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식칼과 살인 미수

사법연수원생들은 보통 연수원 2년차에 검찰, 법원 및 법무법인 등에 실무수습을 위해 시보를 나가는데, 제가 서울의 한 법원에 시보를 할 당시 국선변호인으로 변호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변호인으로는 처음 맡은 사건이어서 더욱 기억이 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건 당시 제가 맡았던 사건의 피고인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조리를 하던 중 술에 취한 손님이 시비를 걸자 귀가하라고 3, 4차례 계속 돌려보냈는데도 손님이 포장마차 밖에서 계속 행패를 부리자 이를 말리려고 포장마차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포장마차에서 나올 때 조리 중이라 무의식 중에 식칼을 들고 나왔는데, 손님을 돌려보내고 돌아서서 포장마차로 돌아오던 중 손님이 오히려 피고인을 쫓아와 폭행을 당하게 됐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손님을 제지하려고 부둥켜 안는 과정에서 손님이 식칼에 복부를 찔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피고인으로서는 매우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경찰은 피고인을 살인미수로 체포하고, 검사는 중상해로 기소한 후 살인의 고의까지 주장한 사건인데, 당시 사법연수생인 제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 맡겨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살인미수로 긴급체포되어 구속된 피고인을 접견하고, 당시 상황에 대해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피고인의 상황 설명을 듣고보니 피의자 신문조서 및 참고인 진술조서 내용이 서로 모순되고, 피고인이 왼손잡이여서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의 상처부위를 찌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그렇게 변론을 했습니다.

다행히 제 변론이 받아들여져 피고인의 살인의 고의까지는 인정되지 않고, 피고인은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아 석방되었습니다. 석방 이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피고인이 고맙다면서 자신의 여자친구와 같이 식사를 하자고 찾아왔는데, 함께 식사를 한 후 명품 넥타이를 선물이라며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고맙지만 국선변호인이라 추가적인 금전이나 금품은 받을 수 없다면서 선물은 거절하고, 앞으로 두 분이 혼인을 하신다니 축하의 의미로 내가 식사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미안해서 계속 그럴 수는 없다고 하던 피고인이 고맙다면서 나중에 자신의 포장마차에 찾아오면 안주를 잘 대접하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었습니다. 저는 이후 피고인이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있었던 곳 주변을 지나가면 그 약속이 생각나 한번씩 찾아보곤 했는데 이상하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정도 지난 어느 날 피고인의 여자친구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피고인이 죽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제가 국선변호를 맡았던 1심 이후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달라져 실형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피고인은 교도소에서 사건 당시 다쳤던 다리의 증상이 악화되고, 출소 후에도 몸이 불편해 병원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자친구와 혼인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비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왔던 피고인이 하늘에서라도 아무런 걱정없이 안식을 얻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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