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공항을 나오면서 베이징 호텔 룸메이트에게 숙소를 예약했는지 물어봤더니, 자신은 며칠간 예약을 해서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게도 예약을 안 했으면 같이 가자고 하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말하고 공항 보안검색대를 지나 나오는 순간, 저 앞에 기존에 제가 전날 밤 예약을 했던 숙소 이름이 든 피켓을 든 가이드가 보였습니다. 저는 얼른 그 가이드에게 다가가서 혹시 어제 밤에 숙소 예약을 했다가 오늘 아침 푸르공을 타고 출발한 한국인 여행객들을 아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인 여행객들이 종종 있는데, 어제 한국인 중 도착하지 않은 여행객이 있었다고 말하길래 그게 바로 저라고 말했습니다.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아 그럼 다른 일행들은 이미 출발한 것인지 물어보니 자신은 그런 것은 잘 모르고, 정확한 것은 숙소에 가서 확인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베이징 호텔 룸메이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몽골 가이드를 따라서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가면서 가이드와 얘기를 해보니 일정대로라면 일행들은 이미 울란바토르에서 최소 40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이드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내가 내일 먼저 출발한 일행들을 쫓아가야 하는데, 당신이 나를 데려다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가이드는 마침 내가 내일 비번이긴 한데, 나를 데려다 주려면 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차를 빌려주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전 다행이라는 생각에 그럼 숙소 사무실에 가서 사장님과 한번 얘기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사무실을 찾아가니 투어 담당자가 있길래 제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 먼저 출발한 일행을 쫓아가기 위해 차를 빌려 가이드와 함께 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차량 렌트 비용과 유류비를 지급하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일당을 포함한 총 비용을 알려달라고 하니, 300 US 달러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6박 7일 동안 투어를 하는 비용 중 제가 부담할 비용이 270 US 달러였는데, 반나절 동안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을 주고 일행을 찾아가야 한다니 좀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일행에 대한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딱 감고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가이드는 예상 못한 추가 수입이 생겨 기분이 좋아졌는지, 저에게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하면서 별도 숙박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가이드의 집에 도착한 후 일행들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비행기가 2번 회항을 했고, 이제야 겨우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답변이 없다가 약간 시간이 지나자 자신들은 이미 출발을 했고, 오늘 엘센타사르하이에서 낙타를 탔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연락이 되어서 다행이고, 내일 차를 수배해 일행들을 쫓아갈 예정인데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랬더니 일행들은 다음날 옛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하르호린(카라코룸)으로 가는데 오후 2시 정도까지는 그 곳에 있을테니 그때까지 오면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최선을 다해 그 시간까지 가겠다고 글을 올린 후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가이드와 함께 서둘러 차를 타고 몽골의 유일한 고속도로를 따라 울란바토르에서 하르호린까지 길을 떠났습니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왕복 2차선에 계절간 온도차와 일교차가 큰 탓인지 곳곳에 포트홀이 많이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이드를 재촉해 아침 7시 좀 넘어서부터 계속 차를 달려 2시 조금 넘어 겨우 하르호린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일행들이 기다리기로 약속한 2시가 넘어서 다시 일행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너무 걱정이 되었는데, 하르호린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일행을 찾다보니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뛸 듯이 기뻐서 일행들에게 다가가니, 다행히 일행들도 원래 일정보다 좀 늦어져서 하르호린에 천천히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행을 찾았다는 기쁨에 얼른 가이드에게 돌아와 드디어 일행을 찾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차에 실었던 짐을 챙겨 일행이 있는 푸르공으로 갔습니다.

푸르공은 제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는 공간이 넓은 편이었는데, 6명이 뒷좌석에서 앉아 가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습니다. 일단 푸르공에 타서 일행들과 인사를 한 후 제가 어떻게 거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얘기를 해줬더니 다들 놀라면서 비행기가 2번 회항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놀랄 만한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저도 일행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약간 당황한 것이 있었는데, 전날 일행들이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저를 기다릴 때 제가 탄 비행기가 아예 베이징 공항에서 출발을 하지 않았다고 푸르공을 함께 타고 여행하던 투어 가이드가 설명을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투어 가이드의 얘기를 듣고 일행들은 제가 왜 오지도 않을 거면서 공항에서 기다리게 했냐고 기분이 상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엘센타사르하이에 도착해 숙박을 하는데 제가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리니 진짜 울란바토르에 온 것이 맞는지 의심까지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투어 가이드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다고 말한 후, 속으로는 혹시 안 왔으면 일행들에게 배신자 내지는 거짓말쟁이가 될 뻔 했다는 생각에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행들을 쫓아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일행들을 찾아 함께 하르호린을 출발해 다음 목적지인 오르혼 계곡에 도착했습니다. 오르혼 계곡은 몽골에서도 물과 나무가 풍부한 곳이라 몽골 사람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오르혼 계곡으로 가는 동안 일행들과 얘기를 하면서 더 친밀해진 저는 일행들과 함께 오르혼 계곡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편안해진 마음 탓인지 풍경들이 너무 멋져 사진을 많이 남겼습니다.



저는 오르혼 계곡 옆 숙소에 도착해 처음으로 게르에서 짐을 풀게 되었습니다. 게르는 작으면 3인이, 큰 경우는 6인이 같이 사용했는데, 남녀 따로 구분을 하지는 않고 각자 침대를 만들어 자는 것이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르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물티슈로 세수를 한 후 주변을 돌아보니 보이는 곳마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지각을 하면서 투어 일정이 틀어지고, 투어 가이드가 전달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약간은 서먹했던 일행들과의 첫 날 밤은 게르에서 다함께 술을 진하게 한 잔 하면서 다 풀렸습니다. 출발하기 전에도 이미 만난 적이 있지만, 다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이라 성격도 좋고 술도 잘 마시는 편이라 여행이 즐거울 것 같다는 은근한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몽골 대자연 속에서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에는 푸른 하늘 아래 가축들을 방목하는 평원을 돌아다녔습니다.





오르혼 계곡은 몽골 전체에서도 드물게 수량이 풍부한 강이 흐르는 곳이라는데, 그 말대로 강을 따라 흐르는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면서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평온하면서도 아름다운 강변과 계곡의 모습에 스마트폰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르혼 계곡이 신성한 곳이라는 설명은 투어 가이드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 계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우리의 제사장 같은 샤먼이 성소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성소에는 하얀 돌들이 놓여 있었는데, 마치 하얀 돌들이 몽골 지도를 그려놓은 것처럼 놓여 있어서 더 신성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오르혼 계곡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고, 아침식사를 한 우리 일행은 다시 짐을 챙겨 푸르공에 올라타 노천 온천으로 유명한 쳉헤르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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