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의뢰인의 채무부존재를 주장하여 진행한 청구이의의 소에서 승소했습니다. IMF 이후 무너져내린 국가 경제로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제 의뢰인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IMF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소액대출과 신용카드론으로 생활비를 충당했었는데 개인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가라앉기 시작한 배를 다시 띄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출만기가 되었지만 상환을 하지 못하고 연체를 하게 되었는데, IMF 이후 이자제한법이 폐지될 정도로 이자가 급등했었기 때문에 원금의 몇 배에 이르는 이자가 변제해야 할 원리금으로 쌓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제 의뢰인에게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원리금을 받기 위해 지급명령과 소액사건심판을 청구했는데 제 의뢰인은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버느라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소장도 제대로 송달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0여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제 의뢰인은 자신의 채무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의뢰인에 대한 채권들은 채권추심업체들 사이를 돌고돌다가 마침내 자산관리공사가 제 의뢰인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시도하면서 제 의뢰인이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제 의뢰인은 2018년과 올해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는데, 이후 저를 찾아와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황을 보니 처음에는 기존에 판결과 지급명령도 받아 확정된 바 있고, 대출도 의뢰인이 빌린 것이 맞아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상담을 하면서 기존 진행 과정에 대해 의뢰인에게 묻다보니 지급명령과 소액사건심판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인지 약간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단 의뢰인에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관련 소송기록을 다시 확인해보고 얘기해보자고 한 후 기존 사건 기록들과 판결문, 지급명령 등 내용을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점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원래 제가 맡았던 사건은 올해 제 의뢰인이 소제기했던 사건인데, 사실상 동일한 채무에 대해 의뢰인이 이미 2018년 소를 제기했었고, 그 사건의 판결선고가 얼마 남이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사건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면 제가 맡은 사건도 불리해질 수 있어서 제가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판결선고 일주일 전 참고서면을 제출했는데, 다행히도 다 합쳐 5천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채무가 시효로 모두 소멸되었다는 전부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상대방은 전부 패소했는데도 승산이 없다고 보았는지 항소를 하지 않았고, 저는 기존 판결문을 진행 중인 사건에 제출하면서 동일한 논리의 준비서면을 제출했습니다. 상대방은 여러 금융기관들에 사실조회를 신청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자료나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회신을 받지 못했고 마침내 지난 주 총 6천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채권들이 모두 시효 소멸되었으므로 이런 채권들을 기초로 한 강제집행을 정지한다는 내용의 전부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승소판결을 받고 의뢰인에게 연락을 하니 의뢰인이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IMF로 인한 고통이 20년이란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제 다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판결문을 송달받으면 사무실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으면서 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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