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스와 분열의 정치

최근 넷플릭스에서 바이킹스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습니다.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을 지배하던 시기,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이킹들이 영국을 침략하고, 프랑스에서는 노르망디를 지배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부 상상을 가미한 역사 드라마입니다. 예전에 월터 스콧이 쓴 ‘아이반호’를 읽으면서 앵글로 색슨족과 바이킹이 시조인 노르만족의 갈등에 대해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바이킹들이 영국을 침략했던 것은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살펴본 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바이킹스에서 주인공이었던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그 아들들의 인생과 모험 얘기도 흥미진진했지만, 그 후속작인 바이킹스-발할라는 단순히 재미를 떠나 제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바이킹스의 이야기로부터 100년 정도가 흐른 후 크누트 대왕의 영국 점령을 배경으로 하는데, 영국에서 대왕으로 불리는 단 2명이 하나는 바이킹의 공격을 막아냈던 웨섹스의 알프레드 대왕과 그 이후 웨섹스를 비롯한 영국 전역을 점령한 바이킹 크누트 대왕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나 바이킹-발할라에는 크리스트교가 전래된 후 다수가 크리스트교로 개종하여 기존 오딘 등 전통신을 믿는 사람들과 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특히나 같은 민족으로서 영국을 침략해 점령하고자 하는 동일한 목표가 있지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말하는 소위 ‘뺄셈의 정치’, 서로 다른 것을 강조하면 분열과 전쟁의 시대가 바로 지척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이킹스에서도 주인공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는 척박한 스칸디나비아를 벗어나 영국에서 기름진 농경지를 받아 농사를 짓고 싶어 하기도 하고, 다른 바이킹들은 평화롭게 살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심지어 북아메리카 뉴펀들랜드 섬으로 이주하기도 합니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죽은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여러 다른 종교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은 ‘카테가트’라는 항구도시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서로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강조하여 다른 것이 잘못된 것이라며 분열과 다툼의 시대를 재촉하는 세력이 있고, 상호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 평화와 번영의 길임을 강조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차이을 강조하는 정치를, 공존이 아닌 상대방을 절멸시키려는 정치로는 평화의 길이 요원합니다. 주변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위태로워질수록 우리 내부에서는 이러한 분열의 길을 벗어나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양의 로마가 그랬고, 동양의 당나라가 그랬듯이 서로 다른 것을 용인하는 포용과 화합이 번영의 길이기도 합니다. 사실과 가상이 혼합된 역사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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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휴정 기간 독서 – 군주론, 전쟁의 기원

변호사들은 겨울의 절정기에 맞이하는 법원의 휴정기에 한숨 돌리며 휴식을 갖게 됩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여행을 하기도 하고, 독서나 다른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바쁜 업무로 밀린 서면들이나 집안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연말에 맞은 휴정기에 밀렸던 인터넷 교체나 등 수선 등 집안일을 처리하고, 아내와 주말을 껴서 겨울산과 바다를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번 휴정기를 맞으면서 결심했던 것이 하나 있는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업무시간에 활자를 많이 봐서 왠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제 업무 이외의 책을 잘 읽지 않았지만 이번 휴정기에는 시간을 내서 책을 제대로 좀 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휴정기에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 책들 중 먼저 읽은 것이 ‘군주론’과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입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지은 ‘군주론’은 널리 알려진 책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제가 더 젊었을 때 이 책을 여러 번 집어 든 적이 있었는데, 지금보다 젊은 나이였을 때라 그런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책의 내용에 거부감이 들어선지 조금 보다가 내려놓았었습니다. 이제 그 때보다는 세상을 더 경험해서 마음이 열린 것인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더 알고 싶어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군주론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보니 여러 버전의 군주론이 있었는데, 제가 고른 곽차섭 교수 번역본은 이탈리어 원전을 최대한 직역하고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보여주면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해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글을 쓴 배경을 알게 되면 글의 행간을 읽는데도 도움이 되고, 내용 자체도 더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대로 책 처음 부분에 마키아벨리의 삶과 당시 이탈리아의 정세, 군주론을 써서 당시 피렌체의 권력자에게 증정하려고 했었다는 내용을 알게 되니 군주론이 왜 그렇게 쓰여졌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군주론은 어떻게 보면 난세를 사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기도 하고, 정치 지도자의 처세서이기도 하며, 수많은 도시국가로 찢어진 이탈리아의 슬픈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군주는 사자이자 여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감부터 생겼는데, 인간의 심성보다도 상황이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군주론에 나온 것처럼 민주정이 아닌 군주정에서는 군주 자신의 생존이 곧 국가의 생존이기에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로 삼국지 게임을 즐기고,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 열국지나 삼국지, 초한지, 대망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제가 유독 마키아벨리의 주장에만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 한편 이상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것은 제가 군주론이 있었던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서나, 전쟁을 수단으로 하는 부국강병의 기술을 주장하는 병가의 측면이 아니라 일반적인 정치에서의 교활한 기술이나 무자비한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에 군주론을 읽으면서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군주론을 읽은 후에는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부제가 ‘석기 시대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까지’인데, 저자인 아더 훼릴은 원시 인류부터 전쟁이 존재해왔고, 전쟁이 인류의 주거 형태와 삶의 방식을 많이 결정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장갑보병으로 유명한 그리스와 로마의 전쟁 수행 능력이 과대평가되어 왔고, 소아시아 등 고대 근동 지역으로부터 우리 현대인은 전쟁과 관련된 훨씬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출현에 대해서도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는데, 농경의 발전으로 도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방어 목적으로 도시가 생긴 후 농경 등 식량의 축적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농업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농경의 등장이 인류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며, 농경으로 인한 식량의 증산은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이미 늘어난 인구수로 인해 인류 공동체가 기존 수렵 및 채집 경제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떠오르는 농경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합니다.

