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4

테 아나우에서 송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철수한 다음날 원래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 남섬 여행의 백미인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할때 여행 첫날밤 창문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잠이 드는 바람에 감기 기운이 있으셨던 아버지가 결국 앓아 눕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일단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보니 장시간 이동은 어려워 보였고, 하는 수 없이 테 아나우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아버지가 극구 거부를 하시는 바람에 일단 캠핑장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계속 캠퍼밴에 있는 것은 별로 회복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캠핑장에 있는 시설물들을 살펴보니 마침 노천 온천이 있었습니다. 야외에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 있고, 그 안에 마련되어 있는 뜨거운 물이 담긴 통 속에 가족 4명이 들어가 땀을 흘리니 감기 기운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통을 나와 야외 샤워장에서 샤워까지 하고 나니 마치 바닷가로 휴가를 온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말린 후 조카와 커다란 체스판으로 체스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도 약간 회복되신 듯 해서 저와 매형은 캠핑장에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주변의 호숫가와 상점들을 돌아보면서 며칠 동안 계속 운전을 해서 달려오느라 쌓였던 피로를 어느 정도 풀 기회를 가졌습니다. 맑은 호숫가를 여유있게 걸으면서 매형과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테 아나우에서의 둘째날도 그렇게 흘러가고, 저녁에는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다음날 일찍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저에게 먼저 일어난 매형이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지금 밖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그때 든 생각은 사실 ‘완전 망했다’였습니다. 원래 테 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가는 길은 자연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뉴질랜드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이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비가 많이 오면 밀포드 사운드에서 유람선이 운항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캠퍼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비바람이 몰아치며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광경을 보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매형이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해본 후 여기까지 와서 밀포드 사운드를 안 갈 수는 없고,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사이 비가 그칠 수도 있으니 원래 일정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매형은 비가 많이 오긴 하지만 조심해서 운전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면서 그렇다면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한 후 아침을 간단히 먹은 우리 가족은 멋진 풍경은 고사하고, 쏟아지는 비로 인해 속도를 줄여가며 천천히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은 좁은 산속의 꼬불꼬불한 도로였는데, 원래 예상했던 1시간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창문으로도 그 유명한 멋진 풍경을 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꾸역꾸역 비를 뚫고 사고 없이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제가 차에서 내려 유람선 티켓을 구입하려고 하니, 티켓을 파는 직원은 비가 많이 와서 유람선이 뜰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티켓을 구입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비가 계속 내리고는 있는데,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어 좀 기다리면 운항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차로 돌아와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한 결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후 상황을 본 후 유람선을 타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비바람을 뚫고 오느라 다들 떨고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따뜻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산 후 나눠먹으면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서서히 하늘 한쪽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유람선을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고, 샌드플라이 퇴치제를 뿌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줄달음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착장이 생각보다 멀어서 간신히 시간에 맞춰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줄을 서면서도 진짜 탈 수 있는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고 있자니 드디어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유람선에 타자 마침내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향해 출발~~

막상 유람선에 타고 보니 구름은 가득했지만 이제는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 걸쳐 있는 것이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절벽에는 새로 생긴 폭포들도 많았습니다. 마침내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밀포드 사운드의 유람선에 탔다는 생각에 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헤치고 폭포와 멋진 풍경들을 지나가다보니 어느 새 비는 그치고, 하늘을 맑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쏟아진 비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긴 폭포들이 절벽을 따라 물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밀포드 사운드까지 오는 길에 졸였던 마음이 다소 안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바다와 접해 있는 피오르드로 물개들과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물개는 보통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만 봤는데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물개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물개들은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에 익숙해진 듯, 널찍한 바위 위에서 편안하게 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개의치 않고 쉬고 있는 물개들을 뒤로 하고 유람선은 다시 또다른 폭포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어 하늘과 녹색의 피오르드 절벽, 떨어지는 하얀 물방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노르웨이에서 피오르드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절벽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은 기억 속 피오르드의 모습과는 다른 압도적인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돌고래로도 유명한데,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동안 돌고래가 나타나지 않아 좀 실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방향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유람선 뱃머리 앞 물속에 무언가 작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니 갑자기 위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마침내 등장한 돌고래 3마리가 유람선을 따라 헤엄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본 것도 신났지만, 이렇게 우리가 탄 배를 따라오는 것을 보니 함께 논다는 느낌이 들어 더 신기했습니다. 유람선은 이제 처음 출발한 선착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와 달리 파랗게 개인 하늘에 산등성이를 감싸며 넘어가는 하얀 구름, 교과서에서 배웠던 저 멀리 보이는 U자형 협곡까지… 비록 가는 길에는 별별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밀포드 사운드는 꼭 한번 가볼 만한 멋진 곳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다시 테 아나우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비가 그쳐 가는 길에 보지 못해 아쉬웠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맑아지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운전 역시 더 편해졌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가 늦어져 비록 비행기 시간에 맞춰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야 하긴 했지만, 소형버스 크기인 캠퍼밴을 운전해보는 좀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모자라 세계 최초로 번지점프를 시작했던 다리에서 번지점프를 해보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쉽습니다.

