆에서는 바다거북 산란장도 있었는데, 바다거북이 모래밭에서 산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습니다.

이어서 들어간 대형 수족관에서는 가오리와 열대어들, 그리고 음악과 함께 등장한 고래상어 등 오랫만에 다양한 수중생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귀상어도 보였는데 머리가 망치처럼 생긴 것이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긴 것은 고래상어였습니다. 몸집 자체가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압도적인데다가 유영하는 모습이 힘차면서도 여유가 있어서, 보고 있으면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고래상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고래상어 배에 빨판상어가 붙어 다니는 것도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추라우미 수족관을 둘러본 후에는 더 북쪽으로 이동해서 벚꽃이 예쁘게 핀다는 공원을 찾아갔습니다. 오키나와가 남쪽이라고 해도 아직 벚꽃이 많이 필 계절은 아니라서 일단 벚꽃을 볼 수 있다는 곳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벚꽃으로 유명하다는 공원에는 벚꽃이 많이 피지는 않았고, 한쪽 구석에서 벚꽃 사탕만 팔고 있었습니다. ㅎㅎ 그래도 공원에 몇몇 나무들에는 예쁜 벚꽃 몽우리들이 달려 있고, 여기저기 의자도 많이 있어서 우리는 주차를 한 후 공원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좀 쌀쌀한 날씨였는지, 공원에서 얘기를 하다 피곤해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라운지에서 티타임을 즐겼습니다. 티타임에는 차와 간단한 와인 등 주류, 케익이나 치즈 등이 제공되었는데, 누나와 유쾌하게 술잔을 기울이면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누나도 저도 쌓였던 스트레스가 많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술을 한잔 하고 나니 급 피로가 몰려와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욕조에서 피로를 풀고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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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4

테 아나우에서 송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철수한 다음날 원래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 남섬 여행의 백미인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할때 여행 첫날밤 창문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잠이 드는 바람에 감기 기운이 있으셨던 아버지가 결국 앓아 눕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일단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보니 장시간 이동은 어려워 보였고, 하는 수 없이 테 아나우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아버지가 극구 거부를 하시는 바람에 일단 캠핑장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계속 캠퍼밴에 있는 것은 별로 회복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캠핑장에 있는 시설물들을 살펴보니 마침 노천 온천이 있었습니다. 야외에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 있고, 그 안에 마련되어 있는 뜨거운 물이 담긴 통 속에 가족 4명이 들어가 땀을 흘리니 감기 기운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통을 나와 야외 샤워장에서 샤워까지 하고 나니 마치 바닷가로 휴가를 온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말린 후 조카와 커다란 체스판으로 체스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도 약간 회복되신 듯 해서 저와 매형은 캠핑장에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주변의 호숫가와 상점들을 돌아보면서 며칠 동안 계속 운전을 해서 달려오느라 쌓였던 피로를 어느 정도 풀 기회를 가졌습니다. 맑은 호숫가를 여유있게 걸으면서 매형과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테 아나우에서의 둘째날도 그렇게 흘러가고, 저녁에는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다음날 일찍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저에게 먼저 일어난 매형이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지금 밖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그때 든 생각은 사실 ‘완전 망했다’였습니다. 원래 테 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가는 길은 자연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뉴질랜드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이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비가 많이 오면 밀포드 사운드에서 유람선이 운항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캠퍼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비바람이 몰아치며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광경을 보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매형이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해본 후 여기까지 와서 밀포드 사운드를 안 갈 수는 없고,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사이 비가 그칠 수도 있으니 원래 일정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매형은 비가 많이 오긴 하지만 조심해서 운전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면서 그렇다면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한 후 아침을 간단히 먹은 우리 가족은 멋진 풍경은 고사하고, 쏟아지는 비로 인해 속도를 줄여가며 천천히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은 좁은 산속의 꼬불꼬불한 도로였는데, 원래 예상했던 1시간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창문으로도 그 유명한 멋진 풍경을 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꾸역꾸역 비를 뚫고 사고 없이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제가 차에서 내려 유람선 티켓을 구입하려고 하니, 티켓을 파는 직원은 비가 많이 와서 유람선이 뜰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티켓을 구입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비가 계속 내리고는 있는데,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어 좀 기다리면 운항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차로 돌아와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한 결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후 상황을 본 후 유람선을 타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비바람을 뚫고 오느라 다들 떨고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따뜻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산 후 나눠먹으면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서서히 하늘 한쪽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유람선을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고, 샌드플라이 퇴치제를 뿌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줄달음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착장이 생각보다 멀어서 간신히 시간에 맞춰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줄을 서면서도 진짜 탈 수 있는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고 있자니 드디어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유람선에 타자 마침내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향해 출발~~

