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난민신청인의 눈물

저는 며칠 전 이의신청 단계에 있는 난민신청인의 면접에 동석을 했습니다.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에서 분담해 수행하고 있는 사건인데, 최초 난민신청에서 난민으로 인정이 되지 않아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한 단계였습니다. 다른 난민사건도 비슷하지만 최근 사건 처리가 너무 지체되어 많은 난민신청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의뢰인인 이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난민신청인은 가족들과 함께 고국을 탈출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후 이제 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점점 성장하고, 아내는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맡은 후로도 1년 반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저 역시 신속한 심사를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해 의견서만 이미 3차례 정도 제출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사건을 맡은 이후 최초 난민신청 당시 제출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추가로 전달받아 정리해 제출했는데, 그 중에는 반정부 시위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동영상들과 고국에서 궐석재판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판결문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기존에 많은 난민 사건을 맡아 진행했었고, 난민이나 인도적 체류허가자로 인정받은 사건들이 있는데, 이렇게 판결문까지 제출할 수 있었던 사건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만난 난민신청인은 오랜 기다림 끝에 추가 면접을 하게 되서인지, 저와 했던 면접 때보다 다소 긴장한 듯 보였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들을 잔뜩 넣은 파일을 손에 들고 조사실로 올라간 후 조사관의 질문에 따라 조사관, 통역인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답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던 면접에서 이미 답변했던 내용에 대해 다시 동일한 질문을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조사관이나 제가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면 다시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다가 조사관이 난민신청인에게 고국에서 여러 차례 체포되어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난민신청인은 시간이 많이 흘러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당시 일들은 자신도 너무 고통스러워 잊고 싶어하는 기억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에 조사관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난민신청인은 그런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면서 자신이 난민지위를 신청한 것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그런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꾸 되살려보라고 압박하면 차라리 난민신청을 철회하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체포되어 어떻게 끌려갔고, 전기고문을 비롯해 차마 여성인 통역인 앞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문들을 당했다고 말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저나 조사관 모두 그저 조용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에 걸쳐 체포되어 전기고문을 비롯한 고문을 당하면서 더 이상 정부에 반하는 주장을 하지 말라고 강요받는 상황… 생각해보면 우리의 근현대사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우리 역사 속 이야기들과 유사한 상황을 겪은 50대의 난민신청인이 어렵게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까지도 그 고통이 전해져 마음이 먹먹해졌고,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런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 고국에서 고통을 겪었던 이 난민신청인과 그 가족들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라도 평온한 삶을 누리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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