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 졸업

저는 지난 금요일에 드디어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고 법학을 더 깊이있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 2015년이었으니까 실제로 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하는데 6년이 걸린 셈입니다. 물론 제가 석사 과정을 수료한 것은 2017년이지만, 학위 논문을 작성해 심사를 통과해야 석사 학위를 받아 졸업할 수 있으니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시간이 꽤나 흘렀습니다.

처음 대학원에 입학할 때는 헌법이나 국제법을 전공하고 싶었기에 원서에 그렇게 기재했는데, 막상 대학원에 입학하고 보니 다양한 전공의 흥미로운 과목들이 많이 개설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과목은 제가 담당했던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과목은 앞으로 제가 전문 분야로 삼고 싶은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에 두루두루 다양한 과목을 수강, 청강했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학위 논문을 받은 인공지능 로봇과 관련된 과목으로 이과대학 과목인 뇌과학 세미나, 컴퓨터학과 장병탁 교수님 강의였던 컴퓨터, 인문, 사회학 융합 과목도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강의를 들었을 때만 해도 관련 실무를 잘 몰랐던 김종보 교수님의 재개발, 재건축 관련 과목은 이후 6년 가까이 서울시에서 조합실태점검을 하고, 법인에서도 재개발 조합 관련 송무사건들을 다수 진행하면서 나중에서야 그때 배운 내용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면서 실무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 과목이었습니다. 형사증거법 강의 역시 제가 맡았던 형사 사건들에서 의견서를 제출할 때 기반이 되는 이론을 깊이있게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법연구도 이후 노동사건과 산재사건을 하면서 참고할 내용을 많이 배웠고, 특히 북한산과 지리산 등산이 포함된 세미나 일정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2학년이 되어 헌법을 전공으로 정하면서 전종익 교수님의 기본권 과목을 수강했는데, 평등과 관련한 주제로 법철학을 기초로 한 기본권 논의를 공부하다보니 제가 알고 있는 헌법 지식이 참으로 보잘 것 없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송석윤 교수님 강의시간에는 새로운 시각으로 법체계나 법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논문 지도교수님으로 송석윤 교수님을 모시고 인공지능 로봇을 주제로 잡았지만, 인공지능 로봇과 노예를 헌법적 차원에서 비교한 논문을 작성해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한 끝에 전공을 법경제학으로 변경하였습니다.

법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전에 ‘IT정책의 법경제학’ 과목을 들었을 때 인사드렸던 고학수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변경했습니다. 전공을 바꾸면서 논문의 내용을 다소 수정해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 지위를 법인과 연관해 살펴보는 것으로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논문을 쓰다 보니 2년이 넘는 기간 주말과 퇴근 후 시간에 관련 자료들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느라 계획보다 논문 작성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대학원을 다니고, 논문을 쓰면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래도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 저녁에 강의를 듣느라 졸기도 하고, 주말에도 강의 때문에 다른 약속도 많이 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런 과정이 일단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비록 COVID-19로 인해 학위 수여식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지만, 학교를 방문해서 석사 학위기도 받고, 석사 학위복을 입고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다 보니 뿌듯함도 많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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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친구와 지난 시절을 안주로 한 술자리

요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하도 어수선해서 저는 가급적 모임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대학 같은 과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해서 건설 계약 관련해 자문을 받을 것이 있다고 하길래 검토해줬더니 식사를 사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얼굴을 봤는데, 단 둘이서 만나서 그런지 새로 옮긴 회사 얘기 뿐만 아니라 가족들 얘기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학시절부터 사귀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잘 키우고 있었습니다. 벌써 큰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을 다닌다고 하면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저와는 많이 차이가 났습니다.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대학 시절 얘기도 하고, 친구가 대학 졸업 후 취업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웠던 시절을 듣다보니 아직 한참 젊었을 나이인데 가정을 꾸린 후 감당해야 했을 마음 고생이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과에서 반대표를 했었기 때문에 졸업한 후에도 나름 연락이 되는 같은 학번 친구들이 많은 편이라 과 동기들과 종종 모임을 가지려고 노력하곤 했습니다. 다들 회사일과 가정일로 바쁘다 보니 많은 친구들이 나오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단체 카톡방에서 각자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 정도 묻는 것으로도 빛나는 젊은 대학생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즐거워집니다.