여행 막바지에 와인잔 하나가 깨져 새로 구입해서 보충해둬야 하는 줄 알고 여러 마트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 없어 반납할 때 사실대로 말했더니 직원은 보험이 있다고 신경도 쓰지 않은 일, 매형이 마지막에 크라이스트 처치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워넣어 반납하려고 좌회전을 하다가 역주행하는 반대차선으로 들어섰다가 기절할 뻔한 일 등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계속된 여행답게 마지막까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추억거리가 계속 쌓여 갔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이 캠퍼밴을 반납하면서 뉴질랜드 남섬을 종회무진 달렸던 캠퍼밴과 사진 한장을 남기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추억거리들로 가득한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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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2

여행 첫날밤을 보내기로 했던 테카포 호수는 잔잔한 물결이 치는 조용한 곳이었는데, 그 호숫가에는 홀리데이 파크라는 캠퍼밴을 주차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일찍 출발해 야영장에 주차를 한 후 호숫가를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위탁수하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서 예상보다 출발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 가족이 홀리데이 파크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야영장이 캠퍼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구글지도를 보면서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는 다른 캠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테카포 호수 옆에 있는 알렉산드리나라는 작은 호수 옆이었는데, 테카포 호수 야영장과 달리 물과 전기를 끌어다 쓸 수는 없는 곳이었지만 저는 일단 차를 주차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졌지만 출발하기 전 사뒀던 육류와 채소, 와인으로 늦은 만찬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차 안에 있는 주방에서 고기를 굽다보니 차 안에 연기가 뿌옇게 차서 환기를 하는데 고생을 좀 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시간이 좀 흐르자 다행히 연기가 빠져나갔습니다. 처음 캠핑카를 이용하다보니 아무래도 시행착오들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얼른 식사를 한 후 다들 지쳤는지 침대를 펴놓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좀 춥길래 잠시 일어나서 옆으로 젖혀뒀던 이불을 다시 덮고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각도 하지 못했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환기를 한다고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 것을 깜빡했는데 열어뒀던 그 창문 맞은편에서 주무셨던 아버지가 밤새 호수에서 불어온 찬 바람을 맞고 감기 기운이 드셨던 것입니다. 자꾸 기침을 하시면서도 일정에 차질에 생기는 것이 걱정되셨는지 아버지는 따뜻하게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차량 뒤쪽에 침대를 편 후 이불을 덮고 쉬시게 한 후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토스트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테카포 호수에 가서 경치를 즐길 계획이었기에 서둘러 출발 준비를 마치고 다시 테카포 호수로 갔습니다.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테카포 호수는 선한 목자의 교회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인데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높은 마운트 쿡도 보입니다. 19세기 유명한 쿡선장을 딴 이름을 가진 마운트 쿡은 무려 높이가 3,724m에 이르는데, 높이가 있어서 그런지 산 윗부분은 만년설이 쌓여 있었습니다. 선한 목자의 교회는 돌로 지은 매우 작은 건물인데, 그 안으로 들어서면 호수쪽으로 난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는데, 그 바람을 맞고 있자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남섬에 가면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라 생각이 됩니다. 세면도구가 전날 실종된 위탁수화물 가방에 들어 있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더니 상태는 폐인 모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끝내줬습니다.