막상 유람선에 타고 보니 구름은 가득했지만 이제는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 걸쳐 있는 것이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절벽에는 새로 생긴 폭포들도 많았습니다. 마침내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밀포드 사운드의 유람선에 탔다는 생각에 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헤치고 폭포와 멋진 풍경들을 지나가다보니 어느 새 비는 그치고, 하늘을 맑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쏟아진 비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긴 폭포들이 절벽을 따라 물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밀포드 사운드까지 오는 길에 졸였던 마음이 다소 안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바다와 접해 있는 피오르드로 물개들과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물개는 보통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만 봤는데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물개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물개들은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에 익숙해진 듯, 널찍한 바위 위에서 편안하게 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개의치 않고 쉬고 있는 물개들을 뒤로 하고 유람선은 다시 또다른 폭포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어 하늘과 녹색의 피오르드 절벽, 떨어지는 하얀 물방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노르웨이에서 피오르드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절벽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은 기억 속 피오르드의 모습과는 다른 압도적인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돌고래로도 유명한데,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동안 돌고래가 나타나지 않아 좀 실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방향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유람선 뱃머리 앞 물속에 무언가 작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니 갑자기 위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마침내 등장한 돌고래 3마리가 유람선을 따라 헤엄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본 것도 신났지만, 이렇게 우리가 탄 배를 따라오는 것을 보니 함께 논다는 느낌이 들어 더 신기했습니다. 유람선은 이제 처음 출발한 선착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와 달리 파랗게 개인 하늘에 산등성이를 감싸며 넘어가는 하얀 구름, 교과서에서 배웠던 저 멀리 보이는 U자형 협곡까지… 비록 가는 길에는 별별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밀포드 사운드는 꼭 한번 가볼 만한 멋진 곳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다시 테 아나우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비가 그쳐 가는 길에 보지 못해 아쉬웠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맑아지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운전 역시 더 편해졌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가 늦어져 비록 비행기 시간에 맞춰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야 하긴 했지만, 소형버스 크기인 캠퍼밴을 운전해보는 좀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모자라 세계 최초로 번지점프를 시작했던 다리에서 번지점프를 해보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쉽습니다.

여행 막바지에 와인잔 하나가 깨져 새로 구입해서 보충해둬야 하는 줄 알고 여러 마트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 없어 반납할 때 사실대로 말했더니 직원은 보험이 있다고 신경도 쓰지 않은 일, 매형이 마지막에 크라이스트 처치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워넣어 반납하려고 좌회전을 하다가 역주행하는 반대차선으로 들어섰다가 기절할 뻔한 일 등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계속된 여행답게 마지막까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추억거리가 계속 쌓여 갔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이 캠퍼밴을 반납하면서 뉴질랜드 남섬을 종회무진 달렸던 캠퍼밴과 사진 한장을 남기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추억거리들로 가득한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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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3

캠핑 첫날의 교훈으로 서둘러 도착한 뉴질랜드 퀸즈타운의 홀리데이 파크는 캠퍼밴에 전기와 수도를 공급받을 수 있고, 별도로 마련된 편의시설로 깨끗한 화장실과 주방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멋진 캠핑장이었습니다. 물론,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좋은 곳을 고른 것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뉴질랜드에서의 두번째 밤을 보낸 캠핑장

