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국에서나 여행을 가서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비몽사몽인 제게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본다는 것은 나름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침마다 침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저라도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곳이자, 환상적인 일출 명소인 앙코르와트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들면 좋은 자리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기사를 불러 앙코르와트로 출발했습니다. 앙코르와트 입구에 내렸더니 아직 새벽이라 깜깜하기에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걸어가는데, 저와 같은 관광객들이 많은지 마치 반딧불처럼 여기 저기서 하얀 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하구나 하고 혼자 웃기기도 했습니다. 앙코르와트 입구를 지나면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수면에 3개의 탑이 비쳐 가장 아름답다는 일출 명당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점점 일출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더니 제 앞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까지 나타나서,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멀리에서 희미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이제 옆 사람은 잠시 잊고 점점 커지면서 눈부시게 빛나는 해와 데칼코마니처럼 연못에 비친 탑의 모습을 보면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구름 뒤로 숨고, 세상 전체가 밝아진 후 저도 자리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앙코르와트 내부를 꼼꼼히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원 내부 1층 회랑에는 제가 좋아하는 인도의 2대 힌두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에 관한 부조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조각된 이야기에는 신들과 악마인 아수라, 천상의 무희들인 압사라 뿐만 아니라 영웅들과 왕들까지 등장해 다양하고 화려했습니다. 오늘은 빨리 가자고 눈치를 주는 가이드도 없어서 조각들을 하나씩 여유있게 감상하면서 사진으로도 많이 남길 수 있었습니다.













1층 회랑의 조각들을 살펴본 후에는 사원의 담 안쪽의 넓은 공간으로 나갔습니다. 조각들로 가득한 회랑을 계속 돌다가 널찍한 마당으로 나오니 분위기도 밝고, 가슴도 탁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안에 있을 때는 잘 알지 못했는데, 밖에서 바라보니 사원의 회랑과 벽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사원의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사원의 중심부를 향해 가는 통로의 벽에도 조각들과 신상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중앙에 있는 탑은 주위를 둘러싼 여러 가파른 계단 형태 중 실제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만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데, 철제 계단으로 보다 오르기 쉽게 만들었음에도 경사가 급한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높은 곳은 아무래도 멀리까지 보여 경치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줄줄이 비엔나처럼 줄을 서서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중앙탑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중앙탑에 오르느라 힘이 들었는지, 오전 8시가 되기도 전인 이른 아침인데도 얼굴에 땀이 났습니다. 탑 상층부에 올라서 돌아보니 여기에도 이곳저곳 아름다운 조각들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는 불상의 광배를 나가 형상으로 만든 것이나 천수관음처럼 여러 손이 조각된 신상이 특이해보였습니다. 사람들 틈새를 헤치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창문쪽으로 갔더니 역시나 높은 곳이라 그런지 사원 밖 저 멀리 숲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었습니다.











중앙탑에서 경치를 즐기면서 살살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나니,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졸음이 솔솔 몰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볼 것들은 어느 정도 봤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가 잠을 보충하고, 느지막이 점심 이후에 일어나 호텔 수영장 한 켠에서 가져간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호모 사피엔스였는데, 두어 시간 책을 읽다가 햇살이 다시 강해지길래 다시 방에 돌아가 책을 놓아둔 후 짐을 챙겨들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습니다.
저는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면 마사지를 자주 받는데, 이번에는 많이 걷기도 해서 마사지를 제대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발마사지 레슨을 받고, 강습이 끝난 후에는 마사지를 받는 프로그램이 있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마사지 레슨을 받는 곳은 처음 가봐서 여러 상품 중 마음에 드는 발 마사지 프로그램을 고른 후 1시간 정도 1:1 레슨을 받았는데, 강사와 서로 마사지를 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레슨 프로그램에는 마사지 교본까지 포함되어 있어 그 교본을 보면서 나중에도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사지 레슨이 끝난 후에는 커피 껍질을 이용한 아로마 전신 마사지를 받았는데, 커피 껍질을 넣은 오일은 온 몸에 바르고 그 위를 비닐로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마사지를 많이 받아봤지만 마치 소세지 빵처럼 몸을 돌돌 감싸는 방식의 마사지는 처음이라 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돌아다녀서 노곤했는지 어느 순간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시간이 다 됐는지 마사지사가 저를 깨워서 레슨 때 받은 교본과 제 나머지 짐을 챙겨들도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마사지를 받고 숙소에 와서는 푹 휴식을 취했는데, 이렇게 관광을 하고 휴식도 취하고 나니 학위 논문을 쓸 준비가 된 것 같아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저는 앙코르와트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주변 맛집에 가서 캄보디아 맥주와 캄보디아 전통 음식으로 기념했습니다. 다음 날 숙소를 나오는데 갑자기 호텔 지배인이 카드 한 장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나름 여행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정성들여 카드를 직접 써서 주는 곳은 본 적이 없어 신기하면서도 은근히 기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카드를 보면서 많이 상업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순박한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귀국 비행기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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