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제대한 후 시작한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항상 그렇듯 제 계획보다 한참 시간이 지난 2010년이었습니다. 부모님께는 호기롭게 3년 반 내에 시험을 끝내하겠다고 말한 후 시작했지만, 1차 시험에서 1등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2차 시험을 4번 본 끝에 다행히(?) 사법시험에 최종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갔다온 후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시험준비를 하는 것이 죄송해, 2차 시험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했는데, 2010년에도 6월에 2차 시험을 본 후 10월 합격자 발표가 있을 때까지 스마트폰 직무교육 프로그램 검수 아르바이트와 대입 논술시험 채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시 아르바이트 급여로는 나름 괜찮게 급여를 받아서 생활비를 하고도 다행히 여유가 좀 있어 합격자 발표 전에 마음도 정리할 겸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평상시 여행을 갈 때는 배낭여행을 선호했는데, 당시에는 혼자서 여행을 갈 준비를 할 시간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 그냥 무난한 패키지 여행상품을 선택해서 여행 출발을 했습니다.
필리핀 세부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를 배정하는데, 이상하게 저는 작은 차량에 타라고 해서 알 수 없는 불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여행 출발 당시에는 여행을 가서 동행객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차에 타서 기다리고 있자니, 총 7명이 차량에 탑승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만 살펴보니, 아뿔싸… 저를 제외한 나머지지 여행객은 3커플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 자체도 아담했지만, 전체 객실에 우리 7명 외에는 거의 손님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우리 일행이 수영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저만 방을 혼자 썼기 때문에 하루 여행 일정이 끝난 밤마다 일행들이 제 방에 모여서 같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알고보니 일행 중에는 제 대학 남자 후배도 있었고, 한 커플은 워낙 술을 좋아해서 출국할 때마다 보드카를 사서 현지에 도착하면 주스와 섞어 칵테일로 만들어 먹거나, 물과 섞어 소주로 마신다고도 했습니다.
세부 여행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주었던 넓은 바다와 바닷바람,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편하게 밤마다 술자리를 가졌던 일들입니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함께 여행했던 커플들이 각자 시간을 가지고 싶었을텐데, 밤마다 제 방에서 술마시자고 해서서 좀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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