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아내는 아를을 벗어나 1시간 정도를 달려 우리에게 아비뇽 유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 아비뇽에 도착했습니다. 교황청이 있었던 곳이자, 유서 깊은 구시가지가 남아 있는 아비뇽은 천주교 신자인 아내가 꼭 방문하고 싶어하던 도시였습니다. 저 역시 역사가 오래된 골목길과 문화유적을 좋아하니 서로 의견이 일치했던 셈입니다.
오래된 도시답게 아비뇽은 자동차에 매우 불친절한 편이었습니다. 일단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제한되어 있고, 골목도 매우 좁아서 까딱하면 차량이 벽에 부딪히기 쉽게 생겼습니다. 골목에 숨어 있는 숙소를 찾는데 고생을 좀 하다가 호텔에 전화를 하니 주인이 직접 나와서 자동차를 다른 곳에 주차해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골목 한켠에 주차해뒀던 차를 끌고 다시 주차장을 찾아 거리를 빙빙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지하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차를 주차한 후 저와 아내의 캐리어를 끌고 자갈로 포장된 길을 따라 숙소인 La Banasterie에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서 이동하다가 제 캐리어 바퀴 하나가 부서지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숙소에는 잘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묵은 호텔은 오래된 주택2채를 연결해 리모델링했는데, 짐을 들고 나르는 계단이 좁은 것을 제외하고는 옛 건물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숙소를 찾고, 3층까지 짐을 옮기느라 다소 지친 저는 방을 배정받자 침대에 대(大)자로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ㅎㅎ

방에서 짐정리를 하고, 기운을 차린 후 호텔 사장님에게 아비뇽에서 방문할 만한 곳들을 문의했더니 교황청과 다리, 미술관들과 좋은 레스토랑들을 소개해줬습니다. 저와 아내는 일정을 확인한 후 첫날에는 아비뇽에서 가장 유명한 교황청부터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들어간 교황청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내부를 둘러보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아비뇽 교황청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 있었다는 것도 의외였습니다.



아비뇽 교황청이 만들어진 것이 프랑스왕의 영향력 때문이어서 그런지 교황청 안에도 프랑스 왕가와 관련된 상징물이나 조각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부르봉 왕가의 루이 10세를 기념하는 조각상에서는 왕과 왕비가 중심에 있고, 교황은 그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공간적 배치를 통해 아비뇽에 있었던 교황이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아비뇽 교황청도 곳곳이 정교한 장식과 웅장한 천장을 통해 교황의 권위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교황청 내부를 모두 돌아보고 나면 보통 그렇듯이 기념품 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이 곳은 교황과 관련된 물건들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특히 아비뇽에 있던 교황이었던 요한 22세의 여름 별장이 있던 마을에서 재배한 포도로 빚은 와인을 팔고 있었습니다. 교황의 새로운 성이란 의미의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 와인은 훌륭한 맛으로 유명한데, 특히 이 곳에서는 창고에서 오랜 시간 보관해 먼지가 쌓인 와인을 판매하고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추억으로 아비뇽 교황청 마그넷도 하나 샀습니다.


교황청을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금방 가버려 배에서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미리 예약해뒀던 Avenio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관광객들이 없었던 덕분인지, 이 레스토랑은 미슐랭 원스타 등급인데도 당일 점심에 예약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 레스토랑은 전채부터 메인 요리를 거쳐 디저트까지 합리적인 가격에 아름다운 플레이트와 프로방스의 풍성한 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양 어깨살 스테이크와 디저트에 만족했고, 저는 특히 프로방스에서 유명하다는 비둘기 요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비뇽의 옛 이름이라는 Avenio에서 행복한 저녁을 마치고, 적당히 취한 한국인 부부가 밤거리를 어슬렁거렸습니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렇게 여유있게 한적한 유럽의 밤거리를 걸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밤하늘 아래 오래된 골목길들을 이리저리 유람했습니다. 자동차로 이동도 했고, 많이 걷기도 한데다 와인까지 한 잔한 터라 숙소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저 모두 푹~~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분위기있는 숙소의 응접실에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호텔은 구도심에 있어 크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실내 인테리어나 가구들이 모두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호텔 사장님이 직접 구운 빵과 차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프랑스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민요에 나온다는 아비뇽 다리를 보러 갔습니다. 생 베네제교라 불리는 다리는 원래 12세기부터 론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였는데, 이제는 2/3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요금을 내면 다리 위로 올라가 구경을 할 수도 있다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기온도 낮고, 요금도 생각보다 비싸서 그냥 옆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아비뇽 다리까지 본 후 드디어 본격적인 쇼핑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아비뇽에서 사고 싶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바로 수제 초콜렛과 프랑스 전통 리큐르인 샤르트뢰즈(Chartreuse)였습니다. 아비뇽에는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수제 초콜렛 가게가 있어 선물도 하고 몇개 먹어보고 싶었고, 샤르트뢰즈는 연애할 때 바에서 우연히 함께 마시게 됐는데 그 맛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프랑스에 가면 꼭 사서 마시자고 했었던 술이었습니다.
약간 시간이 일러서 수제 초콜렛 가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던 탓에 먼저 주류점에 가서 샤르트뢰즈를 사기로 했습니다. 먼저 들렀던 와인 상점에서는 팔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상점을 찾아가다가 우연히 큰 길가에서 주류점을 발견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서 샤르트뢰즈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술이 있냐고 물었더니 어떤 걸 원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샤르트뢰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을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사장님이 카운터 옆에 전시되어 있는 샤르트뢰즈들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이는 녹색과 노란색 뿐만 아니라 화려하게 디자인된 스페셜 에디션도 있엇습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특별한 것을 사자는데 아내와 의견이 일치해서 Cuvee des Meilleurs Ouveriers de France Sommeliers라는 이름의 샤르트뢰즈를 샀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마신 이 술은 130종의 약초를 섞어 만든다는 비법 덕분인지 45%라는 알콜도수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에 다채로운 향과 달콤하면서도 크리미한 맛으로 우리를 사로잡았습니다.

원하던 술을 산 기쁨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초콜렛 가게로 향했습니다. 개장 시간이 된 초콜렛 가게에서 우리보다 먼저 온 일본 관광객들이 가게 이름이 적힌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본 우리는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상점 안에는 작은 크기의 다양한 초콜렛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격표를 보니 오래된 역사와 명성이 가격에도 포함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가게라고 하니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몇 개 구입한 후 우리가 먹을 것들도 골라서 챙겼습니다.
쇼핑에 정신이 팔린 사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서 막상 체크아웃을 하려고 하니 시간이 좀 빠듯했습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서 새로 사온 물건들을 캐리어에 집어 넣은 후 다시 낑낑대며 짐을 아래층으로 옮겼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돌 바닥을 지나 멀리 주차장까지 이동하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아 아내가 숙소에서 짐을 지키고 있고, 제가 차를 몰고 숙소 근처로 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가다가 교황청 옆에 있는 아비뇽 대성당을 들렀습니다.







대성당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백의 깔끔한 인상을 주는 성당이었는데, 성당 내부의 기도하는 조각상 및 스테인드 글라스와 대성당 앞에 있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아내가 나중에라도 보고 싶어할 것 같아 아비뇽 대성당 내부를 부지런히 사진 촬영한 후 아내가 오래 기다린다는 생각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차에 시동을 건 후 골목골목을 돌아 호텔 앞에 세운 후 얼른 짐을 싣고 아내와 함께 다음 여행지인 고흐드로 향했습니다.
Views: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