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전날까지 타이베이 시내를 둘러봤으니 이제는 타이베이를 벗어나 타이베이 근교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타이베이 근교 여행은 예류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묶어 예스진지 투어라고 해서 택시나 개인 투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만의 기차를 타보고 싶다는 일행의 의견을 따라 기차로 진과스와 지우펀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이고, 더구나 대만에서 기차를 타는 것이니 다소 설레기도 했는데, 막상 기차를 타보니 우리 전철처럼 승객이 양쪽에 앉아 서로 쳐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지우펀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되었는데 일단 자리가 있길래 얼른 앉아 철로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지우펀 근처 역에 도착했습니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곳으로, 좁은 골목 곳곳에 다양한 먹을 거리와 상품들을 파는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관광객이 너무 많다보니 좀 답답한 기분도 들고 높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안개가 끼고 비도 자주 내려서 불편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먹어보지 못한 간식들도 먹고, 기념품도 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와 누나네 가족은 지우펀에서 각자의 띠를 상징하는 자그마한 형광 도자기 인형들을 샀습니다. 저는 앙증맞게 생긴 인형이 마음에 들어 제가 퇴근한 후에도 제 방을 지키라는 의미로 사무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는데 퇴근할 때 불을 끄면 형광빛이 나면서 지금도 제 방을 밝히곤 합니다.

지우펀에서 주변 경치도 둘러보고, 배도 채운 후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다는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유명세를 타서인지 골목길은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보니 전망도, 분위기도 좋은 전통 카페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다말다 하면서 추위가 느껴졌기 때문에 차를 한잔 마시고 가자고 하여 안개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서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니 몸이 좀 풀리면서 피로도 좀 사라졌습니다.


지우펀을 둘러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진과스로 향했습니다. 진과스는 과거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일본이 광산을 운영했던 시절의 영향이 컸는지 상당수 건물이 일본풍의 건축양식이었습니다. 과거 실제 금광이 운영되던 시절 역사와 금덩어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내부를 둘러보고 광산에서 캐낸 광석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체험 코스에 참여했습니다. 바닥의 모래를 바구니에 넣고 잘 흔들고 돌려서 사금을 골라내는 것인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어 일행들이 모두 집중해서 열심히 금을 찾아냈습니다.
골드러시 못지 않은 열기로 체험을 끝내고 나니 힘이 들었는지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진과스에 오면 다들 한번씩 먹는다는 광부 도시락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출발했습니다. 식당에 가니 둥그런 스테인리스통에 든 광부도시락을 팔았는데, 겉은 정성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고 안의 도시락 구성도 고기와 채소가 푸짐하고 맛도 괜찮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맛있는 도시락과 따뜻한 국수로 식사를 배부르게 하고 나니 계속 걸어다니느라 힘들었던 것도 잊고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진과스에서 식사까지 마친 후에는 다시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 외곽의 단수이로 향했습니다. 단수이 해안가에 위치한 위성도시로서 일몰로 유명한데 제가 중국어 학습 스터디를 하면서 공부했던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오는 담강고등학교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단수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단수이는 바닷가답게 해산물 요리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즐겨찾는다는 맛집을 찾아가 새우요리 등 저녁식사를 거하게 한 후 타이베이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종일 추운 곳을 걸어다녔더니 호텔방에 들어가자 완전히 지쳐서 간단히 따뜻한 물로 샤워만 한 후 바로 꿀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대만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수천년 역사를 지닌 중국의 역대급 보물들을 감상한 날이었는데, 바로 고궁박물관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넘어올 당시 대륙의 박물관에서 중국 역사상 중요한 유물들만 엄선해 싣고 왔다고 하는데 그 보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 고궁박물관입니다. 베이징 자금성도 중국에서는 고궁이라고 부르는데 아마 자금성에서도 유물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명칭을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도 배추 형태의 옥인 취옥백채와 동파육 모양의 옥인 육형석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상아 투각 조각품이나 청명상하도 등 수십만 점이 넘는 보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작품들이 너무 많아 연 4회 작품들은 전면 교체한다고 합니다. 저는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워낙 명작들이 많다보니 나중에는 꼼꼼히 보는 것을 포기하고 눈길이 가는 작품들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오니 다리가 아파서 얼른 음식점으로 가서 앉아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박물관 옆에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전시품인 육형석을 닮은 동파육이 가장 유명한 메뉴라길래 시켜서 먹었는데 우리가 먹는 삼겹살 부위인 것 같은데 훨씬 부드럽게 조리를 해서 입에 넣으니 녹아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렸던 배를 달랜 후 하얀 박물관 밖에서 사진을 한장 찍는 것으로 대만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대만여행은 온천을 비롯해 즐길 거리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물가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라 아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한번 가본다면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Views: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