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은 베트남전쟁 전후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이었기에 대통령궁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전쟁 중 미군이 철수한 이후 북베트남군의 탱크가 호치민으로 진격해 점령했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이 대통령궁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궁에 진입했던 탱크 2대가 대통령궁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안으로 들어가면 남베트남 당시 대통령의 다양한 일상과 업무 공간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옥상에는 북베트남군이 진격해오자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이 탈출하려고 했던 것인지 헬기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분단된 국가이기는 했지만 한 국가가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아 뭔가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비까지 내린 날이라 더욱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대통령궁 앞마당은 주인을 잃은 옛 고궁의 정취마저 느껴졌습니다.


통일궁이라고도 불리는 대통령궁을 나선 후 전쟁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과의 전쟁 이전에 이미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 프랑스와 벌인 전쟁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고, 미군이 진주한 이후에는 우리나라 군대도 참전한 아픈 과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전쟁박물관에 가보면 물론 식민지 시대 프랑스, 미국 군대의 잔인한 학살과 만행에 대한 고발 내용도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살포한 에이전트 오렌지라 불린 고엽제나 지뢰로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들만이 아니라, 군복무 당시 노출된 고엽제로 고통받는 미군이나 심지어 우리나라 군인의 모습이나 증언까지도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물론 일부 선전의 의미도 있겠지만, 이제 베트남은 기존의 증오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신감과 힘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직 분단의 고통이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크나큰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 그것을 극복해낸 베트남이 약간 부럽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것일 뿐이니 이해한다고 말한다는데,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날은 그런 복잡미묘한 생각에 잠겨서 조용한 바에 앉아 술을 한잔 했습니다.

베트남 여행의 후반부를 보냈던 호치민에서는 비로 인해 계획했던 일정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호치민 시내 구경을 마친 다음날에는 원숭이들이 주인인 껀저섬 투어를 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진입로가 물에 잠긴데다 뻘처럼 변해서 저를 포함한 일행들의 신발을 잡고 놔주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의 반 이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원숭이들은 함께 걷던 한 일행의 선글래스를 번개같이 낚아채 간 후 공원 관리인들이 주는 바나나와 교환하는 쇼맨쉽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몇년 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개발도상국의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나라 전역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역동성이 마치 우리나라의 1990년대, 2000년대 초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이전보다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되어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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