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은 여행 매니아들 사이에서 비록 남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다들 한 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입니다. 넓은 국토, 여행할 수 있는 기간 제한, 혼자 여행하기가 어렵고 보통 4인 이상 팀으로 푸르공이라는 구소련제 지프와 운전기사 및 가이드까지 함께 구해서 여행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물로 씻기도 어렵고, 좁은 차안에서 최소한 일주일 이상을 함께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성격이 잘 맞지 않으면 여행이 아니라 고역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수원에 있을 때부터 몽골여행을 한 번 가고 싶어서 몽골여행 동행자를 여행 카페에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2015년 봄부터 동행자를 구하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획한 몽골여행은 최소한 열흘 이상이었기 때문에 여유있게 여행을 할 동행자들이 필요했는데 마침 2주 가까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동행자들이 글을 올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글에 댓글을 달고 기다렸더니 몽골여행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추가로 댓글을 달아서 드디어 몽골여행 팀을 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행 출발 전 오프라인으로 2회 정도 만나 여행 준비를 분담하고, 미리 숙소, 자동차 등 예약과 계약금 송금을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몽골 숙소와 여행사는 해외계좌 이체가 아니라 웨스턴 유니언을 통해 직접 송금을 해달라고 요청해서 처음으로 웨스턴 유니언을 이용해보기도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직업도 제각각인 몽골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각자 일정도 다르고, 몽골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일단 각자 일정에 맞춰 몽골 울란바토르 숙소에 도착해 특정 시각에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재판 일정과 법인 설립 일정이 있어 여행 출발 전날까지 몽골 숙소에 도착해 다른 일행들과 몽골 울란바토르 구경을 하고 출발하기로 계획을 했습니다. 마침 중국 베이징을 거쳐 몽골로 가는 중국 K항공사가 있길래 베이징에 들러 하루 정도 베이징을 둘러보고 유명한 베이징덕도 먹어볼 기회라는 생각에 얼른 항공권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이후 제게 생각지도 못한 고난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당시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바쁜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몽골여행에 대한 기대로 밤잠을 설치던 시간이 흘러 마침내 항공기를 타고 출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할 당시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항공기는 별 문제없이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베이징 공항에서 경유 수속을 밟은 후 시간이 좀 남아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면서 배터리 충전을 하고, 책을 읽는 등 여유를 즐기다가 베이징에서 몽골로 출발하는 항공기를 타러 탑승구로 갔습니다.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국제선이긴 하지만 거리가 짧아서인지 탑승구에서 기다리는 이동용 차량을 타고 도착한 곳에는 작은 항공기가 한 대 서 있었습니다. 항공기를 보고 중국과 몽골이 바로 옆 나라인데도 교류가 그리 많지 않은가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탔는데, 막상 항공기에는 서양인들이 상당수라 저처럼 몽골로 여행을 가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으로 보였습니다. 비행시간이 편도로 2시간 남짓이어서 몽골에 도착하면 숙소에서 마중나올 사람과 울란바토르의 명소에 대해 찾아보니 어느덧 울란바토르 칭기즈찬 공항이 보였습니다.
제가 탄 항공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길래 이제 착륙을 하려나보다 생각을 하는데, 이상하게 활주로 가까이 갔다가 다시 고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와서 울란바토르 공항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착륙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안전벨트를 잘 매고 대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윽고 항공기가 울란바토르 공항을 중심으로 30분 정도 4, 5바퀴 선회를 하더니 갑자기 울란바토르를 뒤로 하고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나오길 기상 상황이 호전되지를 않아서 착륙이 어렵기에 일단 베이징 공항으로 회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도착하는 날 저녁에 일행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회항을 하게 되면 일행들에게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베이징으로 돌아가면 공항이나 숙소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후 연락을 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세기는 했지만 큰 문제없이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임시 입국증을 발급받아 항공사에서 배정해 준 공항 인근의 호텔로 이동을 했습니다. 항공사에서는 다음날 새벽에 다시 몽골로 가는 일정이 예약되었다고 안내를 해줘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온 여행객과 호텔방을 같이 쓰게 되었는데, 배도 고프고 베이징에서 어차피 하루 묵게 된 김에 근처 식당에 가서 훠궈를 먹기로 했습니다. 함께 간 독일인을 고려해 홍탕이 아닌 덜 매운 백탕을 선택했고, 청경채 볶음을 함께 먹었는데 생각보다 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예상치 않게 포식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몽골에 이미 도착해 있던 일행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제가 단체 카톡방에서 기상 문제로 회항을 해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고 하니 다음날 한국에서 몽골로 가는 일행들은 자신의 비행기도 연착할까 걱정하고, 이미 몽골에 있던 일행들은 제가 다음날 오후에 도착하는 것을 고려해 일정을 변경해 제가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에 공항에 도착해서 저를 태워서 여행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룸메이트와 함께 항공사가 제공한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공항에서 수속을 하고 항공기를 타고 보니, 제 독일인 룸메이트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어제 항공기에 타고 있었던 승객들이라 반갑기도 했습니다. 