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전선 이상 없다

최근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기존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레마르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인데, 전쟁의 공포를 상상하는 것과 화면으로 전쟁 장면을 보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었을 때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제목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전선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표현이 아이러니하면서, 한편으로는 전쟁의 잔인함과 비정함을 한 문장으로 보여줘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소설과 영화의 마지막에 휴전 시점을 15분 남기고 적진으로 돌격을 명령하는 장군이 후방에서 휴전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시계가 울리는 것을 듣고 혀를 차는 장면과 같은 시각 참호에서 뒤엉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대비되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휴전 협정에서 정한 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사격 중지를 외치고 다들 각자의 진지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되묻게 됩니다.

며칠 전 이태원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 1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이 벌어졌는데,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관이 “예년과 비교해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결정은 어른들이 하고 희생되는 것은 젊은이들이라고 묘사되는 전쟁이 휩쓸었던 100년 전 세상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류는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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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보헤미안 카페의 추억

저는 대학 때 풍물패에서 동아리 생활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 중에는 교환학생으로 온 나이 많은 누나와 친하게 지냈던 추억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누나는 벨기에로 입양이 됐는데 런던 정경대학을 다니던 중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궁금해 교환학생으로 왔고,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을 배우고 싶어 풍물패에 들어왔던 겁니다.

동아리방에서 만난 케이티 누나와 친해진 저는 함께 어울리면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저를 양동생이라 부르던 누나가 가끔 학교 근처의 카페에 데리고 갔습니다. 지하에 있는 카페였는데, 카페 이름이 ‘보헤미안’이었습니다. 체코의 한 지방인 보헤미아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보헤미안은 집시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누나는 제게 커피가 맛있는 카페라고 소개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 중에는 특히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누나와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여럿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테리어가 세련된 지하 공간은 진향 커피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커피를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당시 아늑했던 카페의 분위기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누나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몇 번 이메일과 엽서를 주고받았는데, 제가 군에 입대한 후 시간이 흘러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대 후 그 때 갔었던 보헤미안이란 카페를 찾아봤지만 이미 문을 닫았는지 운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던 보헤미안 카페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최근 보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강릉의 커피 붐을 이끌었던 분이 바로 그 보헤미안 카페의 사장님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케이티 누나도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만날 날을 기약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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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철학하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변호사가 된 후 업무와 관련된 활자로 된 자료와 서적들을 많이 읽다보니 퇴근 후에는 주로 책보다는 영상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책을 읽게 되더라도 법학 관련 내용이나 인공지능 등 평소 업무를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영역을 편식하게 되어 너무 정서가 메말라가는 것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독서를 즐기는 아내가 재미있었다고 추천한 책이 있어 오랜만에 철학 서적을 펴보게 됐습니다.

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심오한 내용의 철학책이라기보다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핵심만 정리해서 기차 여행이라는 틀에 맞춰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애쓴 책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철학자들 중에는 제가 아는 철학자도 있고, 생전 처음 듣는 철학자도 있는데 아마도 동양과 서양철학의 여러 부류들을 조금씩 건드리다 보니 생소한 철학자들도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소개된 여러 철학자들 중 마음에 드는 철학자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로마 오현제 중 하나인 마르쿠스 아우엘리우스처럼 침대에서 일어나기 어려워하는 저로서는 왜 명상록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고, 루소처럼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아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간디처럼 싸우는 법도 인상 깊었으며, 처음 듣는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입을 통해 다소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스토아 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도 갖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마 이런 느낌은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책의 구성이 기차여행에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버무려 글을 끌고 나가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선호하는 철학 사조가 있는데, 그와 맞지 않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이거나 때로는 이것이 그 철학자의 사상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공자의 사상은 너무 간략히 설명하고, 그것도 약간은 틀린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마도 저자가 동양철학은 서양철학만큼 관심이 깊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철학책치고는 쉽게 읽히는 편이고, 책 소개에 나온 것처럼 빌 브라이슨의 유머처럼 매력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예전에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유머 코드가 저와 잘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철학책을 펼쳐 들고 느낀 것은 나이가 들면서 철학자들이 하는 말 자체보다는 그런 말을 왜 하게 됐는지 그 당시 철학자의 삶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없는 만큼 철학자의 삶을 이해하면 사상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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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과 청와대

