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2

여행 첫날밤을 보내기로 했던 테카포 호수는 잔잔한 물결이 치는 조용한 곳이었는데, 그 호숫가에는 홀리데이 파크라는 캠퍼밴을 주차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일찍 출발해 야영장에 주차를 한 후 호숫가를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위탁수하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서 예상보다 출발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 가족이 홀리데이 파크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야영장이 캠퍼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구글지도를 보면서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는 다른 캠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테카포 호수 옆에 있는 알렉산드리나라는 작은 호수 옆이었는데, 테카포 호수 야영장과 달리 물과 전기를 끌어다 쓸 수는 없는 곳이었지만 저는 일단 차를 주차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졌지만 출발하기 전 사뒀던 육류와 채소, 와인으로 늦은 만찬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차 안에 있는 주방에서 고기를 굽다보니 차 안에 연기가 뿌옇게 차서 환기를 하는데 고생을 좀 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시간이 좀 흐르자 다행히 연기가 빠져나갔습니다. 처음 캠핑카를 이용하다보니 아무래도 시행착오들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얼른 식사를 한 후 다들 지쳤는지 침대를 펴놓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좀 춥길래 잠시 일어나서 옆으로 젖혀뒀던 이불을 다시 덮고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각도 하지 못했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환기를 한다고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 것을 깜빡했는데 열어뒀던 그 창문 맞은편에서 주무셨던 아버지가 밤새 호수에서 불어온 찬 바람을 맞고 감기 기운이 드셨던 것입니다. 자꾸 기침을 하시면서도 일정에 차질에 생기는 것이 걱정되셨는지 아버지는 따뜻하게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차량 뒤쪽에 침대를 편 후 이불을 덮고 쉬시게 한 후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토스트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테카포 호수에 가서 경치를 즐길 계획이었기에 서둘러 출발 준비를 마치고 다시 테카포 호수로 갔습니다.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테카포 호수는 선한 목자의 교회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인데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높은 마운트 쿡도 보입니다. 19세기 유명한 쿡선장을 딴 이름을 가진 마운트 쿡은 무려 높이가 3,724m에 이르는데, 높이가 있어서 그런지 산 윗부분은 만년설이 쌓여 있었습니다. 선한 목자의 교회는 돌로 지은 매우 작은 건물인데, 그 안으로 들어서면 호수쪽으로 난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는데, 그 바람을 맞고 있자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남섬에 가면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라 생각이 됩니다. 세면도구가 전날 실종된 위탁수화물 가방에 들어 있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더니 상태는 폐인 모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끝내줬습니다.

호수와 마운트 쿡 산의 경치를 즐기다가 다시 다음 목적지인 퀸즈타운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 테카포 호수에서는 구름에 가려서 완전하게 보이지 않던 쿡산이 제대로 보이길래 그냥 가기 아쉬워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역시 새하얀 만년설로 뒤덮인 산은 언제 보아도 언제 보아도 멋진 모습입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첫날부터 차를 운전했던 매형이 장시간 운전을 해서 피로해보였습니다. 원래 여행 계획을 짤 때 저보다는 운전이 익숙한 매형이 운전을 더 많이 하기로 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가 교대해서 차를 몰아 보기로 했습니다. 매형에게 어느 정도 가서 교대하자고 말을 했는데 착한 매형은 별로 힘들지 않다면서 계속 운전하길래 제가 저 앞 표지판 근처에서 세운 후 교대하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너무 급하게 세우자고 한 것인지, 차가 무거워서 밀린 것인지 길 옆에 차를 대다가 그만 길가에 있는 나무와 차량의 왼쪽 사이드미러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왼쪽 귀 아랫부분이 박살이 나 있었고, 다른 부분도 흠집이 나 있었습니다. ㅜㅜ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이 캠퍼밴을 렌트할 때 보험의 보장 범위를 넓게 설정해뒀는데 계약할 때는 비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막상 사고가 나고 나니 더 많은 비용을 내고 보험을 들어두길 참으로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ㅎㅎ 렌트했던 차량이 벤츠라서 보험으로 처리가 되지 않으면 수리비를 많이 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황하는 매형에게는 보험으로 처리가 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일단 사진을 찍어 사고를 정리한 후 다시 출발했습니다.