호수와 마운트 쿡 산의 경치를 즐기다가 다시 다음 목적지인 퀸즈타운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 테카포 호수에서는 구름에 가려서 완전하게 보이지 않던 쿡산이 제대로 보이길래 그냥 가기 아쉬워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역시 새하얀 만년설로 뒤덮인 산은 언제 보아도 언제 보아도 멋진 모습입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첫날부터 차를 운전했던 매형이 장시간 운전을 해서 피로해보였습니다. 원래 여행 계획을 짤 때 저보다는 운전이 익숙한 매형이 운전을 더 많이 하기로 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가 교대해서 차를 몰아 보기로 했습니다. 매형에게 어느 정도 가서 교대하자고 말을 했는데 착한 매형은 별로 힘들지 않다면서 계속 운전하길래 제가 저 앞 표지판 근처에서 세운 후 교대하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너무 급하게 세우자고 한 것인지, 차가 무거워서 밀린 것인지 길 옆에 차를 대다가 그만 길가에 있는 나무와 차량의 왼쪽 사이드미러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왼쪽 귀 아랫부분이 박살이 나 있었고, 다른 부분도 흠집이 나 있었습니다. ㅜㅜ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이 캠퍼밴을 렌트할 때 보험의 보장 범위를 넓게 설정해뒀는데 계약할 때는 비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막상 사고가 나고 나니 더 많은 비용을 내고 보험을 들어두길 참으로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ㅎㅎ 렌트했던 차량이 벤츠라서 보험으로 처리가 되지 않으면 수리비를 많이 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황하는 매형에게는 보험으로 처리가 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일단 사진을 찍어 사고를 정리한 후 다시 출발했습니다.

매형과 교대해서 막상 캠퍼밴을 운전해보니 일단 차폭이 넓고, 앞뒤 길이도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더구나 뉴질랜드는 고속도로도 왕복 2차선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 승용차는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이지만 우리 가족이 탄 캠퍼밴은 크기가 커서 제한속도가 시속 90km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뒤에서 승용차들이 빨리 가라고 바짝 붙어 오기도 해서 가끔 옆에 있는 이면도로로 피해 가면서 주행을 하다보니 신경이 더 쓰였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도로와 차량과 달리 뉴질랜드는 영국처럼 왼쪽으로 달리다보니 우회전을 할 때 특히 더 헷갈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갔더니 우리는 왼쪽으로 달린다는 포스터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ㅎㅎ

우회전을 할 때 더 크게 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도로에 익숙하다보니 작게 우회전을 해서 상대 차선으로 들어서는 역주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저도 고속도로에서 한번 사고를 쳤는데, 크롬웰이라는 작은 도시에 들러 식사를 하고 가려고 우회전을 하다가 상대방 차선으로 들어서 버린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포스터까지 붙일 정도로 관광객들이 사고를 많이 쳐서 그런지 상대방 차선에 있는 차들이 양보를 해주면서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가라는 말까지 해줬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한 경계석을 과감하게 넘어서 원래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휴…

크롬웰에서 식사를 하고, 마트에도 들렀다가 공원에서 좀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장시간 차를 타고 가느라 다들 좀 지쳐 있었기 때문에 좀 걸으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기 기운이 있으신 아버지가 좀 걱정이 되어서 감기약을 사서 먹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여쭤봤더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때 약을 사서 드시게 했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고집에 저와 매형의 낙관이 나중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해서 다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퀸즈타운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퀸즈타운으로 가면서 저는 또 열심히 뉴질랜드 항공사와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실종된 수화물 3개가 퀸즈타운 공항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공사에서는 운항 일정 때문에 오후 늦게나 수화물이 도착할 것이라고 해서 일단 캠퍼밴을 캠핑장에 주차한 후 공항에 가서 짐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서둘러서 출발한 덕분인지, 우리가 원하던 크릭사이드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전기와 물을 보충한 후 아버지와 조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저와 매형이 공항에서 짐을 찾아왔습니다.