책 내용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투에서 각 부대가 어떻게 전투를 벌였는지 그림을 통해 설명하는 것과 게임에서 많이 경험한 것처럼 각 부대들의 특성에 따라 서로 상성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갑옷이 두꺼운 중장갑보병이라고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경보병보다 전투력이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아시아 원정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그리스의 중장갑보병 전술과 페르시아 등 근동 지역의 경보병, 전술, 병참, 조직등 전쟁 기술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켰던 덕분이란 점도 놀라웠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의 장점을 살리고, 타인의 것이거나 새로운 것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 장점을 잘 살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것이 바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그 아버지인 필립왕은 근본적인 혁신이 비주류인 변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한 것이라는 생각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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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의 세금 체납과 임차인의 피눈물

오늘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 제목을 보다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전입신고를 하기 전까지 임대인이 미납한 세금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국세징수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맡았던 사건의 의뢰인이 임대인의 체납 세금 때문에 살던 집이 공매가 되어 임대차보증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가 공매에 참여해서 임차했던 집을 자신이 낙찰 받을 수밖에 없는 사정에 처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임대인이 말해주지 않았기에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자신이 알 수도 없었던 임대인의 세금 체납 때문에 임차인이 손해를 보는 어이 없는 상황에 저도 어이가 없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이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은 여러 차례 국회에 발의된 적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임대인의 개인 금융정보이기도 하고 악용될 소지도 있어 쉽사리 개정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법개정이 이루어진 계기가 된 이른바 ‘빌라왕’ 전세 사기처럼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들이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는데도 너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제라도 법개정을 통해 임차인들이 임대인의 세금 체납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줄어들었기에, 늦었지만 천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제 몫을 하면 어려운 국민들이 그만큼 피해를 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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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최근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기존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레마르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인데, 전쟁의 공포를 상상하는 것과 화면으로 전쟁 장면을 보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었을 때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제목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전선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표현이 아이러니하면서, 한편으로는 전쟁의 잔인함과 비정함을 한 문장으로 보여줘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소설과 영화의 마지막에 휴전 시점을 15분 남기고 적진으로 돌격을 명령하는 장군이 후방에서 휴전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시계가 울리는 것을 듣고 혀를 차는 장면과 같은 시각 참호에서 뒤엉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대비되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휴전 협정에서 정한 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사격 중지를 외치고 다들 각자의 진지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되묻게 됩니다.

며칠 전 이태원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 1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이 벌어졌는데,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관이 “예년과 비교해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결정은 어른들이 하고 희생되는 것은 젊은이들이라고 묘사되는 전쟁이 휩쓸었던 100년 전 세상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류는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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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보헤미안 카페의 추억

저는 대학 때 풍물패에서 동아리 생활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 중에는 교환학생으로 온 나이 많은 누나와 친하게 지냈던 추억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누나는 벨기에로 입양이 됐는데 런던 정경대학을 다니던 중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궁금해 교환학생으로 왔고,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을 배우고 싶어 풍물패에 들어왔던 겁니다.

