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3

오르혼 계곡을 출발해 단어 그대로 길도 없는 광활한 초원을 푸르공 운전기사의 방향감각과 좌표에만 의지해 하루종일 달리니 마침내 노천온천이 있는 쳉헤르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다들 했던 얘기가 일단 몽골에 가면 매일 씻고 샤워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울란바토르를 출발한 후 샤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생수로 양치질과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여행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쳉헤르에는 노천온천이 있어서 샤워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다들 한낮에는 더위로 땀도 나고, 찝찝한 기분이기도 했기 때문에 쳉헤르에 얼른 가고 싶어했습니다.

운전기사가 약간 위치를 헷갈려 좀 헤매다가 오후 늦게 도착한 쳉헤르에는 게르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 서있었고, 게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먼 곳에서는 익히 들은대로 노천온천이 뜨거운 김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인 노천온천에서 나온 뜨거운 열수가 내뿜는 연기와 게르 관리인이 게르 내부의 난로를 피워 나오는 연기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숙박지 샤워시설과 온천욕장은 노천온천에서 열수를 끌어온 후 일정 온도까지 식혀 사용하고 있었는데, 저와 일행들은 오랜만에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풀고, 며칠 감지 못해 떡진 머리도 감으면서 상쾌하게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들과 온천욕을 즐긴 후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은 역시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연기가 솟아나고 있는 노천온천의 수원지였습니다. 늪지 같은 물이 고인 곳들을 피해 펄쩍펄쩍 뛰어 연기가 곳는 곳으로 부지런히 가보니 역시나 약간 썩은 달걀냄새 같은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노천온천이 있었습니다. 몽골 사람들도 온천을 좋아하는지 몽골사람들도 많이 여행을 온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일행들과 다함께 온천욕까지 즐기면서 기분도 상쾌하고 더 친해져서인지, 쳉헤르에서의 밤은 다들 만취할 정도까지 술을 마신 후에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 다른 일행들이 실신해있는 동안 냄비와 달걀을 들고 노천온천 수원지에 갔습니다. 전날 밤 술을 마시면서 제가 터키 온천에서 달걀을 삶는 얘기를 했다가 아침식사 당번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천수에 달걀을 넣고 약 10분 정도 기다리니 익은 것 같아서 시험삼아 하나 꺼낸 후 껍질을 깠더니… 마치 조미가 된 것처럼 약간 짭짤한 맛도 나면서 풍미가 있었습니다.

제 예상보다 더 잘 맛있게 조리가 되었기에 저는 신이 나서 익힌 달걀들을 들고 게르로 돌아왔습니다. 게르로 돌아오니, 어제 밤 치열했던 전장에서 전사했던 일행들 중 일부는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고, 일부는 여전히 숙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늘어져 있었습니다. 좀 정신을 차린 일행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해서 아직도 비몽사몽인 사람들에게 밥을 먹인 후 짐을 정리해서 푸르공에 탔습니다. 저도 전날 밤에는 다른 날보다 좀 무리해서 달렸는지 다른 날보다 머리도 좀 아프고,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피곤해보였지만, 그래도 푸르공을 타고 초원을 달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쐬니 다행히 좀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초원을 보고 있으니 목축하는 소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뜨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상쾌해지고, 눈도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복잡했던 머리도 맑아져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피부로 와 닿기도 했습니다.

이 날 저희 일행은 초원 한복판에서 분출했던 화산 분화구에 들러 테르힝차강노르라는 호수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보통 산맥 속에 있는 화산들만 봐왔던 제게 초원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허르허 터거라는 화산은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화산 주변에 큰 숲이 있어서 그 풍경이 더욱 멋졌습니다. 몽골 사람들도 옛날부터 저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화산을 오르는 길에는 신을 모시는 장소도 있었습니다. 또 등산 길에는 타조인 것도 같고 아니면 몽골에서 유명한 독수리인지 모를 새를 닮은 죽은 나무 줄기가 있어 한참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허르허 터거 화산 분화구를 본 후에는 다시 근처에 있는 테르힝차강노르로 향했습니다. 힘들게 도착한 호수에는 부드러운 바람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어 평화로운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일행들과 술을 한잔 하다가 생리현상을 해결하려고 잠시 게르 밖으로 나왔는데, 순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고 잠시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강원도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보았던 별들보다도 훨씬 많은 별들 사이를 별똥별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광경을 보고 유독 어렵게 몽골에 왔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너무 어두운 곳이라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제가 가진 휴대폰 사진기로는 제대로 그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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