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르 우르파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넴룻산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한참 타고 가다가 핀란드에서 산 살라미를 잘라서 먹고 있는데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아이가 제가 먹는 것이 뭔가 궁금한지 계속 쳐다 보기에 순록과 곰고기로 만든 살라미라고 그림을 보여주면서 설명해줬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웃으면서 살라미를 잘라서 아이 어머니에게 주었더니 고맙다면서 곰고기는 처음 먹어본다고 하기에 저도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ㅎㅎ
가이드북을 보니 샨르 우르파에서 넴룻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아드야만이라는 도시에서 넴룻산 투어를 구할 수 있다고 하여 아드야만행 버스를 탄 것인데, 가는 길에 보이는 들판과 넓은 호수의 풍경이 멋져서 다른 여행객들처럼 저도 사진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아드야만에서 숙소를 구한 후 숙소에서 넴룻산 투어가 가능한지 알아보니, 제가 여행을 간 시기가 겨울이라 일반적인 넴룻산 투어는 이루어지지 않고, 개인적으로 차량과 가이드를 렌트해서 넴룻산과 주변의 콤마게네 왕국 유적을 돌아볼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혼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니 가격도 매우 비쌌는데, 그렇다고 거기까지 가서 넴룻산을 안 올라갈 수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비용을 지불하고, 투어를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넴룻산을 등산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날은 저녁을 든든히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준비를 하고 나가보니 택시가 한 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택시 기사가 택시를 몰고 하루 종일 저와 함께 일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넴룻산 높이가 2,150미터 정도 되는데 그 정상에 콤마게네 왕국의 안티오코스 1세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처음에는 그 높이를 다 등산해야 하는 줄 알고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로부터 다행히 택시가 한참을 올라가서 정상 부근에서부터 올라간다는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올라가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원래 겨울에는 찾아오는 여행객이 없어서 입장료도 받지 않고 관리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기뻤던 것도 잠시, 막상 입구에 도착해보니 관리자 뿐만 아니라 여행객도 하나도 없도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눈이 종아리 높이까지 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달랑 트래킹화에 편한 복장으로 올라간 저는 깜짝 놀래서 기사한테 저길 올라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기는 택시에서 기다릴테니 잘 다녀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비용도 다 지불했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혼자서 눈 덮인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아 근데… 진짜 아무도 없는 눈 덮인 산길을 계속 혼자 올라가다보니 이러다 조난이라도 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겁도 나고, 무엇보다 눈이 많아서 계속 발이 빠지니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저는 당시 물도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200ml짜리 음료수 하나와 초코바 하나 정도만 가지고 올라갔는데, 1시간 정도 지나니까 너무 목이 마른 것이었습니다. 결국 음료수를 다 마시고 계속 올라갔는데 나중에는 지쳐서 그냥 내려갈까 고민을 계속 하다가 쌓여 있는 눈이라도 먹자는 생각이 들어서 눈을 파헤쳐 안에 있는 나름 깨끗한 눈을 손으로 퍼서 먹으면서 정상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저는 쓰러질 것 같이 힘들었지만 기진맥진한 상태로 정상 근처에 도착하니 매점 같은 건물이 보였습니다. 살았다!!! 하는 생각으로 가까이 가보니 실망스럽게도 매점도 문을 닫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테이블과 의자가 있기에 그 곳에 앉아서 초코바를 먹으면서 쉬고 있는데, 저 아래에서 여행객 2명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깊은 산 속에 홀로 있는데 사람을 보니 얼마나 기쁘던지 그 여행객들을 기다려 같이 올라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잠시 쉬면서 힘을 회복했는지, 다른 여행객들을 보고 힘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여행객들이 제가 쉬고 있는 매점 근처로 오자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여행지에서 항상 하는 어느 나라에서 왔냐, 어디를 갔었냐 등등 얘기를 하다보니 이 여행객들 2명은 커플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차를 몰고 6개월에 걸쳐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중동을 지나 터키에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부럽던지…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시 무덤을 향해 함께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무덤에 도착해보니 일부 석상들이 눈에 묻혀 있기도 하고, 무덤 위로 올라가는 길이 전부 눈에 덮혀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힘들게 올가가는데, 위에는 눈이요, 아래는 자갈 같은 작은 돌들로 60미터 가까이 쌓아 놓은 지라 발이 자꾸 빠져서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지쳐서 주저앉기도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로 멋진 풍경에 그렇게 고생해서 올라간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에 앉아서 멋진 풍경을 감상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같이 올라왔던 커플이 아래에 있는 석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반대편에 있는 석상들은 몸통 부분이 훨씬 더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보여 저도 내려갔더니 커플이 제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고 좀 더 얘기를 나눴는데, 알고보니 그 커플은 결혼을 약속하고 남아프리카 태생 남자가 차를 몰고 여행을 하면서 애인인 여자친구의 부모가 살고 있는 영국까지 가는 중이었습니다. 심지어 페트라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을 했다고 하더군요. 우와…






1시간 반 정도 커플과 함께 산을 내려오면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남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경기장 설계를 맡았던 사람으로, 2년 가까이 거의 쉬지도 못 하고 일만 했는데, 월드컵이 끝나자 휴직을 하고 여자친구와 여행을 떠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감탄을 하자 자기도 1년이나 걸리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걱정도 많이 되었는데, 막상 닥치면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제가 몇 년 전부터 터키 여행을 오려고 했는데, 사법시험에 작년에 합격해서 이제야 왔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처음 출발했던 입구 가까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커플이 다음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기에 카파도키아로 간다고 했더니 자기들도 그 곳으로 간다면서 제가 원하면 자기 차에 같이 타고 가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뜻밖의 제안에 고마워 생각해보겠다고 했더니, 제가 머무는 숙소가 어딘지 알려달라기에 숙소 위치를 알려줬더니, 자신들이 그 앞을 지나갈테니 내일 오전 7시까지 숙소 앞으로 나오면 자신들이 픽업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커플이 좋은 사람들 같아 보여서 그렇게 하자고 말하고 헤어졌습니다.
입구에서 커플과 헤어지고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다행히 택시 기사가 저를 버리지 않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택시에 타자 어땠냐고 하기에 아주 힘들었지만, 올라가니 또 아주 좋았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유적들을 둘러볼 생각이냐 아니면 숙소로 갈 것이냐고 묻기에 좀 피곤하긴 했지만 이왕 투어를 시작했으니 예정대로 가자고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산골 깊은 곳으로 차를 몰고 출발하는데, 마치 영화에 나오는 요정들이 사는 세상 같은 풍경도 보고, 옛 왕국의 유적들도 보면서 하루를 알차게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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