동아리방에서 만난 케이티 누나와 친해진 저는 함께 어울리면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저를 양동생이라 부르던 누나가 가끔 학교 근처의 카페에 데리고 갔습니다. 지하에 있는 카페였는데, 카페 이름이 ‘보헤미안’이었습니다. 체코의 한 지방인 보헤미아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보헤미안은 집시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누나는 제게 커피가 맛있는 카페라고 소개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 중에는 특히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누나와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여럿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테리어가 세련된 지하 공간은 진향 커피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커피를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당시 아늑했던 카페의 분위기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누나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몇 번 이메일과 엽서를 주고받았는데, 제가 군에 입대한 후 시간이 흘러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대 후 그 때 갔었던 보헤미안이란 카페를 찾아봤지만 이미 문을 닫았는지 운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던 보헤미안 카페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최근 보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강릉의 커피 붐을 이끌었던 분이 바로 그 보헤미안 카페의 사장님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케이티 누나도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만날 날을 기약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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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철학하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변호사가 된 후 업무와 관련된 활자로 된 자료와 서적들을 많이 읽다보니 퇴근 후에는 주로 책보다는 영상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책을 읽게 되더라도 법학 관련 내용이나 인공지능 등 평소 업무를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영역을 편식하게 되어 너무 정서가 메말라가는 것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독서를 즐기는 아내가 재미있었다고 추천한 책이 있어 오랜만에 철학 서적을 펴보게 됐습니다.

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심오한 내용의 철학책이라기보다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핵심만 정리해서 기차 여행이라는 틀에 맞춰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애쓴 책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철학자들 중에는 제가 아는 철학자도 있고, 생전 처음 듣는 철학자도 있는데 아마도 동양과 서양철학의 여러 부류들을 조금씩 건드리다 보니 생소한 철학자들도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소개된 여러 철학자들 중 마음에 드는 철학자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로마 오현제 중 하나인 마르쿠스 아우엘리우스처럼 침대에서 일어나기 어려워하는 저로서는 왜 명상록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고, 루소처럼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아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간디처럼 싸우는 법도 인상 깊었으며, 처음 듣는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입을 통해 다소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스토아 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도 갖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마 이런 느낌은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책의 구성이 기차여행에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버무려 글을 끌고 나가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선호하는 철학 사조가 있는데, 그와 맞지 않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이거나 때로는 이것이 그 철학자의 사상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공자의 사상은 너무 간략히 설명하고, 그것도 약간은 틀린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마도 저자가 동양철학은 서양철학만큼 관심이 깊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철학책치고는 쉽게 읽히는 편이고, 책 소개에 나온 것처럼 빌 브라이슨의 유머처럼 매력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예전에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유머 코드가 저와 잘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철학책을 펼쳐 들고 느낀 것은 나이가 들면서 철학자들이 하는 말 자체보다는 그런 말을 왜 하게 됐는지 그 당시 철학자의 삶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없는 만큼 철학자의 삶을 이해하면 사상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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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과 청와대

얼마 전 주말에 대학 동문 모임에서 함께 청와대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청와대를 일부 개방하는 행사에 참여해서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일부만 개방한 것이라 춘추관, 녹지원, 본관과 영빈관을 둘러봤었습니다. 그래서 상춘재, 대통령 관저나 그 뒤쪽의 산책로 주변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건물들과 문화유적까지 볼 수 있다고 주말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예전과 차이라면 미니버스를 타고 춘추관을 통해 방문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도보로 청와대 사랑채 앞 문을 통해 입장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영빈관이나 본관은 이미 본 적이 있는데다 줄을 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간단히 둘러본 후 원래 제가 보고 싶었던 관저 뒷편의 미남불을 보러 다소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이 곳은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 그런지 관람객도 별로 없어서 한적한 느낌도 들었는데, 그래도 본격적인 산책로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특히나 제가 가장 보고 싶었던 미남불 앞에 관람객들이 여럿 서서 미남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남불은 원래 경주에 있었는데, 청와대로 옮겨왔다는 얘기부터 최근에 어떤 관람객이 훼손을 하려고 했었다는 얘기까지… 그래서 그런지 미남불 옆에는 청와대라 기재된 셔츠를 입은 불상 가이드인지 아니면 불상 가드인지가 의자까지 마련해놓고 관람객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명칭만큼이나 잘생긴 미남불을 감상한 후에는 다시 대통령 관저로 향했습니다. 막상 대통령 관저를 둘러보면서 놀란 것은 인테리어나 주변 시설이 생각보다 낡고, 옛날 스타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청와대가 만들어진 지가 30년이 넘다 보니 아무래도 미적 감각이나 기술이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내 인테리어나 내부 가구는 최근 TV에 나오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일반 주택들보다도 못한 면이 있었습니다. 다만, 실외는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빗물받이 홈통에서 빗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오도록 만든 장식물이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관저를 나와 아래쪽에 있는 상춘재로 향하니 침류각부터 제가 좋아하는 물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상춘재가 있는 곳은 과거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터인데, 상춘재 옆을 따라 물이 졸졸 흐르고, 그 물이 연못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연못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 관저로 연결되는 다른 길도 있어 조용히 이 길을 따라 산책하면 운치도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상춘재는 큰 나무가 서있는 넓은 잔디밭인 녹지원을 앞에 두고 있는데, 나무결 자체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한옥 양식이었습니다.

