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서버 이메일의 압수수색 문제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관련 판사들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과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해 다투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위와 같은 내용들은 기존 국가보안법 사건 등 공안사건에서 변호사들이 지속적으로 다툰 결과 정립된 법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동변호인단으로 참여했던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도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을 다퉜는데, 검찰이 공소장에는 공소사실만 적도록 한 형사소송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공소장에 범죄사실이나 양형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주로 판사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사건의 무게를 강조해서 판사들에게 부담을 주기 위함이기도 할 것인데, 어쨌든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은 잘 인정되지 않는 경향입니다.

사실 그보다 훨씬 법리적으로 치열하면서도 판사들도 실무상 엄격하게 다루는 것은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한 부분입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민형사, 행정 등 대다수 사건에서 법원에 제출되는 카카오톡 메시지, 문자 메시지를 비롯해 이메일 등 상당수 증거들이 디지털 증거들입니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에는 국디지털포렌식센터를 만들어 대응할 정도로 형사소송법상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과 관련한 내용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디지털 증거와 관련해서는 원본과 사본의 동일성, 증거가 수집된 후 폐기시까지 오염되지 않아야 하는 무결성, 원본 및 원본을 이미징한 사본 보관의 연속성이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해외에 있는 서버의 이메일을 국내에서 서버에 접속해 디지털 정보를 가져와 압수수색한 경우 증거능력이 문제된 것입니다.

당시 제가 이 부분에 대한 의견서를 담당했는데, 최초 접근은 국가의 형사재판관할권과 관련된 내이었습니다. 즉, 국내가 아닌 해외에 있는 서버에 저장되어 있는 이메일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형사재판관할권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해외 서버에 위 이메일이 존재하는 한 국내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 위 이메일에 대한 강제처분을 하더라도 이는 재판관할권이 없는 영역에 대한 것이어서 압수수색영장이 무효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위 이메일을 확보하려면 해당 서버가 존재하는 국가와 형사사법공조를 통해 현지 사법당국이 압수한 이메일을 넘겨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효인 압수수색영장에 기해 확보된 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이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학계와 실무의 대다수 논문들이 이와 동일한 내용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그 작성자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부장검사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당시 공판기일에 출석해 다른 사안에 대해서 검찰에 유리한 증언을 했던 교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내용은 국제법상 역외 관할권 관련 문제와 밀접하기 때문에 미국과 EU의 기존 판례들도 함께 언급하면서 다퉜는데, 특히 미국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아일랜드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이 적법한지에 대한 사건에서 그 압수수색이 적법하지 않다는 미국 뉴욕 연방항소법원의 판결문도 핵심 부분을 발췌 번역해 함께 제출하였습니다.

당시 제출한 의견서에는 위와 같은 내용 이외에도 해쉬값을 통해 원본 동일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 그 이메일 내용의 공유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 여러 주장이 함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위와 같은 내용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제 의견을 받아들여 해당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고등법원 판결이 나오자 해외 서버에 저장되어 있는 이메일 등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및 그 방법에 대한 최초 판결이어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위 판결에 대해 관련 학회에서 논의가 되고, 위 판결과 다른 판단을 한 이후 다른 사건과 비교하는 논문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는 압수수색영장의 효력을 인정하였지만,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형사소송의 특성을 반영해 해당 공소사실에 대한 무죄를 유지하였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 이후 미국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동일한 사안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는데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도 계속적으로 논쟁만 있다가 미국내 전자통신프라이버시법 개정으로 사실상 역외 관할권을 인정하게 되면서 심리기각되어 사건이 그냥 종료되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마지막까지 판단을 했다면 우리 대법원의 판결과 비교해 보면서 법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2년 정도 다양한 쟁점에 대해 다퉜던 사건이 종결되고, 검사가 12년 구형을 했는데 최종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이제는 형을 마치고 석방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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