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제주도를 몇차례 다녀왔습니다. 어렸을 때는 길가의 야자수, 만장굴, 천지연폭포, 여미지의 이국적인 풍경, 비싼 귤 등 매력적인 관광지였지만, 해외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제주에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법연수원에서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온 후 그런 선입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올레길, 오름 투어, 다양한 박물관 등 어릴 적 제주도와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고 생각해보니 사법시험 준비를 한다고 오랫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된 후 사무실이 대강 정리된 후 부모님을 모시고 일종의 효도여행을 한번 계획했습니다. 다행히 부모님도 늦가을에는 어느 정도 할 일이 정리되셔서 가을의 제주도를 즐기러 출발했습니다.
제주도 도착 첫날, 오후 늦게 제주공항에서 렌트카를 타고 숙소가 있는 애월읍으로 향했습니다. 연세가 좀 있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하는 것이라 일정을 여유있게 잡았기 때문에 제주 도착 첫 날은 숙소에서 쉬고 주변을 천천히 돌기로 했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자동차길을 따라 일몰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는데 부모님과 내려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부모님과 여행을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소로 잡은 빌라드애월은 한적한 곳으로 시설도 깔끔하고, 주변의 풍광이 멋진 곳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숙소에 짐을 풀고 숙소 주변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바닷가인데도 소금기가 많이 느껴지지 않고, 가을 저녁의 상쾌한 바람이 귓가를 스쳐지나가니 저도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숙소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숙소가 최고급 호텔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개성있는 인테리어를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건물 주변에는 억새를, 건물 옆 공간에는 바닥과 벽 위에 장독들을 배치해뒀는데, 그냥 장식인지 아니면 장을 담가서 다른 사업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연한 배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너무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스타일과 따뜻한 햇살이 어우러져 여행객의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줬습니다.








빌라드애월을 숙소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숙박료에 포함되어 있는 조식의 맛이 괜찮다는 것이었기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차를 타고 서둘러 한라산 영실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한라산 영실은 한라산에서 유일하게 가을 단풍이 드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다소 고도가 높은 주차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등산을 하기에도 좋은 코스였습니다. 영실에 도착해 천천히 산을 오르니 듣던 바대로 예쁜 단풍이 든 나무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천천히 단풍을 구경면서 산을 오르다가 부모님을 보니, 오랜만에 등산을 하셔서 그런지 좀 힘에 부쳐 하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발걸음을 늦춰 부모님의 보폭에 맞춰 걸으면서 부모님이 어느새 연세가 많이 드셨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구석이 좀 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모님도 한라산에 단풍이 드는 영실코스는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같이 올라가시겠다고 했는데, 제가 괜히 무리하게 하신 것은 아닌가 해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좀 나아지셨고, 올라갈수록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서 부모님도 잘 올라왔다고 하시니 기운이 났습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영실을 다 올라가니 저 멀리 윗세오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보는 윗세오름은 무언가 신령한 기운이 감싸고 있는 듯한 범상치 않은 모습이어서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멋졌습니다. 윗세오름까지 가는 길은 평탄한 편이었는데 주변의 크고 작은 언덕들도 기생화산인 오름인가 궁금했습니다. 윗세오름 가까이 가니 휴게소가 있고 컵라면을 파는 곳이 있어 부모님과 따뜻한 라면 국물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배까지 고프니 라면이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라면을 다 먹은 후 잠시 쉬었다가 천천히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 한라산 영실 등산을 마무리했습니다.





Views: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