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에서 인생의 새로운 화살표를 그리다 1

2022년 3월은 제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리는 시점이었습니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생긴 때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제 결혼이 늦은 편이라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인지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오랜 시간을 찾아헤맨 끝에 다행히 저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제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가정을 이룬 후 저도 마침내 든든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여자친구가 아내가 되는 다양한 절차와 노력을 거쳐 결혼식을 앞두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결혼식 3주 전 제가 코로나에 걸려 1주일을 집에서 격리하기도 했고, 결혼식 3일 전에는 오미크론 대확산이 절정에 이르러 하루에 코로나 확진자가 60만명씩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결혼식을 못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여자친구와 한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결혼식은 어찌어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와 저는 결혼식보다는 오히려 신혼여행에 더 정성을 쏟았습니다. 사실 신혼여행을 준비하던 초기에는 입국 시 격리가 있던 터라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분위기가 입국 시 격리가 해제될 것 같아서 일단 항공기와 숙소는 예약해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나 결혼식을 1주일 앞두고 입국 시 격리가 해제되어 폭등하는 항공권 가격을 보면서 미리 예약해두길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훌쩍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지 아내가 아직 여자친구일 때 많은 얘기를 한 끝에 프로방스 지방을 택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접해 있는 프랑스 남동부의 프로방스는 작은 도시와 마을들이 퍼져 있는 곳인데, 오랜 역사만큼이나 옛 모습을 잘 간직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아내가 천주교 신자라 아비뇽에 가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해서 저도 많이 이동하지 않고, 천천히 즐길 수 있는 프로방스에 찬성하게 됐습니다.

예식이 끝난 후 인사도 하고, 뒷정리를 한 후 비행기를 타느라 저녁 9시 좀 넘은 시간에 약간 빠듯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인지 공항에 이용객이나 공항직원들이 거의 없어서 고요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한적한 공항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항공사나 여행사를 비롯해 그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희는 터키항공을 탔는데 오랜만에 먹는 기내식은 더 맛이 있었고, 피곤해서인지 술 한잔을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비행시간이 전보다 길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중간에 이스탄불에서 경유를 해서 걷기도 하고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피로를 좀 풀었습니다. 다시 마르세유행 비행기를 타고 총 15시간 이상 걸리는 머나먼 이동을 끝내고 나니 마르세유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미리 렌트카를 예약해뒀는데, 다행히 렌트카 업체가 공항 바로 앞에 있어서 별 고생하지 않고 차를 빌려 바로 숙소가 있는 아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아를(Arles)은 마르세유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로, 론강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론강은 주변이 와인산지로도 유명하지만 고흐의 그림 배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첫번째 머물게 된 아를에서는 매번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고, 고흐가 남긴 유산을 찾아다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5시가 조금 안 되어 숙소인 오텔 쥘 세자르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호텔을 나서는데, 호텔 앞에 조명이 멋지게 켜져 있었습니다.

예약할 때는 호텔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듯 말듯 했는데, 현지에 와서 직접 스펠링을 보니 율리우스 카이사르 즉, 줄리어스 시저였습니다. 찾아봤더니 이 곳은 17세기에 카르멜회 수녀원이었는데,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호텔로 개장한 곳이었고, 호텔 방 내부도 오래된 가구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짐정리를 하고 나오느라 약간 시간이 지체되어 6시로 예약한 식당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첫 식사라 프로방스 가정식을 하는 곳을 골랐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저희가 갔을 때는 손님들도 많지 않고 밝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프로방스에서 유명한 로제와인과 현지 채소와 치즈 등 유제품으로 만든 메뉴들로 건강식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프랑스 작은 마을의 조용한 뒷골목을 걷노라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물론, 비도 오고 여기저기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내일 어디에 갈지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바깥공기는 시원해서 산책을 하기에는 참 좋았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가니 장거리 여행으로 인한 노독이 몰려왔는지 침대에 쓰러져 푹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아를 인근에 있는 님(Nimes)에 가기로 했습니다. 님은 로마의 판테온과 더불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메종 카레라는 로마시대 신전과 원형 경기장으로 유명한데, 원형 경기장은 아를에도 있어서 신전을 보러 간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아들들에게 봉헌된 메종 카레는 서기 4~7년에 건립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정도 된 건축물입니다. 님은 또 청바지의 원료인 데님(Denim)의 대표적 산지인데 원래 Serge de Nimes에서 유래된 명칭이라는 것입니다.

