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도, 사람도 풍족한 중국 쓰촨성 여행 2

다음날 아침에는 모두 일찍부터 일어나 미리 예약했던 투어 버스를 타고 아미산 관광을 시작했는데, 그 첫 목적지인 러산대불로 이동했습니다. 아미산은 무협소설이나 무협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주변 풍광이 좋고, 볼 만한 유적지도 많은 중국의 불교 명산이자 영산이기도 합니다. 이동하다 보니 생각보다 숙소에서 거리가 좀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큰 불상을 보기는 쉽지 않아 나름 기대가 됐습니다. 강가에 도착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생각보다 강변에 안개가 많이 끼어 조짐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입장 시간을 거의 1시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러산대불이라고 새겨진 돌을 지나 입장을 시작했는데,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러산대불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유적이나 유물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자세히 둘러보고 올 시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역시 중국에서 주말에 여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힘들게 대불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니 사찰의 문이 하나 있었고, 그 곳을 지나니 마침내 엄청난 크기의 불두가 보였습니다. 신기해서 더 가까이 가보니 불상 전체가 보였는데, 그 크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고, 어떤 곳은 벽돌을 쌓아 형태를 보완한 것 같았는데 사실 옆에서 봐서 그런지 조형미가 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나오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불상이란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좀 아쉬웠던 것은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강 건너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안개가 만이 낀 탓에 유람선도 운항을 하지 않아 러산대불을 한 눈에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러산대불을 둘러보고 옆에 있는 사찰의 전각으로 다가가니 능운사라는 현판이 보여, 역시 평소에도 주변에 안개가 자욱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찰에는 달마화상 같은 후덕한 분도 계시고, 우리나라와 좀 달리 매우 화려하게 치장된 사천왕상도 있었는데, 역시 중국이라 그런지 표면에 개금을 많이 해서 번쩍번쩍 눈이 부셨습니다.

어느 정도 둘러본 후에는 다시 다음 목적지인 금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안개가 잔뜩 끼고, 가랑비도 조금씩 내려서인지 입장권을 파는 곳에서 방수용 점퍼도 한 벌씩 대여해줬습니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간식을 파는 점포들이 있는데, 그 중 제가 좋아하는 군옥수수를 파는 곳이 있어 일행들과 함께 옥수수를 사먹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중국 옥수수는 우리나라 옥수수보다 더 아삭거리는 씹는 식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군옥수수는 숯불에 너무 구워서인지 1/3 가까이가 숯이 되버려서 아깝지만 일부는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행길이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점퍼까지 입고 가려니 약간 숨이 가빠오는 찰나, 마침내 금정이라는 표지판이 서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금정 가까이 도착했는데, 반짝거리는 금정은 보이지 않고 온통 안개만 자욱했습니다. 심지어 안개에 향에서 나는 연기까지 더해서 탑이나 금정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럴거면 뭐하러 힘들게 여기를 올라왔나 하는 약간의 실망감이 몰려왔으나, 일단 우리 일행의 여행이 안전하게 끝나고 모두 건강하길 비는 뜻에서 향에 불을 붙여서 하나 올리기로 했습니다. 향을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물 덕인지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탑과 금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금정은 글자 그대로 금으로 칠을 해뒀는데, 햇빛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반짝거리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본 후에는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올라갈 때보다 안개가 자욱한 산의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몽환적인 분위기도 났습니다. 산의 이름도 아미산이라 그런지 저 쪽 안개 속에서 학을 탄 신선이라도 금방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니 벌써 저녁이 가까워졌는데, 아침에 아미산으로 가는 길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혀서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다들 지쳐서 호텔 가까운 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얼른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마신 후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오전은 각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 터라 더욱 마음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전날 피로가 심했는지 침대에서 뭉기적거리고 있는데, 어떤 일행분들은 일찍 일어나서 벌써 아침 식사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단체 카톡방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슬쩍 보다 보니 저도 더 이상 침대에서 버티지 못하고, 인근 공원에서 차를 한잔 마시기로 했습니다. 공원은 숙소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너무 붐비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공원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서있는 항일 전쟁 당시 전몰자 기념비와 그 밑에 있는 꽃다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착검한 총만이 아니라 칼과 방패까지 등에 지고 있는데, 전에 봤던 ‘명장’이란 중국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방패를 들고 공성전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공원 안에서는 태극권을 하는 노인분들도 있고,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 물길도 있어서 산책하기가 참 좋았습니다. 또 공원 한켠에는 찻집도 있었는데, 쓰촨 지역에서 유명한 차들을 팔고 있어 한가로이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다보니 돈을 받고 귀를 파주는 노인 한 분이 자꾸 와서 귀후비개를 들어보이는데, 안전한지 약간 걱정이 된 탓에 용감하게 제 귀를 내주지는 못했습니다. 나중에 찻집을 나오다 생각해보니 색다른 경험인데, 한번 해볼껄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습니다.

