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위로의 오키나와 여행 1

제게는 누나가 1명 있습니다. 4살 정도 나이 차이가 있는데 어렸을 때는 제가 잘 따라다니면서 고무줄 놀이도 같이 하고, 누나가 친구 집에 가면 저도 잘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제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누나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 수시로 투닥거리기도 했는데,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즈음부터는 누나와 침대에 누워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친해진 것은 서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이고,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사춘기 시절에는 누나와 끝없이 다투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중2이고,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와 누나가 동남아시아 여행을 함께 갔을 때였습니다. 원래 그 여행은 아버지가 회사에서 해외여행 부부동반권을 받으신 것인데, 부모님은 모두 동남아시아에 다녀오셨었기 때문에 누나와 제가 대신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생각이 많은 사춘기였던 저는 여행 내내 누나와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다투었고, 누나는 그렇지 않아도 낯선 외국에서 저와 다른 여행객들의 눈치까지 보느라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생각해보니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누나에게 참 미안하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조카가 사춘기를 맞으면서 저희 누나는 저를 닮은 제 조카와 다시 부딪히기 시작했고,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누나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저는 누나에게 예전에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저 때문에 고생했던 것에 대해 사과도 하고, 누나의 답답한 마음도 풀어줄 겸 오키나와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여행준비와 경비는 모두 제가 마련하는 조건이었습니다.

누나는 처음에는 말썽꾸러기 아들을 두고 며칠 동안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마침내 한번 바람을 쐬고 오면 가슴에 맺힌 것이 훨씬 풀릴 것이라는 제 말에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저와 누나의 화해를 위한 여행이자, 지친 누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오키나와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키나와는 19세기 일본 본토로 병합되었는데, 이전에는 류쿠 왕국이란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키나와는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온천도 있어서 겨울철에 건강을 돌보기 위한 여행을 위해서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제가 누나에게 제안한 힐링여행을 위해서도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사실 일본에는 군 제대 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갈 때 잠시 경유했었는데,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다시 가려고 생각하던 중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해서 방사능 우려 때문에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오키나와는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방사능 영향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여행을 가기로 한 겁니다.

출국하는 날은 평창 올림픽을 며칠 남기지 않은 날이어서 인천국제공항에는 해외에서 찾아오는 여행객들과 선수들을 반기는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가 홍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평소 귀여운 마스코트를 좋아했기 때문에 얼른 수호랑 옆에 가서 포즈를 취한 후 함께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은 처음 이용해봤는데, 새로 개장해서 그런지 시설도 깨끗하고 이용객도 적은 편이어서 쾌적한 느낌이었습니다. 곳곳에 휴식공간과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속을 거쳐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오키나와에 도착했습니다. 저와 누나는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내려 바로 예약해뒀던 렌트카 업체로 갔습니다. 그 곳에는 제가 예약한 토요타 하이브리드카인 아쿠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프리우스의 소형 모델이라고 보면 되는데, 처음 하이브리드를 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연비가 엄청 좋고, 소음도 매우 작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로 주행하는 동안에는 마치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는 것 같이 소음과 진동이 없는 부드러운 정숙성이 좋았습니다.

차를 몰고 도착한 숙소는 아타 테라스 클럽 타워즈라는 곳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유명한 테라스 호텔 중 하나로 골프장에 붙어 있는 리조트였습니다. 부에나 테라스 리조트가 더 규모가 크긴 하지만 아타 테라스가 조용하면서 시설도 깔끔하다고 해서 저는 이 곳을 택했습니다. 아타 테라스 클럽 숙박객은 부에나 테라스 리조트도 이용할 수 있어서 나중에 사우나를 하러 가봤더니 역시 숙박객이 적어 한적한 아타 테라스가 저와 누나의 취향에는 맞았습니다.

도착한 첫 날은 체크인이 좀 늦어서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누나와 느긋하게 일어나서 조식을 먹었는데, 서양식과 일본 전통식 중 서양식 메뉴를 먼저 먹어 봤습니다. 서양식 조식은 사방이 트여 있는 리셉션 하우스 1층에서 먹었는데, 겨울철인데도 바람이 별로 차지 않고 선선해서 역시 남쪽 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옆에 있는 풀장과 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켜보던 종업원이 저와 누나의 사진을 한장 찍어주겠다고 하여 호텔 풀장과 바다를 배경으로 누나와 사진도 한장 남겼습니다.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차를 몰아 추라우미 수족관을 찾았습니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컸다고 써있는 안내문을 보니 우리와 비슷한 면이 느껴져서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추라우미 수족관의 마스코트가 고래상어이기도 하고, 특히 고래상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하여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본 수족관에 들어가기 전에 옆에 있는 작은 수족관에서는 듀공과 매너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이 인어로 착각했다는 듀공은 알고 있었지만, 매너티라는 듀공의 사촌 같은 아이들도 함께 있어 신기했습니다. 그 옆에서는 바다거북 산란장도 있었는데, 바다거북이 모래밭에서 산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습니다.

이어서 들어간 대형 수족관에서는 가오리와 열대어들, 그리고 음악과 함께 등장한 고래상어 등 오랫만에 다양한 수중생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귀상어도 보였는데 머리가 망치처럼 생긴 것이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긴 것은 고래상어였습니다. 몸집 자체가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압도적인데다가 유영하는 모습이 힘차면서도 여유가 있어서, 보고 있으면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고래상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고래상어 배에 빨판상어가 붙어 다니는 것도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추라우미 수족관을 둘러본 후에는 더 북쪽으로 이동해서 벚꽃이 예쁘게 핀다는 공원을 찾아갔습니다. 오키나와가 남쪽이라고 해도 아직 벚꽃이 많이 필 계절은 아니라서 일단 벚꽃을 볼 수 있다는 곳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벚꽃으로 유명하다는 공원에는 벚꽃이 많이 피지는 않았고, 한쪽 구석에서 벚꽃 사탕만 팔고 있었습니다. ㅎㅎ 그래도 공원에 몇몇 나무들에는 예쁜 벚꽃 몽우리들이 달려 있고, 여기저기 의자도 많이 있어서 우리는 주차를 한 후 공원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좀 쌀쌀한 날씨였는지, 공원에서 얘기를 하다 피곤해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라운지에서 티타임을 즐겼습니다. 티타임에는 차와 간단한 와인 등 주류, 케익이나 치즈 등이 제공되었는데, 누나와 유쾌하게 술잔을 기울이면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누나도 저도 쌓였던 스트레스가 많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술을 한잔 하고 나니 급 피로가 몰려와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욕조에서 피로를 풀고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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