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4

테 아나우에서 송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철수한 다음날 원래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 남섬 여행의 백미인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할때 여행 첫날밤 창문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잠이 드는 바람에 감기 기운이 있으셨던 아버지가 결국 앓아 눕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일단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보니 장시간 이동은 어려워 보였고, 하는 수 없이 테 아나우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아버지가 극구 거부를 하시는 바람에 일단 캠핑장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계속 캠퍼밴에 있는 것은 별로 회복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캠핑장에 있는 시설물들을 살펴보니 마침 노천 온천이 있었습니다. 야외에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 있고, 그 안에 마련되어 있는 뜨거운 물이 담긴 통 속에 가족 4명이 들어가 땀을 흘리니 감기 기운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통을 나와 야외 샤워장에서 샤워까지 하고 나니 마치 바닷가로 휴가를 온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말린 후 조카와 커다란 체스판으로 체스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도 약간 회복되신 듯 해서 저와 매형은 캠핑장에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주변의 호숫가와 상점들을 돌아보면서 며칠 동안 계속 운전을 해서 달려오느라 쌓였던 피로를 어느 정도 풀 기회를 가졌습니다. 맑은 호숫가를 여유있게 걸으면서 매형과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테 아나우에서의 둘째날도 그렇게 흘러가고, 저녁에는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다음날 일찍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저에게 먼저 일어난 매형이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지금 밖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그때 든 생각은 사실 ‘완전 망했다’였습니다. 원래 테 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가는 길은 자연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뉴질랜드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이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비가 많이 오면 밀포드 사운드에서 유람선이 운항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캠퍼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비바람이 몰아치며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광경을 보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매형이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해본 후 여기까지 와서 밀포드 사운드를 안 갈 수는 없고,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사이 비가 그칠 수도 있으니 원래 일정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매형은 비가 많이 오긴 하지만 조심해서 운전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면서 그렇다면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한 후 아침을 간단히 먹은 우리 가족은 멋진 풍경은 고사하고, 쏟아지는 비로 인해 속도를 줄여가며 천천히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은 좁은 산속의 꼬불꼬불한 도로였는데, 원래 예상했던 1시간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창문으로도 그 유명한 멋진 풍경을 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꾸역꾸역 비를 뚫고 사고 없이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제가 차에서 내려 유람선 티켓을 구입하려고 하니, 티켓을 파는 직원은 비가 많이 와서 유람선이 뜰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티켓을 구입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비가 계속 내리고는 있는데,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어 좀 기다리면 운항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차로 돌아와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한 결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후 상황을 본 후 유람선을 타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비바람을 뚫고 오느라 다들 떨고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따뜻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산 후 나눠먹으면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서서히 하늘 한쪽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유람선을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고, 샌드플라이 퇴치제를 뿌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줄달음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착장이 생각보다 멀어서 간신히 시간에 맞춰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줄을 서면서도 진짜 탈 수 있는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고 있자니 드디어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유람선에 타자 마침내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향해 출발~~

막상 유람선에 타고 보니 구름은 가득했지만 이제는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 걸쳐 있는 것이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절벽에는 새로 생긴 폭포들도 많았습니다. 마침내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밀포드 사운드의 유람선에 탔다는 생각에 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헤치고 폭포와 멋진 풍경들을 지나가다보니 어느 새 비는 그치고, 하늘을 맑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쏟아진 비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긴 폭포들이 절벽을 따라 물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밀포드 사운드까지 오는 길에 졸였던 마음이 다소 안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바다와 접해 있는 피오르드로 물개들과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물개는 보통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만 봤는데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물개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물개들은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에 익숙해진 듯, 널찍한 바위 위에서 편안하게 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개의치 않고 쉬고 있는 물개들을 뒤로 하고 유람선은 다시 또다른 폭포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어 하늘과 녹색의 피오르드 절벽, 떨어지는 하얀 물방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노르웨이에서 피오르드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절벽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은 기억 속 피오르드의 모습과는 다른 압도적인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돌고래로도 유명한데,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동안 돌고래가 나타나지 않아 좀 실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방향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유람선 뱃머리 앞 물속에 무언가 작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니 갑자기 위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마침내 등장한 돌고래 3마리가 유람선을 따라 헤엄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본 것도 신났지만, 이렇게 우리가 탄 배를 따라오는 것을 보니 함께 논다는 느낌이 들어 더 신기했습니다. 유람선은 이제 처음 출발한 선착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와 달리 파랗게 개인 하늘에 산등성이를 감싸며 넘어가는 하얀 구름, 교과서에서 배웠던 저 멀리 보이는 U자형 협곡까지… 비록 가는 길에는 별별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밀포드 사운드는 꼭 한번 가볼 만한 멋진 곳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다시 테 아나우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비가 그쳐 가는 길에 보지 못해 아쉬웠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맑아지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운전 역시 더 편해졌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가 늦어져 비록 비행기 시간에 맞춰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야 하긴 했지만, 소형버스 크기인 캠퍼밴을 운전해보는 좀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모자라 세계 최초로 번지점프를 시작했던 다리에서 번지점프를 해보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쉽습니다.

여행 막바지에 와인잔 하나가 깨져 새로 구입해서 보충해둬야 하는 줄 알고 여러 마트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 없어 반납할 때 사실대로 말했더니 직원은 보험이 있다고 신경도 쓰지 않은 일, 매형이 마지막에 크라이스트 처치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워넣어 반납하려고 좌회전을 하다가 역주행하는 반대차선으로 들어섰다가 기절할 뻔한 일 등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계속된 여행답게 마지막까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추억거리가 계속 쌓여 갔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이 캠퍼밴을 반납하면서 뉴질랜드 남섬을 종회무진 달렸던 캠퍼밴과 사진 한장을 남기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추억거리들로 가득한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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