얼마 전 주말에 대학 동문 모임에서 함께 청와대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청와대를 일부 개방하는 행사에 참여해서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일부만 개방한 것이라 춘추관, 녹지원, 본관과 영빈관을 둘러봤었습니다. 그래서 상춘재, 대통령 관저나 그 뒤쪽의 산책로 주변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건물들과 문화유적까지 볼 수 있다고 주말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예전과 차이라면 미니버스를 타고 춘추관을 통해 방문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도보로 청와대 사랑채 앞 문을 통해 입장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영빈관이나 본관은 이미 본 적이 있는데다 줄을 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간단히 둘러본 후 원래 제가 보고 싶었던 관저 뒷편의 미남불을 보러 다소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이 곳은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 그런지 관람객도 별로 없어서 한적한 느낌도 들었는데, 그래도 본격적인 산책로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특히나 제가 가장 보고 싶었던 미남불 앞에 관람객들이 여럿 서서 미남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남불은 원래 경주에 있었는데, 청와대로 옮겨왔다는 얘기부터 최근에 어떤 관람객이 훼손을 하려고 했었다는 얘기까지… 그래서 그런지 미남불 옆에는 청와대라 기재된 셔츠를 입은 불상 가이드인지 아니면 불상 가드인지가 의자까지 마련해놓고 관람객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명칭만큼이나 잘생긴 미남불을 감상한 후에는 다시 대통령 관저로 향했습니다. 막상 대통령 관저를 둘러보면서 놀란 것은 인테리어나 주변 시설이 생각보다 낡고, 옛날 스타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청와대가 만들어진 지가 30년이 넘다 보니 아무래도 미적 감각이나 기술이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내 인테리어나 내부 가구는 최근 TV에 나오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일반 주택들보다도 못한 면이 있었습니다. 다만, 실외는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빗물받이 홈통에서 빗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오도록 만든 장식물이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관저를 나와 아래쪽에 있는 상춘재로 향하니 침류각부터 제가 좋아하는 물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상춘재가 있는 곳은 과거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터인데, 상춘재 옆을 따라 물이 졸졸 흐르고, 그 물이 연못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연못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 관저로 연결되는 다른 길도 있어 조용히 이 길을 따라 산책하면 운치도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상춘재는 큰 나무가 서있는 넓은 잔디밭인 녹지원을 앞에 두고 있는데, 나무결 자체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한옥 양식이었습니다.

청와대 자리는 고려시대부터 별궁이 있던 곳으로 오랫동안 우리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지켜본 곳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찾았을 때와도 벌써 달라진 청와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이 곳을 우리 역사의 현장으로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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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헌 결정과 2000년 총선시민연대

며칠 전 헌법재판소에서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103조제3항을 비롯해, 현수막 및 광고물 게시를 금지하는 제90조제1항제1호 및 제93조제1항에 대해 위헌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위 조항들은 오래 전부터 주권자인 국민들이 능동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독소조항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 왔던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도 위 법조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2000년 총선 당시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총선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자 중 부적합한 인사들에 대한 낙천 및 낙선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저는 당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앞둬 휴학 중이었는데, 입대 전 의미있는 일을 해보려고 총선시민연대 활동에 자원봉사자로 함께 하였습니다.

주로 거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하는 역할이었는데 한창 젊은 나이일 때라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거리 홍보활동을 하던 도중 MBC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9시 뉴스데스크에 첫머리 뉴스로 방송이 되어 제 주변 사람들로부터 잘 봤다고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투표 결과도 대대적인 시민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낙선 대상자들이 고배를 마셨고, 저도 개표 당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벅찬 마음으로 개표 후 일주일 정도 지나 군에 입대를 했고, 2년여 군복무를 마친 후 제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 후 뉴스를 통해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운동기간 금지한 낙천, 낙선운동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바로 이번에 위헌 결정을 받은 그 조항들입니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부정한 돈은 막고, 입은 열겠다는 정치적 수사와는 달리, 형사처벌이라는 압박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려는 유권자들인 국민들의 언로를 막는 불합리한 조항들이었습니다.

그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20년이 넘게 흘러 이제 와서야 위헌으로 결정되었다니 만시지탄이라고 해야 햘지,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발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번 집을 정리하다 발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 배지들을 보면서 오래 전 대학생 시절의 추억에 잠시 잠겨봅니다.