대학 친구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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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혐오와 우리 사회의 미래

요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개인적 모임들 진행이 어렵고, 공공기관들의 세미나 또는 심포지엄도 취소되고 있습니다. 보건과 안전에 대한 대비는 철저한 것이 좋으니 이로 인한 부작용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 방향 자체는 맞다고 보입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눈 앞에 닥친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인해 과도한 공포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인터넷 기사나 댓글을 비롯해 상당한 곳에서 중국인 자체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내용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기존에도 있었던 일부 사람들의 외국인 혐오 태도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증폭된 것으로도 보입니다.

본능을 가진인간인 이상 당연히 통제되지 않는 위험에 대한 공포를 갖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예측가능한 수준으로 통제되는 위험에 대해서도 막연한 불안감을 이유로 외국인, 특히 현재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을 때 이러한 표현과 태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일 것입니다.

제가 맡고 있는 사건 중에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공권력 주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신체 상해까지 입어 법원에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 교수인 제 의뢰인은 어느 나라나 다양한 사람이 살고, 외국인 혐오가 내면화되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최소한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법원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곤 합니다. 가끔은 그런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 말문이 막힐 때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개방된 마음과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공포라는 동물적 본능을 이성으로 제어해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말보다는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동물 그 자체인 인간으로서 우리 유전자가 얼마나 다양한 계통의 조상들 즉, 지금 기준으로 치면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로부터 왔는지를 상기한다면 외국인에 대한 혐오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부정일 수도 있다는 점을 한 번 정도는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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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석사 학위 심사용 논문 제출

드디어 지난 주에 대학원 석사 학위 심사용 논문을 제출했습니다. 하계 휴정기부터 본격적으로 초고를 작성하기 시작해 석달 가까이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매달린 덕분에 가까스로 제출 마감 기한을 맞춰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학위 논문 주제는 “인공지능(AI) 로봇의 기본권적 지위”로 제가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내용인데,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주제와 관련된 대학원 강의들도 들으면서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해당 주제와 관련한 선행 논문과 단행본 등 자료들을 먼저 읽고 전체 논문 내용에 적절히 반영해야 했는데, 낮선 주제에 나름 법적으로 치밀한 논리를 구성하려다보니 학위 논문을 처음 작성하는 제게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논문을 작성하다보면 자꾸 부족한 부분이 눈에 보이고, 새로운 자료를 찾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한 문장을 쓸 때도 참고문헌들을 참고하면서 인용하는 각주를 작성해야 되고, 혹시라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문구를 다듬는 작업에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단을 완성해가다 보니 100쪽이 넘는 논문이 만들어졌습다.

막상 어느 정도 논문의 틀을 만들어 놓고 보니, 이제는 전체적인 구성이 매끄러운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일단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내용 자체는 작성했는데, 전체적인 글의 맥락을 보면 한 번에 읽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전체 흐름을 끊거나 돌출된 듯한 느낌을 주는 내용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의 목차를 앞뒤로 옮기고 연결 문구들을 다시 수정하는데 마무리 단계에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마지막에는 내용을 최종적으로 정리해 논문의 서론, 결론, 목차 및 초록을 작성했는데, 이 작업도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제본 과정에서도 제본소에서 제가 얘기한 규격에 맞춰 글을 정중앙에 배치하지 않고, 한쪽으로 쏠리게 제본을 하는 바람에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 심사용 논문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학위 논문 작성은 처음 하는 것이라 그런지 계속 시행착오도 있었고, 부족한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제본까지 해서 제출하고 나니, 어깨에서 큰 짐을 벗어놓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2015년에 대학원에 입학해서 수료한지 2년 가까이 지났는데, 이제서야 제가 해야할 오래된 숙제를 마쳤다는 기분도 들고, 이제는 새벽까지 논문을 쓰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곧 있을 논문심사를 무사히 통과해서 대학원 생활을 잘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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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논문과 휴가 보내기

