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성년이 된 후 최초로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은 군대를 제대한 직후인 2002년 여름이었습니다. 군대 말년 휴가를 나와서 비행기표와 여행준비를 다 한 후 제대 3일 후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가서 다시 사회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행 경비는 제가 어렸을때부터 모았던 돈으로 준비했는데, 대학생이다보니 돈을 아껴쓰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저렴한 한인민박집에 자주 묵었는데, 혼자 여행을 하던 때라 예약을 잘 하고 다니지 않아서 방이 없는 경우에는 소파에서 절반 정도 숙박료만 주고 자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유럽배낭여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도시와 국가를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을 잘 하는 것으로 쳐주던 시절이라, 45일 되는 기간 동안 영국,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을 이른바 반시계 방향으로 열심히 여행했습니다.
제가 유럽에 도착했을 때가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한 직후여서 유럽 여행 중에도 월드컵 응원을 하기도 하고, 이탈리아 갔을 때는 혹시 이탈리아 사람들과 축구 얘기하다가 싸우기라도 할까봐 이탈리아 대표팀 토티가 축구를 잘 한다고 칭찬하고 다녔던 기억도 납니다.
처음 혼자서 간 해외 배낭여행이라 인상 깊어서 그런지 지금도 여행 당시 있었던 일들이 많이 떠오르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 몇 가지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저의 파리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망쳐놨던 파리 뒷골목 불량배들이 생각납니다. 제가 런던에서 TGV를 타고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가는데 갑자기 10시 반도 안 됐는데 지하철 운행이 종료됐다면서 다 내리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왜 그 시간에 운행이 종료됐는지 의아하지만, 일단 내리라니 내렸는데 생판 모르는 지하철역으로 나와 보니 숙소와 너무 멀었습니다.
2002년에는 지금처럼 여행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가이드북에 의지해 여행을 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숙소를 찾아가려니 막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군대 제대 후 보름도 되지 않았던 때라 걷는 것 하나는 자신있어서 지도를 보면서 거리에 적힌 도로명과 맞춰가면서 대략 숙소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다 보니 지름길을 찾아간다고 뒷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사거리에 젊은 애들 여럿이 드럼통 주위에 둘러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고, 그 옆 10미터 정도에는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당시가 여름인 7월초였는데 드럼통에 장작을 넣어 태우면서 파리에서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앉아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진짜 송아지만한 개를 데리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ㅎ
어쨌든 나는 얼른 숙소로 가고 싶어서 동네 양아치(?) 같은 사람들을 지나쳐 경찰에게 숙소 방향을 묻고, 경찰이 알려준대로 다시 반대 방향으로 오면서 그 사람들을 지나쳐 오는데, 그 중 2명이 슬그머니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쟤들도 저는 집에 가려나 하고 그냥 내 갈길 가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 2명이 저를 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 모퉁이를 돌면서 슬ㅉ 보니 2명이 어슬렁어슬렁 저를 쫓아오고 있었는데, 그 중 1명은 머리 위로 자전거 체인 같은 것을 빙빙 휘두르면서 오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이 좀 웃기기도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걷는데는 자신이 있었던 저는 만일, 내가 뛰면 그 애들도 뛸 거 같은데, 달리기가 제가 더 빠를지 장담할 수가 없어서 일단 빨리 걷기로 했습니다. 일단 옆으로 메는 가방을 몸에 바짝 붙이고, 최대한 빨리 걷기 시작했는데, 제가 빨리 걷자 그 애들도 따라서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소리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빨리 걷자 그 애들이 따라오는 것이 힘들었는지 갑자기 영어로 F*** y**, G** D*** 등 큰 소리로 욕을 막 하면서 저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무한 직진만 했더니 결국 3분에서 5분 정도를 따라오다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좀 황당하면서 웃기기도 하고, 생각하기에 따라선 좀 무섭기도 한 일이라 저는 그 다음날 계획했던 파리에서의 나머지 일정을 포기하고 바로 파리를 떠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2편에서…
Views: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