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영화 한편을 보게 됐습니다. 제목은 ‘브라이언 뱅크스’, 촉망받던 미식축구 선수였던 브라이언이 거짓 피해 진술로 누명을 쓰고 수감생활을 한 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내용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시스템이 한번 잘못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그것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많은 힘이 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1월말에 제 의뢰인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문재인 정권 1호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언론에도 많이 보도됐었던 사건인데, 저를 포함한 변호인단이 2018년 1심부터 담당했던 사건입니다. 치열한 법정 다툼 속에서 1심에서는 유죄로 징역 4년이 나와 의뢰인이 법정 구속되었다가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된 후 1심 판결이 완전히 뒤집혀 전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시간이었는데, 항소심에서 형사법의 원칙에 충실한 판결문을 읽고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도 이런 결론이 나와서 놀랍기도 하고 변호인으로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의뢰인만이 아니라 변호인들도 1심과 항소심의 결론이 달라 혹시라도 항소심 판결이 뒤집히지는 않을까 다소의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침 대법원 선고기일에 지방에 재판이 있어 선고를 듣지는 못했는데, 선고를 들은 변호사님이 공유한 소식은 검사의 상고기각. 6년의 짧지 않은 기간 의뢰인과 변호인들의 마음이 마침내 자유를 찾은 순간이었습니다.
공판 기간동안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에 관한 법리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범죄사실 확인에 있어 컴퓨터, 통신 기술 측면에서도 참 많은 의견서와 증인신문, 공방이 오간 사건이었습니다. 의뢰인과 변호인의 모든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입니다. 다만, 1심 유죄 판결에는 언론사들에서 수십개의 기사가 쏟아졌는데, 항소심 무죄 판결에는 고작 몇 개의 기사만 나왔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지만 해당 판결을 다룬 기사는 단 1개도 없는 것을 보면 우리 언론사들이 과연 진실을 전달할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물음표가 그려집니다.
제 의뢰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동안 자신이 구치소에서 겪었던 고통스러운 수감생활 뿐만이 아니라 십여년이란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사업이 모두 망가져 이제는 공사 현장에서 노무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가족들의 생활비와 자녀들의 학비,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의뢰인이 또 다른 생계수단을 찾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철저히 망가져 버렸는데, 이런 상황을 만든 수사기관이나 사법체계는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을 하고 있지만 구금으로 인한 보상에 그칠 뿐이고, 피고인이 구속되어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망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무죄 판결문을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시하는 것 외에 기존에 손상되었던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다른 조치들이 없습니다. 이미 잘못된 정보들이 세상에 퍼졌는데 다시 돌이키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런 상황을 바꿔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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