이번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왜 7월말, 8월초를 휴가기간으로 정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여름휴가 기간에 집을 떠나 국내나 국외로 다니곤 했는데, 이번 하절기 휴정기간에는 할 일이 있어 집에 머물렀더니 역시 상당히 덥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에어컨을 사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이제 더이상 제가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제 대학원을 수료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학위 논문을 쓰지 못했습니다. 사실 대학원에 입학할 때부터 쓰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 대학원에 갔는데, 난해한 주제로 엄두가 나지 않아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과학동아의 부록으로 나왔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소설을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된 로봇과 인공지능의 법적 지위가 제 논문 주제입니다.

평소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료만 수집해 읽고만 있다가 2주의 여름휴가 기간 동안 논문 초안을 작성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휴가 첫날, 늦잠을 자고 약속이 있어 귀가하니 이미 한밤중이라 내일부터 논문을 쓰자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튿날, 논문의 전체적인 목차를 작성하면서 방 바닥에 지금까지 모아서 정리뒀던 자료들을 목차에 맞게 분류해서 깔아놓으니 마음이 뿌듯해서 잠깐 고민을 하다가 휴식 모드로 진입했습니다.

3일째에는 예정되어 있었던 조정사건이 있어 조정을 성립시키고, 학교 선배를 만나 식사를 한 후 장을 봐서 귀가하니 벌써 저녁이 다 되었습니다. 역시 더위에 지쳐 쉬다가 슬슬 논문을 쓰다보니 하루가 금새 지나갔습니다. 4일째, 이제 이러다가는 큰 일이 나겠다 싶어서 정신차려 논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쓰다보니 가지고 있는 자료들로는 너무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고, 새로운 자료들을 더 구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에 인터넷으로 필요한 도서를 주문하고, 온라인 학교 도서관을 통해 논문을 찾아 다운로드받다보니 시간이 매우 빨리 흘러갔습니다.

그렇게 휴가 5, 6, 7…10일째가 지나고, 논문 초안이 반 정도 작성되었는데, 막상 쓰면서 보니 전체적인 논리 구조가 처음 구상했던 것과 달리 자꾸 꼬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차와 내용을 잘라서 앞뒤로 붙였다가 다시 떼어냈다가를 반복하다보니… 시간은 참 잘도 흘러갔습니다. 휴가 기간이었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회의나 형사고소사건 조사 참여, 상담 등이 계속 있어 더욱 시간이 잘 흘렀습니다.

그래도 휴가 기간동안 진도 안 나가는 글을 꾸역꾸역 밀어내면서 휴가가 끝날 즈음에는 다행히 2/3 정도까지 초안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번 주말에도 여지없이 논문 초안을 잡고 있는데, 역시 뒷부분에서 앞에서 작성한 글을 정리해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 지위와 관련한 핵심 내용들을 쓰다보니 마무리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을 하면서 법학과 일반대학원에 들어가 2년 넘게 공부를 한 것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내심 즐겁기도 합니다. 이제 초안을 잘 마무리해서 9월초에 뵙기로 한 지도교수님께 잘 설명드리고, 논문심사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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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남편에서 형으로…

지난 주말 저녁에는 매형이 20세 이하 월드컵 경기를 함께 보자고 해서 누나집에 놀러 갔습니다. 하루 종일 변호사회에서 연수 강의를 듣고, 8시 정도 되어서 누나집으로 향했는데 도착하니 에어 프라이어로 삼겹살을 굽는 맛있는 냄새가 가득 했습니다.

월드컵 결승전도 있었지만 얼마 전 매형이 직장에서 이사가 되어 축하의 의미로 와인 한 병을 가져가 누나까지 3명이 함께 나눠 마셨습니다. 미성년자인 제 조카는 오렌지 주스로 만족했습니다.