루지를 타러 나가기 전에 미리 전기선과 수도호스를 연결해 충전도 하고 물탱크도 완전히 채워뒀던지라 저녁식사를 마친 후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어제보다 몸이 좀 회복되셨는지 설거지는 자신이 하시겠다면서 설거지 거리들을 가지고 제 조카와 함께 캠핑장에 있는 시설로 가셨습니다. 저와 매형은 식탁을 정리하고, 잘 준비를 위해 침대를 꺼내면서 침구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한 20분 정도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시지 않아 제가 주방이 있는 건물로 갔더니 아버지가 여전히 설거지를 하지 못하고 한쪽에 앉아 계셨습니다. 알고보니 일본에서 온 듯한 다른 팀이 설거지를 30분 가까이 하고 있어서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 아버지께 그냥 캠퍼밴에서 하자고 말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식기들을 챙겨들고 돌아와 캠퍼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설거지를 잘 하지 않으셨는데, 연세가 드시고 어머니와 시골로 내려가 정착해 사시면서 적응을 위해 설거지를 하시게 됐습니다. 집안 청소를 할 때도 깔끔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설거지도 깨끗하게, 식기에 고춧가로 하나 없이 깔끔하게 하시곤 합니다. 설거지 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오랜시간 공들여 설거지를 마치셨습니다.

아버지의 설거지가 끝나자 다들 양치질과 간단한 세면을 한 후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끄려는 찰나, 제 눈에 화장실 문 앞에 물기가 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누군가 세면을 하다가 물이 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장지를 뜯어 물기를 닦은 후 화장실 변기에 버릴 생각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화장실 안에 오수가 가득 차서 찰랑찰랑~~거리면서 화장실 밖으로 조금씩 넘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화들짝 놀란 저는 매형에게 가서 큰일 났다면서 화장실에 오수가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와 매형은 약간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시면서 물을 많이 쓰셨는데, 원래는 싱크대의 물이 바로 바로 배출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꿀럭꿀럭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물이 빠져나가길래 저도, 매형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싱크대를 통해 배출된 오수가 오수탱크 용량을 넘어 화장실 바닥의 배출구를 통해 다시 나오다보니 공기가 통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높이로 봤을 때 싱크대보다 화장실 바닥이 낮으니 압력으로 인해 화장실 바닥을 통해 오수가 넘쳤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는 깨끗한 물탱크와 오수 탱크의 용량이 같은데, 우리가 캠핑장에 주차를 해놓은 후 물탱크를 가득 채워놨더니 오수탱크의 용량을 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어쩐다… 일단 진정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간이 갈수록 싱크대의 오수는 압력 때문에 화장실 바닥을 통해 점점 더 배출될 것이 확실하고, 그런 상태로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를 통해 오수를 버리자니 화장실 안에서 출렁거리던 오수가 밖으로 마구 넘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생각해낸 방법은 화장실 변기에 넘친 오수를 퍼서 부은 후 변기를 통해 버려지는 오수를 모아두는 통을 끌고가 오수를 버린 후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으면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로 오수를 배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화장실에 물을 뜰만한 바가지 같은 것이 하나 비치되어 있어서 부지런히 오수를 퍼서 변기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변기에 오수를 붓다 보니 생각보다 변기에서 배출되는 오수를 담는 통은 빨리 찼습니다. 결국, 물을 퍼서 변기에 붓고, 그 오수가 담긴 통을 끌고 오수를 버리는 장소에 가서 버리고, 다시 돌아와 변기에 붓고, 끌고갔다가 오고… 이걸 한 5번은 한 끝에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뉴질랜드 퀸즈타운에서 달밤의 체조를 2시간 가까이 한 끝에 간신히 골치 아픈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밤 중에 캠핑장에서 이게 뭐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또다른 한편 잊지 못할 우스운 추억거리도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ㅎㅎ

