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첫날의 교훈으로 서둘러 도착한 뉴질랜드 퀸즈타운의 홀리데이 파크는 캠퍼밴에 전기와 수도를 공급받을 수 있고, 별도로 마련된 편의시설로 깨끗한 화장실과 주방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멋진 캠핑장이었습니다. 물론,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좋은 곳을 고른 것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루지를 타러 나가기 전에 미리 전기선과 수도호스를 연결해 충전도 하고 물탱크도 완전히 채워뒀던지라 저녁식사를 마친 후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어제보다 몸이 좀 회복되셨는지 설거지는 자신이 하시겠다면서 설거지 거리들을 가지고 제 조카와 함께 캠핑장에 있는 시설로 가셨습니다. 저와 매형은 식탁을 정리하고, 잘 준비를 위해 침대를 꺼내면서 침구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한 20분 정도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시지 않아 제가 주방이 있는 건물로 갔더니 아버지가 여전히 설거지를 하지 못하고 한쪽에 앉아 계셨습니다. 알고보니 일본에서 온 듯한 다른 팀이 설거지를 30분 가까이 하고 있어서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 아버지께 그냥 캠퍼밴에서 하자고 말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식기들을 챙겨들고 돌아와 캠퍼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설거지를 잘 하지 않으셨는데, 연세가 드시고 어머니와 시골로 내려가 정착해 사시면서 적응을 위해 설거지를 하시게 됐습니다. 집안 청소를 할 때도 깔끔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설거지도 깨끗하게, 식기에 고춧가로 하나 없이 깔끔하게 하시곤 합니다. 설거지 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오랜시간 공들여 설거지를 마치셨습니다.
아버지의 설거지가 끝나자 다들 양치질과 간단한 세면을 한 후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끄려는 찰나, 제 눈에 화장실 문 앞에 물기가 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누군가 세면을 하다가 물이 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장지를 뜯어 물기를 닦은 후 화장실 변기에 버릴 생각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화장실 안에 오수가 가득 차서 찰랑찰랑~~거리면서 화장실 밖으로 조금씩 넘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화들짝 놀란 저는 매형에게 가서 큰일 났다면서 화장실에 오수가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와 매형은 약간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시면서 물을 많이 쓰셨는데, 원래는 싱크대의 물이 바로 바로 배출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꿀럭꿀럭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물이 빠져나가길래 저도, 매형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싱크대를 통해 배출된 오수가 오수탱크 용량을 넘어 화장실 바닥의 배출구를 통해 다시 나오다보니 공기가 통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높이로 봤을 때 싱크대보다 화장실 바닥이 낮으니 압력으로 인해 화장실 바닥을 통해 오수가 넘쳤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는 깨끗한 물탱크와 오수 탱크의 용량이 같은데, 우리가 캠핑장에 주차를 해놓은 후 물탱크를 가득 채워놨더니 오수탱크의 용량을 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어쩐다… 일단 진정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간이 갈수록 싱크대의 오수는 압력 때문에 화장실 바닥을 통해 점점 더 배출될 것이 확실하고, 그런 상태로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를 통해 오수를 버리자니 화장실 안에서 출렁거리던 오수가 밖으로 마구 넘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생각해낸 방법은 화장실 변기에 넘친 오수를 퍼서 부은 후 변기를 통해 버려지는 오수를 모아두는 통을 끌고가 오수를 버린 후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으면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로 오수를 배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화장실에 물을 뜰만한 바가지 같은 것이 하나 비치되어 있어서 부지런히 오수를 퍼서 변기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변기에 오수를 붓다 보니 생각보다 변기에서 배출되는 오수를 담는 통은 빨리 찼습니다. 결국, 물을 퍼서 변기에 붓고, 그 오수가 담긴 통을 끌고 오수를 버리는 장소에 가서 버리고, 다시 돌아와 변기에 붓고, 끌고갔다가 오고… 이걸 한 5번은 한 끝에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뉴질랜드 퀸즈타운에서 달밤의 체조를 2시간 가까이 한 끝에 간신히 골치 아픈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밤 중에 캠핑장에서 이게 뭐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또다른 한편 잊지 못할 우스운 추억거리도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ㅎㅎ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전날 밤 체조 덕분인지 몸이 좀 쑤셨는데, 아버지는 전날 밤 자신 때문에 저와 매형이 고생을 했다고 생각해서인지 평소같지 않게 눈치를 좀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아침식사를 하고, 아버지가 쉬실 수 있게 캠퍼밴 뒤쪽에 있는 침대를 펴놓고 누워서 가실 수 있게 조치를 한 후 전날 받은 캐리어에 있는 감기약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괜찮다면서 한사코 약을 안 드시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출발을 했는데, 저도 좀 피곤하기는 했나 봅니다. 매형이 운전을 하다가 제가 교대를 했을 때 찍어준 사진을 나중에 보니 얼굴이 좀 탄데다가 초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 목적지는 테 아나우였는데, 테아나우는 뉴질랜드 남섬의 하이라이트인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관문이었습니다. 테 아나우 자체도 호반의 도시여서 무지개 송어낚시로도 유명했기에 우리 가족은 송어를 많이 잡아 송어구이 요리를 해먹자는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테 아나우에도 일찍 도착해서 얼른 호수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어 경치가 좋은 테 아나우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짐을 간단히 정리한 후에는 근처 상점에 가서 송어 낚시를 하기 위한 낚시대를 빌리고, 찌도 구입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등록도 해야 하기 때문에 낚시대를 빌려주는 상점에서 4명 모두 송어 낚시 등록증도 발부받았습니다. 송어 낚시를 할 생각에 다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신이 나서 차를 몰고 송어가 가장 잘 잡힌다는 강으로 이동했습니다. 낚시대를 챙겨 다들 강에 던지면서 어리숙한 송어가 초보 낚시꾼들의 찌를 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명의 어설픈 낚시꾼들이 낚시대를 드리운지도 1시간, 2시간… 시간은 잘도 흘러갔지만 역시 뉴질랜드 송어들은 생각보다 영리했습니다. 저는 주로 강바닥의 이끼를 낚아 올리거나, 어떤 때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끌려오길래 잔뜩 기대를 하고 당겼더니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발이 떡!!하니 올라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조카에게 낚시 던지는 방법을 알려주시고는 좀 피곤하셨는지 일찌감치 낚시는 접고 그늘에 앉아서 강바람을 쐬고 계셨습니다. 저와 매형, 조카는 그래도 송어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낚시줄을 던졌지만 결국 뉴질랜드 송어는 마트 생선코너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산천어 축제에서 산천어를 잡는 것과는 역시 천지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날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낚시도구를 정리해서 다시 차를 끌고 캠핑장으로 철수했습니다. 낚시대는 빌렸던 곳에 반납하고, 주변 음식점, 상점들과 공원도 둘러봤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후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다들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연일 계속된 이동과 오후에 했던 낚시로 인해 모두 피곤했나 봅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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