다시 숙소에 돌아온 우리 일행은 두보초당을 방문하는 길에 그 앞에 있는 유명한 마파두부집에서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진마파두부라는 간판이 붇어 있는데, 유명세만큼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마파두부 자체는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치즈 같은 식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스 역시 보기보다는 많이 맵지 않고, 밥과 함께 먹으면 밥도둑 같은 느낌이 드는 국내 중국음식점에서는 맛보기 힘든 탁월함이 느껴졌습니다. 건두부는 다소 알싸한 향이 났는데, 마침 사간 중국의 명주 노주노교와 함께 마시니 그 맛이 더욱 훌륭했습니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이제 두보 초당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주당이었던 이백이 시선이라면 두보는 시성이라 불리는데, 안록산의 난을 피해 쓰촨성의 성도로 피신을 했다가 머문 곳이 바로 이 두보 초당이었습니다. 처음 입구에 있는 두보의 조각상을 보면 너무 마른 할아버지의 상이라 그만큼 고생이 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초당을 둘러보다 보면 후대에 두보의 시를 사모한 권력자들이 너무 화려하게 꾸며 놓아서 그런지 ‘초당’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기는 하지만, 여러 건물들에 걸린 두보의 작품들과 후대 찬시까지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곳곳에 여러 시대를 걸쳐 지어진 건물들과 제가 좋아하는 대나무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는 두보 관련 자료들이나 시집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일생 동안 갖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후손들이 자신을 기리는 것을 보면 두보도 이제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다는 부러움이 순간적으로 가슴 한켠을 스치기도 했습니다.

두보 초당을 모두 둘러본 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귀국 가방을 싸면서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이렇게 업무적으로 만나던 인연으로 함께 해외여행까지 하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얼마 후 우리 모두의 삶을 강타한 코로나로 한동안 해외로 나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유롭게 출입국이 가능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 국내외적으로 서로 분열되고, 반목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 좀 걱정되기도 하는데 앞으로 다시 이런 편안한 여행을 다시 계획할 날이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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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 사람도 풍족한 중국 쓰촨성 여행 1

중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국지를 한번 정도는 읽어 봤을 겁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통일을 도모하자는 제안을 하는 천하삼분지계와 관련해 나오는 지역이 익주인데, 현재 기준으로는 사천성, 중국어로는 쓰촨성입니다. 소설에서도 나온 것처럼 옛부터 쓰촨성은 물산이 풍부하고, 자연 경관이 수려해서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던 곳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손꼽는 8대 명주 중 무려 3개에 해당하는 노주노교, 우량이에, 검남춘이 사천성에서 나기도 해서 맛있는 술을 즐기는 제가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쓰촨성은 제가 예전에 여행을 했었던 윈난성과도 바로 붙어 있어 있는데, 윈난성 리장을 여행할 당시 만났던 다른 여행객들 중에는 윈난성의 옥룡설산과 호도협을 지나 쓰촨성으로 넘어가는 경로를 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리장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위안양의 계단식 논을 구경하려고 했기 때문에 쓰촨성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윈난성 못지 않게 쓰촨성도 좋은 곳이 많다고 들어서 나중에라도 한번 가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 속으로 쓰촨성 여행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던 어느 날, 제가 속해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 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같이 식사를 하던 중 위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변호사분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가자고 의기투합을 하게 됐습니다. 다들 술을 한잔 해서인지 아니면 업무만이 아니라 현지에서 중국 문화를 느껴보자는 생각이었는지, 어쨌든 식사 겸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5명의 변호사들이 중국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사람들 중 한 변호사님이 중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서 현지인 못지 않게 중국어를 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여행계획을 짜게 되었습니다. 여행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 이런저런 의견을 내다가 여행을 가는 멤버들이 기존에 여행을 가지 않았던 곳이면서 중국의 자연풍경과 문화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쓰촨성이 1등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의 쓰촨성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고맙게도 중국어에 능통한 변호사님이 전체적인 여행계획을 준비해주셔서 저는 투어 여행을 가는 것처럼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단 첫날은 평일인 금요일 밤이라 밤늦게 도착하게 되어 숙소에서 짐을 풀고 쉬었는데, 중국 호텔답게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인테리어가 된 로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유가 있었던 다른 일행과 달리 우리 여행을 준비했던 변호사님은 다음날부터 주변을 둘러볼 투어 상품을 예약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녀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같은 위원회 사람들이 함께 중국에 온 첫날이라 중국에서 유명한 마라탕 음식점에서 여행 기념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원래 마라탕은 쓰촨지역과 충칭지역에서 유래했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많아지면서 다양하게 변화를 준 특색을 갖는 마라탕 음식점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원조의 맛을 찾는 사람들은 전통의 마라탕 맛을 찾아 쓰촨지역으로 오는데, 그 중 우리 일행이 찾은 마루비엔비엔이라는 음식점은 너무 맵지 않으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고 있답니다.