청와대 자리는 고려시대부터 별궁이 있던 곳으로 오랫동안 우리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지켜본 곳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찾았을 때와도 벌써 달라진 청와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이 곳을 우리 역사의 현장으로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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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헌 결정과 2000년 총선시민연대

며칠 전 헌법재판소에서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103조제3항을 비롯해, 현수막 및 광고물 게시를 금지하는 제90조제1항제1호 및 제93조제1항에 대해 위헌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위 조항들은 오래 전부터 주권자인 국민들이 능동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독소조항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 왔던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도 위 법조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2000년 총선 당시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총선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자 중 부적합한 인사들에 대한 낙천 및 낙선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저는 당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앞둬 휴학 중이었는데, 입대 전 의미있는 일을 해보려고 총선시민연대 활동에 자원봉사자로 함께 하였습니다.

주로 거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하는 역할이었는데 한창 젊은 나이일 때라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거리 홍보활동을 하던 도중 MBC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9시 뉴스데스크에 첫머리 뉴스로 방송이 되어 제 주변 사람들로부터 잘 봤다고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투표 결과도 대대적인 시민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낙선 대상자들이 고배를 마셨고, 저도 개표 당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벅찬 마음으로 개표 후 일주일 정도 지나 군에 입대를 했고, 2년여 군복무를 마친 후 제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 후 뉴스를 통해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운동기간 금지한 낙천, 낙선운동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바로 이번에 위헌 결정을 받은 그 조항들입니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부정한 돈은 막고, 입은 열겠다는 정치적 수사와는 달리, 형사처벌이라는 압박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려는 유권자들인 국민들의 언로를 막는 불합리한 조항들이었습니다.

그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20년이 넘게 흘러 이제 와서야 위헌으로 결정되었다니 만시지탄이라고 해야 햘지,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발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번 집을 정리하다 발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 배지들을 보면서 오래 전 대학생 시절의 추억에 잠시 잠겨봅니다.

얼마 전 집 정리를 하다 발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 당시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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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 남겨진 옛 추억

며칠 전 과거에 인기를 누리던 싸이월드가 다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참 오랜만에 접속한 싸이월드에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친구와 함께 한 여행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2003년에 소매물도에 갔을 때 사진들이니 거의 20년 전의 모습들이었는데,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옆에 와서 얻어 먹던 강아지 사진이나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암벽등반 동호회 아저씨들과 함께 해벽을 탔던 일 등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함께 여행을 했던 친구와 저는 이제 40대의 아저씨들이 되었으니 시간이 화살과 같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긴 앞으로 20년이 흐른 후 이 글을 보면서 다시 똑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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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다는 것

지난 달에는 제 평생의 반려자와 앞으로 삶을 함께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예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평생 함께 하고 싶어지면 결혼을 하겠다고 주변에 말을 하고는 했는데, 오랜 시간 기다려서 그런 사람을 만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도 협회의 동호회에서 만난 변호사님이 소개를 해주신 것이고, 사실 그 변호사님도 제 아내를 직접 아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통해 제게 소개해주신 것이니 인연이란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제가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산지가 거의 18년 정도 되었는데, 이 정도 시간을 홀로 지내다보니 제 시간과 공간을 제가 오롯이 책임지면서, 동시에 제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아내와 저의 시공간을 같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이런 어려움 ‘때문에’ 혼자의 삶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함께 하는 삶을 택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시간 동안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감싸주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연습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아내와 함께여서 행복했다는 말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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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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