퀸즈타운 공항에서 마침내 여행 캐리어 3개를 받고 나니, 마치 잃어버린 강아지들을 찾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며칠 동안 옷도 갈아 입지 못 하고, 양치질과 세면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상태로 지냈더니 여행 가방에 있는 세면도구들을 가지고 캠핑장에 있는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오면서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옷도 갈아 입고, 다양한 레포츠로 유명한 퀸즈타운에 왔으니 외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조카가 좋아할 것 같은 루지를 타기로 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루지 출발점인 스카이라인을 향해 가면서 조카와 사진을 찍었는데, 3일 동안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했더니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호수쪽 풍경을 봤더니 뒤로 펼쳐지는 경치가 전해 들었던 것처럼 엄청났습니다. 푸른 호수와 거친 산맥, 하얀 구름이 떠있는 하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루지를 탈 시간입니다. 루지는 저를 포함해 우리 가족들도 처음 타보는 것이었는데, 다운힐 MTB 같은 느낌이어서 나름 스릴도 있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경치도 즐기고 루지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낸 후에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어제와 비교해서는 매우 평화로운 저녁식사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이튿날은 하루가 잘 마무리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운명의 여신은 우리 가족의 여행 이틀째를 그렇게 쉽게 마무리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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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1

뉴질랜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한 나라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간고사를 얼마 안 남겨놓은 주말에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교실로 참고서를 찾으러 왔다가 구석 한 책상 위에 우연히 반지전쟁 번역본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력적인 제목이라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시험기간 동안 반지전쟁 전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중간고사 성적은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ㅎㅎ