달밤의 체조를 하면서 오갔던 오수 처리장 입구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전날 밤 체조 덕분인지 몸이 좀 쑤셨는데, 아버지는 전날 밤 자신 때문에 저와 매형이 고생을 했다고 생각해서인지 평소같지 않게 눈치를 좀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아침식사를 하고, 아버지가 쉬실 수 있게 캠퍼밴 뒤쪽에 있는 침대를 펴놓고 누워서 가실 수 있게 조치를 한 후 전날 받은 캐리어에 있는 감기약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괜찮다면서 한사코 약을 안 드시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출발을 했는데, 저도 좀 피곤하기는 했나 봅니다. 매형이 운전을 하다가 제가 교대를 했을 때 찍어준 사진을 나중에 보니 얼굴이 좀 탄데다가 초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 목적지는 테 아나우였는데, 테아나우는 뉴질랜드 남섬의 하이라이트인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관문이었습니다. 테 아나우 자체도 호반의 도시여서 무지개 송어낚시로도 유명했기에 우리 가족은 송어를 많이 잡아 송어구이 요리를 해먹자는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테 아나우에도 일찍 도착해서 얼른 호수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어 경치가 좋은 테 아나우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짐을 간단히 정리한 후에는 근처 상점에 가서 송어 낚시를 하기 위한 낚시대를 빌리고, 찌도 구입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등록도 해야 하기 때문에 낚시대를 빌려주는 상점에서 4명 모두 송어 낚시 등록증도 발부받았습니다. 송어 낚시를 할 생각에 다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신이 나서 차를 몰고 송어가 가장 잘 잡힌다는 강으로 이동했습니다. 낚시대를 챙겨 다들 강에 던지면서 어리숙한 송어가 초보 낚시꾼들의 찌를 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명의 어설픈 낚시꾼들이 낚시대를 드리운지도 1시간, 2시간… 시간은 잘도 흘러갔지만 역시 뉴질랜드 송어들은 생각보다 영리했습니다. 저는 주로 강바닥의 이끼를 낚아 올리거나, 어떤 때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끌려오길래 잔뜩 기대를 하고 당겼더니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발이 떡!!하니 올라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조카에게 낚시 던지는 방법을 알려주시고는 좀 피곤하셨는지 일찌감치 낚시는 접고 그늘에 앉아서 강바람을 쐬고 계셨습니다. 저와 매형, 조카는 그래도 송어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낚시줄을 던졌지만 결국 뉴질랜드 송어는 마트 생선코너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산천어 축제에서 산천어를 잡는 것과는 역시 천지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날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낚시도구를 정리해서 다시 차를 끌고 캠핑장으로 철수했습니다. 낚시대는 빌렸던 곳에 반납하고, 주변 음식점, 상점들과 공원도 둘러봤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후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다들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연일 계속된 이동과 오후에 했던 낚시로 인해 모두 피곤했나 봅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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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2

여행 첫날밤을 보내기로 했던 테카포 호수는 잔잔한 물결이 치는 조용한 곳이었는데, 그 호숫가에는 홀리데이 파크라는 캠퍼밴을 주차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일찍 출발해 야영장에 주차를 한 후 호숫가를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위탁수하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서 예상보다 출발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 가족이 홀리데이 파크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야영장이 캠퍼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구글지도를 보면서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는 다른 캠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테카포 호수 옆에 있는 알렉산드리나라는 작은 호수 옆이었는데, 테카포 호수 야영장과 달리 물과 전기를 끌어다 쓸 수는 없는 곳이었지만 저는 일단 차를 주차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졌지만 출발하기 전 사뒀던 육류와 채소, 와인으로 늦은 만찬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차 안에 있는 주방에서 고기를 굽다보니 차 안에 연기가 뿌옇게 차서 환기를 하는데 고생을 좀 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시간이 좀 흐르자 다행히 연기가 빠져나갔습니다. 처음 캠핑카를 이용하다보니 아무래도 시행착오들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얼른 식사를 한 후 다들 지쳤는지 침대를 펴놓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좀 춥길래 잠시 일어나서 옆으로 젖혀뒀던 이불을 다시 덮고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각도 하지 못했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환기를 한다고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 것을 깜빡했는데 열어뒀던 그 창문 맞은편에서 주무셨던 아버지가 밤새 호수에서 불어온 찬 바람을 맞고 감기 기운이 드셨던 것입니다. 자꾸 기침을 하시면서도 일정에 차질에 생기는 것이 걱정되셨는지 아버지는 따뜻하게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차량 뒤쪽에 침대를 편 후 이불을 덮고 쉬시게 한 후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토스트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테카포 호수에 가서 경치를 즐길 계획이었기에 서둘러 출발 준비를 마치고 다시 테카포 호수로 갔습니다.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테카포 호수는 선한 목자의 교회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인데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높은 마운트 쿡도 보입니다. 19세기 유명한 쿡선장을 딴 이름을 가진 마운트 쿡은 무려 높이가 3,724m에 이르는데, 높이가 있어서 그런지 산 윗부분은 만년설이 쌓여 있었습니다. 선한 목자의 교회는 돌로 지은 매우 작은 건물인데, 그 안으로 들어서면 호수쪽으로 난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는데, 그 바람을 맞고 있자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남섬에 가면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라 생각이 됩니다. 세면도구가 전날 실종된 위탁수화물 가방에 들어 있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더니 상태는 폐인 모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끝내줬습니다.

