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성 여행 3

리장에서 쿤밍을 거쳐 다시 위안양에 있는 티티엔(계단식 논)을 보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고된 경험이었습니다. 일단 쿤밍에서 위안양으로 가는 길이 다리나 리장에 가는 것처럼 고속도로가 아니어서 비슷한 거리인데도 2, 3배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마치 기차에 있는 침대칸처럼 침대버스가 있는데, 높지 않은 버스에 아래에는 여행가방을 넣는 짐칸과 그 위에 2개의 침대를 배치해서 침대칸에 누우면 간신히 머리만 들 정도 공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비포장길이라 버스가 많이 흔들렸지만, 다행히 머리를 많이 부딪히지는 않고 위안양에 도착했습니다.

위안양은 작은 마을이라 미리 숙소를 예약하기도 어려웠고, 정확히는 어디에 숙소가 있는지도 정확히 알기 어려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탈 때 제가 여행가방을 올려준 중국인 노부부가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자 제게 어디에 가냐고 묻기에 라이스 테라스(계단식 논)를 보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들도 거기에 간다면서 저보고 같이 가겠냐기에 중국인 일행이 있으면 시골에서 여행하기에도 훨씬 수월할 것 같아 그렇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려 얘기를 해보니 그 중국인 부부는 사진 촬영이 취미라 난징에서 위안양의 라이스테라스 사진을 찍으러 여행을 온 것이었는데, 부인은 학교 선생님이고 남편은 엔지니어로 간략하게 영어를 할 줄 알았습니다.

중국인 노부부를 만난 덕에 숙소도 쉽게 구하고, 숙박비도 현지인 수준으로 저렴하게 지급할 수 있게 되었기에 식사비는 제가 내겠다고 했더니, 자신들은 2명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면서 계속 제 식사비까지 내주셨습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그냥 음식점에서 파는 메뉴대로 주문을 해서 먹었는데, 중국 현지인과 함께 식당에 가니 손님이 음식재료들을 고르면 식당 주인이 그 재료들로 반찬을 해서 손님에게 제공하는 식으로 운영됐습니다. 그렇게 색다른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길고 힘든 버스 여행에 지쳐 얼른 잠을 청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출을 보기로 했습니다.

같이 여행을 한 중국인 노부부는 오랫동안 계획하여 위안양의 라이스 테라스로 여행을 와서 저보다도 훨씬 라이스 테라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곳의 일출, 일몰 사진 촬영 포인트들을 알고 있어서 현지에서 차를 빌려 이곳저곳으로 발빠르게 움직였는데, 전 따라 다니기만 해도 돼서 덕분에 아주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찍 준비해 일출 포인트에 갔더니 벌써 여행객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모여 있었고, 쌀쌀한 날씨 탓인지 하니족 여성이 파는 따뜻한 차와 달걀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드디어 해가 뜨기 시작하자 흩어져 있던 여행객들이 모두 카메라를 들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면서 점점 몸이 따뜻해지고, 논에 햇빛이 반사되면서 더 다양한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멋진 일출과 다랭이논을 렌즈에 담는데에만 정신이 없었는데, 주변이 점점 밝아지자 계단식 논의 다양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해가 다 뜨자 슬슬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 일행을 찾아나섰는데, 제 일행은 연세가 꽤 있으신 분들인데도 사진 삼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평소에 사진 촬영이 취미라고 하시더니 지치지도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조용히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행분들이 삼각대를 접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다음 사진 촬영지를 향해 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농부가 농사를 짓는 멋진 곳이 있어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햇빛에 비치는 색이 여러 가지라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붉은 색으로 보이는 논은 논에 붉은 이끼가 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계단식 논이 더 넓게 펼쳐져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곳의 계단식 논은 가장 아래에서 위까지 논의 층수가 1,300개가 넘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과연 그 곳에 도착해보니, 압도적인 광경에 경탄하고 그처럼 높은 지대에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계단식 논을 조성한 하니족 사람들의 끈기와 노력,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솟아났습니다. 장소를 옮겨 일몰 포인트 지점까지 이동해서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이 참 빨리 흘렀고, 바쁜 하루의 일정을 소중한 사진들로 보상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사진 포인트들에서 사진들을 모두 찍은 후에는 지친 몸을 끌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숙소 옆에는 나름 큰 마트가 있었기 때문에 일행이었던 중국인 노부부와 함께 장을 보러 갔는데 전부터 한 번 사서 마시고 싶었던 중국산 와인인 만리장성 와인이 있기에 한 병을 샀습니다. 저녁식사 후 조용히 숙소에서 즐긴 중국 와인은 달면서도 새콤한 맛이 강한 편이었고,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도록 깊은 잠 속으로 인도해줬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짐을 꾸려 일행과 함께 버스를 타고 쿤밍으로 향했습니다. 위안양에서 여행을 하면서 중국인 부부에게 신세를 많이 졌기 때문에 헤어지기 전에 제가 식사를 한 번 대접하겠다고 하여 쿤밍에 도착한 후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인 부부는 이후 중국과 라오스 접경도시를 향해 간다고 하여 쿤밍에서 헤어지게 된 것인데, 식사 대접이 고맙다면서 나중에 난징에 한번 놀러오라고 했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귀국하고 얼마 후에 진짜 이메일로 사진들을 보내줬는데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사진촬영을 전문적 수준의 취미로 가지고 계셔서 그런지 그 수준이 제가 찍은 것과 비교가 안 됐습니다.

쿤밍으로 돌아와서는 숙소를 잡고, 쿤밍 무역전시장에 가서 쇼핑을 했는데 디자인이 조잡한 제품들이 많았지만, 신기한 아이디어 상품들도 있었고 또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들도 있어서 약간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뭐든지 크다는 중국에 대한 인식처럼 무역전시장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서 건물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도가도 반대쪽 끝이 나오지 않아서 가다가 결국 포기하고 다시 돌아서 원래 출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쿤밍에 있는 월마트에서 음식 등 쇼핑을 한 후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타러 쿤밍 공항으로 갔는데 새로 지은 쿤밍 공항은 당시에도 인천공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당시 중국의 빠른 발전에 놀라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요즘 중국의 발전 속도를 보면 더욱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중국을 가장 길게 느껴봤던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저는 개업을 하여 드디어 변호사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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