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유족급여 지급은 언제나 제자리를 찾을까?

요새 신문에서 건설현장을 비롯해 제철소 등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분들의 기사가 자주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1만명당 발생하는 산업재해 사망자를 의미하는 산재 사망만인율이 OECD 국가 중 1위를 고수하고 있는데, 산재보험은 이상하게도 매년 수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산재처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거나, 산재로 처리해야 할 것을 공상으로 처리하여 보험금 인상을 기피하는 풍조에 기인한 것입니다.

제가 담당했던 사건 중 산업재해로 인한 유족급여 사건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에 근무하던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는데, 유족이 유족급여 신청을 하였지만 근로복지공단이 거부하였던 경우였습니다. 사망한 노동자는 원래 자신이 작업장에서 다뤘던 부품에 석면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생각해 이를 근거로 치료비를 청구했다 사망했고, 유족 역시 동일하게 주장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는 작업장을 실제 조사한 결과 당시 작업장에 석면이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어 다른 가능성은 따로 고려하지 않고, 유족급여 지급청구를 거부했습니다.

이후 제가 사건을 맡게 되어 관련 내용을 살펴보니 근로복지공단의 조사 결과처럼 작업현장에 석면은 없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렇다면 해당 물질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다가,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제적으로 석면보다 더 많은 폐암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결정체 산화규소(결정형 유리규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사망한 노동자가 실제로 작업했던 부품을 찾기 위해 전국의 중고부품사이트를 확인했고, 결국 10년 전에 생산된 해당 부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그 부품을 구매해 법원에 감정을 신청했고, 회사에서 동일하게 작업을 재연하는 현장감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부 부품에서 결정체 산화규소가 확인되었고, 그 측정치가 규제 기준치에 가까운 정도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사건을 의뢰하면서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유족은 남편이 사망하게 된 원인을 찾게 되었다면서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저도 중요한 고비를 하나 넘었다는 생각에 매우 기뻤지만, 이후 진료기록감정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 좋은 예감은 왜 잘 들어맞는 것인지, 재판부에서는 감정 결과의 신뢰성에 대해서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진료기록 감정 결과에서도 감정 결과 측정된 결정체 산화규소 및 기타 용접흄 등 유해화학물질이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제가 진료기록감정을 신청해 감정결과 회신이 왔는데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가 불리한 내용으로 감정결과를 작성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사망한 노동자의 직접적 사인인 폐암은 10년 이상의 잠복기가 있는데, 그 기간에 미달하는 기간 동안 결정체 산화규소에 노출된 것으로 보이고, 용접흄과 기타 폐암을 표적으로 하는 유해물질들도 복합적으로 폐암 발생의 원인으로 볼 근거가 부족한 반면, 사망한 노동자의 흡연력이 폐암 발생 원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감정결과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워 재판부에 기존 감정결과에 대한 보완 감정을 신청해 다시 회신을 받았으나, 오히려 기존 내용을 강조하는 회신만을 받았습니다. 그 회신 결과는 대법원이 최근 인정한 여러 유해물질들이 질병 발생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회신 내용을 받아본 저는 어이가 없어 감정의가 자신의 최초 의견을 고수하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실제 폐암의 발병 원인과 잠복기와 관련해 더 전문적인 조언을 구하고자 아버지의 지인인 의사분과 통화를 해서 감정과 관련한 내용을 물어봤습니다. 국내에서 호흡기내과학회 회장도 하셨던 의사분의 답변은 담배와 관련해서는 국내외 담배소송 과정에서 연구가 많이 되어 그 연구 결과는 있지만, 여러 유해물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이 되는지는 재현가능성이 낮아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그런 연구가 이루어지거나 그 결과가 발표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서면을 작성해 재판부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재판부도 진료기록 감정 결과가 너무 불리하게 회신되는 바람에 쉽게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못했고, 결국 패소하게 되었습니다. 의뢰인은 남편이 사망하고, 새로 직장을 다니면서 어렵게 생활을 꾸려나갔고, 어떻게든 남편의 사망 원인을 밝혀보려 했지만, 2년 가까이 진행되었던 1심에서 패소하자, 이제는 새로운 삶에 충실해야겠다면서 결국 항소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해당 사건을 하면서 저는 전문가로서 제가 하는 상담이나 자문에 대해 다시 한번 신중하게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료기록 감정을 했던 의사는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회신을 했을 것이지만, 자신이 틀릴 수 있고,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저 역시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100년 동안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와 그 가족이 모든 고통을 안고 가야 한다니… 이것이 진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에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사건 마지막 준비서면을 유족들의 상황과 우리의 법현실에 대해 이 사건 마지막 준비서면을  아래와 같이 진술하면서 마무리했습니다. 재판부에서 당시 어떤 고민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건에서 외면한 유족의 외침을 앞으로 다른 사건에서라도 좀 더 전향적으로 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몽테스키외는 자신의 저서인 ‘법의 정신’에서 “최악을 두려워해 소악을 방치하고, 최선을 의심해 차선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발암 잠복기가 길지 않은 원고의 사례가 혹시 다른 사건의 선례가 될까 하여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원고를 비롯한 망인과 가족들에게 모든 고통을 지우는 것으로 소악을 방치하는 것이자, 폐암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의과학적 인과관계를 의심하여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최선의 길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미 제시된 많은 증거자료들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를 고려하시어 재판부에서 원고와 그 가족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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