매형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저와 누나가 많이 친한 것을 알고, 결혼하기 전 누나를 뺏기는 것이 아니라 형이 하나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는데 그 말처럼 지금까지 형처럼 저를 챙겨줬습니다.

제가 갑자기 혼자 살게 됐을때 불편할텐데 집에 들어와 함께 살자고도 했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시절에 누나와 반찬을 준비해서 신림동까지 갖다주면서 힘을 북돋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행동이 자신이 경제적으로 여유있어 한 것이 아니어서 더욱 고맙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누나와 결혼할 당시 둘 다 대학원생이어서 어렵게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이후 급여가 박한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결혼기념일에 누나가 좋아했던 캣츠 뮤지컬 티켓을 사다줬는데, 누나로부터 생활비가 필요해 티켓을 다시 팔았다는 얘기를 듣고 매형은 가족들도 챙기지 못하면서 뭘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기자 생활을 접고, 학원 강사가 되어 부단히 노력해 이제는 유명한 강사가 되어 이사까지 된 겁니다.

제가 가끔 제 누나와 결혼해줘서 고맙다고 농담도 하곤 했는데, 지난 주말엔 매형과 침대에 누워서 결혼 전 했던 얘기를 하면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형이 돼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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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내뱉는 자들과 우리 사회의 대응

이희호 여사가 며칠 전 9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았던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운동가이자, 민주화운동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매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기도 했던 이희호 여사는 죽음을 앞두고 국민들의 화합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기원하겠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우리 사회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한 이희호 여사가 떠나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조문으로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바람마저도 외면하고, 마지막 길에도 조롱과 저주의 말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렇게 혐오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려고 하는 무리나 세력들은 역사 속에서 계속 존재해왔습니다. 그들은 혐오라는 독을 내뱉으면서 자신의 근거없는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하거나,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알게 모르게 종사해왔습니다. 그런 무리 중 10여년 전부터 자주 들리는 단어가 일간베스트, 줄여서 ‘일베’라는 사이트 이용자들일 것입니다.

일베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들어보기만 했던 제가 일베 무리들과 직접 대면하게 된 것은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 유가족 법률지원단으로 활동하던 중 광화문에서 유가족의 단식농성장에 현장대응반으로 대기하면서였습니다.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게 된 사실관계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아스팔트를 달궈 그 열기가 광화문 농성장을 감싸고 돌던 오후, 일베가 이른바 ‘폭식투쟁’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돌연 농성장에 전해졌습니다. 그 전에도 한번 일베가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유가족들을 조롱하기 위해 단식농성장 옆에서 피자와 치킨을 나눠먹는 ‘폭식투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제가 광화문에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알지는 못했고, 언론 기사를 통해서만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광화문에서 지원활동을 맡은 날 일베가 온다고 하기에 저는 유가족분들과 자원활동가들에게 물리적 충돌이나 폭언 등 일베가 유도하고자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당부를 했습니다. 

