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휩쓰는 시대,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늘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머물면서 넷플릭스 등 OTT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 등 프로그램들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최근 본 ‘다운사이징’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 저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세포 축소기술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체의 질량과 크기를 축소하는 것인데, 영화적 설정이긴 하지만 그런 축소에도 불구하고 세포의 조직이나 전체 세포가 구성하는 개체의 연속성은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을 그대로 크기만 작게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는 지구의 자원을 마구 소비하고 있는 인간으로 인해 지구에 한계점이 오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의 크기를 줄여 인간이 소비하는 자원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을 떠나 기후 위기를 직접 겪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그 취지는 백번 옳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제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장면은 다운사이징을 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의 결정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벌어졌습니다. 주인공 부부가 친구 부부와 술집에서 술 한잔을 하면서 다운사이징을 하기로 결정한 계기나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옆자리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사람 취색 한 명이 시비를 걸면서 질문을 합니다.
다운사이징을 한 사람들에게도 보통 사람과 똑같은 선거권을 주는 것이 맞냐는 것입니다. 소득세 등 세금도 내지 않고, 소비도 거의 하지 않아 경제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니 일반인의 1/8의 권리만 갖는 것이 옳지 않냐는 주장입니다. 물론 주인공 부부의 친구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제지하지만 그 취객의 주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입니다.
그런 주장의 전체적인 취지는 사람은 사회에 기여한 만큼 권리를 갖는 것이 옳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그런 주장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재산을 가진 사람만 선거권을 가지는 것이 맞다, 남성만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양반과 평민만 재산을 가질 수 있다 등 인간의 가치가 모두 같은가 하는 오랜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생각입니다.
최근 외국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들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기여를 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주장들은 잘못된 사실관계에 근거한 경우도 많고, 국가정책적으로 부당한 경우도 있지만, 그 주장의 뿌리는 이처럼 긴 역사적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미래가 이렇게 단순하게 인간의 가치를 현재의 경제적 능력으로 재는 구분과 차별의 조각난 공동체라면 좀 서글퍼집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해당 국가의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했던 간디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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