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연수라 쓰고 극기훈련이라 읽다.

고독사하신 분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현재는 법인이 되어 제가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한데, 몇년 전에는 그냥 공익단체로 종종 법률자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눔과나눔의 사무국장님이 함께 고독사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셔서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체 프로젝트에서 고독사한 분들이 생전에 자신의 사망 이후 법률관계를 미리 결정할 수 있는 사후자기결정권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연수는 원래 알고 있던 사무국장님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까지 함께 준비를 해서 일본으로 가게 되었는데,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했던 교수님이 주로 일정을 계획했는데, 일본에 지인들도 많고 여러 곳에 미리 약속을 잡아서 무리없이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룸젝트의 주제는 “내 맘대로 장례, 내 뜻대로 장례”로 정했습니다.

처음 목적지인 오사카 가마카사키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지방에서 올라와 정착했던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인데 그 중 재일동포도 많았습니다. 우리 연수팀의 첫 숙소는 코코로룸이란 곳이었는데, 인테리어나 식사 메뉴가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숙소 주변에는 가마카사키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곳들이 많이 있었는데, 노숙인들이나 실업자들을 위한 시설들도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오래된 유곽도 있었는데, 저녁이 되니 독특한 색의 조명을 비추고 여성 한 명이 앉아서 영업을 하는 것이 특이한 느낌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재일동포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기 해서 가슴 한켠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본 후에는 고양이 신사에 들러 운세를 점치기도 하고, 도톤보리에서 구경을 하다가 오사카에서 유명한 오코노미야키 맛집에서 식사도 했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광고판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글리코맨이라는 글리코 제과회사의 유명한 광고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나 싶었는데,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명물이라고 합니다.

다음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노숙인 쉼터 센터장, 오랫동안 고독사 장례를 지내왔던 스님, 실업자 지원단체 NPO 대표을 비롯해 우리 숙소인 코코로룸 이사장까지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녁에는 술을 즐기시는 교수님 덕분에 가마카사키 거리의 여러 술집을 순례하면서 주민들과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일본의 고도로 유명한 교토로 갔습니다. 교토의 오래된 절인 청수사에 가는 길에는 마침 일본의 명절이었는지 전통복장인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습니다. 청수사는 층층이 높은 목조건물이었는데, 공중에 매달려 있는 바람개비와 소원을 비는 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수사를 방문한 날은 너무 날이 뜨거워서 사실 많이 돌아다니지 못하고,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길거리의 상점들에서 기념품을 사기도 했는데 곳곳에 예쁜 사찰들이 있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바빴습니다.

청수사를 떠나 일본에서 만난 재일동포 중 한 분이 운영하는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저녁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눠보니 재일동포였던 그 분의 사촌오빠가 한국에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오랫동안 감옥에 수감됐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교로 와서 유학 중 공작의 희생물이 되어 옥고를 치렀다가 수십년 후 재심재판에서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40년 가까운 시절 그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이란 짐작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오사카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아침에 다시 임의후견과 장례 지원을 하는 단체가 있는 나고야로 출발했습니다. 나고야 성 근처에 있는 기즈나노회는 후견계약을 맺고, 피후견인의 재산과 신변관리를 해주는 단체인데 사망 후 법률관계도 관리해주는 곳이었습니다. 단체를 방문해 법률관계를 담당하는 변호사와 미팅을 했는데 덕분에 우리와 다른 일본의 법률 실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미팅 후에는 나고야에서 유명한 미소라멘집에서 식사를 한 후 이제 다시 도쿄로 이동했습니다.

도쿄로 이동한 날 저녁은 신쥬쿠에서 초밥을 먹고, 야경을 본 후 다소 이색적인 게이바에 갔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반인들도 게이바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하나의 이색적인 문화라는데 지하에 있는 게이바에 가보니 실제로 남녀 연인들이 함께 놀러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게이바의 바텐더는 쇼맨쉽이 좋았는데, 손님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우리에게 계속 진로를 팔면서 매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막상 게이바에 가니 원래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가장 힘들었던 것이 게이바가 지하에 있는데, 사방에서 담배를 피어대는 통에 완전히 두더지굴이 따로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쁘게 생긴 냅킨 하나를 기념품으로 챙긴 후 적당한 시간에 숙소로 향했습니다.

전날 밤 마신 소주로 인한 숙취를 이겨내고 다음날에는 리스 시스템을 방문했습니다. 리스 시스템의 대표님은 일제시대 대구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사업으로 돈을 번 후 후견과 장례 관련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엇습니다. 우리 프로젝트 주제와 매우 비슷해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는데만이 아니라 나눔과나눔의 미래 비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리스 시스템을 나와서 평화 영원이라는 공동묘지를 방문했는데, 태평양 전쟁 당시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폭격으로 사망한 아이들을 위한 나비 추모공원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사회복지사 출신인 동경가정대학 교수님을 만나 일본의 생활보호법과 묘지 매장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해 들었는데, 우리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모태라 그런지 내용이 매우 유사했습니다. 법률사무소에 들러서는 일본의 성년 후견제도와 임의 후견제도에 대해 일본 변호사님으로부터 어떻게 제도가 운영되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 관련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된 후 우리 연수팀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요코하마로 바다를 보러 갔습니다.

요코하마에서 예쁜 벽돌로 만든 쇼핑몰을 둘러본 후 도쿄로 복귀해 야키니쿠로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즐겼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연수팀 중 일부와 먼저 귀국하면서 마지막으로 신사의 앞을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두껍고 큰 목재로 만든 신사의 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낀 것처럼 일본의 정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사 문의 나무처럼 일본의 곳곳을 받치고 있는 시민들의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더 다양한 면을 많이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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