호수와 마운트 쿡 산의 경치를 즐기다가 다시 다음 목적지인 퀸즈타운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 테카포 호수에서는 구름에 가려서 완전하게 보이지 않던 쿡산이 제대로 보이길래 그냥 가기 아쉬워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역시 새하얀 만년설로 뒤덮인 산은 언제 보아도 언제 보아도 멋진 모습입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첫날부터 차를 운전했던 매형이 장시간 운전을 해서 피로해보였습니다. 원래 여행 계획을 짤 때 저보다는 운전이 익숙한 매형이 운전을 더 많이 하기로 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가 교대해서 차를 몰아 보기로 했습니다. 매형에게 어느 정도 가서 교대하자고 말을 했는데 착한 매형은 별로 힘들지 않다면서 계속 운전하길래 제가 저 앞 표지판 근처에서 세운 후 교대하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너무 급하게 세우자고 한 것인지, 차가 무거워서 밀린 것인지 길 옆에 차를 대다가 그만 길가에 있는 나무와 차량의 왼쪽 사이드미러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왼쪽 귀 아랫부분이 박살이 나 있었고, 다른 부분도 흠집이 나 있었습니다. ㅜㅜ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이 캠퍼밴을 렌트할 때 보험의 보장 범위를 넓게 설정해뒀는데 계약할 때는 비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막상 사고가 나고 나니 더 많은 비용을 내고 보험을 들어두길 참으로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ㅎㅎ 렌트했던 차량이 벤츠라서 보험으로 처리가 되지 않으면 수리비를 많이 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황하는 매형에게는 보험으로 처리가 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일단 사진을 찍어 사고를 정리한 후 다시 출발했습니다.

매형과 교대해서 막상 캠퍼밴을 운전해보니 일단 차폭이 넓고, 앞뒤 길이도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더구나 뉴질랜드는 고속도로도 왕복 2차선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 승용차는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이지만 우리 가족이 탄 캠퍼밴은 크기가 커서 제한속도가 시속 90km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뒤에서 승용차들이 빨리 가라고 바짝 붙어 오기도 해서 가끔 옆에 있는 이면도로로 피해 가면서 주행을 하다보니 신경이 더 쓰였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도로와 차량과 달리 뉴질랜드는 영국처럼 왼쪽으로 달리다보니 우회전을 할 때 특히 더 헷갈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갔더니 우리는 왼쪽으로 달린다는 포스터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ㅎㅎ

우회전을 할 때 더 크게 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도로에 익숙하다보니 작게 우회전을 해서 상대 차선으로 들어서는 역주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저도 고속도로에서 한번 사고를 쳤는데, 크롬웰이라는 작은 도시에 들러 식사를 하고 가려고 우회전을 하다가 상대방 차선으로 들어서 버린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포스터까지 붙일 정도로 관광객들이 사고를 많이 쳐서 그런지 상대방 차선에 있는 차들이 양보를 해주면서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가라는 말까지 해줬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한 경계석을 과감하게 넘어서 원래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휴…

크롬웰에서 식사를 하고, 마트에도 들렀다가 공원에서 좀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장시간 차를 타고 가느라 다들 좀 지쳐 있었기 때문에 좀 걸으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기 기운이 있으신 아버지가 좀 걱정이 되어서 감기약을 사서 먹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여쭤봤더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때 약을 사서 드시게 했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고집에 저와 매형의 낙관이 나중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해서 다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퀸즈타운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퀸즈타운으로 가면서 저는 또 열심히 뉴질랜드 항공사와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실종된 수화물 3개가 퀸즈타운 공항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공사에서는 운항 일정 때문에 오후 늦게나 수화물이 도착할 것이라고 해서 일단 캠퍼밴을 캠핑장에 주차한 후 공항에 가서 짐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서둘러서 출발한 덕분인지, 우리가 원하던 크릭사이드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전기와 물을 보충한 후 아버지와 조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저와 매형이 공항에서 짐을 찾아왔습니다.