얼마 전 집 정리를 하다 발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 당시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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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 남겨진 옛 추억

며칠 전 과거에 인기를 누리던 싸이월드가 다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참 오랜만에 접속한 싸이월드에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친구와 함께 한 여행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2003년에 소매물도에 갔을 때 사진들이니 거의 20년 전의 모습들이었는데,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옆에 와서 얻어 먹던 강아지 사진이나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암벽등반 동호회 아저씨들과 함께 해벽을 탔던 일 등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함께 여행을 했던 친구와 저는 이제 40대의 아저씨들이 되었으니 시간이 화살과 같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긴 앞으로 20년이 흐른 후 이 글을 보면서 다시 똑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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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다는 것

지난 달에는 제 평생의 반려자와 앞으로 삶을 함께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예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평생 함께 하고 싶어지면 결혼을 하겠다고 주변에 말을 하고는 했는데, 오랜 시간 기다려서 그런 사람을 만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도 협회의 동호회에서 만난 변호사님이 소개를 해주신 것이고, 사실 그 변호사님도 제 아내를 직접 아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통해 제게 소개해주신 것이니 인연이란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제가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산지가 거의 18년 정도 되었는데, 이 정도 시간을 홀로 지내다보니 제 시간과 공간을 제가 오롯이 책임지면서, 동시에 제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아내와 저의 시공간을 같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이런 어려움 ‘때문에’ 혼자의 삶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함께 하는 삶을 택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시간 동안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감싸주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연습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아내와 함께여서 행복했다는 말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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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나눔 생명의 신비상 수상

며칠 전에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 증진 및 수호 활동을 기리기 위해 천주교 생명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생명의 신비상 수상식에 참석했습니다. 제가 이사로 있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이 무연고 사망자분들에 대한 장례지원 활동을 인정받아 생명의 신비상을 받게 되어 실무를 담당하는 임원분들 및 직원분들과 함께 참석한 것입니다.

생명의 신비상은 천주교에서 중요시하는 생명과 관련해 생명과학분야, 인문사회과학분야, 활동분야 3개로 나뉘는데, 항상 3개 분야의 수상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후보가 있으면 상을 수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해에는 대상이 있고, 다른 해에는 대상이 없는 경우도 있으며, 3개 분야 수상자도 해마다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만큼 자격이 있는 후보자들만 수상을 하는 것이라 더 뜻깊었습니다.

서울시청에서 다른 일정이 있어 조금 일찍 도착한 시상식장에는 나눔과나눔 직원분들과 천주교 관계자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눔과나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역대 수상자들에 대한 게시글을 읽다가 시상식이 시작될 즈음 자리로 가니 이사장님과 다른 이사님들도 도착하셨습니다. 시상식이 시작되고, 무려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을 도와온 착한목자수녀회가 대상을, 성체줄기세포 연구로 포스텍 신유근 교수님이 생명과학분야 본상을, 학대피해 노인을 조력해온 서울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이 활동분야 본상을 받았고, 나눔과나눔도 활동분야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각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을 듣고 있다보니, 자신의 영역에서 타인을 위해 헌신해온 삶의 경험들이 들어 있어서 그런지 다른 시상식에서 들었던 수상 소감보다 훨씬 뭉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법을 다루면서도 생명의 소중함이나 생명권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하곤 했지만, 그것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사실로 풀어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몸으로 체득한 지식과 경험의 소중함을 느끼는 자리기도 했습니다.

시상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는데 미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미사주가 반주로 나와서 신자가 아닌 저도 미사주를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저는 전에 마주앙을 마셔본 적도 있습니다. 다른 마주앙은 와인 원액을 수입해서 병입만 해서 파는 것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이 미사주는 특이하게 국내산 포도를 사용해 와인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나눔과나눔에서 실무를 하는 직원분들의 노고 덕분에 이사로서 큰 도움은 드리지 못하고 있는 저도 함께 시상식에 참여해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어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도 힘을 내서 우리 사회를 밝혀주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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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갖는가?

