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합격 후 핀란드, 터키 여행 7

아마시아에서 푹 쉬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사색을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마시아를 떠나 마지막 목적지인 이스탄불로 가는 장거리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이드북에는 대략 9시간 정도 걸린다고 써있었는데, 실제 버스를 타보니, 밤까지 운행을 해서 그런지 11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장거리 운행이다보니 중간중간 2시간에 한번 정도 휴게소에 들렀는데 휴게소에서 간단한 간식을 사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버스를 타다보니 밤이라 잠이 들었는데, 머리를 한쪽으로 숙이고 잤는지 반대편 목이 너무 아픈 것이었습니다. 잠이 깨자 너무 뻐근하고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다시 휴게소에서 몸을 좀 풀고 버스에 탔습니다. 버스의 불이 꺼지자 다시 잠이 오길래, 이번에는 반대로 머리를 숙이면 좀 나을 줄 알고 그렇게 잤더니, 다음날 새벽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머리를 좌우 어디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목 전체가 아팠습니다. ㅜㅜ

목을 주무르면서 풀고 있는데, 잠시 소란스럽더니 경찰이 버스에 탑승해 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타고왔던 버스의 여승객이 버스 기사에게 자신이 잠이 든 사이에 옆에 있던 남성이 자신을 만졌다고 경찰을 불러달라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기사는 이스탄불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문을 열지 않고, 터미널에 연락해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여승객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였는데, 경찰에게 영어로 상황을 설명했고, 경찰이 해당 남성을 데리고 내렸습니다. 터키는 세속주의국가이긴 해도 이슬람국가라 성범죄에는 엄격하게 처벌하고, 특히 관광수입 비중이 높아서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중대하게 본다고 합니다.

이스탄불에 오는 버스에서 친해진 승객이 몇명 있었는데,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와서 다들 배가 고팠는지 함께 이스탄불 터미널 근처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승객 중 1명이 자신이 자주 간다는 현지 식당으로 데려갔는데, 관광객 상대로 하는 곳이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저는 술탄 아흐메트 광장 근처 숙소로 가서 짐을 놓고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먼저 고대부터 수많은 문명이 거쳐갔던 보스포러스 해협을 보러 갔습니다. 터키에서 유명한 돈두르마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보고 있자니, 이 곳을 얼마나 많은 영웅들, 정복자들, 상인들, 노예들이 지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사소한 일에는 좀 더 대범해져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해가 지는보스포러스 해협

보스포러스 해협을 본 후에는 주변의 갈라타탑을 둘러보고, 술탄 마흐메트 광장 주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술탄 마흐메트 광장 벤치에 앉아서 본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는 내일 방문에 대한 기대를 더 크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야 소피아(소피아 대성당)부터 방문했습니다. 늦게 가면 관광객들이 많아 제대로 볼 수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서둘렀는데, 역시 아침부터 관광객들은 많았습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남은 영토이자 심장인 이스탄불을 점령하고도 그 아름다움 때문에 무너뜨리지 않고, 모스크로 개조했다는 아야 소피아는 명성에 뒤지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야 소피아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특정한 종교나 시대, 사상을 넘어서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블루 모스크는 아야 소피아 못지 않은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슬람교 성지인 메카의 카바 사원 첨탑처럼 6개로 되어 있어 건축 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합니다. 내부는 천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푸른 타일을 만나 푸른색 파스텔로 칠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블루 모스크 다음에는 토프카프 궁전을 갔는데, 섬세한 조각들로 가득한 방들과 잘 정돈된 정원들이 미로처럼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터키에 가서 꼭 마시고 싶었던 와인이 있었는데, 로마의 카이사르가 폰투스 왕국의 파르나케스 2세와 전투에서 승리한 후 로마 원로원에 베니(Veni), 비디(Vidi), 비치(Vici)라고 쓴 편지를 보내며 마셨다는 토카트(Tokat) 지역산 와인이었습니다. 아마시아로 가는 길에 버스가 토카트를 지나갔는데, 정차는 하지 않아서 미처 와인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탄불에 와서는 와인을 많이 마실 것 같은 이스탄불 대학교 근처 주류점들을 싹 뒤졌는데, 열군데 가까운 주류점을 찾아다닌 끝에 마침내 토카트산 와인을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토카트 와인을 같은 숙소에 머물던 다른 여행객들과 그 역사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눠 마시면서 터키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만끽했습니다.

다음날에는 500년도 더 된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에서 구경을 하면서 기념품을 산 후 아쉬운 마음으로 오랫동안 꿈꿔왔던 터키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터키 공항에서 마지막에 산 터키 전통술 라크는 45도 정도 되는 증류주인데 물을 섞으면 하얗게 되어서 ‘사자의 젖’이란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이 술을 사법연수원 입소한 후 회식 때 가져갔는데, 술을 잘 못 마시는 젊은 연수생들은 마시기 힘들어했던 기억도 납니다. 미안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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