퀸즈타운 공항에서 마침내 여행 캐리어 3개를 받고 나니, 마치 잃어버린 강아지들을 찾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며칠 동안 옷도 갈아 입지 못 하고, 양치질과 세면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상태로 지냈더니 여행 가방에 있는 세면도구들을 가지고 캠핑장에 있는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오면서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옷도 갈아 입고, 다양한 레포츠로 유명한 퀸즈타운에 왔으니 외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조카가 좋아할 것 같은 루지를 타기로 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루지 출발점인 스카이라인을 향해 가면서 조카와 사진을 찍었는데, 3일 동안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했더니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호수쪽 풍경을 봤더니 뒤로 펼쳐지는 경치가 전해 들었던 것처럼 엄청났습니다. 푸른 호수와 거친 산맥, 하얀 구름이 떠있는 하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루지를 탈 시간입니다. 루지는 저를 포함해 우리 가족들도 처음 타보는 것이었는데, 다운힐 MTB 같은 느낌이어서 나름 스릴도 있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경치도 즐기고 루지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낸 후에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어제와 비교해서는 매우 평화로운 저녁식사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이튿날은 하루가 잘 마무리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운명의 여신은 우리 가족의 여행 이틀째를 그렇게 쉽게 마무리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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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1

뉴질랜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한 나라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간고사를 얼마 안 남겨놓은 주말에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교실로 참고서를 찾으러 왔다가 구석 한 책상 위에 우연히 반지전쟁 번역본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력적인 제목이라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시험기간 동안 반지전쟁 전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중간고사 성적은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ㅎㅎ