다시 제가 탄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시간이 흘러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이 보이자 이번에는 착륙을 하겠지 하면서 다소 숨을 죽이고 착륙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탄 항공기 전에 다른 항공기가 공항에 착륙하는 것이 보여서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항공기가 머리를 숙여 하강하면서 칭기즈칸 공항 활주로를 향해 내려가 2, 3미터 고도에 다다르고 착륙할 것 같았는데, 웬일인지 갑자기 다시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상승한 항공기가 공항을 한 바퀴 도는가 싶더니 갑자기 다시 고도를 높여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일어나 승무원에게 가서 왜 돌아가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다시 돌아간다고 대답을 하길래, 다른 항공기들은 착륙을 하고 있는데 왜 이 항공기만 착륙을 못 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승무원은 제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하면서 계속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착륙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만 반복했습니다. 이에 제가 어제 비행기가 회항을 해서 지금 일행이 공항에 와서 나를 태워가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항의를 했더니 여전히 기상 얘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승무원에게 항의를 한 후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잠시 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비바람이 거세서 안전을 위해 다시 베이징 공항으로 회항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 항공기 안에서는 탄식 소리와 항의하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기장이 회항을 한다는데 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일행에게 너무 미안했고, 일행이 울란바토르를 떠나면 몽골 대평원에서는 전화나 인터넷도 잘 안 되는데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야 했습니다.
베이징 공항으로 돌아온 후 항공사에서는 다음 비행시간이 언제 확정될지 모르니 공항에서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대기하라고 공지를 했는데, 일부 승객들은 항공기로 가기 어려우면 기차나 자동차를 이용해 몽골에 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그 얘기를 듣고 정보를 찾아 보니 기차는 이미 오전에 출발을 해서 탈 수가 없었고, 자동차는 국경을 넘어 도착하는데 16시간 이상이 걸린다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룸메이트를 비롯한 일부 승객들은 매해 여름마다 몽골에서 열리는 승마 마라톤 경기에 참여할 목적으로 가는 것이라 마음이 더 급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일단 일행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항 라운지에 가서 와이파이로 카톡방에 비행기가 다시 회항을 했다는 황당한 사정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일행들은 울란바토르를 벗어났는지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어 차라리 그냥 귀국을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여행 계획을 다함께 짜면서 서로 믿고 준비를 했는데, 이제 제가 가지 않으면 그런 신뢰를 저버리는 셈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만일 제가 가지 않으면 다른 일행들이 여행경비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찌 되었든 몽골로 가서 일행들을 찾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조바심을 낸다고 갑자기 해결할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 일단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고,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항공사에서 다시 출발할 시간을 공지하길 기다렸습니다.
몇 시간 후 항공사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공지를 하기에 공항에서 대기하던 승객들이 다들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기상 상황도 문제지만 비행기가 너무 작고 낡아서 다른 항공기들은 착륙을 하는데도 우리만 다시 회항한 것이 아닌가 해서 이번에 갈 때는 더 큰 다른 항공기를 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항 게이트에서 셔틀을 타고 비행기에 도착하니 또 같은 비행기여서 3번째 회항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일단 항공기가 베이징 공항을 떠난 후 항공기 내부를 봤더니 거의 2/3 이상의 승객들이 이미 같은 항공기를 타고 울란바토르에 갔다가 함께 회항한 승객들이라 얼굴들이 눈에 익었습니다.
드디어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저를 포함한 승객들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기색이 완연했습니다. 기장의 안내 방송과 함께 비행기가 하강을 시작하자 입 안의 침이 마르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활주로가 보이고 항공기의 바퀴가 내려간 후 10미터, 5미터, 2미터 지상을 향해 항공기가 내려가다가 마침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퀴가 활주로에 닿았습니다. 이어서 항공기의 속도가 줄어들자, 항공기 내부는 박수를 치고 기쁨에 차 환호성을 지르는 승객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이틀에 걸쳐 2번이나 회항한 끝에 마침내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먼저 투어를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일행들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막막한 과제가 저에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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