님에 도착해 신전에 가기 전 아내가 여기에 유명한 제과점이 있다면서 거기에 먼저 들르자고 했습니다. 그 말에 혹해서 Maison Villaret로 갔더니 아내 말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지 못한 빵들과 예술작품 같은 초콜렛들이 진열장에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날도 춥고 배도 고프던 차라 아침을 따뜻한 차, 초콜렛, 파이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덥힌 후 제과점을 나섰는데, 가까이에서 본 메종 카레는 최근에 새로 보수공사까지 해서 몇년 전에 지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하얗고 깔끔했습니다. 님에 가게 된 것은 바로 이 로마신전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우리가 님에 간 날에 메종 카레에서 프랑스의 역사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서 입장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메종 카레를 빙 둘러서 본 후 사진을 찍고 다시 아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님과 아를은 차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님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흐가 랑글루아교라는 도개교를 그린 장소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원래 있던 도개교는 너무 낡아서 철거하고 새로 설치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고흐 그림에 있는 도개교와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도개교보다도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개교 인근 강변의 풍경이었는데,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 참 목가적이고 평화로웠습니다. 아내가 사진도 찍어줘서 잠시 포즈도 취하고, 함께 강변을 잠시 걷다가 차를 몰고 아를 시내에 있는 공동묘지, 알리스캉으로 이동했습니다.

알리스캉(Alyscamps)은 로마시대부터 부유층들이 뭍혔던 공동묘지로, 고흐가 고갱을 초청해 함께 작품을 그렸던 포플러나무와 단풍나무가 길 양편에 우람한 기둥처럼 서있는 곳입니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묘지들과 세밀한 조각이 새겨진 묘비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단풍이 드는 가을에 왔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떨어지는 낙엽과 처연한 묘지가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아서입니다.

묘지를 나와 아를 시청 지하에 있는 터널을 둘러본 후 다시 아를 원형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를이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라 시청에서 원형 경기장까지 거리도 걸어서 얼마 안 걸렸는데, 계단을 한참 걸어 원형 경기장 위에 오르니 론강과 아를 시내 전경이 사방으로 훤히 보여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원형 경기장 위에서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을 즐기다 졸음이 몰려오는 듯 해서 몸을 일으켜 다시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원형 경기장 아래에 기념품 가게에 들렀는데, 마르세유 공항에 내린 후 처음으로 한국인 커플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 부부가 신혼여행을 갈 당시가 코로나 대확산기라 프랑스에서도 거의 한국인들을 볼 수 없었는데, 아마도 그 한국인들도 신혼여행을 온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더니 배도 고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와인과 안주거리를 사서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인근 마트에 갔더니 이럴 수가~~ 프로방스 현지 생산 와인들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마트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이 분홍빛깔의 로제 와인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로제 와인들을 사기로 했는데, 워낙 종류가 많다보니 어떤 걸 살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매의 눈으로 와인들을 고르고 있는 제가 신기했는지 아내가 쇼핑하는 제 모습을 찍기도 했습니다. 숙소에 돌아가서는 아내와 마트에에서 사온 와인과 안주들로 포식을 했습니다.

아를에서의 마지막 날은 고흐 미술관, 고흐의 그림 중 노란 테라스로 유명한 카페,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을 감상할 계획이었습니다. 먼저 좁은 골목골목을 차를 몰고 힘들게 고흐 미술관을 찾아갔더니 웬걸~~ 주차장이 없다고 해서 다시 차를 끌고 좀 떨어져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걸어가기에 멀지는 않아 미술관에 갔더니, 고흐 미술관 직원이 설명하길 현재 미술관에는 고흐 작품이 1점만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작품들은 다른 곳에 전시하기 위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허탈해진 우리는 미술관 앞에서 기념 사진만 찍고 인근에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흐의 그림 ‘아를의 포룸광장의 카페 테라스’로 유명한 카페는 아침이라 아직 영업을 하기 전이었습니다. 원래 그림에 있는 것과 거의 유사하게 다시 리모델링을 한 것이라는데 영업 시작 전이라 아쉽게도 차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차는 마시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진을 한 장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카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한 장 남겼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인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를 찾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정신병원으로 운영되지 않고 도서관과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흐가 화려한 그림으로 남겼던 정원에는 여전히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어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기쁘게 해줬습니다.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아름다운 꽃들에 취해 있다가 한쪽을 보니 예쁜 기념품들을 파는 곳이 있어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사막여우 스노우 볼을, 고흐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고흐 머그컵을 각각 기념으로 샀습니다.

아를에서 고흐와 관련된 장소들을 어느 정도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가는데, 우리 호텔 앞에 있는 성당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성당의 외벽에 장식된 조각을 봐도 상당히 오래된 느낌이 들어 한번 안에 들어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부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도 웅장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이 성당은 생트로핌 아를 성당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2개의 건물이 결합된 형태인데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등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최후의 심판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검은색 대리석 기둥 사이에는 성인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나중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성당에서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렸다고 하는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태양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강렬함에서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정적이고 편안했던 아를에서 고흐의 흔적을 따라 다닌 우리는 프로방스와 첫 대면을 기분좋게 시작했습니다. 아를이 과거에는 화려하고 큰 도시였다는 알게 된 후 도시의 흥망성쇠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프로방스에서 유명한 또 다른 도시 아비뇽을 향해 다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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