매형과 교대해서 막상 캠퍼밴을 운전해보니 일단 차폭이 넓고, 앞뒤 길이도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더구나 뉴질랜드는 고속도로도 왕복 2차선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 승용차는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이지만 우리 가족이 탄 캠퍼밴은 크기가 커서 제한속도가 시속 90km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뒤에서 승용차들이 빨리 가라고 바짝 붙어 오기도 해서 가끔 옆에 있는 이면도로로 피해 가면서 주행을 하다보니 신경이 더 쓰였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도로와 차량과 달리 뉴질랜드는 영국처럼 왼쪽으로 달리다보니 우회전을 할 때 특히 더 헷갈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갔더니 우리는 왼쪽으로 달린다는 포스터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ㅎㅎ

우회전을 할 때 더 크게 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도로에 익숙하다보니 작게 우회전을 해서 상대 차선으로 들어서는 역주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저도 고속도로에서 한번 사고를 쳤는데, 크롬웰이라는 작은 도시에 들러 식사를 하고 가려고 우회전을 하다가 상대방 차선으로 들어서 버린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포스터까지 붙일 정도로 관광객들이 사고를 많이 쳐서 그런지 상대방 차선에 있는 차들이 양보를 해주면서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가라는 말까지 해줬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한 경계석을 과감하게 넘어서 원래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휴…

크롬웰에서 식사를 하고, 마트에도 들렀다가 공원에서 좀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장시간 차를 타고 가느라 다들 좀 지쳐 있었기 때문에 좀 걸으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기 기운이 있으신 아버지가 좀 걱정이 되어서 감기약을 사서 먹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여쭤봤더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때 약을 사서 드시게 했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고집에 저와 매형의 낙관이 나중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해서 다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퀸즈타운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퀸즈타운으로 가면서 저는 또 열심히 뉴질랜드 항공사와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실종된 수화물 3개가 퀸즈타운 공항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공사에서는 운항 일정 때문에 오후 늦게나 수화물이 도착할 것이라고 해서 일단 캠퍼밴을 캠핑장에 주차한 후 공항에 가서 짐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서둘러서 출발한 덕분인지, 우리가 원하던 크릭사이드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전기와 물을 보충한 후 아버지와 조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저와 매형이 공항에서 짐을 찾아왔습니다.

퀸즈타운 공항에서 마침내 여행 캐리어 3개를 받고 나니, 마치 잃어버린 강아지들을 찾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며칠 동안 옷도 갈아 입지 못 하고, 양치질과 세면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상태로 지냈더니 여행 가방에 있는 세면도구들을 가지고 캠핑장에 있는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오면서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옷도 갈아 입고, 다양한 레포츠로 유명한 퀸즈타운에 왔으니 외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조카가 좋아할 것 같은 루지를 타기로 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루지 출발점인 스카이라인을 향해 가면서 조카와 사진을 찍었는데, 3일 동안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했더니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호수쪽 풍경을 봤더니 뒤로 펼쳐지는 경치가 전해 들었던 것처럼 엄청났습니다. 푸른 호수와 거친 산맥, 하얀 구름이 떠있는 하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루지를 탈 시간입니다. 루지는 저를 포함해 우리 가족들도 처음 타보는 것이었는데, 다운힐 MTB 같은 느낌이어서 나름 스릴도 있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경치도 즐기고 루지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낸 후에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어제와 비교해서는 매우 평화로운 저녁식사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이튿날은 하루가 잘 마무리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운명의 여신은 우리 가족의 여행 이틀째를 그렇게 쉽게 마무리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Views: 24

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Privacy Overview

This website uses cookies so that we can provide you with the best user experience possible. Cookie information is stored in your browser and performs functions such as recognising you when you return to our website and helping our team to understand which sections of the website you find most interesting and use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