저는 반지전쟁의 원래 제목이 반지의 제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전편인 호빗을 찾아 헤매다가 완역이 되지 않은 호빗이 아동용 도서로 번역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크를 귀신으로, 드워프를 난쟁이로 번역한 어린이용 호빗을 대형 서점에서 찾아내 몇시간 동안 서서 다 읽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기도 하지만 저는 아마 그때 톨킨의 팬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톨킨이 남긴 반지의 제왕, 호빗 이전의 역사를 다룬 다른 원고들을 편집한 실마릴리온을 읽고, 반지의 제왕, 호빗을 영어 원서로 다시 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톨킨의 작품에 빠져 있었던 제가 영화로 나온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놓칠 수는 없었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희망을 알았는지, 어느 날 누나가 이번 겨울에 남자들만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던졌습니다. 저와 아버지, 매형과 남자 조카 4명이 뉴질랜드를 캠핑카를 끌로 여행하는 코스였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경험해봤던 저였지만 캠퍼밴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고, 평소 운전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소형 버스 크기의 캠퍼밴을 운전할 수 있을지 다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자 가족들만 모여 여행을 한다는 것이 나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여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떠나게 된 뉴질랜드는 저와 여행을 함께 한 다른 가족들에게 예상치 못한 수많은 난관과 에피소드를 선사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출발하는 인천공항에서부터였습니다. 뉴질랜드는 직항이 별로 없고 항공권 가격도 비싸서 뉴질랜드 도착 시간과 한국 입국시간이 가장 적절한 것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좋은 항공권이 중국 광저우를 거쳐 뉴질랜드에 입국하고, 귀국할때는 경유하지 않고 바로 입국하는 항공권이었습니다. 출발은 수요일 오전 8시 30분 비행기라 공항에 별로 탑승객들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2시간 반 전인 6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 도착해보니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공항이 미어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시는 제2터미널이 완공 직전이라 더욱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약한 항공사가 대한항공과 공동운항편으로 운행되고 있어서 대한항공에서 탑승 수속을 하려고 했는데 대한항공 데스크 앞 대기줄은 이미 전체 섹터를 두번이나 빙 돌아서 감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대기줄에 일단 서있다가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이렇게 그냥 있다가는 제때 탑승수속을 마치고 타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셀프로 간단하게 탑승수속을 하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가 항공권을 받으려고 하니, 해당 기기로는 직항편만 가능하고 경유하는 항공편은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대기줄은 더 길어져 있었고… 6시 40분 정도 된 상황에서 다시 대기줄에 서서 속만 태우면서 하염없이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대한항공 데스크를 휘감았던 줄이 한바퀴로 줄어들었을때 쯤 갑자기 저쪽에서 대한항공 직원 한명이 단체 여행객이 있냐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얼른 우리 가족이 4명인데… 셀프 탑승 수속을 하려다 안되고, 출발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소연을 했더니 다행히 일단 단체 여행객 탑승 코너로 가자고 했습니다.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이 산더미였던 저는 다른 가족들에게 어서 따라오라고 말하면서 직원을 따라 단체 여행객 데스크로 갔습니다. 안내 직원에게 여권과 항공권 예약 출력물을 보여준 후 광저우로 가는 항공권과 광저우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가는 항공권까지 잘 받았습니다. 이제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위탁수화물을 올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직원이 전화를 해보더니 수화물이 너무 많아서 수화물을 싣는 운반 시스템이멈췄다고 설명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는데 이미 시간은 9시가 넘은 상황이었습니다. 탑승객이 많아 탑승권을 받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면 보안검색에도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저와 가족들은 점점 더 초초해졌습니다.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10분 정도 지나니 다시 수화물 운반 장치가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저는 시간이 촉박할 거 같아 직원에게 이제 보안검색을 받으러 가도 늦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희 아버지가 연세가 좀 있으셔서 패스트트랙 대상자이니 가족 모두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하면 된다면서 카드를 하나 줬습니다.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습니다. 막판에 서둘러서 다행히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광저우 공항에 도착한 후 환승구역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출발했습니다. 유럽에 가는 것 못지 않은 장거리, 장시간 비행이었지만 저는 그래도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즐기고 싸고 맛있는 고기들과 와인을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문제가 저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목적지는 오클랜드가 있는 뉴질랜드 북섬이 아니라 뉴질랜드 남섬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클랜드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남섬의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국내선 항공기의 예약 시간이 도착시간으로부터 1시간 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맡긴 수화물을 찾아 세관을 지나 입국을 하려면 약간 시간이 걸리고, 다시 국내선 항공권을 발권받아 항공기에 탑승하려면 또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가족들에게 서둘러서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우리 가족은 최대한 빨리 항공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렇게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린 후 위탁수화물을 찾는 곳에 1등으로 도착해 수화물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무슨 일인지 우리 가족의 수화물이 통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짐을 찾아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다른 탑승객들은 다들 짐을 찾아 나가는데 우리 짐은 30분이 지나도록 나오질 않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니 위탁 수화물 4개 중 1개가 나왔는데, 다른 짐들은 어딨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미 비행기에서는 모든 짐을 내린 상황이고… 결국 수화물 처리 부서를 찾아가 수화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담당 직원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우리 가족이 맡긴 수화물이 다른 비행기에 실려서 지금 뉴질랜드로 오고 있는데, 내일이나 도착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선 비행기 뿐만 아니라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캠퍼밴 예약도 이미 되어 있는 상황이라 지체할 수가 없었던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일까지 오클랜드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 수화물을 우리 일정을 고려해 퀸즈타운 공항으로 보내달라고 얘기한 후 국내선을 타고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예약했던 국내선 항공기는 이미 출발한지 오래였습니다.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해 사정을 얘기하니 다행히 자신들의 책임으로 수화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으니 무료로 다음 비행기의 항공권을 발권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참 다행이네~~ 저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안심한 우리 가족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으며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한 후 캠퍼밴을 예약한 현지 여행사로 이동했습니다. 여행사 주차장에서 예약한 6인용 캠퍼밴을 둘러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서 운전하기에 좀 부담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고에 대비해 보험상품을 충분하게 가입해둔 것이 위안이 됐습니다. 그래도 자동차 안에서 식탁과 침대도 조립해 사용할 수 있고, 화장실과 조리용 인덕션까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일단 대형마트에 가서 식재료와 필요한 생필품들을 모두 사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마트에 갔더니 기대했던대로 국내보다 육류가 저렴해서 양고기와 쇠고기, 닭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육류와 뉴질랜드에서 많이 먹는 다소 생소한 채소, 과자 등 간식과 음료 등 일주일치 식재료를 이것저것 잔뜩 샀습니다. 뉴질랜드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편인데도 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저렴해보였습니다. 든든하게 장을 본 후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해 첫날 숙박 예정지인 테카포 호수를 향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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