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만의 실종선고와 제사

얼마 전 1년 가까이 기다리던 사건의 심판정본이 법원으로부터 송달됐습니다. 의뢰인이 한국전쟁 당시 혼란했던 상황에서 실종된 부친에 대해 청구한 실종선고가 마침내 인용된 것입니다.

의뢰인은 자신이 갓난아기 당시 실종되어 기억도 나지 않는 부친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실종선고를 받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모친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정리를 해서 아버님 제사라도 한번 지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의뢰인은 이러한 결심을 하신 후 제가 고문을 맡고 있는 곳의 지인을 통해 제게 연락을 주셨고, 저도 사정을 듣고 빨리 진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서둘러 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실종선고는 원래 관할이 실종자의 마지막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에 청구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막상 해당하는 지역의 가정법원에 청구를 했더니 법원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몇 년 간 유사한 사건들이 수십 건 청구됐는데, 마지막 주소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결국 대법원이 있는 서울가정법원으로 사건을 이송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건을 이송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 그냥 소를 취하하고 서울가정법원에 다시 소를 제기하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변호사로서 사건을 하다 보면 법령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실무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이 사건에서는 관할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의뢰인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 소를 취하한 후 다음 날 바로 다시 소를 제기했기에 다행히 절차가 크게 지연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사건을 진행하면서 의뢰인의 어머님 건강이 악화되어 혹시라도 아버님 제사를 한번도 못 지내고 돌아가실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진행 도중에 법원에서 인우보증서 관련 보정을 요청해서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데 의뢰인과 제가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친척분들이 함께 도와주셔서 보정서도 잘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정서를 제출한 후 어머님의 건강이 우려되어 빠른 실종선고를 요청하는 의견서도 별도로 제출했습니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실종선고를 인용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제 의뢰인이 심판정본을 가져가 어머님을 모시고 아버님의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70년도 더 지난 전쟁의 잔재가 여전히 한 가족의 가슴 한 구석에 슬픔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상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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