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 핀 북방의 장미를 만나다, 태국 치앙마이 1

태국의 제2도시인 치앙마이(Chiang Mai)는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태국을 3번 정도 여행하면서 항상 방콕을 통해 입국했기 때문에 북부에 있어 거리가 먼 치앙마이까지 가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방콕보다 여유가 있고, 란나 왕국의 문화를 물려받은 치앙마이는 은근히 마음을 당기는 여행지였습니다. 아내가 여름 휴가를 가자고 해서 적당한 후보지를 고르다가 동남아시아에서 너무 덥지 않고, 덜 붐비는 곳으로 적당해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마음 먹고 방콕을 거쳐 치앙마이로 향했습니다. 숙소도 주로 작은 부티크 호텔로 정해서 치앙마이 고유의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처음 도착한 곳도 하얀 색 외관에 섬세한 조각으로 치장된 부티크 호텔입니다. 오랜 시간 비행에 지쳤는데, 친절한 호텔 직원들의 미소와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애프터눈 티세트에 고단함이 확 풀렸습니다. 시원한 음료수와 각종 케이크로 배를 채운 후 호텔 수영장에 가서 더위를 식혔습니다.

방안에 들어가 짐을 푼 후 주변에 있는 사원을 찾아갔습니다. 아내가 사원을 보고 싶다고 해서 좀 늦기는 했지만 유명한 사원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밤이라 오히려 방문객들이 없어 좋았는데, 조명에 비친 개금된 불상과 도금된 벽장식이 화려하면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원을 다 돌아본 후에 사원 밖으로 나갔더니 사거리에 허리에 띠를 두른 세 왕의 조각상이 서있었습니다. 과거 수코타이, 파야오, 란나 세 왕국의 왕들이 평화협정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밤이 되니 기온도 낮아 시원했고, 사람들도 적어 한적한 거리를 산책하다 숙소에 들어와 쉬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미리 예약한 현지 투어를 갔습니다. 다국적 여행객들이 미니 버스에 타고 미리 예정된 관광지들을 도는 것이었는데,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곳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목적지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이었는데, 첫번째로 와치라탄 폭포에 갔습니다. 저는 마침 우의를 입고 갔는데, 바람에 날리는 폭포수가 너무 거세서 하마터면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가 될 뻔했습니다. 폭포 앞에서 안개로 인해 생긴 무지개도 봤는데 이렇게 가깝게 무지개를 본 것은 오랜만이었습니다.

폭포 옆 계단을 오르다가 오른쪽 발목을 살짝 삐기도 했는데, 여행 중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다행히 투어 당일 트레킹에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사람 크기만 한 바나나잎을 헤치며 걸어가니 다시 멋진 폭포가 나왔습니다. 다시 길을 걷다 보니 다시 멋진 폭포가… 나왔고… 그렇게 사진을 찍다 걷다 하다가 마침내 널찍하게 계단식 논이 펼쳐진 탁 트인 공간으로 나왔습니다. 온통 녹색으로 아래까지 펼쳐진 논이 참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논둑길을 걸어 내려오니 반갑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얼른 차에 올라 이번에는 소수 민족인 화이트 카렌족 마을로 향했습니다. 마을에 도착해 현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한 잔씩 마시며 얘기를 들어보니 그 마을은 과거에는 아편을 재배해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었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돌아가신 국왕이 커피와 차 묘목을 재배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서 이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커피와 차를 판매하고, 해외에 수출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업으로 화려한 패턴과 색감의 수제 옷감도 지어 팔고 있었는데, 저와 아내는 원단 가게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강아지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소수 민족 마을을 떠나 다음 목적지인 태국의 최고봉으로 향했습니다. 고도가 100m 높아질수록 0.5도씩 기온이 떨어지는 원리에 따라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의 최고봉은 열대인 태국답지 않게 춥고, 안개가 많이 낀 곳이었습니다. 안개 때문인지 나무와 조각상에는 이끼가 가득했는데, 예상보다 추워서 벗었던 겉옷을 다시 입어야 했습니다. 정상부를 둘러본 후 호텔로 오는 길에 저와 아내는 미리 저녁식사를 예약해둔 식당 근처에서 따로 내렸습니다. 적당한 시간에 도착한 식당에서 진저 에일에 망고와 스테이크를 먹고, 하루의 피로를 푼 후 호텔로 돌아와 노곤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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