특히 여러 재료들을 스스로 골라들고 계산을 한 후 꼬챙이네 꽂아 익혀 먹는데, 처음에는 걱정했던 것보다 맵지 않아서 먹을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먹다보니 혀와 입술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마라에 들어 있는 화자오가 마비시키는 성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많이 맵다고 느껴지면 달콤한 땅콩소스에 찍어먹으라고 하던데, 그렇게 해도 어느 순간부터는 술이나 꼬치의 맛이 느껴지지 않게 됐습니다. 다들 그렇게 술과 마라에 거나하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저는 음식이 매운데다 알콜까지 많이 먹어서 그런지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삼성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저도 쓰촨성 여행을 가기 전에는 삼성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전부터 3,000년전까지에 이르는 고촉문화 유적으로 매우 정교한 청동기 문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 문화의 유물들과 상당히 다른데,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이 어떻게 보면 중남미 지역의 마야나 올멕 문명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외계 문명이 남긴 유산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에 기록된 문명보다 더 이전의 초고대 문명에 관심이 많은데, 삼성퇴 문명의 기원이 오래되기도 했을 뿐 아니라, 20세기에 들어서 유물들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기록도 없어서 완전히 잊혀진 문명이었다는 것에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박물관 내부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많은 유물들을 촬영했는데, 일부 청동기 표면에는 마야나 아즈텍 문명의 문자처럼 형이상학적인 상형문자 같은 것이 있어서 더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박물관을 한참 돌아본 후 밖에 있는 조각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목도 마르고 다리도 좀 아팠습니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공원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캔 마시니 좀 살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좀 쉬다가 다시 공원 주변을 걷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저쪽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어린 학생들이 사생대회를 하는 것도 보였습니다. 아마도 주말이라서 가족들이나 학교에서 함께 나온 것 같았습니다.

다함께 삼성퇴를 본 후에는 다시 삼국시대 유비와 제갈량을 모시고 있는 무후사로 향했습니다. 삼국지나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을 곳인데, 삼국지에도 나오지만 원래 촉한의 황제였던 유비는 백제성에서 세상을 떠나지만, 이후 능은 수도였던 청두에 한소열묘를 조성했습니다. 황제였던 유비와 유비가 총애한 승상 제갈량이 함께 모셔져 있는 곳이라 더 특이하기도 했습니다.

무후사 안으로 들어가면 도원결의로 유명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와 제갈량을 비롯한 다른 신하들의 조각상이 좌우로 도열해 있었습니다. 기록을 바탕으로 나름 외모와 성격을 반영해 각자의 조각상을 만들어놓았는데, 문관들과 무관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에는 개성이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아래까지 길게 늘어진 귀를 가진 유비나 가슴까지 수염을 늘어뜨린 관우, 단정하게 앉아 학익선을 들고 있는 제갈량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분들을 잘 표현해 놓았습니다. 사당을 지나니 한소열지릉라는 편액과 비석이 있는 문이 있는데, 그 문 안쪽에는 유비의 능이 있었습니다.

무후사 안을 돌아다니다보니 붉은 칠을 한 벽과 녹색의 대나무가 잘 대비되는 길고 곧은 길이 있는데, 그 길에 들어가는 길에는 무지개 형태의 문지붕이 있어 더 예뻤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길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걸어가기도 하고 길을 배경을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저 역시 이 곳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부탁했습니다.

무후사를 둘러본 후에는 뭔가 기념할 것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기념품샾에서 도원결의 잔 세트를 발견했습니다. 무후사에 온 기념도 될 것 같고, 나중에 친한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잔을 나눠가져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잔 세트를 사서 무후사를 나섰습니다. 무후사를 나설 때는 이미 저녁이 되어 곳곳에 조명을 밝혔는데, 조명 덕분인지 떠나는 우리 일행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제갈량의 모습이 더욱 화려해보였습니다.

무후사를 나와서는 그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해결습니다. 중국에서 많이 먹는 건두부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들이 유명한 곳이었는데, 음식점을 들어가기 전 샀던 중국 8대 명주 중 하나인 검남춘을 곁들이니 맛난 술과 음식에 혀가 행복해지고, 시간이 지나니 흥취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일행들 모두 쓰촨성에서 생산되는 검남춘의 훌륭한 맛에 취하고, 매콤하게 조리된 쓰촨 요리의 조합에 감탄하면서 바삐 돌아다닌 하루의 피로를 풀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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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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