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과 청와대

얼마 전 주말에 대학 동문 모임에서 함께 청와대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청와대를 일부 개방하는 행사에 참여해서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일부만 개방한 것이라 춘추관, 녹지원, 본관과 영빈관을 둘러봤었습니다. 그래서 상춘재, 대통령 관저나 그 뒤쪽의 산책로 주변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건물들과 문화유적까지 볼 수 있다고 주말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예전과 차이라면 미니버스를 타고 춘추관을 통해 방문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도보로 청와대 사랑채 앞 문을 통해 입장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영빈관이나 본관은 이미 본 적이 있는데다 줄을 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간단히 둘러본 후 원래 제가 보고 싶었던 관저 뒷편의 미남불을 보러 다소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이 곳은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 그런지 관람객도 별로 없어서 한적한 느낌도 들었는데, 그래도 본격적인 산책로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특히나 제가 가장 보고 싶었던 미남불 앞에 관람객들이 여럿 서서 미남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남불은 원래 경주에 있었는데, 청와대로 옮겨왔다는 얘기부터 최근에 어떤 관람객이 훼손을 하려고 했었다는 얘기까지… 그래서 그런지 미남불 옆에는 청와대라 기재된 셔츠를 입은 불상 가이드인지 아니면 불상 가드인지가 의자까지 마련해놓고 관람객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명칭만큼이나 잘생긴 미남불을 감상한 후에는 다시 대통령 관저로 향했습니다. 막상 대통령 관저를 둘러보면서 놀란 것은 인테리어나 주변 시설이 생각보다 낡고, 옛날 스타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청와대가 만들어진 지가 30년이 넘다 보니 아무래도 미적 감각이나 기술이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내 인테리어나 내부 가구는 최근 TV에 나오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일반 주택들보다도 못한 면이 있었습니다. 다만, 실외는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빗물받이 홈통에서 빗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오도록 만든 장식물이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관저를 나와 아래쪽에 있는 상춘재로 향하니 침류각부터 제가 좋아하는 물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상춘재가 있는 곳은 과거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터인데, 상춘재 옆을 따라 물이 졸졸 흐르고, 그 물이 연못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연못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 관저로 연결되는 다른 길도 있어 조용히 이 길을 따라 산책하면 운치도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상춘재는 큰 나무가 서있는 넓은 잔디밭인 녹지원을 앞에 두고 있는데, 나무결 자체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한옥 양식이었습니다.

청와대 자리는 고려시대부터 별궁이 있던 곳으로 오랫동안 우리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지켜본 곳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찾았을 때와도 벌써 달라진 청와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이 곳을 우리 역사의 현장으로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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