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을 달려 마침내 영화화되기도 한 소설 향수의 배경인 그라스에 힘들게 도착했습니다. 그라스는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는데, 아내가 가고 싶어 하는 식당 앞으로 갔더니 일방통행 도로였습니다. 천천히 진입을 했는데, 갑자기 앞에 서 있던 경찰관들이 손을 흔들면서 차를 세우더니 뒤로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것과 달리 보행자 전용 도로여서 차가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라 다시 아래로 차를 몰아 공영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언덕길을 올라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에 도착하니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속이 출출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니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테리어에 밝고 선명한 식물 도안으로 벽이 장식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식 맛도 좋고, 식당 여사장님도 친절해서 즐겁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식사 후 옆에 있는 수제 사탕 가게와 향수 가게에 들러 아내의 조카들에게 줄 막대 사탕과 저희 누나에게 줄 선물을 샀습니다. 향수 가게는 그라스에서 유명한 프라고나르 향수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바로 옆에는 프라고나르 향수 박물관도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내친 김에 향수의 역사도 한번 보고 가자는데 의견이 일치해서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고대부터 현대까지 향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병에 담겼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된 내용 중 아기자기한 약병들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프라고나르 박물관 아래에도 향수 상점이 있었는데, 상품도 다양했지만 그 포장지의 문양과 색감이 참 화려하고 예뻐서 사진을 한장 남겼습니다.

이제 그라스를 떠나 숙소가 있는 앙티브로 향했습니다. 코트다쥐르 해변에 위치한 앙티브는 프랑스에서 휴양도시로 유명한데 주변에 있는 니스와 다른 도시들을 방문하기 좋았습니다. 앙티브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푼 후 저녁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압생트 바를 찾아 30분 가까이 밤거리를 걸어가면서 거리의 많은 식당들과 술집들이 문을 닫을 것을 보고 혹시 코로나의 영향으로 여기도 문을 닫은 것은 아닐까 약간 불안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구글지도를 보고 찾아간 압생트 바는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고흐가 즐겨 마시던 압생트를 파는 곳인데 문 앞에 아무런 공지는 없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은 것 같았고, 아내와 기념으로 사진만 찍었습니다. 다음날 낮에 다른 곳을 가다가 문을 연 것을 보고 다시 찾은 압생트 바는 이제 술을 판매만 하고, 마실 수는 없는 곳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가게 사장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래도 기념으로 녹색 악마의 술이라고 불렸던 압생트 미니 사이즈를 보니 귀여워서 하나 사들고 나왔습니다.


압생트 바에서 식사를 할 수 없어 옆에 있는 다른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분위기나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중해 연안이라 그런지 신선해보이는 채소와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들이 잘 나왔습니다. 프랑스이니 당연히 와인도 한잔 곁들였습니다. 식사를 한 후에는 숙소로 돌아가 라운지 바에서 술을 한잔 주문했는데, 칵테일에 섞어 마시는 주스 종류를 물에 섞어 준 것이라 나중에 알고 나서 아내와 한참 웃었습니다.


다음날은 30분 정도 차를 몰고 가서 맑은 날씨의 니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군제대 후 유럽여행을 했었는데, 당시 파리를 떠나 야간기차를 타고 이른 아침 니스에 도착했었습니다. 마트에서 맛있는 천도복숭아를 사서 하나 먹은 다음 너무 졸려서 니스 해변가에 누워 2시간 정도 잠을 청했다가 다리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익었습니다. 니스 바닷가에서 푸른 바닷물과 빛나는 모래를 보니 젊은 시절의 서툴었던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해변을 본 후 우리는 니스 해변가에 있는 식당을 찾아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식당 이름은 프랜친이었는데, 아내가 찾은 식당으로 랍스터, 뇨끼, 달팽이 요리가 유명했습니다. 저나 아내나 제대로 된 에스카르고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이번 점심에는 에스카르고를 위주로 먹어 봤습니다.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잔을 마신 후 다른 요리들을 함께 즐긴 후 기대했던 대로 맛이 좋아서 서로 나중에 다시 오자고 말하면서 식당을 나섰습니다.


식사 후에는 샤갈 미술관으로 갔는데, 주차를 하느라 좀 고생을 했습니다. 다행히 미술관 뒤쪽에 차를 댄 후 안으로 들어가 작품들을 살펴봤더니 노년의 샤갈이 활동했던 곳이라 그런지 우리가 평소에 알던 작품들보다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내는 천주교 신자인데 종교와 관련된 주제의 작품들을 보고 더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샤갈 미술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에즈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해변을 따라 가는 길이 생각보다 좁고 구불구불해서 예상보다 늦게 에즈에 도착했고,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계단을 올라 에즈 가장 높은 곳에서 주변 경치를 볼 수 있는 식물원이 이미 문을 닫은 후였습니다. 아쉽지만 식물원 앞에서 사진 한장을 찍은 후 계단을 다시 내려와 앙티브로 돌아왔습니다.

앙티브에 오자 이미 밤이 깊어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오늘 저녁은 어제처럼 문 닫은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곳을 예약해서 가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라주르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담하고, 지하 동굴처럼 생긴 내부 구조를 가진 아라주르는 깔끔한 인테리어만큼이나 요리의 맛과 플레이팅도 훌륭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요리를 먹으면서 지금까지 프로방스에서 먹어 본 음식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이 가격에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연신 감탄했습니다.





사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요리가 꽤나 만족스러워서 제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식사를 끝낸 후 아내와 여기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오자고 말하면서 조용한 골목길을 거닐다 숙소로 돌아가 바쁜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Views: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