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전에 맡았던 사건 중 공사대금 미지급을 원인으로 한 채권가압류 사건이 있었습니다. 계약 상대방이 차일피일 공사대금 일부를 지급하지 않자 공사 잔대금 지급을 확보하기 위해 법인의 제3자에 대한 채권가압류를 신청한 것이었는데, 1심에서 기각이 되었습니다.

당시 상대방 기업은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제3자 명의로 이전하는 등 다른 자산이 없는 상태였는데, 보전처분을 엄격하게 판단한다는 최근 추세를 명목으로 가압류를 기각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계약 상대방이 그 이전부터 공사대금을 지급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가압류 신청이 기각되자 그러한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해당 채권가압류 사건에 대해서 항소를 하였습니다.

가압류 기각 결정에 항소한 후 공사 잔대금 지급을 구하는 본안 사건을 1년여 진행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항소한 가압류 사건에서 1심 결정을 취소하고 우리의 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서둘러 집행을 하고 보니, 원래 확보하려고 했던 1억 2천만원의 1/5에 불과한 2천여 만원만을 가압류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 신청 당시에는 충분히 신청했던 금액 상당의 채권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1년 이상 시간이 흐르고 보니 제3채무자인 기업도 기성고에 따라 이미 대부분의 대금 지급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라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렇듯 실질적으로 법적 분쟁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 의뢰인이 향후 본안에서 승소하고도 공사대금을 모두 지급받지 못한다면 누구를 상대로 하소연을 할 수 있을지 참 답답합니다.

비단 제가 맡았던 이런 유형의 사건 말고도 시간이 흐르면 피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법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사법제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정성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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