일베가 모이기로 했다는 오후 5시 정도 되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정도 되는 청년과 소년들 무리가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음식을 햄버거 봉지를 들고 있고, 다른 사람은 치킨 박스를 들고 있기도 했는데,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하는 천막 근처로 무리지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배치되어 있던 경찰병력과 자원활동가들이 무슨 용무냐고 물으면서 그들의 접근을 막기 시작했고, 저 역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제가 다가가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니, 한 청년은 광화문 광장에 김밥 먹으러 왔는데 음식 먹는데도 무슨 허락을 받아야 되냐고 반문하기에, 그럼 저 옆에 있는 의자에서 먹는 것이 어떻냐고 했더니 자기가 먹고 싶은 곳에서 먹겠다면서 단식 농성 천막 바로 뒤로 다가갔습니다. 이것을 본 자원활동가들이 뭐하는 거냐면서 언성을 높이자,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병력이 다가와 가운데서 차단하면서 그 청년을 옆에 있는 의자로 가도록 했고, 결국 그 청년은 그 의자에서 김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흥분하는 자원활동가들과 유가족들에게 저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렇게 화내고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진정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옆에서 치킨 박스를 들고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3, 4명의 청년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았더니, 어떤 사람은 안양에서 왔다고도 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왜 알려줘야 하냐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하더니 옆에 있던 경찰관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 것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것이 아니냐는 황당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날은 처음 폭식투쟁 후 여론의 뭇매를 맞은 후라 그런지 우려했던 것보다는 적은 인원이 온 것으로 보였는데, 저는 그래도 그들의 생각이 알아보려고 뭔가 대화를 해보려고 했지만, 계속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거나, 자신들이 왜 왔는지는 숨기고 그냥 음식을 먹으러 왔다면서 우리나라에 그런 자유가 없냐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은 나치 돌격대였습니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백색테러를 저질렀을 당시 돌격대는 그 선봉에서 활동을 했고, 그 구성원들은 사회 현실에 불만을 품은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광화문에서 이른바 ‘폭식투쟁’이란 것을 하고 있는 저들이 지금 사회에 가지고 있는 불만은 어떤 것이고, 그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 방법이 진정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궁금했고, 자신들이 누군가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도 묻고 싶었습니다.

나치 돌격대는 히틀러의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도 그 세련되지 못한 폭력성을 계속 노출했고, 이제는 그런 모습이 부담스러워진 히틀러에 의해 수백명의 간부들이 즉결 처형되는 등 숙청됨으로써 그 효용을 사실상 다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을 비추는 거울인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잊은 저들을 저렇게 만든 것이 누구일까,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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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싸운다는 것

오늘은 한달에 한 번 서울시 마을변호사로 상담을 하는 날이었는데, 주민센터에 상담을 하러 오신 분이 저에게 자신이 기억나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전에 오셨냐고 답하면서 언제 오셨냐고 물었더니 1년 전에 왔었다면서 자신이 아니라 오빠의 사건 때문에 왔었는데, 1년 동안 재판을 받고 다시 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담자가 하는 얘기를 듣다보니 전에 들었던 사연이 생각났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공무집행방해 사건이었습니다. 술을 마신 오빠가 인도에서 길을 막고 다른 사람을 체포하고 있었던 경찰관에게 길을 비켜달라고 하면서 시작된 사건이었습니다.

전에 상담하면서 무죄를 다투고 싶다고 하기에 목격자 진술을 확보해 대응하라고 했는데, 실제 공판에서는 재판장이 주변에서 상황을 본 가게 주인의 진술은 배척하고, 동료 경찰관의 진술을 믿어 유죄를 선고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경찰관이 상황을 오해하고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의뢰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힌 것과 관련해 국가배상청구 사건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많이 느낀 바 있습니다.

일단, 법원은 경찰이나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인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판사 스스로가 보통 법을 잘 지킬 뿐 아니라, 같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동료의식이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아가 설령 그런 잘못을 했더라도 국가재정을 생각하면 배상까지 인정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도 보입니다. 다른 변호사들과 얘기하다보면 종종 판사가 법 해석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넘어 국가재정을 지키는 수비선수 역할을 자임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까지 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실관계 확정에 있어 완전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이 인간인 판사로서도 쉽지 않겠지만, 신의 역할을 대신한다고도 하는 판사들은 이러한 세간의 의심마저도 잘못된 것이었다는 깨닫게 해주는 판결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는 각 동별로 마을변호사가 있어서 법적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사안이나, 경제적으로 법률 상담료를 지급하기 어려운 분들은 한번 이용해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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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합니다.

군대에서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것 중 하나가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아마 엄격한 계급체계와 상명하복이 필요한 군대의 특성상 군인 개개인이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일 수는 있지만 생각없는 인간일 수 없는 우리는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고, 우리의 문명도 그렇게 일어섰습니다.

이 곳은 오늘을 살아가는 제가 언론기사나, 일상에서 겪는 일들, 때로는 그냥 문득 떠오르는 것들에 대해 적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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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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