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서 소송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법원이 민사사건의 정확한 사실관계 확정이나, 형사 및 행정 사건의 실체진실 발견에 너무 소극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사자가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변론주의 원칙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당사자가 증거를 신청하면 증거채택에 대해서는 잘 인용해주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당사자가 주장하는 쟁점과 관련 없는 증거 신청이 많아 재판이 지연되는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사건이 너무 많아 부담이 되니 빨리 재판을 끝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최근 한 행정사건 변론기일에서도 재판장이 저의 사실조회와 증거제출명령 신청에 대해 자신이 판단할텐데 사실조회는 왜 하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법리적인 판단은 법원이 하지만 다양한 증거자료를 통해 사실관계가 명확히 확정되어야 더 정확한 법리적인 판단이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변론하면서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를 일컬어 “신의 일을 대신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판사들이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은 신의 일을 대신 한다고 자신이 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판사는 신이 아니므로 판단에 있어 오류를 범할 수 있고, 그런 오류를 줄이기 위해 민사에서는 당사자들의 증거 제출을 원칙으로 하되 석명도 하도록 하며, 형사 및 행정사건에서는 직권주의가 가미된 소송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것임에도 자신의 무오류성을 과신하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세월호 사건 당시 세월호의 항적이 기록된 해군의 영상자료에 대한 증거보전 사건에서 법원에 영상자료의 제출을 신청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심문기일에 군사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경우 일부만 제출하고, 특히 해당 영상에 세월호 항적 관련해 문제가 되는지 법관이 비밀심리절차에 따라 확인하고 제출 여부에 대해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고, 법원에서도 고심 끝에 비밀심리절차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실제 영상 제출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후 절차에서 담당 법관이 해군으로부터 임시로 비밀취급인가를 받아 해군 지휘통제실에서 영상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비밀심리절차를 실제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당시 판사는 나름 자신의 권한 내에서 할 바를 다 했던 것입니다. 물론, 법원도 당사자가 신청하는 모든 증거를 다 채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맡았던 사건의 의뢰인들이 우리 사법부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불신은 소송지휘의 공정성에서 비롯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도 무리하게 증거 신청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모든 분쟁의 최종적 해결의 장이 법정이라면 당사자들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모두 법정에 현출시켜 다툴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만일 그랬다면, 설령 그 결론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승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이 자신이 신청하는 증거조차 받아주지 않는다면 당사자는 어떤 결론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의뢰인들이 변호사인 제게 가장 많이 묻는 말이 “이런 서면과 증거를 내면 판사님이 다 보시긴 하나요?”입니다. 저는 물론 “당연히 다 보시죠.”라고 답변하지만, 우리 사법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부끄러운 상황이 투영된 말입니다. 법관이 신의 일을 대신 한다면 최소한 당사자들이 재판 후 최선을 다해 다퉈봤으니 후회는 없다면서 혹시 지더라도 신만은 진실을 알 것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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