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은 겨울의 절정기에 맞이하는 법원의 휴정기에 한숨 돌리며 휴식을 갖게 됩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여행을 하기도 하고, 독서나 다른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바쁜 업무로 밀린 서면들이나 집안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연말에 맞은 휴정기에 밀렸던 인터넷 교체나 등 수선 등 집안일을 처리하고, 아내와 주말을 껴서 겨울산과 바다를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번 휴정기를 맞으면서 결심했던 것이 하나 있는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업무시간에 활자를 많이 봐서 왠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제 업무 이외의 책을 잘 읽지 않았지만 이번 휴정기에는 시간을 내서 책을 제대로 좀 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휴정기에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 책들 중 먼저 읽은 것이 ‘군주론’과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입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지은 ‘군주론’은 널리 알려진 책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제가 더 젊었을 때 이 책을 여러 번 집어 든 적이 있었는데, 지금보다 젊은 나이였을 때라 그런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책의 내용에 거부감이 들어선지 조금 보다가 내려놓았었습니다. 이제 그 때보다는 세상을 더 경험해서 마음이 열린 것인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더 알고 싶어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군주론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보니 여러 버전의 군주론이 있었는데, 제가 고른 곽차섭 교수 번역본은 이탈리어 원전을 최대한 직역하고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보여주면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해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글을 쓴 배경을 알게 되면 글의 행간을 읽는데도 도움이 되고, 내용 자체도 더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대로 책 처음 부분에 마키아벨리의 삶과 당시 이탈리아의 정세, 군주론을 써서 당시 피렌체의 권력자에게 증정하려고 했었다는 내용을 알게 되니 군주론이 왜 그렇게 쓰여졌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군주론은 어떻게 보면 난세를 사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기도 하고, 정치 지도자의 처세서이기도 하며, 수많은 도시국가로 찢어진 이탈리아의 슬픈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군주는 사자이자 여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감부터 생겼는데, 인간의 심성보다도 상황이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군주론에 나온 것처럼 민주정이 아닌 군주정에서는 군주 자신의 생존이 곧 국가의 생존이기에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로 삼국지 게임을 즐기고,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 열국지나 삼국지, 초한지, 대망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제가 유독 마키아벨리의 주장에만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 한편 이상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것은 제가 군주론이 있었던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서나, 전쟁을 수단으로 하는 부국강병의 기술을 주장하는 병가의 측면이 아니라 일반적인 정치에서의 교활한 기술이나 무자비한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에 군주론을 읽으면서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군주론을 읽은 후에는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부제가 ‘석기 시대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까지’인데, 저자인 아더 훼릴은 원시 인류부터 전쟁이 존재해왔고, 전쟁이 인류의 주거 형태와 삶의 방식을 많이 결정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장갑보병으로 유명한 그리스와 로마의 전쟁 수행 능력이 과대평가되어 왔고, 소아시아 등 고대 근동 지역으로부터 우리 현대인은 전쟁과 관련된 훨씬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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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출현에 대해서도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는데, 농경의 발전으로 도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방어 목적으로 도시가 생긴 후 농경 등 식량의 축적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농업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농경의 등장이 인류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며, 농경으로 인한 식량의 증산은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이미 늘어난 인구수로 인해 인류 공동체가 기존 수렵 및 채집 경제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떠오르는 농경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합니다.
책 내용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투에서 각 부대가 어떻게 전투를 벌였는지 그림을 통해 설명하는 것과 게임에서 많이 경험한 것처럼 각 부대들의 특성에 따라 서로 상성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갑옷이 두꺼운 중장갑보병이라고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경보병보다 전투력이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아시아 원정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그리스의 중장갑보병 전술과 페르시아 등 근동 지역의 경보병, 전술, 병참, 조직등 전쟁 기술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켰던 덕분이란 점도 놀라웠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의 장점을 살리고, 타인의 것이거나 새로운 것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 장점을 잘 살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것이 바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그 아버지인 필립왕은 근본적인 혁신이 비주류인 변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한 것이라는 생각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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