코로나가 휩쓰는 시대,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늘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머물면서 넷플릭스 등 OTT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 등 프로그램들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최근 본 ‘다운사이징’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 저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세포 축소기술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체의 질량과 크기를 축소하는 것인데, 영화적 설정이긴 하지만 그런 축소에도 불구하고 세포의 조직이나 전체 세포가 구성하는 개체의 연속성은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을 그대로 크기만 작게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는 지구의 자원을 마구 소비하고 있는 인간으로 인해 지구에 한계점이 오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의 크기를 줄여 인간이 소비하는 자원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을 떠나 기후 위기를 직접 겪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그 취지는 백번 옳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제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장면은 다운사이징을 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의 결정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벌어졌습니다. 주인공 부부가 친구 부부와 술집에서 술 한잔을 하면서 다운사이징을 하기로 결정한 계기나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옆자리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사람 취색 한 명이 시비를 걸면서 질문을 합니다.

다운사이징을 한 사람들에게도 보통 사람과 똑같은 선거권을 주는 것이 맞냐는 것입니다. 소득세 등 세금도 내지 않고, 소비도 거의 하지 않아 경제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니 일반인의 1/8의 권리만 갖는 것이 옳지 않냐는 주장입니다. 물론 주인공 부부의 친구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제지하지만 그 취객의 주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입니다.

그런 주장의 전체적인 취지는 사람은 사회에 기여한 만큼 권리를 갖는 것이 옳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그런 주장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재산을 가진 사람만 선거권을 가지는 것이 맞다, 남성만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양반과 평민만 재산을 가질 수 있다 등 인간의 가치가 모두 같은가 하는 오랜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생각입니다.

최근 외국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들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기여를 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주장들은 잘못된 사실관계에 근거한 경우도 많고, 국가정책적으로 부당한 경우도 있지만, 그 주장의 뿌리는 이처럼 긴 역사적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미래가 이렇게 단순하게 인간의 가치를 현재의 경제적 능력으로 재는 구분과 차별의 조각난 공동체라면 좀 서글퍼집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해당 국가의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했던 간디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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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운전과 역지사지

저는 원래 출퇴근이나 업무를 보면서 자가용 운전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시내 등 가까운 곳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천안 정도 이상 거리는 기차를 이용했기 때문에 어떤 해에는 자동차보험을 갱신하면서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 연간 주행거리에 600km를 적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 자동차보험회사에서는 제 연간 주행거리를 보고 잘못 적은 것이거나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궁금해 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안전을 위해서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많이 이용하게 된데다가 수원이나 평택, 파주 등 대중교통으로는 자가용 이용시보다 2배 가까이 시간이 소요되는 지역에서 업무가 많아 드디어 연간 주행거리가 7,000km를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주행거리를 적으면서 이제 나도 자동차를 제대로 모는 사람이구나 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으니 역시 사람은 별 것 아닌 것에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가 봅니다.

이렇게 자가용 운전을 계속 하다보니 기존에 주로 보행자나 대중교통 승객 입장에서 느꼈던 것들과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제가 버스를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버스들이 도로에서 생각보다 거칠게 운행을 한다거나 보행자들이 위험한 차가 접근하는데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등 새로운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보행자였을 때는 차량들이 횡단보도 신호등이 주황색, 파란색 등으로 바뀌었는데도 마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운전을 해보니 주황색 등에서 갑자기 정지하면 뒤에서 따라오던 후행차가 추돌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황들을 경험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입장에 서보는 것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는데, 몇년 동안 운전을 하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수입차들은 왜 깜빡이라고도 불리는 방향지시등이 옵션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많은 수입차들은 차선 변경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데 아마도 방향지시등이 기본으로 장착된 것이 아니라 옵션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가격도 국산차보다 꽤 나가는 것들일텐데, 방향지시등 정도는 옵션을 추가 장착하지 않은 이른바 깡통차에도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요새 유독 도로에서 더 많이 보이는 오토바이라고 불리는 이륜자동차나 원동기장치 자전거의 경우도 방향지시등이 없어서 많은 경우 비상등을 켜고 달리는 것을 수시로 보게 됩니다. 물론 차량들 사이를 전후좌우로 누비면서 도로를 가로지르거나 역주행도 해야 하니 스스로도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몰라 방향지시등을 켜기 어려운 것도 이해가 가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방향지시등 장착을 옵션으로 설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보입니다.

제가 5, 6년 전 교퉁사고를 당해 운전을 별로 하지 않다가 올해 코로나로 인해 다른 해보다 운전을 많이 하다보니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것도 많이 있지만, 도로에서는 모두 안전운전이 코로나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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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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