저는 반지전쟁의 원래 제목이 반지의 제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전편인 호빗을 찾아 헤매다가 완역이 되지 않은 호빗이 아동용 도서로 번역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크를 귀신으로, 드워프를 난쟁이로 번역한 어린이용 호빗을 대형 서점에서 찾아내 몇시간 동안 서서 다 읽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기도 하지만 저는 아마 그때 톨킨의 팬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톨킨이 남긴 반지의 제왕, 호빗 이전의 역사를 다룬 다른 원고들을 편집한 실마릴리온을 읽고, 반지의 제왕, 호빗을 영어 원서로 다시 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톨킨의 작품에 빠져 있었던 제가 영화로 나온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놓칠 수는 없었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희망을 알았는지, 어느 날 누나가 이번 겨울에 남자들만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던졌습니다. 저와 아버지, 매형과 남자 조카 4명이 뉴질랜드를 캠핑카를 끌로 여행하는 코스였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경험해봤던 저였지만 캠퍼밴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고, 평소 운전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소형 버스 크기의 캠퍼밴을 운전할 수 있을지 다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자 가족들만 모여 여행을 한다는 것이 나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여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떠나게 된 뉴질랜드는 저와 여행을 함께 한 다른 가족들에게 예상치 못한 수많은 난관과 에피소드를 선사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출발하는 인천공항에서부터였습니다. 뉴질랜드는 직항이 별로 없고 항공권 가격도 비싸서 뉴질랜드 도착 시간과 한국 입국시간이 가장 적절한 것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좋은 항공권이 중국 광저우를 거쳐 뉴질랜드에 입국하고, 귀국할때는 경유하지 않고 바로 입국하는 항공권이었습니다. 출발은 수요일 오전 8시 30분 비행기라 공항에 별로 탑승객들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2시간 반 전인 6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 도착해보니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공항이 미어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시는 제2터미널이 완공 직전이라 더욱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약한 항공사가 대한항공과 공동운항편으로 운행되고 있어서 대한항공에서 탑승 수속을 하려고 했는데 대한항공 데스크 앞 대기줄은 이미 전체 섹터를 두번이나 빙 돌아서 감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대기줄에 일단 서있다가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이렇게 그냥 있다가는 제때 탑승수속을 마치고 타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셀프로 간단하게 탑승수속을 하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가 항공권을 받으려고 하니, 해당 기기로는 직항편만 가능하고 경유하는 항공편은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대기줄은 더 길어져 있었고… 6시 40분 정도 된 상황에서 다시 대기줄에 서서 속만 태우면서 하염없이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대한항공 데스크를 휘감았던 줄이 한바퀴로 줄어들었을때 쯤 갑자기 저쪽에서 대한항공 직원 한명이 단체 여행객이 있냐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얼른 우리 가족이 4명인데… 셀프 탑승 수속을 하려다 안되고, 출발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소연을 했더니 다행히 일단 단체 여행객 탑승 코너로 가자고 했습니다.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이 산더미였던 저는 다른 가족들에게 어서 따라오라고 말하면서 직원을 따라 단체 여행객 데스크로 갔습니다. 안내 직원에게 여권과 항공권 예약 출력물을 보여준 후 광저우로 가는 항공권과 광저우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가는 항공권까지 잘 받았습니다. 이제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위탁수화물을 올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직원이 전화를 해보더니 수화물이 너무 많아서 수화물을 싣는 운반 시스템이멈췄다고 설명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는데 이미 시간은 9시가 넘은 상황이었습니다. 탑승객이 많아 탑승권을 받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면 보안검색에도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저와 가족들은 점점 더 초초해졌습니다.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10분 정도 지나니 다시 수화물 운반 장치가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저는 시간이 촉박할 거 같아 직원에게 이제 보안검색을 받으러 가도 늦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희 아버지가 연세가 좀 있으셔서 패스트트랙 대상자이니 가족 모두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하면 된다면서 카드를 하나 줬습니다.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습니다. 막판에 서둘러서 다행히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광저우 공항에 도착한 후 환승구역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출발했습니다. 유럽에 가는 것 못지 않은 장거리, 장시간 비행이었지만 저는 그래도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즐기고 싸고 맛있는 고기들과 와인을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문제가 저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목적지는 오클랜드가 있는 뉴질랜드 북섬이 아니라 뉴질랜드 남섬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클랜드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남섬의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국내선 항공기의 예약 시간이 도착시간으로부터 1시간 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맡긴 수화물을 찾아 세관을 지나 입국을 하려면 약간 시간이 걸리고, 다시 국내선 항공권을 발권받아 항공기에 탑승하려면 또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가족들에게 서둘러서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우리 가족은 최대한 빨리 항공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렇게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린 후 위탁수화물을 찾는 곳에 1등으로 도착해 수화물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무슨 일인지 우리 가족의 수화물이 통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짐을 찾아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다른 탑승객들은 다들 짐을 찾아 나가는데 우리 짐은 30분이 지나도록 나오질 않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니 위탁 수화물 4개 중 1개가 나왔는데, 다른 짐들은 어딨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미 비행기에서는 모든 짐을 내린 상황이고… 결국 수화물 처리 부서를 찾아가 수화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담당 직원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우리 가족이 맡긴 수화물이 다른 비행기에 실려서 지금 뉴질랜드로 오고 있는데, 내일이나 도착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선 비행기 뿐만 아니라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캠퍼밴 예약도 이미 되어 있는 상황이라 지체할 수가 없었던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일까지 오클랜드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 수화물을 우리 일정을 고려해 퀸즈타운 공항으로 보내달라고 얘기한 후 국내선을 타고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예약했던 국내선 항공기는 이미 출발한지 오래였습니다.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해 사정을 얘기하니 다행히 자신들의 책임으로 수화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으니 무료로 다음 비행기의 항공권을 발권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참 다행이네~~ 저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안심한 우리 가족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으며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한 후 캠퍼밴을 예약한 현지 여행사로 이동했습니다. 여행사 주차장에서 예약한 6인용 캠퍼밴을 둘러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서 운전하기에 좀 부담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고에 대비해 보험상품을 충분하게 가입해둔 것이 위안이 됐습니다. 그래도 자동차 안에서 식탁과 침대도 조립해 사용할 수 있고, 화장실과 조리용 인덕션까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일단 대형마트에 가서 식재료와 필요한 생필품들을 모두 사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마트에 갔더니 기대했던대로 국내보다 육류가 저렴해서 양고기와 쇠고기, 닭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육류와 뉴질랜드에서 많이 먹는 다소 생소한 채소, 과자 등 간식과 음료 등 일주일치 식재료를 이것저것 잔뜩 샀습니다. 뉴질랜드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편인데도 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저렴해보였습니다. 든든하게 장을 본 후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해 첫날 숙박 예정지인 테카포 호수를 향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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